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2017.01.23 07:30

<세상의 절반 에스파한의 블루모스크>

 

모자이크만으로도 놀라운 나라 이란에서 한 도시만 추천하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스파한(Esfahan)이라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단박에 에스파한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네스파자한(Nesf-e-Jahan)으로 세상의 절반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다 모이고, 세상 사람들이 다 모이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16세기 사파비 왕조의 5대 왕 압바스 1세가 수도로 만들면서 가장 화려해진 상업도시가 되었다.

 

사실은 오래던 셀주크 튀르크 왕조 때 수도였던 곳이다.

셀주크를 몰아낸 몽골이 에스파한의 절반을 파괴 했고

아미르 티무르 제국 시대엔 7만을 살육해서 우기철에만 물이 흐르는 자연데 강이 피의 강이 되기도 했다.

침략이 많았던 곳이라 사파비 왕조 이후에 사람들은 만약을 대비에서 돈을 비축하는 습성이 생겼는데

이 후에 이란에서 에스파한 사람들을 돈을 가장 밝히는 짠돌이들이라 한다.

 

아래는 세상에 알려줄만한 낙쉐자한 광장(세상의 본래 모습)에서 담은 샤모스크(블루모스크 또는 이맘모스크).

밤 12시에 연못에 분수가 멈추고 나서 담은 장면이다.

에스파한은 해발 1,400미터에 사막에 자리한 도시여서 밤 12시에 나갔을 때 매우 추웠다.

 

 

페르시아(이란) 특징은 외관을 현란한 타일로 덮는 다는 점이다. 이는 기독교, 오스만의 튀르크, 인도의 무굴에는 없는 특징으로 매우 화려하다.

그런데 돔은 기본이고 외관 전체를 타일로 덮는다.

이런 특징은 이란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아래의 샤 모스크는 50년 동안 만든 건물로 놀랍도록 인상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내부에 들어가면 하루 종을 나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환상적인 모자이크 타일 장식을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건축의 비밀도 간직하고 있다.

 

 

이란은 사파비 왕조 때 푸른색과 노랑색 타일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곳은 주로 푸른색 타일을 많이 사용해서 블루모스크라는 병칭이 붙어 있다.

이슬람에서 푸른색은

1. 천국정원의 평온함

2. 내세의 안녕을 나타낸다.

사원 입구에서부터 입이 딱 벌어지는 놀라운 모습 때문에 감상하고 사진에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마 모르긴 해도 내 기억에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사원이 아니었나 싶다.

 

 

이 사원은 2대에 걸쳐서 50년간 만들다 보니 빨리 완성하기 위해서 속도를 내다 보니 몇몇 곳은 완벽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입구의 좌측 벽면과 우측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그 차이점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아래는 좌측 벽면으로 엄청 복잡한 도안을 한 후 조각 하나하나를 직접 구워서 끼웠다.

도안의 기본은 모든 선이 끊어지지 않고 다 연결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생명의 연속성과 영원함을 나타낸다.

 

 

그림처럼 너무나 완벽해서 눈을 의심하게 한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벽지를 만들어도 이렇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슬람 문화의 특징답게 글자를 디자인 또는 도안처럼 새겨 넣었다.

경전의 내용을 새기거나 신의 이름 또는 예언자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내부의 메인 성소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직경이 21m인 돔과 벽면은 복잡한 듯 세련되었으면

파란색 기둥이 황금색 지붕을 떠 받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저 놀랍다는 이야기 밖에

 

우주가 폭발해서 퍼지는 듯한 모자이크 돔 아래서 소리를 내면 7번 울린다.

소리가 사원 구석 구석에 다 전달 되게끔 설계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래 사진에 있는 친구에서 아잔(쿠란을 낭송하는 소리)를 청했더니 모르긴 해도 에스파한에서 만큼은 가장 청아한 목소리로 사방 곳곳에 소리가 울려퍼지게 했다.

녹을 해두었는데 아주 아름답다.

 

그리고 메인 성소를 벋어나 한 걸음 벗어나도 놀랍고도 새로운 모자이크는 계속 된다.

 

복도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공간 아래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복도쪽 천장은 8면으로 만들었지만 아치 위에 만들어서 마치 16면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진짜 16면으로 만든 천장도 있었다.

저렇게 8면, 16면으로 만든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다. 우리식 방법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다 같기 때문이다.

 

그 퍼진 면 끝네는 마치 미로같은 타일이 있는데 사실은 신의 이름인 알라와 예언자의 이름인 무함마드 그리고 알리(무함마드의 조카이자 사위)라를 글자들이다.

이슬람 사원의 천장은 그런 글씨로 가득 쓰여져 있고 매우 많은 신의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슬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림과 같은 모자이크 벽화를 만났다.

나무를 제외하고 살아있는 동물이나 사람을 그리지 않는 것이 이슬람의 특징이지만

 

이 곳 벽면엔 다양한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화려한 정원에서 노는듯하다.

이 그림에 사람만 있다면 마치 이슬람세계에서 이야기하는 천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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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2017.01.14 09:00

<모자이크 현람함의 극치 이란>

 

이슬람 문화권이 모자이크가 대단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 로마시대부터 모자이크로 장식한 문화를 영위해 왔지 대부분 건물 내부 바닥에만 장식을 했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에선 모든 곳에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을 했다.

지붕과 청장, 벽, 바닥, 기둥을 모자이크 장식이다.

단순함을 넘어서 복잡하고 정교한 면을 발전시켜서 직접 접하면 사람이 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교하고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모자이크 장식을 한 곳으로는 이슬람 사원 장식이 가장 대표적이며, 지도자의 궁전, 시장(바자르), 대상들의 숙소(카라반 사라이), 공중목욕탕(하맘)까지 그야말로 아름다운 타일들이 경쟁하듯이 반짝반짝 거린다.

이란은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한 곳 중에 최고봉인 나라이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장소는 세상의 절반이라고 칭하는 이스파한이다.

 

(아래: 쉐이크 로포라 Sheikh Lofollah 모스크-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는 이스파한 Isfahan 의 이맘 광장 한쪽에 있다. 외부도 화려하지만 내부는 더욱 현란하다.)

 

16세기 사파비 왕조시절에 5대 왕 샤 압바스 1세 때 이스파한이 수도가 되었다.

이스파한의 특징은 푸른색이다. 

쉐이크 로폴라 역시 입구에서 부터 푸른색을 발산한다.

 

(인위적으로 어둡게 만든 통로를 따라 돔 밑으로 가면 조명이 없는데도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서 황금빛이 찬란한 모습에 방문객들을 놀라게 한다.)

(지붕의 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왕실의 여자들을 위해서 만든 곳이라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지만 진짜 여자들을 위한 곳인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지하 통로로 연결되었다고 하는데 그 통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붕을 좀더 자세히 보면 중간에서부터 밖으로 정교하게 연속적인 무늬를 볼 수 있다.

 

마치 빅뱅 이후 우주가 퍼져 나간 듯이 둥근 지붕을 현란하게 표현했다.

 

이란에서 모자이크가 두번째로 화려한 곳은 이란의 얼굴이라는 시라즈이다.

그 중에서도 한 때 이 지방의 실권자의 집이었던 핑크 모스크이다.

 

핑크색은 시라즈가 중심 일 때 등장하기 시작한 색으로 사실 핑크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지만 핑크색이 훨씬 많아 보인다.

가까이에서 보면 벽면을 따라 장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정교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 바쁘다. 같은 사진을 찍고 또 찍고...

 

핑크 모스크의 내부로 들어가면 더 놀라게 된다.

해가 뜨는 아침에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를 장식하는데 그 아름다움은 다른 곳에 비할 바가 없다.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 정교하게 할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 할텐데

 

시라즈에 있는 또 다른 바킬 모스크.

가장 중심에 있는 규모가 가장 큰 모스크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 듯한다.

 

매우 촘촘하교 정교해서 사진이 잘 안 나온 듯 보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무늬가 있어서 사실 보기에 어지러울 정도이다.

 

내부 역시 다르지 않다. 타일은 중심부에만 남겨 두었다. 그리고 어디에서고 보이는 만(卍)자 문양

 

(정교함을 나타내는 증거는 문양의 색 하나하나를 구워서 붙였다는 점. 시라즈의 대표적인 새인 나이팅게일을 표현한 점이 특이하다. 동물과 사람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이슬람인데도 말이다. 사실 동물을 표현한 모습은 이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바킬 모스크 바로 옆 목욕탕 지붕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시장의 지붕까지. 야즈드의 한 시장-바자르의 쉼터에서 만난 고급스런 모자이크 지붕)

 

이란에서 모자이크를 보면 다른 나라의 모자이크는 시시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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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광철

    대단하네요.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이란

    2017.01.14 15: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꼭 가보면 좋습니다. ^^

    2017.01.14 21: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탈리아2017.01.11 03:32

<카라바지오의 걸작 이후 로마 야경>

 

개인적인 일로 찾은 로마를 마치 무교동과 명동을 다니듯이 어슬렁 거리면서 카푸치노가 맛있는 카페도 들리고 이름 모를 골목들을 다녀 봤다. 관광이 생명인 로마가 오래된 관습을 버리고 진화하는 모습에 로마가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만 다니는 길을 더 많이 만들어서 쾌적해 졌고, 친절해진 사람들과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식당, cafe, 호텔, 관광지 그리고 . . . 

이탈리아 경제가 어려워 지니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어서 사람들이 스스로 변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사실 정치로 따지만 우리나라보다 더 황당한 곳이 이탈리아 아니던가.

국회의원만(상원+하원) 945명이지만 한 번 되면 특혜는 무지막지하다. 월급이 1600만원, 야근수당 월 600만원, 대중교통 공짜, 수영장 축구경기 공짜, 명품 다이어리 지급받고, 이발이 공짜 등등 말도 못한다.

부패지수가 세계 75위. 의회는 비효율, 낭비는 최첨단. 남쪽과 북쪽은 매일 싸우고....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쓰는 비용이 1년에 90억유로(대략 11조2,500억)나 되니 국민들이 허무한 나라이다. ㅠㅠ. 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지 이상할 뿐이다. 그러니

애당초 경제가 잘 굴러갈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와 경제는 뗄 수 없는 역학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에 말이다.

가끔씩 이탈리아 길거리에서 멋진 제복을 입고 폼잡고 으시대면서 걸어다니는 고위급 경관을 보면 부패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탈리아가 도둑 천국이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음음 초장부터 너무 갓길로 샜다.

 

저녁이 되길 기다려서 콜로세움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좀 찍어봤다.

이 곳을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저녁에 나를 찍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서 방금 해가 떨어진 장면을 담은 베네치아 광장쪽으로 가보자.

무솔리니가 고대 로마의 유적지 위로 만든 길(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까지)을 따라 내려오면   

 

최고의 지배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트리아누스 황제의 마켓이 나온다.

로마시대 주상 복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건물이 최근에 많이 복원이 되었다.

낮에 보는 것보다 밤에 보니 한 결 빛난다.

 

그리고 로마 스럽지 않게 흰색으로 만들어서 한 때 눈총을 받았지만 지금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중에 한 곳이 되어 버린  빅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독립(통일) 기념관이다.

 

사람의 크기와 말탄 동상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하게 된다.

완성 되었을 때 인부들이 말 속에서 테이블을 올려놓고 기념 파티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시간의 더 뒤로가서 기둥 광장 앞 알베르토 소르디 겔러리에 잠시 둘러보면 신구 조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사실 로마는 고대 로마의 모습은 많지 않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모습이 훨씬 많은 곳이 로마이다.

고대 로마의 유적은 대부분 황성옛터처럼 남아 있어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시간을 더 거슬러서...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서 성 천사의 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잠시 신발 끈을 죄여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특별히 축사를 해서 베드로 광장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성천사의 성 쪽으로 가는 중이다.

도로에서 차량이 사라지니 이렇게 다니기 편하다.

 

성 천사의 성 근처에서 베드로 성당쪽으로 보니 길 양옆에 새워진 조명들이 사열이 멋지게 보인다.

무솔리니와 바티칸이 란테라 협정에 의해서 화합(콘칠리아치오네)의 길이라 이름지어서 만든 도로이다.

이렇게 만들면서 로마는 파시스트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길을 만들기 이전에 이야기를 한다면, 19세기에 독립한 이탈리아 신흥왕국이 교황령을 강제 합병시켰다. 

비록 이탈리아에 합병되었지만 교황청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로마문제>가 약 59년간 지속되었다.

합병될 당시 교황 비오 9세는 스스로 "나는 바티칸의 포로"라고 선언했다. 

이후 59년가 교황들은 바티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무솔리니 때 국왕 빅토리오 엠마누엘 3세의 왕국과 교황청이 란테라 궁전에서 협정이 이루어 지면서 바티칸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교황청의 소유가 인정되었고 국제법상 치외 법권이 인정되었으며 이탈리아 국교는 로마 카톨릭이 되었다. 

이 란테라 협정을 기념해서 뭇솔리가 길을 만들었다.

이로서 18세기에 만들어 졌어야 할 길(교황청과 로마 중심부 연결)이 뭇솔리니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 지면서 뭇솔리니의 주가가 올라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바티칸 베드로 성당을 보면 돔이 중앙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 성당의 중심은 식스투스 5세가 가져다 놓은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해서 설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벨리스크가 고대 세계 때 부턴 신성한 기둥 또는 우리의 솟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둥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서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이자 농업의 신인 오시리스의 남근을 표현한 것으로 다른 표현으로 오벨리스크는 신의 '자지'이다.

 

아래-란테라 협정 때와 영역이 다르지 않는 지금의 바티칸 시국의 모습

 

 

그리고 테베레 강 옆에 세워진 성 천사의 성.

로마 중심쪽과 연결되는 다리 위 천사들은 베르니니가 조각했다.

이 다리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 프라하 다리 교각위에 세워진 조각상들이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도 등장했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각광받고 있어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원래 로마를 가장 넓게 확장시킨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원통형의 무덤이었다.
서기 138년의 일이다.

나중엔 교황의 궁전, 피난처, 감옥으로까지 사용했었다.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 했을 때 기도를 하자 미칼엘 대천사가 페스트가 사라짐을 암시하는 "칼집에 칼을 집어 넣는 환상"을 봤다는 데서 이름이 성 천사의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 로마 동북쪽 아페닌 산맥에서 내려와 지중해로 흐른다. 406 km

천사의 다리를 건너면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을 따라 걷게 된다.

핏자 가게들과 cafe와 기념품 가게들이 있는 좁은 골목들이다.

분수로 유명한 유명한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을 지나게 되는데 그 두 장소 중간에

 

이름 모를 한 성당을 만나게 된다.

7차 십자군을 나갔던 프랑스 왕 루이 9세에게 봉헌한 성당이다.

그리하여 이름도 '프랑스의 성 루이' 성당이다.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카라바지오에 대해선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고향을 부르던 습관대로 카라바지오라고 불렀다.

그림으로 친다면 미켈란젤로에 뒤지지 않는 화가였던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을 구사했다.

바로 자연주의 그림이다. 연극에서 조명이 비추는 효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 뛰안 화가이다.

이 성당엔 복음 저자중에 마테오를 주제로한 연작 3편을 그렸다.

아래는 <마테오를 부르심>

 

<영감을 받는 마테오>

 

<마테오의 순교>

 

성당을 나와서 몇 걸을 더 가면 판테온을 만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극찬했던 이 곳 만신전.

로마시대에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운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 한 참 동안 나오지 못한 기억이 있지만 지금도 가면 한 참 있다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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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2017.01.05 15:56

<무한의 정원 빌리 침브로네>

 

라벨로는 아말피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라벨로(Ravello)의 중심에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빌라 침브로네로 간다.

길이 나뉘는 곳이면 어김없이 표지판이 자리한다.

구굴 지도를 따라 갈 수도 있지만 타일로 만든 아날로그 표지판이 더 정겹다.

 

 

라벨로는 골목길  담벼락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투박하게 쌓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골목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더 담 너머 사는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골목이 있는 곳이 산이기 때문에 집을 벗어나면 바로 경사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간판이나 그림을 보고 들어간다.

 

골목을 아름담게 하는 담쟁이 넝쿨도 분위기에 더한다.

 

말끔하게 다듬거나 현대적으로 보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복잡한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이 찾으면 마음에 평온이 오는 곳이다.

 

어느 곳을 지나가는데 등나무 하나가 주차장 지붕을 다 덮는다.

영화에 나올법한 거대한 등나무 줄기들이다. 

 

목적지에 가까워 오자 좀더 목가적인 모습도 보이고

 

그리고 빌라 침브로네 입구 도자기와 넝쿨들이 오래된 곳임을 말한다.

 

파란 잎새가 담벼락을 덮을 때도 멋있겠다.

 

빌라 입구에 들어서니 더 오래된 모습니다.

 

11세기부터 만들어진 곳이지만

처음 만들어질 당시 건물을 조금 남아 있으며 많은 부분은 이탈리아 여기저기서 가져온 건축물들의 일부를 가져다 세웠다.

입구에 들어서자마나 좌측으로 아치로 입구를 만든 저택부터 만난다. 이곳에 호텔 빌라 침브로네

 

건물 옆 정원에 있는 정자.

어딘지 모르게 이슬람 풍의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고딕 아치로 만든 테라스가 멋을스러움을 더한다.

 

 

라벨로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가 속해 있던 영국 블룸스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작가, 지식인, 철학가, 예술가 모임)  작가들이 많이 찾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D.H. 로렌스, 헨리 무어, T.S.엘리어트, 윈스턴 처칠 등 익히 들어왔던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왔었다.

 

호텔로 사용되는 빌라 침브로네는 5star이고 객실 수는 19개.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조기 예약 되는 곳이고 2017년 주말은 이미 다 차 있다고 보면 된다. 한가지 불편한 점은 호텔까지 가려면 짐은 오토바이에게 맞기고 걸어서 가야된다. 아니면 짐을 끌고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도심에서 도보로 10분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은 룸도 있고 큰 룸도 있지만 이런 주니어 스위트 프레스코 방은 박물관 같아서 잠이 올려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무척이나 조용하겠다는 점이다. 위치 때문에 결혼식, 연회 등 각종 행사가 많다. 그러래 이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장기간 있을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머무는 것이 좋겠다.

 

빌라 침브로네를 찾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Garden of Infinity 무한의 정원> 때문이다.

 

절벽 바로 위에 굴뚝과 같은 암반위에 형성된 지형이어서 붙여진 이름 침브로네 답게 내려다 보면 아찔하다.

 

이 곳을 장식하는 단순한 흉상들이 인상적이다.

 

서 있기도 아슬아슬 하지만 사진 찍어 봤다.

 

 

침브로네를 나와서 걸어 내려오면 다시 만나는 빌라 루폴로. 이곳도 봄이 되면 호텔로 이용된다.

 

식당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인데....

 

아말피로 내려와서 골목을 어슬렁 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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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2017.01.01 14:05

<라벨로를 위한 아말피Amalfi 해안>

아말피 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라벨로로 가는 기분좋은 시간.

소렌토에서 라벨로 가려면 버스를 이용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면 좋다.

버스는 전철역 앞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렌터카를 권한다.

렌터카는 가는 중간중간 나타나는 기막힌 경관들을 보기 위해서 섰다 가다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답게 버스 시간이 절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렌터카가 제격이다.

소렌토에서 경사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면서 주변이 다 들어온다.

 

 

그리고 언덕길 꼭대기에서 다시 내려가면 아말피 해안이다.

절벽위를 달리는 길은 좁고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작은 차량 한 두 대가 중간에 설 수 있는 곳들이 있다.

그 곳엔 반드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포지타노를 지나 계속 이동하면 서로마가 망한 다음에 등장하는 아말피에 당도한다.

이 동네는 6세기 즈음에 인근 살레르노 소금, 내륙의 노예, 목재들을 이집트와 시리아에 팔아서 당시 지중해에 통용되던 화폐인 황금디나르 얻었다. 이유는 비잔틴 비단을 사기 위해서 였다.

유럽지역에 비단을 파는 것 만큼 수지 맞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말피는 체레토 산 (1,315미터)아래쪽 깊은 계곡 끝에 자리하고 있다.

내륙과 연결도 잘 안되는 이곳에 그렇게 오래전부터 살았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우선 산이 제공하는 물이 풍부한 곳이다. 그리고 배를 이용한 연안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군을 중동으로 실어 날라준 베니스가 해상무역 독점하기 전까지 아말피는 제노아와 피사와 경쟁관계에 놓였던 수준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아말피 공화국으로 한 때 "짠~!"하고 잘 나갔었다.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다. 강한 국가들 틈 속에서 여기 휩쓸리고 저기 휩쓸리고 하다가 1343년 쓰나미가 덥쳐서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버린 곳이 되었다.

 

지금은 관광객들 천국이다.

오래전에 만들었던 수도원 두 개가 호텔로 개조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리쳐드 바그너와 헨릭 입센이 와서 작품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제 아말피에서 산으로 가야 된다.

바다 쪽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산길을 가는 동안 차량 한 대만 지나가야 되는 좁을 길을 만나기도 한다.

 

 

라벨로를 올라가는 길에 음악의 도시라고 쓰여진 표시가 이색적이다.

 

중간 중간에 만나는 표지판.

아말피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라타리 산맥(Monti Lattari)에 대한 안내문이다.

이탈리아 등줄기인 아페니노 산맥의 일부이다.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으로 해안선 바로 위로 솟은 산을 걷게 되어 있어서 기막힌 경관을 선사한다.

여름에 오르면 선선해서 좋다. 민박집에서 잠을 자면 추워서 두꺼운 이불이 필요할 정도이다.

 

아말피 트레킹은 이탈리아 5대 트레킹 코스이며 카프리 섬이 보이는 소렌토 반도 끝까지 가기도 한다.

 

유럽이라면 어디를 가든지 볼 수 있는 친절한 아날로그 표지판

 

산쪽으로 올라 갈 수록 드라마틱한 풍경들이 기다린다.

왼쪽 언덕에 우산 소나무가 있는 곳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다. 

 

라벨로 중심은 오래된 중세 성처럼 보인다.

5세기 피난처로 만들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9세기에 아말피 해양공화국과 함께 안전한 장소로 변했던 곳인데

산에 양을 키우면서 양털을 생산하고 염색한 양털을 수출하는 곳이다. (839-1200)

 

광장 바로 옆에 있는 빌라 루팔로로 들어간다.

 

부자였던 루팔로 집안이 소유했던 곳인데

보카치오가 이곳에 왔다가 기막힌 경관을 남기기 위해서 데카메론에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가극의 왕 리쳐드 바그너가 이곳에 왔다가 그의 가극 파르지팔의 배경 무대를 이 곳처럼 만들었다. 

 

곳곳이 넝쿨들로 얼기 설기 담당을 장식하고 있다.

 

정원으로 나가니 기막히다.

아말피 해안의 모습과 멀리 살레르노 해변쪽까지 보인다.

경사면을 따라 포도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꽉차있다.

 

경사가 급한 산을 따라 집들이 놀랍기만하다.

 

잘 만들어진 정원.

이 곳에서 보면 라벨로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된다.

보카치오, 바그너,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 에셔. 버지니아 울프, 후안 미로, 테네시 윌리엄, 네오나르드 번스타인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찾았다.

리쳐드 바그너의 영향으로 1953년부터 라벨로 페스티벌이 열린다.

 

밑에서 본 정원

 

담벼락이 멋있다.

 

오래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유지하는 모습이 더 좋다.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은 나무인간이 디자인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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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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