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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이란

<파라다이스>가 나온 이란의 파사르가데(Pasargadae)

by 두루가이드 2016. 10. 11.

<파라다이스의 본래 이름 파사르가데 Pasargadae의 정원>

 

페르시아의 본영이라고 하는 이란의 파사르가에 가면 2,500년 동안 서있는 작은 피라미드가 있다.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제국(BC550~BC330)을 창설한 왕중의 왕 키루스 2세 (Cyrus II) 대왕의 영묘이다.

이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많은 기록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있다.

 

키루스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레스 대왕으로 바빌로니아를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정복한 후

유대인들을 풀어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내용에 대해서 구야성경 에스라서에 나온다.

자신의 고향의 돌아가서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있게 재정을 지원해줬다. 이 때문에 키루스 대왕을 칭송하는 많은 구절이 나온다.

그는 국가경영의 기본은 정복한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서 그들의 스타일대로 살게 했다는 점이다.

정복지에서 군인들의 약탈 금지, 점령지를 개발하는 공공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상 키루스 대왕만큼 칭송을 받는 왕이 드물다.

유대인은 물론이고 적국이었던 그리스도 위대한 군주로 칭송했다.

그리스 역사학자 그세노폰은 "비길자가 없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정복자"라고 기록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라고 하고 있다.

 

전세계 다양한 거대 왕조들이 왜 페르시아 제국의 경영기법을 벤치마킹 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대제국들이 이루었던 포용(관용)정책이다.

각 민족의 종교를 인정하고 그 문화는 누리게 하는 정책을 펴온 나라들은 오랫동안 거대 제국을 유지해왔다.

지금은 미국이 그런 역학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키루스 대왕의 업적이 나타나 있는 원통형 기록이 브리티시 뮤지엄에 보관되어 있다.

점토로 되어 있는 이 기록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최초의 인권선언에 대한 내용부터 다양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파사르가데는 시라즈에서 140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1,900미터의 평원에 자리하고 있다.

평원은 위가 넓고, 밑이 좁은 사다리꼴 비슷하게 생겼는데 길이가 25킬로미터 북쪽폭은 10-10킬로미터 남쪽은 폭이 1킬로미터 정도이다. 평원 주변은 가파른 산들이 감싸고 있다.

키루스 2세가 만든 페르시아의 첫 수도였던 파사르가데 가면 키루스 대왕의 묘지를 제외하곤 황량하기 그지 없다.

기원전 6세기 키루스 대왕이 만들었던 정원은 사라지고 궁전은 기둥과 터만 남았다.

2,500년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란이 더울 것 같지만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어서 추울 때는 우리의 겨울보다 더 춥다.

쌀쌀한 날씨에 코가 얼 정도였다.

 

돌들은 접착물질을 쓰지 않고 돌과 돌을 연결하는 쇠로 이었다.

무덤이 왜 6층(7개 기단) 위에 만들었는지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없다.

이란 전체에 걸쳐서 이와 비숫한 형식은 두 개 밖에 없다.

하나는 키루스 대왕의 선조들이 세운 엘람 왕조 시대 만든 무덤양식이다.

마치 고구려 고분양식 비슷하다. 혹시 먼 이국 땅 고구려와 통교를 하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로아스터교는 공기와 물과 흙, 불을 더럽히면 안되기 때문에 위에 묻었다고도 한다.

(하필 저 때는 엄청나게 추웠다. 이란은 사막이 많은 곳이어서 여름에 최악으로 덥기도 하지만 겨울은 사정이 다르다. 이란은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 사는 곳 대부분은 해발 1,300미터가 넘는다. 겨울에는 눈이 오는 곳도 아주 많다.)

 

파사르가드는 페르세폴리스 북쪽에 자리한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했을 때 다른 것은 다 약탈하고 불 태웠지만 자신이 존경하고 그리스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왕 키루스 대왕의 무덤 외관은 남겨 놓았다.

그러나 무덤을 도굴 했다.

그리스 역사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금잔, 키루스 대왕이 잠든 금으로 된 관, 마차, 칼, 금 장식 귀고리 그리고 대왕의 입었던 예복, 바빌로니안 카펫이 있었다고 한다.

훗날 사산조 페르시아가 망하고 압바스 왕조가 왔을 때 이슬람인들은 파괴를 일삼았다. 이 때 키루스 대왕의 무덤도 파괴하려하자 지키던 사람들이 "이 무덤은 솔로몬의 어머니 무덤이다."라고 해서 무사히 넘겼다.

그 후 무덤은 솔로몬 어머니 모스크로 변모했었다. 아래 그림에서 기둥은 모스크를 만들었을 때 무덤 주변에 회랑을 만들 때 사용했던 기둥들이다. 지금은 기둥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학자들은 알렉산더가 훔친 물건 중에는 아래 그림과 같은 형태의 각배가 있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다양한 페르시아의 보물들 중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이다.

 

 

동쪽으로 파사르가데에 들어오는 입구 집에 새워진 키루스 대왕의 부조이다.

2미터가 넘는 실물보다 큰 조각이다.

풍화에 많이 사라지고 있어서 보호 장치를 했는데 아직 허술하다.

 

날개를 달고 3개의 물병 또는 도자기와 같은 것을 머리에 올린 왕관이 매우 인상정이다.

이런 머리장식 왕관은 이집트에서 먼저 나왔다.

이런 왕관의 의미는 해뜨는 아침에 태양의 아들로 권위를 상징한다.

이 같은 모양은 고대 이집트 하이라이트 시기였던 신왕조 초기였던 18왕조 시절 파라오들이 행사 때 착용했었다.  특히 아케나텐(아멘호테프)와 어린 시절 요절한 파라오로 황금마스크로 유명한 투탄카멘, 그리고 위대한 대제 람세스 2세가 착용했다. 키루스 대왕은 이집트에 가보지 않았지만 문화를 받아 들였다.

스스로 태양의 아들, 하늘의 아들임을 나타한다. 그러니까 천자(天子)임을 나타내는 증표이다.

 

아래는 이집트 18왕조 시대의 파라오 왕관. 헴헴(Hemhem)왕관 또는 삼중 아테프 왕관(Triple Atef Crown)으로도 불린다. 헴헴은 외치다”,”울부짖다라는 의미이다. 아멘호테프와 투탄카멘 그리고 람세스 2세가 착용했었다. 아멘호테프와 투탄카멘 그리고 람세스 2세가 착용했었다. 그 이후에서 이런 왕관을 착용한 파라오들이 등장했다.

아멘호테프는 태양신 아텐만을 섬기는 이집트 유일신교를 만든 인물이다. 그 의 후계자 였던 투탄카맨은 어린 나이에 요절한 왕으로 황금마스크로 유명하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파라오는 람세스2(람세스 대제)이다. 장수했고 전국에 신전을 새웠고 많은 치적을 남겼다.

(투탄카멘 왕의 황금의자 등받이에 새겨진 조각 그림. 투칸카멘이 헴헴(삼중 아테프 왕관을 쓰고 있다.)

 

이집트 벽화에 나타나는 이집트 왕관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왕조를 창설한 키루스 대왕은 제국의 국장을 조로아스터교에 입각해서 만들었다.

 

페르시아 제국 왕들이 차지했던 지역들에 대한 지도이다.

초록색 지역은 키루스

파란색 이집트를 합병시킨 왕은 키루스 왕의 아들 캄비세스 2세이고

붉은까지 확장한 왕은 다리우스 1세이다.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길

다리우스는 상인이고 (늘 이익을 중시)

캄비세스는 장인이며 (거칠고 가혹 했고)

키루스는 아버지라고 이야기 한다. (아버지 처럼 자상하게 배려했다.)

 

 

 

세워진 구조물이 몇 안되는 곳이라 다니다 보면 기둥들을 다 보게 된다.

 

 

키루스 대왕의 개인 궁전 근처에 있는 기둥에 쇄기 문자가 새겨 있다. 

위에 두줄은 "나, 키루스 대왕 아케미니드"라고 쓰여 있다.

세번째 네번째도 같은 의미이지만 페르시아 이전의 왕국이었던 엘렘어와 바빌로니아어로 새겼다.

이 글씨들은 위대한 왕 다리우스 1세가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도 아케메니드 왕조의 일원임을 보이기 위해서 였다.

 

 

파사르가데에 대한 간략한 지도.

 

접견 궁전터에는 13미터 기둥만 덩그러니 서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사정전 처럼 신하나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기둥의 크기로 그 규모를 짐작할뿐 사실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된다.

 

그래서 책자를 구입해서 보았더니 대충 알 것 같다.

크기는 54미터 X 35미터나 된다.

 

접견실 내부의 상상도이다.

더 화려했었 겠지만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접견 궁전 한쪽에 있는 물고기 비늘의상을 한 남자의 다리가 조각되어 있다.

앗시리아 문처럼 조각되어 있는 이 인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동물을 가지고 와서 주는 모습으로 여긴다.

 

파사르가데는 산에서 물을 끌어다가 정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수로는 다리우스 1세가 변형했거나 첨가한 것이다.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용어는 아케메니드 왕조의 건축에서 나온 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페르시아 스타일의 정원은 누각이 있고 물이 흐르고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름에 쉴 수 있는 빌딩을 만들어서 담을 쌓고 지냈던 곳이다.

 

가장 오래된 페르시아 정원은 키루스 대왕이 파사르가데에서 만들었다.

아래는 그 정원 지도를 대략적으로 만든 것이다.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누각들이 있다.

그리고 정원안에는 키루스 왕의 개인궁전과 접견궁전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

4개의 구역으로 나눈 부분이 핵심이다.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가든의 기본 형태가 이때 나왔다.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용어는 페르시아 언어로 "담으로 감싸여 있는"이란 의미이다.

파르스 지방의 파사르가데에서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서

에덴 정원, 신이 기거하는 정원이며 사람이 죽은후 고결한 사람들만 산다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완벽한 장소에 대한 고대인들이 꿈은 길가메시시 서사시에 영원한 신의 정원을 이야기 한다.

신의 정원에서 물은 생명을 의미하고

식물과 나무는 신을 이야기하고

4개로 구획된 정원은 4개의 삶을 의미한다.

 

 

파사르가데에서 가장 큰 건물은 키루스 대왕의 개인 궁전이다.

위 정원 그림에서 위쪽 건물에 해당한다.

남아 있는것은 터와 짤막한 기둥들뿐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가장 높은 구조물은 솔로몬(술레이만)의 감옥이다.

솔로몬의 이름을 빌린 감옥으로 솔로몬과는 관련이 없다.

용도가 여러가지라는 설은 많지만 정확하게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야말로 황성옛터이지만 의미있고 멋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