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7.04.10 19:12

<내리자 마자 고산증으로 고생하는 공항>

 

세계에서 가장 놓은 곳에 활주로가 있는 공항은 어디 어디 있을까?

페루, 볼리비아, 네팔같은 곳에 주로 있을 거라 생각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가장 높은 20개 중에서 중국만 10곳이 있다.

거기에다 1위에서 4위까지 중국이다.

랜드마크를 만들려고 일부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공항을 만들지는 않았을까?

왜냐고? 중국이니까!

그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티벳에 있기 때문에 티벳을 확실하게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만든 것 같다.

아무튼

백두산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한 공항들이 전세계엔 이렇게 많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런 공항에 내리자 마자 고산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미리 준비를 해야 된다.

 

18위에 해당하는 잉카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에 같은 경우만 해도

나는 갈 때마다 어지러웠다

높은 곳에 가면 고산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정말 죽을 맛이기 때문에

가기 전에 비아그라 먹으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순위

 공항명

국가명 

고도(미터) 

  1 

Daocheng Yading Airport(쓰촨성 야딩 자연공원)

China

4,411

 2

 Qamdo Bamda Airport(티벳 창두)

China

4,334

 3

 Kangding Airport

China

4,280

 4

 Ngari Gunsa Airport

China

4,273

 5

 El Alto International Airport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

Bolivia

4,060

 6

 Uyuni Airport (우유니 사막)

Bolivia

3,953

 7

 Captain Nicolas Rojas Airport

Bolivia

3,935

 8

 Yushu Batang Airport

China

3,890

 9

 Inca Manco Cápac International Airport
(티티카카호수 훌리아카)

Peru 

3,826

 10

Shigatse Peace Airport

China

3,781

 11

Juan Mendoza Airport

Bolivia

3,702

 12

Lhasa Gonggar Airport(티벳 라싸)

China

3,570

 13

Hongyuan Airport

China

3,535

 14

Jiuzhai Huanglong Airport (구체구 황룡)

China

3,448

 15

Andahuaylas Airport

Peru

3,443

 16

Francisco Carle Airport

Peru

3,383

 17

Manang Airport

Nepal

3,353

 18

Alejandro Velasco Astete International Airport (쿠스코)

Peru

3,310

 19

Ninglang Luguhu Airport

China

3,293

 20

Kushok Bakula Rimpochhe Airport

India

3,256

 

(아래: 중국 티벳, 인도, 네팔 공항 위치)

 

(아래: 해발 4,411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쓰촨성 다오청 공항. 2013년 9월에 문을 열었다. 하나 밖에 없는 활주로이 길이는 4,2km로 AirBus380도 뜨고 낼릴수 있다. 년간 280,000명이 이용할 수 있게 설계를 했다. 공항 모양은 거대한 UFO 같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주변엔 자연경관이 수려한 야딩 자연보호구역에서 트레킹을 하려고 찾는다.)

 

가장 높은 공항에 내리면 야딩 자연보호구역을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청두공항에 내려서 버스로 이틀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세상 참 좋아졌다.

야딩엔 3개의 신성한 산이 있는데 그 중 아래는 잠베양Jambeyang (Yangmaiyong) : 해발 5,958미터

 

아래는 야딩 자연보호구역 중에서 가장 높은 선내일(仙乃日) Chenrezig(Xianairi) : 해발 6,032m

 

 

(아래: 남미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공항의 위치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 공항은 4,060미터에 자리하고 있으며

한국사람들이 꼭 가고 싶어하는 우유니 사막 공항도 3,953미터에 자리한다. 가기전에 비아그라 준비하시라...

고산증에 비아그라는 남녀 구별이 없다는 것도 알고 계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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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나라 역사를 얼마나 아는가?

 

<우리나라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들이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관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이다.

반구대는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라는 의미이고 암각화는 바위에 새긴 그림을 뜻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것도 무려 7천년 전부터 존재해온 엄청난 그림이지만 다들 무심코 지나간다.

이 암각화를 7천년 전부터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작살을 맞은 고래뼈가

7천년 전에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천년 전부터 그려온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

왜?

8천년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가 우리나라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를 잡기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가 그려져 있고 그물이 그려져 있다.

그물 있다는 것은 최소 7천년 전에 직조기술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힘세고 거대한 고래를 잡았다는 것은 조직적인 생활을 했다는 의미이다.

그래고 암각화에 샤먼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은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 7천년전에 말이다.

 

아래 그림이 좀더 보기 편하다.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아주 작게 설명을 해놓은 암각화 모사도이다.

좌측은 주로 고래그림들이고 우측은 육상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아래 그림을 보면 그물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작살 맞은 고래가 그려져 있고

새끼 고래를 등에 엎은 그림도 보인다.

고래를 해체하는 듯한 모습의 그림도 그려져 있다.

머리가 아래쪽으로 향한 고래는 우리나라에선 천연 기념물인 귀신고래(회색고래)이다.

우리나라에선 거의 멸종된 것이나 다름 없다.

발견해서 신고하면  3천만원 준다는 고래이다.

그림의 수준은 피카소를 능가한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를 그렸던 화가들이나 반구대 암각화를 그렸던 화가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보고 특징을 정확하게 살렸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가장 단순하게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말이다.

 

 

그림을 자세하게 보면 배에 많은 사람들이 타서 고래에 작삭을 던진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거대한 고래를 잡으려면 한 두 사람이 아닌 수십명이 나가야 된다.

그리고 고래를 육지로 끌어와서 해체하고 중요한 부위를 팔거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당시에 어떤 일이 벌어 졌는지는 자세히는 몰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작지 않은 집단을 이룬 공동체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암각화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 시기에 이미 옥을 가공해서 귀걸이로 사용했기 때문에 옥을 확보하고 가공하려면 조직을 운영해야 되기에 어떤 형태로든 권력이 있었음을 알게한다.

아래는 동해안을 따라 옥을 거래 했다는 내용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신석기 전시관에 있다.

그림에서 나오는 옥은 강원도 고성 문암리에서 발굴된 옥 귀걸이(옥결)8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재질은 압록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암에서 나오는 수암옥으로 만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200년 된 옥귀걸이(옥결)이 발굴된 발해만문명(요하문명)의 흥륭와 문화의 옥도 수암옥이다.  이 옥문화의 교류는 동해안을 따라 지금의 부산인근까지 내려 갔으며 일본까지 넘나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권력에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샤먼이자 군장이다.

소위 제정일치 시대의 모습니다.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는 사람들 중에 샤먼이 그려져 있다.

바로 아래는 기도하는 샤먼이고

 

 

아래 그림은 팔을 벌리고 다리는 땅에 차면서 천지신명을 깨워서 소원을 전달하는 샤먼의 모습이다.

머리는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새처럼 날아서 하늘에 천신에게 소원을 전달하려는 염원을 나타낸다.

그 소원은 고래를 무사히 잡아서 풍족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기를 노래했다.

세상의 모든 샤먼들의 머리에 새의 깃털을 꽂은 것도 같은 의미이다. 

기타 다양한 형태의 샤먼들이 그려져 있다.

 

 

아래는 신석기 관에 전시되어 있는 경상남도 창령 비봉리서 발굴된

8천년 된 배의 파편 모조품을 전시하고 있는 모습니다.

원본은 약품처리 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된 배이다.

 

 

아래는 비봉리 목선과 배를 젖는 노의 오리지널 모습

 

아래 그림은 울산 남구 황성동에서 발굴된 7천년 전에  작살맞은 고래 뼈이다.

빨간 점이 있는 곳이 사슴뼈로 만든 작삭이 박힌 곳이다.

 

 

아래는 제주도 고산리에서 발굴된 1만년전 사용하던 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이다.

풀과 흙을 이겨서 구웠는데 풀을 고온에서 타고 사라져서 흔적만 남아 있다.

 

그리고 중국에는 없고 우리에게만 나온 빗살무늬 토기가 있는데

아래 그림이 강원도 양양 오산리에서 발굴된 8천년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 토기이다.

 

 

 

아래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 신석기 전시관에 있는 7-8천년 된 가락바퀴이다.

가락바퀴는 실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신석기 관에 가락바퀴를 설명하는 그림이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실을 만드는 모습이다.

즉, 7-8천년전에 사람들은 벌거 벗지도 않았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을 수도 있지만

실로 옷을 짜서 만들어 입었음을 말하고 있다.

 

 

아래는 국립중앙 박물관에 전시된 8천년 된 그물 모양이 찍힌 토기편과 그물을 바닥에 가라 앉게 하는 그물추

 

 

-세계 최초 고래잡이 암각화를 그렸던 시대 사람들은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직조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옷과 그물을 만들었으며

-옥을 가공해서 거래했을 만큼 강력한 조직을 바탕으로 교역을 했고

-세계최초의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었고

-세계최초의 배를 만들어서 일본까지 항해를 했다.

 

암각화를 만들었더 시기에 국가체계가 없었다고 막연하게 이야기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단군조선 이전 배달국이 있었음을 이야기 한다.

단군조선 이전에 환웅과 환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무엇보다 삼국유사에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석유환국)"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반구대 암각화를 만들었던 시기에 이미 국가 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이야기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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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2017.01.23 07:30

<세상의 절반 에스파한의 블루모스크>

 

모자이크만으로도 놀라운 나라 이란에서 한 도시만 추천하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스파한(Esfahan)이라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단박에 에스파한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네스파자한(Nesf-e-Jahan)으로 세상의 절반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물건이 다 모이고, 세상 사람들이 다 모이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16세기 사파비 왕조의 5대 왕 압바스 1세가 수도로 만들면서 가장 화려해진 상업도시가 되었다.

 

사실은 오래던 셀주크 튀르크 왕조 때 수도였던 곳이다.

셀주크를 몰아낸 몽골이 에스파한의 절반을 파괴 했고

아미르 티무르 제국 시대엔 7만을 살육해서 우기철에만 물이 흐르는 자연데 강이 피의 강이 되기도 했다.

침략이 많았던 곳이라 사파비 왕조 이후에 사람들은 만약을 대비에서 돈을 비축하는 습성이 생겼는데

이 후에 이란에서 에스파한 사람들을 돈을 가장 밝히는 짠돌이들이라 한다.

 

아래는 세상에 알려줄만한 낙쉐자한 광장(세상의 본래 모습)에서 담은 샤모스크(블루모스크 또는 이맘모스크)이밤 12시에 연못에 분수가 멈추고 나서 담은 장면이다.

에스파한은 해발 1,400미터에 사막에 자리한 도시여서 밤 12시에 나갔을 때 매우 추웠다.

 

 

페르시아(이란) 특징은 외관을 현란한 타일로 덮는 다는 점이다. 이는 기독교, 오스만의 튀르크, 인도의 무굴에는 없는 특징으로 매우 화려하다.

그런데 돔은 기본이고 외관 전체를 타일로 덮는다.

이런 특징은 이란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아래의 샤 모스크는 50년 동안 만든 건물로 놀랍도록 인상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내부에 들어가면 하루 종을 나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환상적인 모자이크 타일 장식을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건축의 비밀도 간직하고 있다.

 

 

이란은 사파비 왕조 때 푸른색과 노랑색 타일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곳은 주로 푸른색 타일을 많이 사용해서 블루모스크라는 병칭이 붙어 있다.

이슬람에서 푸른색은

1. 천국정원의 평온함

2. 내세의 안녕을 나타낸다.

사원 입구에서부터 입이 딱 벌어지는 놀라운 모습 때문에 감상하고 사진에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마 모르긴 해도 내 기억에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사원이 아니었나 싶다.

 

 

이 사원은 2대에 걸쳐서 50년간 만들다 보니 빨리 완성하기 위해서 속도를 내다 보니 몇몇 곳은 완벽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서 입구의 좌측 벽면과 우측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그 차이점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아래는 좌측 벽면으로 엄청 복잡한 도안을 한 후 조각 하나하나를 직접 구워서 끼웠다.

도안의 기본은 모든 선이 끊어지지 않고 다 연결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생명의 연속성과 영원함을 나타낸다.

 

 

그림처럼 너무나 완벽해서 눈을 의심하게 한다.

우리가 흔하게 쓰는 벽지를 만들어도 이렇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슬람 문화의 특징답게 글자를 디자인 또는 도안처럼 새겨 넣었다.

경전의 내용을 새기거나 신의 이름 또는 예언자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내부의 메인 성소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직경이 21m인 돔과 벽면은 복잡한 듯 세련되었으면

파란색 기둥이 황금색 지붕을 떠 받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저 놀랍다는 이야기 밖에

 

우주가 폭발해서 퍼지는 듯한 모자이크 돔 아래서 소리를 내면 7번 울린다.

소리가 사원 구석 구석에 다 전달 되게끔 설계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래 사진에 있는 친구에서 아잔(쿠란을 낭송하는 소리)를 청했더니 모르긴 해도 에스파한에서 만큼은 가장 청아한 목소리로 사방 곳곳에 소리가 울려퍼지게 했다.

녹을 해두었는데 아주 아름답다.

 

그리고 메인 성소를 벋어나 한 걸음 벗어나도 놀랍고도 새로운 모자이크는 계속 된다.

 

복도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공간 아래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복도쪽 천장은 8면으로 만들었지만 아치 위에 만들어서 마치 16면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진짜 16면으로 만든 천장도 있었다.

저렇게 8면, 16면으로 만든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다. 우리식 방법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다 같기 때문이다.

 

그 퍼진 면 끝네는 마치 미로같은 타일이 있는데 사실은 신의 이름인 알라와 예언자의 이름인 무함마드 그리고 알리(무함마드의 조카이자 사위)라를 글자들이다.

이슬람 사원의 천장은 그런 글씨로 가득 쓰여져 있고 매우 많은 신의 이름을 새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슬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림과 같은 모자이크 벽화를 만났다.

나무를 제외하고 살아있는 동물이나 사람을 그리지 않는 것이 이슬람의 특징이지만

 

이 곳 벽면엔 다양한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화려한 정원에서 노는듯하다.

이 그림에 사람만 있다면 마치 이슬람세계에서 이야기하는 천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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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2017.01.14 09:00

<모자이크 현람함의 극치 이란>

 

이슬람 문화권이 모자이크가 대단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미 로마시대부터 모자이크로 장식한 문화를 영위해 왔지 대부분 건물 내부 바닥에만 장식을 했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에선 모든 곳에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을 했다.

지붕과 청장, 벽, 바닥, 기둥을 모자이크 장식이다.

단순함을 넘어서 복잡하고 정교한 면을 발전시켜서 직접 접하면 사람이 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교하고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모자이크 장식을 한 곳으로는 이슬람 사원 장식이 가장 대표적이며, 지도자의 궁전, 시장(바자르), 대상들의 숙소(카라반 사라이), 공중목욕탕(하맘)까지 그야말로 아름다운 타일들이 경쟁하듯이 반짝반짝 거린다.

이란은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한 곳 중에 최고봉인 나라이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장소는 세상의 절반이라고 칭하는 이스파한이다.

 

(아래: 쉐이크 로포라 Sheikh Lofollah 모스크-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는 이스파한 Isfahan 의 이맘 광장 한쪽에 있다. 외부도 화려하지만 내부는 더욱 현란하다.)

 

16세기 사파비 왕조시절에 5대 왕 샤 압바스 1세 때 이스파한이 수도가 되었다.

이스파한의 특징은 푸른색이다. 

쉐이크 로폴라 역시 입구에서 부터 푸른색을 발산한다.

 

(인위적으로 어둡게 만든 통로를 따라 돔 밑으로 가면 조명이 없는데도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서 황금빛이 찬란한 모습에 방문객들을 놀라게 한다.)

(지붕의 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왕실의 여자들을 위해서 만든 곳이라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지만 진짜 여자들을 위한 곳인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지하 통로로 연결되었다고 하는데 그 통로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붕을 좀더 자세히 보면 중간에서부터 밖으로 정교하게 연속적인 무늬를 볼 수 있다.

 

마치 빅뱅 이후 우주가 퍼져 나간 듯이 둥근 지붕을 현란하게 표현했다.

 

이란에서 모자이크가 두번째로 화려한 곳은 이란의 얼굴이라는 시라즈이다.

그 중에서도 한 때 이 지방의 실권자의 집이었던 핑크 모스크이다.

 

핑크색은 시라즈가 중심 일 때 등장하기 시작한 색으로 사실 핑크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지만 핑크색이 훨씬 많아 보인다.

가까이에서 보면 벽면을 따라 장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정교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 바쁘다. 같은 사진을 찍고 또 찍고...

 

핑크 모스크의 내부로 들어가면 더 놀라게 된다.

해가 뜨는 아침에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실내를 장식하는데 그 아름다움은 다른 곳에 비할 바가 없다.

 

사람의 손으로 이렇게 정교하게 할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 할텐데

 

시라즈에 있는 또 다른 바킬 모스크.

가장 중심에 있는 규모가 가장 큰 모스크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한 듯한다.

 

매우 촘촘하교 정교해서 사진이 잘 안 나온 듯 보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무늬가 있어서 사실 보기에 어지러울 정도이다.

 

내부 역시 다르지 않다. 타일은 중심부에만 남겨 두었다. 그리고 어디에서고 보이는 만(卍)자 문양

 

(정교함을 나타내는 증거는 문양의 색 하나하나를 구워서 붙였다는 점. 시라즈의 대표적인 새인 나이팅게일을 표현한 점이 특이하다. 동물과 사람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이슬람인데도 말이다. 사실 동물을 표현한 모습은 이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바킬 모스크 바로 옆 목욕탕 지붕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시장의 지붕까지. 야즈드의 한 시장-바자르의 쉼터에서 만난 고급스런 모자이크 지붕)

 

이란에서 모자이크를 보면 다른 나라의 모자이크는 시시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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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광철

    대단하네요.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이란

    2017.01.14 15: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꼭 가보면 좋습니다. ^^

    2017.01.14 21: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탈리아2017.01.11 03:32

<카라바지오의 걸작 이후 로마 야경>

 

개인적인 일로 찾은 로마를 마치 무교동과 명동을 다니듯이 어슬렁 거리면서 카푸치노가 맛있는 카페도 들리고 이름 모를 골목들을 다녀 봤다. 관광이 생명인 로마가 오래된 관습을 버리고 진화하는 모습에 로마가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만 다니는 길을 더 많이 만들어서 쾌적해 졌고, 친절해진 사람들과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식당, cafe, 호텔, 관광지 그리고 . . . 

이탈리아 경제가 어려워 지니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어서 사람들이 스스로 변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사실 정치로 따지만 우리나라보다 더 황당한 곳이 이탈리아 아니던가.

국회의원만(상원+하원) 945명이지만 한 번 되면 특혜는 무지막지하다. 월급이 1600만원, 야근수당 월 600만원, 대중교통 공짜, 수영장 축구경기 공짜, 명품 다이어리 지급받고, 이발이 공짜 등등 말도 못한다.

부패지수가 세계 75위. 의회는 비효율, 낭비는 최첨단. 남쪽과 북쪽은 매일 싸우고....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쓰는 비용이 1년에 90억유로(대략 11조2,500억)나 되니 국민들이 허무한 나라이다. ㅠㅠ. 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지 이상할 뿐이다. 그러니

애당초 경제가 잘 굴러갈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와 경제는 뗄 수 없는 역학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에 말이다.

가끔씩 이탈리아 길거리에서 멋진 제복을 입고 폼잡고 으시대면서 걸어다니는 고위급 경관을 보면 부패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탈리아가 도둑 천국이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음음 초장부터 너무 갓길로 샜다.

 

저녁이 되길 기다려서 콜로세움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좀 찍어봤다.

이 곳을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저녁에 나를 찍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서 방금 해가 떨어진 장면을 담은 베네치아 광장쪽으로 가보자.

무솔리니가 고대 로마의 유적지 위로 만든 길(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까지)을 따라 내려오면   

 

최고의 지배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트리아누스 황제의 마켓이 나온다.

로마시대 주상 복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건물이 최근에 많이 복원이 되었다.

낮에 보는 것보다 밤에 보니 한 결 빛난다.

 

그리고 로마 스럽지 않게 흰색으로 만들어서 한 때 눈총을 받았지만 지금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중에 한 곳이 되어 버린  빅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독립(통일) 기념관이다.

 

사람의 크기와 말탄 동상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하게 된다.

완성 되었을 때 인부들이 말 속에서 테이블을 올려놓고 기념 파티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시간의 더 뒤로가서 기둥 광장 앞 알베르토 소르디 겔러리에 잠시 둘러보면 신구 조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사실 로마는 고대 로마의 모습은 많지 않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모습이 훨씬 많은 곳이 로마이다.

고대 로마의 유적은 대부분 황성옛터처럼 남아 있어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서 성 천사의 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잠시 신발 끈을 죄여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특별히 축사를 해서 베드로 광장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성천사의 성 쪽으로 가는 중이다.

도로에서 차량이 사라지니 이렇게 다니기 편하다.

 

성 천사의 성 근처에서 베드로 성당쪽으로 보니 길 양옆에 새워진 조명들이 사열이 멋지게 보인다.

무솔리니와 바티칸이 란테라 협정에 의해서 화합(콘칠리아치오네)의 길이라 이름지어서 만든 도로이다.

이렇게 만들면서 로마는 파시스트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길을 만들기 이전에 이야기를 한다면, 19세기에 독립한 이탈리아 신흥왕국이 교황령을 강제 합병시켰다. 

비록 이탈리아에 합병되었지만 교황청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로마문제>가 약 59년간 지속되었다.

합병될 당시 교황 비오 9세는 스스로 "나는 바티칸의 포로"라고 선언했다. 

이후 59년가 교황들은 바티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무솔리니 때 국왕 빅토리오 엠마누엘 3세의 왕국과 교황청이 란테라 궁전에서 협정이 이루어 지면서 바티칸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교황청의 소유가 인정되었고 국제법상 치외 법권이 인정되었으며 이탈리아 국교는 로마 카톨릭이 되었다. 

이 란테라 협정을 기념해서 뭇솔리가 길을 만들었다.

이로서 18세기에 만들어 졌어야 할 길(교황청과 로마 중심부 연결)이 뭇솔리니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 지면서 뭇솔리니의 주가가 올라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바티칸 베드로 성당을 보면 돔이 중앙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 성당의 중심은 식스투스 5세가 가져다 놓은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해서 설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벨리스크가 고대 세계 때 부턴 신성한 기둥 또는 우리의 솟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둥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서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이자 농업의 신인 오시리스의 남근을 표현한 것으로 다른 표현으로 오벨리스크는 신의 '자지'이다.

 

란테라 협정 때와 영역이 다르지 않는 지금의 바티칸 시국의 모습

 

 

그리고 테베레 강 옆에 세워진 성 천사의 성.

로마 중심쪽과 연결되는 다리위에 천사들은 베르니니가 조각했다.

이 다리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 프라하 다리 교각위에 세워진 조각상들이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도 등장했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각광받고 있어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원래 로마를 가장 넓게 확장시킨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원통형의 무덤이었다. 서기 138년의 일이다.

나중엔 교황의 궁전, 피난처, 감옥으로까지 사용했었다.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 했을 때 기도를 하자 미칼엘 대천사가 페스트가 사라짐을 암시하는 "칼집에 칼을 집어 넣는 환상"을 봤다는 데서 이름이 성 천사의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 로마 동북쪽 아페닌 산맥에서 내려와 지중해로 흐른다. 406 km

천사의 다리를 건너면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을 따라 걷게 된다.

핏자 가게들과 cafe와 기념품 가게들이 있는 좁은 골목들이다.

분수로 유명한 유명한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을 지나게 되는데 그 두 장소 중간에

 

이름 모를 한 성당을 만나게 된다.

7차 십자군을 나갔던 프랑스 왕 루이 9세에게 봉헌한 성당이다.

그리하여 이름도 '프랑스의 성 루이' 성당이다.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카라바지오에 대해선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고향을 부르던 습관대로 카라바지오라고 불렀다.

그림으로 친다면 미켈란젤로에 뒤지지 않는 화가였던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을 구사했다.

바로 자연주의 그림이다. 연극에서 조명이 비추는 효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 뛰안 화가이다.

이 성당엔 복음 저자중에 마테오를 주제로한 연작 3편을 그렸다.

아래는 <마테오를 부르심>

 

<영감을 받는 마테오>

 

<마테오의 순교>

 

성당을 나와서 몇 걸을 더 가면 판테온을 만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극찬했던 이 곳 만신전.

로마시대에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운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 한 참 동안 나오지 못한 기억이 있지만 지금도 가면 한 참 있다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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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2017.01.05 15:56

<무한의 정원 빌리 침브로네>

 

라벨로는 아말피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라벨로(Ravello)의 중심에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빌라 침브로네로 간다.

길이 나뉘는 곳이면 어김없이 표지판이 자리한다.

구굴 지도를 따라 갈 수도 있지만 타일로 만든 아날로그 표지판이 더 정겹다.

 

 

라벨로는 골목길  담벼락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투박하게 쌓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골목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더 담 너머 사는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골목이 있는 곳이 산이기 때문에 집을 벗어나면 바로 경사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간판이나 그림을 보고 들어간다.

 

골목을 아름담게 하는 담쟁이 넝쿨도 분위기에 더한다.

 

말끔하게 다듬거나 현대적으로 보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복잡한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이 찾으면 마음에 평온이 오는 곳이다.

 

어느 곳을 지나가는데 등나무 하나가 주차장 지붕을 다 덮는다.

영화에 나올법한 거대한 등나무 줄기들이다. 

 

목적지에 가까워 오자 좀더 목가적인 모습도 보이고

 

그리고 빌라 침브로네 입구 도자기와 넝쿨들이 오래된 곳임을 말한다.

 

파란 잎새가 담벼락을 덮을 때도 멋있겠다.

 

빌라 입구에 들어서니 더 오래된 모습니다.

 

11세기부터 만들어진 곳이지만

처음 만들어질 당시 건물을 조금 남아 있으며 많은 부분은 이탈리아 여기저기서 가져온 건축물들의 일부를 가져다 세웠다.

입구에 들어서자마나 좌측으로 아치로 입구를 만든 저택부터 만난다. 이곳에 호텔 빌라 침브로네

 

건물 옆 정원에 있는 정자.

어딘지 모르게 이슬람 풍의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고딕 아치로 만든 테라스가 멋을스러움을 더한다.

 

 

라벨로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가 속해 있던 영국 블룸스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작가, 지식인, 철학가, 예술가 모임)  작가들이 많이 찾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D.H. 로렌스, 헨리 무어, T.S.엘리어트, 윈스턴 처칠 등 익히 들어왔던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왔었다.

 

호텔로 사용되는 빌라 침브로네는 5star이고 객실 수는 19개.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조기 예약 되는 곳이고 2017년 주말은 이미 다 차 있다고 보면 된다. 한가지 불편한 점은 호텔까지 가려면 짐은 오토바이에게 맞기고 걸어서 가야된다. 아니면 짐을 끌고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도심에서 도보로 10분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은 룸도 있고 큰 룸도 있지만 이런 주니어 스위트 프레스코 방은 박물관 같아서 잠이 올려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무척이나 조용하겠다는 점이다. 위치 때문에 결혼식, 연회 등 각종 행사가 많다. 그러래 이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장기간 있을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머무는 것이 좋겠다.

 

빌라 침브로네를 찾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Garden of Infinity 무한의 정원> 때문이다.

 

절벽 바로 위에 굴뚝과 같은 암반위에 형성된 지형이어서 붙여진 이름 침브로네 답게 내려다 보면 아찔하다.

 

이 곳을 장식하는 단순한 흉상들이 인상적이다.

 

서 있기도 아슬아슬 하지만 사진 찍어 봤다.

 

 

침브로네를 나와서 걸어 내려오면 다시 만나는 빌라 루폴로. 이곳도 봄이 되면 호텔로 이용된다.

 

식당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인데....

 

아말피로 내려와서 골목을 어슬렁 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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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2017.01.01 14:05

<라벨로를 위한 아말피Amalfi 해안>

아말피 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라벨로로 가는 기분좋은 시간.

소렌토에서 라벨로 가려면 버스를 이용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면 좋다.

버스는 전철역 앞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렌터카를 권한다.

렌터카는 가는 중간중간 나타나는 기막힌 경관들을 보기 위해서 섰다 가다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답게 버스 시간이 절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렌터카가 제격이다.

소렌토에서 경사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면서 주변이 다 들어온다.

 

 

그리고 언덕길 꼭대기에서 다시 내려가면 아말피 해안이다.

절벽위를 달리는 길은 좁고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작은 차량 한 두 대가 중간에 설 수 있는 곳들이 있다.

그 곳엔 반드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포지타노를 지나 계속 이동하면 서로마가 망한 다음에 등장하는 아말피에 당도한다.

이 동네는 6세기 즈음에 인근 살레르노 소금, 내륙의 노예, 목재들을 이집트와 시리아에 팔아서 당시 지중해에 통용되던 화폐인 황금디나르 얻었다. 이유는 비잔틴 비단을 사기 위해서 였다.

유럽지역에 비단을 파는 것 만큼 수지 맞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말피는 체레토 산 (1,315미터)아래쪽 깊은 계곡 끝에 자리하고 있다.

내륙과 연결도 잘 안되는 이곳에 그렇게 오래전부터 살았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우선 산이 제공하는 물이 풍부한 곳이다. 그리고 배를 이용한 연안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군을 중동으로 실어 날라준 베니스가 해상무역 독점하기 전까지 아말피는 제노아와 피사와 경쟁관계에 놓였던 수준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아말피 공화국으로 한 때 "짠~!"하고 잘 나갔었다.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다. 강한 국가들 틈 속에서 여기 휩쓸리고 저기 휩쓸리고 하다가 1343년 쓰나미가 덥쳐서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버린 곳이 되었다.

 

지금은 관광객들 천국이다.

오래전에 만들었던 수도원 두 개가 호텔로 개조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리쳐드 바그너와 헨릭 입센이 와서 작품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제 아말피에서 산으로 가야 된다.

바다 쪽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산길을 가는 동안 차량 한 대만 지나가야 되는 좁을 길을 만나기도 한다.

 

 

라벨로를 올라가는 길에 음악의 도시라고 쓰여진 표시가 이색적이다.

 

중간 중간에 만나는 표지판.

아말피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라타리 산맥(Monti Lattari)에 대한 안내문이다.

이탈리아 등줄기인 아페니노 산맥의 일부이다.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으로 해안선 바로 위로 솟은 산을 걷게 되어 있어서 기막힌 경관을 선사한다.

여름에 오르면 선선해서 좋다. 민박집에서 잠을 자면 추워서 두꺼운 이불이 필요할 정도이다.

 

아말피 트레킹은 이탈리아 5대 트레킹 코스이며 카프리 섬이 보이는 소렌토 반도 끝까지 가기도 한다.

 

유럽이라면 어디를 가든지 볼 수 있는 친절한 아날로그 표지판

 

산쪽으로 올라 갈 수록 드라마틱한 풍경들이 기다린다.

왼쪽 언덕에 우산 소나무가 있는 곳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다. 

 

라벨로 중심은 오래된 중세 성처럼 보인다.

5세기 피난처로 만들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9세기에 아말피 해양공화국과 함께 안전한 장소로 변했던 곳인데

산에 양을 키우면서 양털을 생산하고 염색한 양털을 수출하는 곳이다. (839-1200)

 

광장 바로 옆에 있는 빌라 루팔로로 들어간다.

 

부자였던 루팔로 집안이 소유했던 곳인데

보카치오가 이곳에 왔다가 기막힌 경관을 남기기 위해서 데카메론에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가극의 왕 리쳐드 바그너가 이곳에 왔다가 그의 가극 파르지팔의 배경 무대를 이 곳처럼 만들었다. 

 

곳곳이 넝쿨들로 얼기 설기 담당을 장식하고 있다.

 

정원으로 나가니 기막히다.

아말피 해안의 모습과 멀리 살레르노 해변쪽까지 보인다.

경사면을 따라 포도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꽉차있다.

 

경사가 급한 산을 따라 집들이 놀랍기만하다.

 

잘 만들어진 정원.

이 곳에서 보면 라벨로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된다.

보카치오, 바그너,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 에셔. 버지니아 울프, 후안 미로, 테네시 윌리엄, 네오나르드 번스타인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찾았다.

리쳐드 바그너의 영향으로 1953년부터 라벨로 페스티벌이 열린다.

 

밑에서 본 정원

 

담벼락이 멋있다.

 

오래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유지하는 모습이 더 좋다.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은 나무인간이 디자인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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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2016.12.27 14:54

<소렌토의 숙소와 먹방>

소렌토에 가면 어디서 자고 먹을까?

소렌토는 잠자리가 편할까?

이탈리아를 경험해본 사람들이 소렌토를 간다면 이탈리아 같지 않은 숙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아침을 배부르게 주는 곳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게 뭐 어떠냐고?

사실 이탈리아는 식당문화는 손님보다 식당 주인들이 잘먹는 문화이다.

우리는 반대이고 일본은 손님과 주인이 같은 음식을 먹는다.

인터넷으로 예약문화가 바뀌고 피드백이 엄청나게 올라오면서 문화가 약간 바뀌었지만 아직도 별거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숙소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싼 것이 비지떡이다.'

싼 곳은 싼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가면 스파게티를 먹으라고 말하고 싶다. 이탈리아의 음식 경쟁력은 스파게티가 아닐까 한다.

나머지 음식은 솔직히 다른 나라에 거의 다 뒤진다.

 

아래 사진은 소렌토의 큰 항구(마리나 그란데) 위에서 본 전경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 거라면 숙소를 잠시 옮겨서 지내는 것도 좋다.

소렌토는 귤나무와 레몬 나무가 아주 많다. 가로수도 귤나무이고 과수원도 흔하다.

소렌토에서 바다가 보이는 곳과 아주 가까운 귤 과수원 가운데 자리한 숙소를 찾았다.

 

방의 상태는 특급 호텔 만큼 한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공기도 좋지만

아침 식사가 환상이다.

달라는 대로 다주는 이런 곳은 첨이기 때문이다.

 

전날 아침 주문서에 표기를 하라고 해서 대충 했는데 진짜 다 나온 것이다.

다 표시 했다면 이 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

아침에 다 먹지도 못하는데 어찌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 .

소렌토 첫번째 숙소는 이렇게 즐거웠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 마리나 그란데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절벽 위에 자리한 궁전같은 호텔과 집들을 보면서...

 

마리나 그란데로 가는 길목은 좁고 여러가지 풍경을 보여준다.

 

마리나 그란데는 한 마디로 어촌이다.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낚시로 고기 잡는 곳이다.

그런데 멀리 있는 풍경은 그러지 않은 모습으로 보인다.

위쪽에 있는 건물들은 숙박시설들이기 때문이다.

 

오후 늦은 시간 동네 사람들이 낚시대를 던져본다.

베수비오 화산을 보면서 말이다.

 

소렌토 바다에서 항상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

좌측 멀리가 나폴리 산 우측이 폼페이이다.

 

그리고 산으로 이어지는 소렌토 반도

 

맑은 물에 고기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더러운 물엔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고기들이 살고 맑은 물엔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식용으로 적합한 고기들이 산다.

물이 맑으니 특히  문어가 잘 잡힐 듯 싶었다.

 

항구 한쪽에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이 몇 곳 안되지만 문을 연 곳은 딱 이곳 뿐.

 

오늘의 요리가 뭐냐고 했더니 문어와 돔 종류가 스페셜이라고 했다.

나는 옆 테이블 현지인들이 튀김을 시키는 것을 보고 튀김 달라고 했고

문어 요리의 솜씨를 알아보려 했다.

 

역시 유럽인들의 문어 요리는 부드럽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면 질기지 않게 문어를 잘 요리한다.

 

싱싱한 새우와 오징어 그리고 엔초비 보다 좀 커보이는 튀김

 

한참 후에 고양이 손님들이 찾아와서 음식 나눠 달라고 야옹 거린다.

고양이들은 식당에 거리낌 없이 어슬렁 어슬렁 잘 다닌다.

식당 주인들도 고양이를 잘 아는 듯 쳐다 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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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

    선배님 잘 지내시죠?

    2017.01.02 17: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탈리아2016.12.26 23:39

카프리를 알기 위한 사진들

 

카프리에 수십번을 가봤지만 아직도 카프리를 잘 모른다.

카프리 섬보다 로마 시내를 더 많이 안다고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 섬이라는 특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지만 울퉁불퉁 절벽으로 이루어져서 길 만들기가 어려워 교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걷거나 배를 이용해야 되기 때문에 짧게 머무는 동안 구석구석 다 다니는 것은 어렵다.

나폴리와 폼페이를 가는 사람들이라면 카프리 덤이 아니라 필수이다.

사실 카프리를 가는 도중에 폼페이를 거쳐서 간다고 하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멋진 섬 하면 사람들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에 산토리니 보다 카프리가 더 좋은 이유가 많다.  

카프리는 한마디로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거기에서 문화 유산들이 곳곳에 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가 카프리에 궁전을 만들어서 생활했던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수 많은 작가, 시인, 음악가, 영화 속 장소, 유명인사들이 꼭 왔다 가는 곳이 되었다.

카프리 맥주가 생긴 것도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Capri 어원은 여러가지이다.

고대 그리이스 말로 맷돼지.

로마 공화국 말로는 염소.

그리고 논란이 많은 에투루리아 시대에 언어로 절벽이라는 의미가 있다.

로마시대부터 염소섬으로 불리어 왔던 곳이다.

아무래도 절벽이고 풀이 없으니 염소가 살기는 절당한 곳이로 보인다.

지금은 고양이 천지지만...

 

(아래: 마리나 그란데-큰 항구: 여객선들이 드나드는 곳)

 

 

(아래: 마리나 그란데- 큰 항구)

 

편의상 입체적인 지도를 올린다.

오른쪽 마리나 그란데로 배가 왔다 갔다 하고 반대편 작은 항구는 어촌으로 기막힌 식당들이 있다. 배로 가거나 걸어다녀야 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기가막힌 경관을 볼 수 있는 즐거운 기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카프리는 걸어다니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시간이 없으면 아나카프리에서 카프리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푸른동굴은 작은 배를 이용하서 이동하며 겨울에는 동굴로 배가 다니지 않는다.

겨울철 해의 각도가 동굴을 푸른 색으로 만들지도 않지만 파도가 높아서 배가 다닐 수 없다.

 

 

아래 지도가 4방위를 정확하게 그린 지도이다.

면적이 넓은 안나카프리보다 카프리 쪽이 볼거리가 더 많다.

 

카프리 섬에 왔으니 꼭 가봐야 되는 곳이 몬테 솔라노(태양의 산)이다.

해발 589미터로 가보면 경관이 압권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동산이 내려다 보고 있는 그는 카프리 섬에 최초로 내린 황제이다.

걸어서 오를 수도 있지만 안나카프리로 가서 1인용 곤돌라로 올라가면 된다.

 

손에 잡힐 듯 카프리가 보이고 그 앞쪽 기막힌 돌 섬들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누구든지 여기선 기념촬영을 하게 된다.

 

섬 멀리 소렌토 반도가 보인다.

반도의 오른편이 아말피 해안이다.

 

곤돌라로 아나카프리에 내려와서 오래전에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카프리까지 걸어가보는 것도 좋다.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하지만 그리 멀지 않다.

 

내려오는 동안 항구의 모습과 카프리의 전경을 감상 할 수 있다.

 

중간에 걸어서 카프리 중심에 갈 수 있지만 후니쿨라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 없다.

 

이정표를 살펴보는데 스시집도 있다. 가장 오른쪽 아래 스시집.

하기야 일본인들과 관계 없이 유럽은 스시 붐이니 현지인들도 좋아 할 만하다..

 

그리고 카프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이 아우구스트 정원이다.

정원에 가면 몬테 솔라로에서 봤던 섬들이 바로 눈 앞에 있다.

 

좀더 자연 친화적인 유럽인들이어서 갈매기까지 애완용처럼 느껴진다.

유럽에서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갈매기들이 사람들이 주는 뭔가를 기다린다.

빵부스러기를 들고 있으면 바로 온다.

 

 

아우구스트 정원에서 작은 항구(마리나 피콜로)로 가는 기막힌 길.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니랄까봐.

산위로 길을 내서 다니는 도사들이라 산 아내로 내려가는 것 쯤은 뭐....

 

해가 바다로 지기 전에 햇살이 좋다.

아우구스트 정원은 사실 독일 사람이 만들었다.

20세기 초에 독일인 기업인 크루프(Krupp)가 이곳에 집을 지어서 1918년 까지 크루프 가든이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트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한가지 더, 이곳에  블라디미르 레닌의 글자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러시아의 작가 막심고리키가 레닌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원이라는 이름 답게 다양한 나무들이 있다.

 

석양이 절정에 이를 때까지 여유있게 앉아 있다.

 

아우구스트 정원에서 나와서 걸어가는 동안 어느 집 담장 사이로 보이는 돌섬.

 

그리고 풀 밭

 

풀들이 넘실대면서 춤을 추는 듯하다.

 

카프리 시내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남다르다.

지형이 울퉁불퉁 하기 때문에 경사진 곳에 집을 지어서 담벼락과 문이 독특하다.

항아리를 벽에 부착시켜서 뭔가를 키우는 모습도...

 

많은 집들 대문 위는 솔방울 모양의 장식들이 있다.

솔방울에 대한 비밀. 사람의 뇌의 중앙에 솔방울 샘이 있는데 그 샘에 인간의 비밀이 있다고도 한다.

바티칸 박물관 솔방울 정원의 청동 솔방울도 같은 의미이다.

솔방울 샘이 소위 도통하는 비밀이 있다고 하는데....^^

그리고 좁은 골목이 가파른 계단이 줄줄이 서 있다.

 

두리번 거리면서 길을 따라 멋진 경관을 감상하면서 가면 티베리우스가 만든 그 유명한 빌라 조비스(Villa Jovis)가 나온다.

티베리우스는 로마 제국 제 2대 황제이다.

그는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로마황제로서 12년간 지냈다.

(아래 폐허가 된 빌라 조비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후계자로 지목한 티베리우스는 섬을 유독 좋아했다.

풍파 속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기를 거친 그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태내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결 국면에서 티베리우스의 아버지는 안토니우스 편을 들었는데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를 이기자 젖먹이 티베리우스는 졸지에 부모와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티베리우스 3살 때 사면령이 내려져서 로마로 돌아갔다. 그런데 옥타비아누스는 티베리우스의 어머니(리비아)의 미모에 반하여 부모가 이혼을 강요 당하게 되고 옥타비아누스와 티베리우스의 어머니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래-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

아버지가 죽과 나서 티베리우스는 어머니 리디아와 살게 되었다. 이 때부터 옥타비아누스 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2살 때부터 정무나 군무업에 종사했고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클레오파트라+안토니우스 : 옥타비아누스+아그리파)에서 승리를 거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군으로로 각지에 파견나갔다.

복잡한 후계구도 속에 아그리파가 죽자 옥타비아누스는 말년에 티베리우스를 후계자삼았고, 옥타비나우스와 공동황제가 되었고, 옥타비아누스가 죽자 유언장에 유산의 상속자가 되었다.

즉, 단독 황제가 되었다.

 

티베리우스는 훌륭한 정치인이자 행정가 였지만 인기는 없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차경기대회와 검투사 경기대회를 중지시켜 재정 낭비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황제들이 인기를 위해서 만든 것들이 검투사 경기, 전차 경기 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곳 카프리 섬에 은거 하면서 근위대장을 통해서 로마를 통치 했기 때문에 더욱 인기가 떨어졌다. 기타 여러이유로 인기는 없었지만 로마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서기 31년 권력욕을 드러내던 근위대장을 처형하기도 했다.

티베리우스 재위 시절 유대 속주에 있었던 예수가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다.

그는 서기 37년, 79살에 병에 걸려서 생을 마감했다.

 

(아래 티베리우스의 빌라 조비스의 복원도)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이 곳에서 좀 남쪽으로 이동하면 자연경관이 뛰어난 자연 아치를 만난다.

폭 12미터, 높이 18미터

 

자연 아치에서 더 남쪽엔 더 기이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독특한 스타일의 건물 빌라 말라파르테(Malaparte)가 나온다.

32미터 절벽위에 새워진 아슬아슬한 집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모던하면서도 컨템퍼러리한 건물이다.

카프리 중심광장 피아제테에서 걸어서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있다. 파도가 잔잔한 날 배로 접근하면 훤씬 수월하다.

그러면 99계단을 오르면 되지만 사실상 짐까지 접근은 어렵다.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접근은 매우 제한적이다.

기이한 형태의 집은 사정이 있다. 

원래 집주인은 언론인이자 극작가, 단편소설가, 소설가이자 행정가였던 크루지와 말라파르테이다.

1940년대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에게 설계를 맞겼지만 마음에 들지 않자 카프리 석공과 함께 스스로 집을 만들었다.

말라파르테가 죽고나서 버려지다 시피 했지만 결국 한 재단에서 기증 되어서 관리하고 있다.

 

 

개인적인 파티를 한다면 모를까 아니면 문화 행사를 위할 때 접근이 가능하다.

 

카프리 중심광장 피아제테 바로 옆 후니쿨라 정거장 쪽으로 가면 유료 화장실이 있는데 카프리의 푸른 색을 즐길 수 있다.

 

 

 

서서히 어둠이 깔릴 때 즈음 카프리의 전경이 이렇다.

 

카프리 중심부에 가까운 산인 산 미카엘레. 262미터의 돌산이지만 집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제 배를 타고 소렌토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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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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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프리를 가보기는 했는데, 들어가서 나올때까지 해변에만 있다 와서 이렇게 아름 다운 모습을 보지 못한것이 안타깝습니다.^^;

    2016.12.28 21: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일2016.12.03 11:21

<독일 로멘틱가도의 시작 뷔르츠브르크Würzburg>

 

독일이 관광을 활성화 하기 위해서 만든 명칭 중 로멘틱 가도가 있다.

로멘틱 하다는 것은 로마스럽다라는 이야기인데 로멘틱 가도는 로마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쯤 된다.

그러니까 길바닥이나 길 주변이 로멘틱 하다는 것이 아니고 로마로 가는 길에 놓여있는 도시들을 엮어서 그 도시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독일 로멘틱가도의 출발지는 프랑트프르트와 마인(Main)강으로 연결된 뷔르츠브르크이다.

뷔르츠(Würz)는 독일어로 향신료라는 의미이고 뷔르츠브르크(Würzburg:향신료의도시)는 중세시대 향신료 거래를 하면서 커진 도시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폭삭 주저 앉기 이전엔 화려가기 그지 없는 곳이었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탄생한 곳이기도하고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서 유럽의 모든 건축 양식을 하나로 조합한 궁전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마인(Main)강이 만든 기막힌 계곡에 자리한 곳이어서 사람들이 시선을 끄는 곳이다. 

이 도시의 특이한 점은 군주-대주교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물들이 지배를 하면서 도시가 발전했다는 점이다. 이는 잘츠브르크를 만든 군주-대주교랑 같은 경우라 하겠다. 

오스트리아 합스브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세습하기 시작하면서 황제가 되면 먼 로마로 가서 대관식을 하지 않고, 로마 교황의 대리권자가 있는 프랑크프르트로 가서 대관식을 했는데 그 길목에 자리한 곳 중에 한 곳이 이곳 뷔르츠브르크 였다.

 그래서 군주-대주교들은 뷔르츠브르크 레지던츠 궁전은 비엔나의 쇤부룬 궁전이나 파리 인근 베르사이유 궁전에 버금가는 건축물을 만든 생각으로 지어졌다.

 

(아래: 마인강변 언덕에 자리한 마리엔브르크 성과 포도밭.)

  

(한 10년 전에 찍은 사진인듯) 

 

(17세기 뷔르츠브르크의 모습.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폭삭 주저 앉기 전에는 화려한 도시였다.)

 

(유네스코 유산이인 거대 궁전 레지던츠. 18세기 당대 최고 건축가들을 불러모아서 유럽의 모든 궁전과 모든 스타일을 도입해서 만든 걸작이다.)

 

 

 

(군주-대주교의 개인적인 생각이 반영된 화려하고 웅장한 계단)

 

(그 계단 바로 위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18m X 30m 규모의 그림으로4대륙을 묘사했고 궁전을 설계한 인묻들고 함께 그려넣었다.)

 

(가장 화려한 황제의 방. 고대 황제들를 모샤했고 그리이스-로마 신화의 신들을 조각했다.) 

 

(강변으로 나가면 예전 방았간이 있었던 곳에 전망 좋은 훌륭한 식당이 들어서 있다.)     

 

(식당 벽면에 오래된 마인방앗간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뷔르츠브르크 최고의 경관을 가진 호텔 성(Schloss)호텔 스타인브르크)

 

(유럽에서 보기드믈게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독일이어서 아무래도 식사는 좀 떨어지긴 하다. 좋은 와인은 비싼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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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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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4 13: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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