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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여성신문 연재

루이보스티 향기를 품은 스플리트 - 여성신문 연재 #5

by 두루가이드 2012. 11. 24.

원문 http://www.womennews.co.kr/news/55288

 

두루가이드 오동석의 발칸 여행기
‘나쿠펜다 AFRICA’ ‘나는 유럽에서 광을 판다’ 등 여행 서적을 집필한 여행작가 오동석씨가 최근 세계적으로 인기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유럽 발칸반도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주마간산 스타일의 여행기나 외국 도서를 모방한 연대기적 글이 아니라,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까지 섬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여행객이나 단기 출장을 가는 사람을 위한 여행지 정보는 물론, 여행사 직원들이나 해외로 출장 가는 투어 리더들이 읽어도 좋을 만한 심도 있는 내용까지 총괄한다. ‘두루가이드’ 오동석씨와 함께 천천히 걷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느린 여행’의 대명사 발칸을 두루두루 둘러보자.
루이보스티 향기를 품은 스플리트

▲ 마리얀공원에서 내려다본 스플리트 구시가지 전경. 종탑이 있는 곳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전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에서 해안으로 내려가면 갑자기 노란 물결을 만난다. “저 꽃 이름이 뭔가요?”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6월까지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방의 언덕과 도로 주변은 노란색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은 해안을 따라 두브로브니크까지 이어지는데 유독 스플리트(Split) 일대에 더욱 밀집돼 있다. 꽃 이름은 아스팔라토스(Aspalathos). 그리스인들이 살았을 때부터 이 꽃이 많아 지명을 아스팔라토스 또는 스팔라토스(Spalathos)라 불렀다. 로마시대 이후부터는 스팔라토(Splato)라 불려왔으며 지금도 이탈리아어로 스팔라토다. 콩처럼 생긴 열매는 기름을 짜서 사용했지만 지금은 차로 마시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 식물로 그 유명한 ‘루이보스티(Rooibos Tea)’를 만든다. 스플리트에서도 차를 만들어 마시며 팔기도 한다. 스플리트는 로마시대에도 솔린이라는 군단이 있었을 만큼 달마티아의 수도였으며 현재도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 도시다. 스플리트에 가는 목적은 건축사에 빛나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을 보기 위해서다.

 

위대한 건축물, 유네스코 문화유산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

▲ 포럼이 있는 기둥의 공간. 붉은색 대리석 기둥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온 것들이다. 포럼의 왼쪽은 황제의 무덤이었던 대성당. 가운데 삼각형 지붕이 있는 부분은 황제 아파트이다. 오른쪽은 카페 룩소르(Luxor)이다. 집주인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기둥과 스핑크스에 착안해서 이름을 이집트 룩소르로 정했다.
궁전은 어디 있는지 막상 누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변형되어 있다. 건물 2층 높이에 있는 수많은 기둥으로 미루어 궁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로마시대가 오래전 일이라 유럽 어디를 가더라도 황성 옛터의 유적지들만 보기 마련이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는 표현처럼 이곳 역시 기대가 크면 다소 실망하게 되는 곳이다.

1700년 전에 만들어진 궁전의 원형은 크로아티아 지페 500쿠나(화폐단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친절한 안내판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후에도 매력적인 곳의 독특함을 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공간까지 보존하고 있다. 현재 궁전 내부엔 200개의 건물이 있고 약 3000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주거공간이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골목골목에는 선물가게,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궁전은 정방형에 가까우며 면적은 3만3057㎡(1만 평) 정도다. 궁전엔 동서남북에 각각 예술적인 가치를 가진 4개의 문이 있는데 로마시대 때 가장 귀했던 금속의 명칭을 사용했다. 동서남북 각각 은(Silver), 철(Iron), 청동(Bronze), 금(Gold)의 문이다. 궁전은 동서로 나누어 남쪽은 황제 영역이었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군인들과 신하들이 살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궁전을 짓기 위해 10년간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고 한다. 건축 재료의 대부분은 스플리트 앞바다에 떠 있는 섬에서 가져온 질 좋은 석회암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대리석 기둥과 이집트 현무암 스핑크스가 남아 있다. 중심에 해당하는 포럼은 황제의 영역으로 행사나 회의를 하던 장소다. 지금도 가장 많은 이들이 모이는 장소다. 무엇보다 더운 여름철에 시원한 돌계단에 방석 하나 달랑 깔린 노천카페에 앉아 로마시대 최고의 건물을 음미할 수 있다. 포럼 한쪽에 종탑이 있는 건물은 한때 황제의 무덤이었다. 황제가 죽은 후 기독교인들이 들어와서 시신을 없애버리고 그 장소에 대성당을 만들었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다신교를 부활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에 복수심에서 시신을 없앴다고 한다.

<관광안내 표지판에 성명되어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복원도>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잠시 대기했던 아파트 입구는 둥근 돔으로 되어 있다.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지만 울림소리가 좋다 보니 달마티아 민속음악을 하는 아마추어 중창단이 항상 노래를 들려준다. 아파트 안쪽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황제 아파트의 흔적이 아닌 달마티아에서 가장 아담한 호텔을 만난다. 객실이 7개밖에 없지만 SLH(Small Luxury Hotel)에 가입돼 있다. 호텔은 로마시대 벽면에 고딕시대와 르네상스시대 유적이 혼합되어 보물이 되었다. 북쪽 황금의 문은 로마의 군단 솔린으로 향하는 곳이어서 가장 육중한 이중문이 있었다. 이름에 걸맞게 외관이 화려했었다지만 영광은 온데간데없다. 단지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청동 인물상에 관심이 갈 뿐이다. 10세기 자다르 인근 염전이 있는 닌(Nin)이라는 도시에서 온 주교 그레고리우스다. 당시 라틴어로만 행하던 종교예배를 자국어인 크로아티아 언어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인물이다. 때문에 무지한 사람들이 깨어났고 크로아티아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청동상의 엄지발가락이 반질반질하다. 문지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를 오늘도 많은 이들은 재미삼아 하고 있다.

▲ 바다와 접해 있는 청동문을 통과하면 로마시대 소문났던 웅장한 궁전의 규모를 느끼게 한다. 지하처럼 보이지만 지상 층이며 바로 위는 황제가 거주했던 공간이다.

Tip. 스플리트에서 꼭 해볼 것

1. 골목을 돌다가 계단을 이용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기.
2. 은의 문 밖으로 나가서 싸고 맛있는 과일 사기. 체리 시즌이면 1㎏에 우리 돈 1000~2000원이면 산다.
3. 대성당 종탑에 올라가 시내 전경 감상.
4. 좀 더 시간이 많다면 도보로 10분가량 떨어진 마리얀공원 전망대에서 전체 전경을 볼 수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종탑에 올라서 내려다본 주변 경관>

 

<골목에서 만나는 계단 cafe>

 

1213호 [세계] (2012-11-23)
오동석 /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