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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러시아

테러당한 레핀의 명화 (폭군 이반과 그의 아들) 그리고 레핀

by 두루가이드 2018. 7. 25.

<테러당한 러시아 천재화가 레핀의 명화 '폭군 이반과 그의 아들 >

 

 

지난 5월25일 모스크바에 있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이 테러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러시아가 낳은 천재화가 일리아 레핀의 명화 '폭군 이반과 그의 아들'이라는 그림이 37살 보드카를 마신 관객에게 그림이 훼손 되었다.
접근 금지선으로 경계를 만든 보안용 철제봉로 그림을 가격했는데 유리가 깨지고 그림에 상처가 났다. 
이 소식은 전세계에 퍼졌고 60여차례가 넘게 뉴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림을 훼손한 이유에 대해선 역사를 왜곡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반은 그의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다.

 



(위:  Ivan the Terrible and His Son Ivan

그림 속 내용은 폭군 이반(이반 4세 :러시아 최초 황제)이 며느리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훈계를 했는데 아들이 며느리 편을 들었다고 홧김에 머리를 때려서 죽게 했다는 장면을 묘사했다. 이 사건으로 바이킹 핏줄인 러시아 류리크 왕조가 막을 내리고 로마노프 왕조로 들어섰다. 이 그림은 1881년 황제 알렉산더 2세가 피살 당하자 레핀이 영감을 얻어서 그렸다. 1885년 수집가이자 박애주의자 파벨 트레티야코프가 구입을 했다. 알렉산더 2세의 아들이자 황제 알렉산더 3세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이 그림을 전시하지 못하게 했다.) 

 

이미 2013년에 러시아 정교 행동가들 중의 한 단체인 '거룩한 루스'이라는 조직이 박물관에 편지를 보내서 왜곡된 역사를 전시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편지를 보냈다.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박물관에 가서 명백하게 비난받아 마땅한 레핀의 그림을 본다. 이반은 그의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면서 그림을 내려 달라고 했지만 미술관 측에선 거절 했다.

 

(위: 그림이  훼손된 부분. 박물관 측에선 다행이 얼굴 부분이 무사하다 했다.)

 

아마도 레핀이 유명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이런 그림이 없었졌을 수도 있다.

이름있는 화가의 명작은 가끔 시련을 겪곤 한다.

로마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1972년 정신 이상자에 의해서 망치로 12번 가격을 당하는 테러를 당했었다. 이로 인해서 마리아의 얼굴과 어께, 손가락에 파손되었었다.

(미켈란젤로가 24살 때 조각한 피에타 상.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 전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여러번 공격을 당했다. 염산을 뿌리기도 했고 돌을 맞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심각한 훼손이 있었다. 사실 그림을 공격했기 때문에 더 유명해 졌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렘블란트, 벨라스케즈 그림들도 공격을 당해서 훼손된 적이있다.

 

 

(위 :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입구. 동상은 수집가 트레티야코프.)

 

1996년에 필자가 러시아 모스크바에 처음 갔을 때 예상치 않게 러시아 미술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러시아 미술엔 별 관심들이 없었다.
기껏해야 정교의 이콘(나무에 그린 성인의 얼굴)이나 그리는 나라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러시아 화가들은 매우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쟁에 참전한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 충격에 받기도 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러시아 그림을 머리속에 각인 시키기에 충분했다.


(위: 레핀의 자화상 1878)

 

무엇보다 일리아 레핀은 러시아 그림을 서유럽 수준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소위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림을 전시하는 화가들이 모여서 '이동파'라 불리는 페레지비즈니키(Peredvizhniki: 러시아어로 떠돌이를 뜻함 )를 결성해서 진정한 러시아의 그림을 보여주겠노라며 유럽을 다녔다.
주로 러시아의 자연과 러시아 전반적인 내용을 그렸다.

이동파 중에서 최고가 레핀이었던 것이다.
레핀은 러시아의 문화, 정치, 러시아인들의 삶을 그렸다. 귀족에서부터 농부까지 안그린 분야가 없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레핀은 단순히 화가가 아니라
러시아 역사가, 미술사가, 문화사가 였음을 알게한다.

(위: 쿠르스크Krusk 지방의 종교 행렬. 그림 속에서 귀족부터 농부까지 그려져 있다.)

 

사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일리야 레핀(ILYA REPIN)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드물었다. 서구 유럽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의 각종 예술사전에도 등록이 되어 있다. 물론 이전에는 레핀이란 이름이 없었다.

정착한 군인의 집안으로 지금의 러시아와 접하는 우크라이나의 동쪽 지방에서 태어났다.
레핀의 아버지는 말을 판매했고 할머니는 여관을 운영했다. 어머니는 교사였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을 어릴 때부터 타고났다. 

아버지의 지원으로 러시아 정교 이콘은 그리거나 오래된 이콘은 보수하기도 했으며 지방 유지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기도 했다. 
성장해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레핀은 러시아 여러 곳은 물론 유럽 여행을 많이 했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체코 등을 다녔다. 
프랑스에선 살롱에 작품을 전시했다. 거기서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났다.
박물관을 다니면서 그림에 놀라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왜 저렇게 그리고,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림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동료들은 "레핀은 봤던 장면을 표현하는데 타고난 천재다."라고 했다.

레핀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림에 중독된 사람'이다.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렸다. 

한번은 그림 그리는 손이 떨리자 가족들이 말렸고 심지어 그리던 그림을 치워버렸다.
평생 그림을 생각하고 그림만 그리던 레핀은 담배를 피우면서 벽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 모습을 본 가족들은 다시 그림을 줬다고 한다.

 

(위: 레핀의 그림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림으로  볼가강에서 짐배를 끄는 사람들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 러시아 미술관. 레핀이 어릴 때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봤던 장면을 스케치 한 후 그린 그림이다. 황제 알렉산더 2세의 아들인 대공(Grand Duke)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가 그림을 구입해서 유럽 전역에 전시했다. 당대 러시아 사실주의의 상징이었다. 당장 쓰러질 것만 같은 사람들이 배를  끄는 모습은 당시 볼가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러시아의 현실이었다. 남자만 끌었던 것이 아니라 여자들도 끌었다.
그런데 세상의 현실이 그림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보이니 참 씁쓸하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사람들이 사는 모습엔 약간의 차이만 있어 보인다. 그나마 유럽같은 사회주의는 사람들이 살만한 구조라 유럽을 따라가려는데 그게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1900년대 볼가강에서 짐배를 강 상류로 끄는 사람들)

 

 

 

(위: 레핀의 거대한 그림으로 490cm X 294cm이다. 황제 알렉산더 3세가  모스크바 인근 페트로브스키 궁전 마당에서 지역 노인들을 맞이하는 장면. 1886. 촛점이 매우 또렷하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호사스런 액자가 더 감상포인트 처럼 느껴진다. 액자엔 당시 러시아 모든 지방 문장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액자 중앙 위는 황제의 문장이 박혀있다. 1914년 한 관람객이 들어와서 "더 이상 피는 안되!"라고 외치며 칼로 그림을 그었다. 이 사건으로 큐레이터가 자살하고 말았다. 레핀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보수해 달라고 했고 일반인들에게 오랜기간 공개하지 않았다.)

 

 

(위: 코사크족 자포르지안의 술탄 메흐메드 4세 보내는 회신이라는 그림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러시아 미술관. 4mX2m의 대형 화폭에 담음 그림이다. 드네프르 강에 사는 코사크 족이 투르크와 전쟁에서 이겼다. 그럼에도 술탄은 코사크에게 전갈을 보내서 무뤂을 꿇고 투르크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 코사크가 낄낄거리면 욕설로 답장을 쓰는 장면이다. 그림이 완성 되자 황제 알렉산더 3세는 35,000루불을 주고 구입했다. 이전까지 러시아에서 누구도 그렇게 큰 돈을 주고 그림을 산 적이 없었다
술탄과 코사크가 주고 받은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술탄 메르메드 4세가 자포르지안 코사크에게-
술탄이면서, 무하마드의 아들이며, 태양과 달의 형제이며, 하나님의 손자이자 하나님의 총독이며, 마케도이나, 바빌론, 에루살렘, 상이집트, 하이집트 왕국의 지배자이며, 황제들의 황제이며, 군주의 군주이며, 절대 꺾을 수 없는 매우 특별한 기사이며, 예수 그리스도 무덤이 확고부동한 수호자이며, 하느님 당신께서 선택한 수탁자이며, 무슬림들의 희망과 위로이며, 기독교인들의 헌신자이자 위대한 수호자인 내가 너 자포르지안 코사크에게 명한다.  자발적으로 저항없이 항복하고 너의 공격으로 나를 괴롭히지 마라.
지금 저 편지를 읽으면 가관이다. 한마디로 그냥 나는 신이다. 그러니 항복하라 처럼 보인다.
코사크는 술탄의 타이틀을 모방하고 당시 욕이라는 욕은 다 동원해서 답을 했다.

 

-자포르지안 코사크가 투르크 술탄에게-
술탄, 터키의 악마, 저주받은 악마의 친척, 루시퍼 자신의 비서, 너는 맨살 엉덩이로는 고슴도치를 죽일 수 없는
어떤 종류의 기사 악마인가? 너는 너의 군대가 먹는 악마의 똥. 우리는 너의 군대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땅이건 바다건 우리는 너와 싸울 것이다. 너는 바빌론의 바보, 마케도니아의 수레목수이며, 예루살렘의 양조업자이고 (너무 심한 욕이라 중간생략) 위대한 이집트와 낮은 이집트의 돼지치기이며, 아르메니아의 돼지이며, 포돌리안의 도둑이며, 타타르인의 면화이며, 모든 세계와 모든 지하의 바보이며, 신 이전의 바보이며, 악마의 손자이며 그리고 돼지의 주둥이며, 도살장의 개이며,...(중간 생략)

그래서 자포로지안이 선언한다. 너 미물. 너는 그리스도 인들을 위해서 돼지를 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결정한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달의 달력도 없고 날자도 모른다. 주님의 해(Year)도 없다.

여기의 날짜가 거기의 날짜이다. 우리 엉덩이에 키스나 해라.) 

 

(1905년 혁명 때 행진하는 군중들. 농민이었던 레핀은 혁명을 지지했으며 직접 혁명에 참여해서 가두시위를 여러차례 했다.)


 

( 80살의 레핀)

 

 

(상트 페테르부르크 인근에 있는 레핀의 집이면서 박물관. 다작가였던 그는 그림을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 레핀은 잠을 주로 발코니에서 잤다. 눈이 오는 날에도 발코니를 잤다고 한다. 전쟁이 났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밭을 직접 갈아서 야채를 먹었다. 그는 채식주의자에 가까웠다. 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오면 직접 야채를 캐어서 대접했다. 친구들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미술표현 기법과 같은 이야기보다 상대방의 하는 말과 생각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