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2018.05.02 16:59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항공기 이야기>

대한민국 해외여행객 3천만 명 시대가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여행 인구는 날이 가고 해가 갈 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매순간, 매일, 매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항공여행을 할까?

1. 하늘에 매
순간 몇 대의 항공기가 뜰까? (몇 사람이 공중에 떠있을까?)

-매순간 평균 9,700대의 항공기가 떠 다니며
-약 1,270,000명 공중부양 해서 떠다닌다.
-항공기가 아주 많이 뜰 때는 순간 약 16,000대가 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쪽이 많으며 동아시아도 많은 항공기가 움직인다.
-매일 약 102,000대 이상의 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개인용 항공기와 헬기를 합하면 하루에 150,000대 가량된다.
-매년 뜨고 내리는 상업용 항공기는 약 36,800,000대 가량 된다.
-비 상업용 항공기와 허가받지 않는 항공기까지 합치면 대략 50,000,000대(5천만대)가 움직인다.

-매년 37억 명이 항공 여행을 한다

(아래 그림들은 항공기 괘적을 나타낸다. 미국과 유럽쪽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극동이다.)

(아래 그림이 어느순간 떠 있는 항공기 모습들이다. 그림으론 약 1만대에 해당하는 항공기 표시가 불가능하다.)

2. 금연인 항공기 화장실에 왜 재떨이가 있을까?

항공기 내에선 금연이다.
그러나 그 규정을 어기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이 경우 피우던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넣으면 화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안전한 재떨이에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3. 항공기 창문에는 왜 작은 구멍이 있을까?

창문은 3개의 판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 판에만 구멍이 있다. 
Bleed Holes이라 하는데 직역하면 '출혈구멍'이다.

중간 판에 있는 구멍은 외부 판과 실내쪽 판의 압력을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외부 판이 가장 중요한데  변화하는 외부 압력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다.
비행기기 12,000미터에 올라가면 실내와 외부 온도 차이가 약 70도 정도가 된다.
이 때 서리가 끼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한다.


4. 항공기 창문은 왜 둥근 형태로 되어 있을까?

처음 항공기 만들 때 4각형 창문이었다.
1950년대 이후 기술 발달로 속도가 높아지고, 고도가 높은 곳을 날자 항공기 두 대가 추락했다.
이유는 4각 창문 때문이었다.
4각형은 압력을 받으면
모서리 부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결국 깨진다.
둥근 형대는 압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높은 압력에 잘 견디기 때문에 둥근 창문으로 만들었다.

 5. 항공기가 번개 맞아도 괜찮을까?

거의 모든 항공기는 1년에 한 번은 번개를 맞는다.
약 1000시간 비행에 한 번 맞는 셈이다.
1963년 이후 항공기는 번개 맞아도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다.
번개 맞아도 전류가 항공기 외부를 따라 한쪽으로 흘러서 밖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필자가 타본 항공기가 번개를 맞았을 때 실내가 순간 온통 파란색이었던 기억이 난다.

 

6. 기내식사는 왜 맛대가리가 없을까?

여러 유명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내에선 단맛을 덜 느끼고, 짠맛을 더 짜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기내에 순환되는 건조한 공기도 맛을 느끼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여러가지의 냄새가 섞이게 해서 음식이든 음료든 맛대가리가 없어진다.
알콜 음료도 마찬가지이다.

기내식을 먹느니 비행하기전에 샐러드 조금 먹고 타는 것이 사실 더 좋다.
아니면 샐러드가 많은 비빔밥이 더 좋을 수 있다.
기내에선 물이나 토마토 주스를 마시는 것이 더 좋겠다.
다행인 것은 최근 보잉787드림라이너 기종이 나와서 약간 도움이 된다.
실내 습도를 40%~60%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이전 항공기는 10%이다.

7. 기내 산소마스크는 쓸만한가?

산소 마스크는 고작 15분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점을 승무원은 이야기 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공기압이 낮아져서 산소 마스크가 위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비행기가 낮은 고도로 내려 가고 있다는 신호이다.
15분 내에 항공기가 10,000피트(3,048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산소마스크 없이도 자연적으로 숨을 쉴수 있기 때문이다.

8. 비행기가 착륙할 때 왜 창문 덮개를 열게 할까?

만약 착륙이 잘못되어서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해서이다.
외부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게 해서 빨리 항공기를 빠져나가게 하기 위함이다.

9. 엔진 하나로만 날 수가 있을까?

하나로 나는데 지장이 없다.
보잉사의 드림라니너(Dreamliner)는 엔진 하나로 330분(5시간30분)을 난다고 한다.

극지방이나 대양을 지날 때는 항공 규정을 지켜야 하지만 연료를 아끼면서 날려면 엔진 하나만을 사용해도 된다.

10. 전세계에 몇 대의 항공기가 있을까?

한 조사기관에 의하면 현재 운항되는 여객용 항공기와 화물기는 약 23,500대라 한다.
airliners.net에 의하면 상업용과 군용기(가벼운 전투기 빼고) 약 36,000대가 있다고 한다.
보잉사에 따르면 앞으로 약 20년 동안 약 39,620대의 항공기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2037년이 되었을 때 노후된 항공기를 은퇴시키고 나면 대략 63,220대의 항공기가 있게 된다고 이야기 했다.

11. 항공기는 누가 만들까?

시애틀의 Boeing사와 프랑스 툴루즈의 Airbus사가 가장 많이 만든다.
말로는 건전한 경쟁업체 이지만 사실 치열하다.

2016년에 에어버스는 688대를 납품했고 보잉사는 748대를 납품했다.
최근엔 에어버스사가 보잉사보다 주문을 3배 이상 많이 받고 있다.
주문량
의 대부분은 인기 있는 A320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보잉사의 인기기종은 737이다.
그러나 최근 보잉사는 보잉787 드림라이너를 판매하고 있는데 처음으로 기체 대부분을 탄소복합 재료를 사용한 비행기이다.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판매된 항공기이다.

12. 누가 가장 많은 항공기를 가지고 있나?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1,789대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13.  보잉 787 드림라이너(Boeing 787 Dreamliner)는 어떤 비행기?

-동체가 대부분 탄소섬유로 제작기 때문에 내구성 향상은 물론 제작과정의 단순화가 가능해져 종래 항공기에서 보기 드문 경제성과 또한 승객 편의성을 자랑한다.
-천장이 높아져서 답답함이 좀 줄었다.
-보잉 787은 기내 압력이 6,000피트 수준(약 1900미터)으로 유지되고 또한 습도가 종전 항공기(10%)에 비해 40~60%에서 유지으로써 이전 항공기보다 실내가 쾌적하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습도가 낮아서 물을 자주 마셔야 된다.
-신축성이 뛰어나서 날개가 유연하게 휘어지기 때문에 기류변화에 잘 대처하고 비행기 흔들림도 줄어든다.
-유리창에 블라인드가 없어졌다. 창도 매우 넓어지고 간단한 버튼 조작으로 창을 어둡게 만들게 되어 있다. 
-엔진을 감싸는 후면 부분을 물결모양으로 만들어서 실내에서 듣는 소음이 감소되게 했다.

14.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목적지에 짐이 도착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

-공항서 수하물을 보내기 전에 휴대폰으로 미리 사진을 찍어둔다.
-도착 공항에 수하물이 안오면 Lost & Found로 가서 분실신고를 한다. 이 때 출발지 공항서 받은 짐표가 있어야 하며 가방색, 형태 등을 작성한다.
-담당직원에서 어느 공항에 있는지 추적해 달라고 하고 대략 언제 오는지 알려달라 한다. (파악이 되는 경우 언제 오는지 알 수 있다. 그 자리에서 파악이 안되는 경우는 언제 오는지 모른다.)
-나의 다음 행선지 스케쥴을 담당직원에게 알리고 빨리 도착하는 대로 짐을 나의 다음 장소로 보내 달라고 한다. (어지간한 경우 늦더라도 짐이 도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째거나 짐이 안왔기 때문에 수하물지연보상금(Out of Pocket Expenses)을 요청해야 된다. 항공사에 따라서 현장에서 대략 하루 50$~100$가량 준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이 비용도 달라고 해야지 준다는 점이다. 말 안하면 넘어간다.
- 어떤 항공사는 서바이벌 키트(Survival Kit)를 준다. 세면도구, 속옷, 양말, 면도기 등이 들어 있다.

15. 최악의 경우 가방을 완전히 분실 했다면 어떻게 보상받을까?

-분실물 배상은 1Kg당 미화 20달러 밖에 안된다. 20KG가방이면 400$만 보상해준다.
-내가 아무리 비싼 고가의 물건이 분실 되었어도 항공사측은 가방의 무게만큼만 보상해 주게 규정해놓고 있다.  이 상황에 화가 안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보상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을까?
사전에 항공사 측에 "이 가방엔 3,000달러에 해당하는 물품이 들어있어서 분실 및 파손을 대비해 항공사에 규정한 종가요금(Valuation Charge)을 미리 지불하겠소."라고 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 만약 보험처럼 종가요금을 지불하면 분실 및 파손이되었을 때 보상받을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해서 나머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여행자 보험회사 측을 통해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것도 보험사에선 품목당 20만원을 초과해서 보상해 주지 않는다. 여러개의 항목을 나열해서 최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어째거나 항공사는 최대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며, 곤혹을 치루고 있는 승객에서 어떻게 하든지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쪽으로 장사를 한다는 점을 알아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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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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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2018.03.2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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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2018.03.02 19:52

<정월대보름> 쥐불놀이에 담긴 의미

정월대보름은 음력으로 설날이 지나고 첫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로 그 어떤 세시풍속보다 가장 많은 문화행사를 하는 날이다.
오곡밥, 약밥, 진채식, 부럼깨기, 귀밝이술, 복쌈, 솔뗙, 달맞이, 연날리기, 쥐불놀이, 널뛰기, 횃불싸움, 사자희, 줄다리기, 고싸움, 더위팔기, 지신밟기, 다리밟기, 달집태우기, 액막이연, 소밥주기, 개보름쇠기, 까마귀밥 주기 등이 있고 지방에 따라서 다양한 행사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잊혀져 가는 행사가 되어서 저렇게 많은 것들 중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정월대보름을 지내는 시대가 되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정월대보름 행사는 농사를 시작하는 시기에 하는 것이라 농사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 솟대제와 쥐불놀이 이야기를 해본다.  

솟대제는 정월대보름날 마을 입구에 솟대를 세워서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는 것으로  장승, 선돌, 돌탑과 함께 세웠다.
솟대를 세우는 것은 매우 오랜 전통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봄철이 되면 전세계에 비슷한 행사들을 해 왔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5월1일 기둥을 세우는 5월주(5월 기둥)도 전통적으로 농사를 짖기 시작할 때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고구려와 부여인들이 가서 새운 아즈텍(아스탄>아사달)사람들도 소코들(Xocotl)이란 기둥을 세워서 행사를 해왔다. 소코는 솟다에서 나온 말이며 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어서 솟대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래 왼쪽: 멕시코 아즈텍 시대에 그림. 소코틀이라는 솟대 같은 기둥을 세우고 새모양을 만들어서 올렸다. 새를 만든 재료는 쪼알리라는 씨앗인데 새가 씨앗을 쪼아서 먹기 때문에 씨앗의 이름이 새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본다. )

(아래 오른쪽: 멕시코 아즈텍인들의 솟대 아래서 손에 손잡고 춤추는 모습)

(아래: 멕시코가 스페인에게 정복당한 후 솟대가 '볼라도르'라고 부르는 놀이로 변했다.) 

(아래: 남부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5월1일 솟대(오월주)를 새우는 행사) 

(아래: 유럽에서 흔한 메이폴댄스 Maypole dance-오월주 아래서 춤추는 장면)

(아래: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뤠겔 younger의 메이폴 댄스)


쥐불놀이

정월 첫 쥐날에 겨울 잠을 자고 있는 해충을 박멸하고 쥐를 쫓기 위해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는 놀이이다. 
그런데 이 쥐를 쫓아내는 쥐불놀이에는  앞으로 지구의 자전축이 급격히 움직일 것을 전해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축인묘....술해'인 12지신에서  정북에 있는 쥐(子)의 자리에 소(丑)가 들어 온다는 이야기이다.
즉, 지구 자전축이 자-오선에서 축-미선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것을 쥐가 쫓겨나고 소가 들어온다는 식으로 전해져 왔는데 이런 상황을 속담으로도 전해 왔다.
'미(未)치고 자(子)빠지고 환장(換腸)하겠네'에 있다. 
아래 그림에서 미(未)가 오(午)자리에 들어오는 것을 미치고, 축(丑 소)이 자(子 쥐)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자가 빠진다는 식으로 전해왔다. 그러면 아래 그림처럼 지구 자전축인 축-미선이 자-오선 자리로 바뀌기 때문에 기울어져 있던 우리몸 속 장기들도 좌우대칭이 되려고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환장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놀이와 속담을 통해서 앞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을 잊지 말라고 전해주었다.
이런 상황을 다른 속담으로 '소(丑)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子) 잡겠네'라고 했다.

(아래: 한동석 선생의 우주변화의 원리 나오는 지축정립을 설명하는 그림)

정역(正易)을 완성한 구한말 김일부 선생은 
"오호라 자궁(子宮)이 퇴위하고, 축궁(丑宮)이 득왕이라(자궁이 물러나고 축궁이 들어서는 구나)"라고 하였다.


렇다면 지구의 역사를 통해서 지구 자전축이 기울어진 적이 있었을까?

YES!!

전세계에 있는 소금사막을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특히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안데스 산맥 꼭대기 부분의 넓은 분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높이가 해발 3653미터이다. 남한 땅의 1/5에 해당하는 면적을 가진 곳으로 왜 어떻게 생겼는지 밝혀낸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 Arthur Posnansky(아서 포스난스키) (1873-1946)라는 사람이다. 오스트리아 해군 기술장교이면서 역사학자이고 고고학자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볼리비아와 페루의 고고학을 43년간 연구했다. 라파즈 지질학회 회장, 볼리비아 고고학회 회장, 티와나쿠 인류학 재단 책임자, 뉴욕과학 아카데미회원이었다.
페루와 볼리비아 고고학은 다 아서 포스난스키의 업적이라고 이야기 한다.

(아래: 푸마푼쿠Puma Punku 유적의 '땅의 어머니'神 빠차마마 옆에서 포스난스키. 그의 저서 티와나쿠)

 


그는
지금의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에서 약 70Km떨어진 티와나쿠와 푸마푼쿠 유적을 연구에 매진했다. 티와나쿠(Tiwanaku)와 푸마푼쿠(Puma Punku)는 지금의 과학으로도 만들 수 없는 정교하고 단단하기 그지 없는 세계 최대 태양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유적들이 있었다. 그런데 거대한 외부의 힘에 의해서 파괴된 원인을 밝혔다. 그는 지각이 순간 급격한 움직임으로 인해서 대양이 요동쳐서 해일이 일어나 안데스 산맥을 덮쳤기 때문에 해발 4,000미터까지 바닷물이 차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영화 2012에서 해일이 일어나 바다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모습이 그려지는 대목이다. 

(아래: 영화 2012에서 해일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사원을 강타하는 영상)

해발 3,800미터에 자리한 티티카카호수가 바다 생물인 해마가 아직도 살고 있게된 배경도 지축이 급격한 변화로 해일이 안데스 산맥을 덮치면서 바다 호수가 생겼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유니 소금사막이 왜 생겼는지도 알게 된 것이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증발만 있고 강우량는 1월에 약 80mm를 제외하고 매달 평균 약 5mm 정도이다. 고원지대에 물이 빠져나가는 틈이 없는 곳에 잠긴 바닷물은 태양에 의해서 바닷물이 증발하고 소금만 남게 되었다. 안데스 산맥의 소금 사막은 우유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데스의 고원지대는 강수량이 매우 적다 보니 볼리비아의 다른 지역은 물론이고 아르헨티나지역에 있는 안데스 고원에도 소금사막이 유지되고 있다.

(아래: 남한 면적의 1/5 정도 면적을 가진 우유니 소금사막)

(아래: 해발 3,800미터에 자리한 티티카카호수. 바다에서 사는 해마(海馬)가 서식하고 있다.)

(아래: 위성사진- 안데스 고원평원에 흰색으로 표기된 소금사막들. 볼리비아는 물론이고 아르헨티아까지 연결된다.)


이런 곳은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의 소금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의 소금 사막, 이란의 소금사막, 터키의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소금호수 등을 설명해 준다. 

극이동에 대한 이론은 그 동안 다양하게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밀란코비치 이론이 있다. 밀루틴 밀란코비치(1879-1958)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세르비아 출신의 기술자이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였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억류되어 있는 동안 이 이론을 연구하였다. 극지역에 얼음이 다 녹으면 지축이 순간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지축이 서고 기울어지는 주기가 41,000년 마다 반복 된다고 했다.


초고대 문명이 사라진 것을 극이동 때문이라고 이야기한 또 한 사람이 있는데  1958년 미국인 찰스 햅굿 교수이다. 그는 '지구의 지각 이동(The Earth,s shifting Grust)이라는 책에서 지구의 가장 바깥쪽 표면인 지각이 이동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극점이 이동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각 운동에 의한 극이동이 과거에도 이미 200번 이상 발생한 바 있다고 했다. 그로 인해서 초고대 문명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2012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그 내용이 나오는데 주인공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이동할 때 연료 부족으로 바다에 불시착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극 이동으로 인해서 목적지인 티벳에 착륙했다. 그 대목에서 주인공이 찰스 햅굿 교수의 이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국 정부요원들 대화에서도 극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해일이 발생해서 히말라야를 넘는 시뮬레이션을 보면서 지축이 약 23도 정도가 미국쪽으로 이동해서 해일이 발생했다는 설명을 한다. 그러면서 북극이 남극으로 변했다고도 이야기한다. 이는 지구 자기장이 역전이 된 것을 이야기 한다.

(아래: 안데스 고원분지가 있는 부분은 해일 이후 바닷물이 한동안 고여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며 티티카카호수 역시 고원에 남아있던 바다호수 였음을 알 수 있다.)


(아래: 남미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세계 최고 미스터리 중에 하나인 티와나쿠 유적과 푸마푼쿠 유적의 잔해들.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섬록암으로 되어 있는 돌들은 마치 정밀한 기계부품처럼 만들어져서 마치 돌로 단단하게 조립되었던 궁전이 있었던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전세계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인종 얼굴들이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다. 이 거대 건축물들은 엄청난 해일이 덥치면서 파괴되었다. 돌이 바닷물에 잠겼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아래 동영상: 영화 2012에서 지구 자전축이 23도 정도 미국쪽으로 이동해서 해일이 일어나고 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 그리고 그 축은 북극이 아니라 이제 남극이라고 설명한다.)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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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8.03.23 19:04 [ ADDR : EDIT/ DEL : REPLY ]

특강2018.02.21 02:56

<영화 코코COCO 와 함께 떠나는 멕시코, 페루 인문여행>

007 스펙터에서도 등장했던 '죽은자들의 날'을 통해서 우리와 같은 문화권이 었던 아즈텍, 마야, 잉카 사람들 이야기와 남겨진 문명의 유산을 따라 마추픽추까지 앉아서 여행해 보겠습니다.

-일시: 2월 27일 화요일. 저녁7시~9시
-장소: 서포터즈 이룸 세미나실 (이화사거리 남강갈비 4층)
-가는 길: 아래지도. 4호선 해화역 2번 출구에서 도보 8분거리 / 1호선 종로5가역 3번 출구서 9분.
-참가비: 일만원

-문의: 070-8644-3083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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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2018.02.19 13:31

<올림픽 인문학> 강좌 2018년 2월 24일 (토)

30년만에 열리는 대한민국 평창 동계 올림픽 ! 개막식에 대한 극찬 !
개막식 공연에 담긴 한민족의 역사, 문화 코드를 하나하나 풀어보는 시간.
개민식 순서를 기막히게 배열해서 그 의미를 알면 감탄하게 되는 각각의 장면에 대한 해설.
음양오행, 삼신칠성, 무극태극, 사괘, 팔괘, 고구려벽화, 신선문화, 인면조, 도깨비와 조화사상 등 한문화 핵심코드를 풀어보는 인문학강좌. ...

※그날 제가 없지만 좋은 시간 준비 했습니다.  두 강사는 한국인문학의 올림픽 선수입니다.※

☞일시 : 2018년 2월 24일(토) 오후 1시 ~ 4시
☞장소 : 서울,슈퍼스타트 이대점 (2호선 이대입구역 3번출구)
☞주최 : 한류열풍사랑,한국사시간여행자밴드
☞회비 : 1만원
☞신청 → https://goo.gl/R8VMU1

(좌석 관계상 선착순으로 모십니다)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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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2018.02.16 18:43

<재미있는 이집트 이야기>

이집트라는 곳은....
일단 재미있다. 신기하고 유별나며 알수록 더 알고 싶어진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따라 따뜻하고 농사짖기 좋은 곳에 사람들이 살면서 문명을 만들었다.
나일강을 벗어나자마자 서쪽은 끝없는 사라하 사막이고 남쪽도 험한 사막이며 동쪽 역시 사막과 홍해를 만난다.
고이집트는 지역적으로 고립된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독창적인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역사가 이어져 왔다.
외부에서 이집트를 쉽게 오갈 수 있는 통로는 북쪽밖에 없었다.  
북쪽에서 누군가 이집트로 침입하기 전에는 이집트가 크게 흔들리거나 변한적이 없다.


(아래: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되는 나일강은 길이 6,895km로 아마존강 다음으로 길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길다. 폭은 2.8km, 깊이는 8-11m로 아프리카의 11개 국가를 지난다. 나일강이 만든 분지의 면적은 아프리카 전체면적의 약 10%가량으로 대한민국(남한) 면적의 35배 가량된다. 나일강이 준 선물은 지금의 이집트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 너무나 차별적으로 발전했다.)

이집트는 나일강 상류쪽에 있는 이집트와 하류쪽에 있는 이집트로 나뉘어 있었다.
파피루스를 상징하는 하이집트연꽃을 상징하는 상이집트는 기원전 3,100년 전설적인 메네스(또는 나메르)왕에 의해서 통합이 되었다. 

(아래: 마네스 왕의 이야기를 다룬 판석. 좌측이 마네스 왕이 상이집트 왕관을 쓰고 적을 후려치고 있다. 호루스를 상징하는 매가 있고 신성한 소를 숭배했기 때문에 소의 모습이 가장 위에 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합했기 때문에 왕관도 통합을 했다.
아래 그림에서 좌측부터 상이집트 왕관(흰색), 하이집트 왕관(붉은색), 통합된 왕관(이중관)이다.
마네스 통합된 왕관을 사용했다.


그런데 마네스 왕이 존재 했는지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이집트를 통합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그려졌다고 하면서 마네스에 대해선 반은 전설이고 반은 진짜라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 마네스는 상하이집트를 통합한 신인 호루스일 것으로 이야기 하기도 한다.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는 호루스는 자신의 삼촌인 세티와의 전쟁을 통해서 이긴 후 상하이집트를 통합한 신이기 때문이다. 

(아래: 이시스, 오시리스, 호루스. 매의 얼굴을 한 호루스는 상하이집트 통합 관을 쓰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들은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았기 때문에 살아서는 호루스로 살고, 죽어서는 명계의 신인 오시리스의 삶을 산다고 믿었다. 오시리스가 죽은자들이 거치는 명계의 신이 된 것은 그의 동생 세티에게 두번째 죽음을 당하면서 몸이 14조각으로 짤렸을 때 이시스가 사체를 수습했는데 오시리스의 성기에 만은 못찾았다. 그래서 죽음 후 명계의 신으로 남게 되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사체조각들을 천으로 감싸야 했기 때문에 파라오가 죽으면 미이라로 만들고 천으로 감싸는 의식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초기왕조-고왕국와- 중왕국 까지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피라미드를 만들과 그 속에 파라오 시신을 안치해왔다. 그러다 아시아 기마민족 힉소스가 쳐들어오면서 이집트는 완전히 바뀌게 된다.
힉소스는 말을 잘 다루었으며, 말이 끄는 전차를 가지고 신출귀몰하게 싸웠고 조립이 되는 활과 전투용 칼을 가지고 와서 이집트를 정복했다.

하이집트는 힉소스인들이 차지했고 테베(지금의 룩소르를 중심으로 한) 상이집트는 이집트인들이 지배를 했다. 약 200년간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로 나뉘어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힉소스인들이 들어올 때 가나안에 살던 샘족들도 같이 들어왔다. 
외부세계의 문명을 받아들이고 힉소스인들이 무기를 장착한 이집트인들은 힉소스인들을 몰아냈다. 그리고 외부세계로 정복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신왕국의 시작이다.

신왕국은 이집트 역사의 하이라이트 시대이면서 가장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시대이기도 하다.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고 암굴무덤과 신전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투트모세 3세가 나오기도 했다. 위대한 왕으로 칭하는 람세스 2세가 나온 시기이고, 황금관으로 유명한 투탕카멘 소년왕 시대이기도 했다.
파라오 아케나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태양신 아톤을 숭배하는 유일신교를 만들기도 해서 출애굽을 한 모세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 힘들게 고대 이집트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해 봤다.)

이집트 신왕조 시대에 가장 특이한 파라오들이 몇 있었는데 그 중 18왕조의 하쳅스투 여왕이 있었다. 
아버지는 투트모세 1세, 남편은 사촌 동생인 투트모세 2세 남편이 일찍 죽자 스스로 왕이 되었다. 남장을 하고 가짜 수염을 붙였고 이름도 남성이름을 썼다.
그러나 새로운 왕이 있어야 된다는 주변의 성화에 못이겨 어린 조카이자 양아들인 투스모세 3세를 왕자신의 딸과 결혼시키켜서 사위이자 아들로 만들고 왕으로 내세워서 섭정을 했다. 선대왕들이 했던 전쟁보다 주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커다란 배를 만들어서 외국에 보내서 무역을 했다.
"신비한 땅에서 싣고 온 각종 나무와 수많은 종류의 나무, 흑단, 상아, 황금과 은, 비비원숭이, 긴꼬리 원숭이,...피부가 검은 사람들...이집트의 어떤 왕조 이런 물건을 이집트에 가져온 적이 없다."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출애굽으로 유명한 모세(Mose)를 양아들로 삼고 키웠던 왕이기도 하다.

(아래: 하쳅수트 여왕의 장례의 위해서 만든 장제전. 그러나 여왕이 갑자기 실종이 되었다. 기록이 없이 죽고나서 투트모스 3세는 하쳅수트의 모든 흔적을 지워 버렸다. 이름을 지우는 것은 기본이고 얼굴을 다 파괴했다. 투트모스 3세는 자신의 어머니를 너무 싫어했기 다시 환생하지 못하게 이름과 얼굴을 지웠던 것이다.)

투트모스 3세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했다. 이집트 나폴레옹이라고 불린다.
20년간 17번 원정을 가서 싸웠는데 이집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카데쉬를 점령했고 지금의 시리아까지 차지했고 남쪽으로는 이집트 나일강 제4폭포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집트에 포로들을 데리고 오면 이집트식 교육을 시키고 성인이 되었을 때 돌려보냈다. 그래야 이집트 속국으로 남을 수 있다고

(아래: 기원전 1,500년 이집트 최대 영역)

신왕조 시대에 왕들은 신전에 많은 전리품과 부동산을 갖다 바쳤다. 이집트에서 왕이 되려면 반드시 종교계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성직자들을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하쳅수트와 투트모세 3세가 왕위 다툼을 할 때 서로 지역 최고의 신 아몬-라 대신전의 성직자들에게 지지해 줄것을 요청했다. 성직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어 버렸다. 성직자들은 왕실에 참여할 수 있게 한 투트모세 3세를 지지했고 투트모세3세는 전쟁에 나가서 가져온 모든 전리품을 신전에 바쳤다. 부동산은 물론 한 도시를 바치기도 했고 노예를 바쳤기 때문에 신전엔 모든 것이 넘쳐났다. 나라에 재정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 후에 아멘호테프 4세(아크나톤)는 정치와 종교 개혁을 시행했는데 아몬 신을 버리고 태양신 아톤을 섬기는 유일신교를 만들었다.  개혁을 통해서 종교계의 힘을 약화시켜서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수도도 이집트 중심부에 있는 아마르나로 옮겼다.  그리고 이름도 아톤의 빛이라는 의미로 아크나톤이라고 바꿨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왕비인 네페르티티는 남편인 아크나톤의 개혁을 적극 지지했다.  아크나톤은 낮은 신분에서 시작해서 전쟁 때 공적을 세워왔다. 죽을 힘을 내서 싸웠지만 성직자들에 비해서 돌아오는 것은 너무 미미했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노예들의 지지를 받았고 결국 파라오가 된 후 종교, 사회, 예술 등 모든 부분에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아톤 숭배가 점차 개인숭배로 바뀌어 나갔다. 게다가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리품이 없었고 군인들이 포상금을 받지 못했다. 여기저기 불만이 생겼고 결국 군대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서아시아 지배지역도 하나 둘 독립을 선언했다. 
결국 개혁을 실패했고 아크나톤이 죽은 후 아마르나는 파괴되었다. 아크나톤이라는 이름도 전부 지워졌다.

(아래: 강인하게 생긴 아크나톤의 길죽한 얼굴. 나중에 자신이 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갖추어야 된다고 해서 여성의 가슴이 달린 것 처럼 조각을 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조각이나 기록들을 보면 실지로 가슴이 나왔던 것 같다. )

(아래: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있는 판석. 이 것을 보려고 전세계인들이 줄을 선다는 돌이다. 아크나톤과 그의 부인 네페르티티 그리고 딸이 빚이 내려오는 태양신 아톤에게 꽃을 바치는 모습. 여기서도 아크나톤은 여성의 가슴이 달려있고 여성의 하체로 그려지고 있다.)

(아래: 화려하게 장식된 아크나톤의 미이라 덮개)

(아래: 아크나톤이라는 이름이 지워진 모습. 다시 태어나지 못하도록 이름을 다 지웠다.)

(아래: 편두를 한 아크나톤의 딸 두상)

2,000 신위가 넘는 이집트 신들을 다 버리고 유일신을 만들었기 때문에 당시 모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에 계속...)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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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2018.02.13 07:53

의 나라 이집트

이집트 하면 생각나는 것은 피라미드, 스핑크스, 오벨리스크, 나일강, 사하라 사막, 파피루스, 람세스, 모세 등이 일반적이다.
사실 이집트를 다니면서 보는 것도 주로 피라미드와 신전 그리고 무덤들이다.

(아래: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개념 지도. 피라미드가 많은 하이집트와, 신전이 많은 상이집트와 그 아래쪽 누비아 지역)

그 중에서 피라미드가 가장 규모가 크고 또한 가장 많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피라미드는 약 118개 또는 138개라고 한다.
이는 피라미드로 규정하기 애매한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대부분 이집트 고왕조부터 만들기 시작해서 중왕조 시기까지 이어졌다.
피라미드 내부에 왕과 왕비들의 무덤용도 였으며 미이라로 만들어서 안치했다.
카이로 인근 멤피스와 사카라에 초기 피라미드들이 있다.

(아래: 이집트 카이로 남쪽 사카라에 있는 최초의 피라미드로 알려진 계단식 피라미드. 이집트 고왕조 조세르 왕의 피라미트. 최고의 건축가이자 재상이었던 이모텝에게 만들게 했다. 이모텝은 나중에 신의 반열에 올랐다.)

(아래: 카이로 인근 기자의 피라미드 3개. 지상에 표시한 오리온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52도 경사를 유지하면서 흐트러짐 없이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밖에 없다.
나머지 피라미드는 52도로 만들려다 다 실패한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 피라미드보다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피라미드가 52도로 못 만들었다는 것은 저 기술이 전승되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외계인 작품이라는 설이 나오는 이유이다.) 

최초의 피라미드는 고왕조 초기 사카라에 만든 계단식 피라미드로 조세르 왕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계단식 피라미드보다 월등히 앞서는 기술로 만든 기자의 피라미드가 이집트 4왕조에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기자에 있는 3개의 피라미드는 무덤이 없었다. 기자의 피라미드 3개를 흔히 쿠푸왕, 카프레, 멘카우레와이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사실상 누가 만들었는지 아직까지 모른다.

이미 알려진 대로 대 피라미드에 남아 있다는 쿠푸왕의 기록은 프랑스 발굴자가 조작을 한 것이다
이미 쿠푸왕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스핑크스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학자들은 스핑크스 옆면이 강물이 흐르면서 깍여나간 흔적을 확인 했는데 이로 인해서 스핑크스는 약 1만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 3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것들은 후대 왕들이 만들었다.
뛰어난 전투기술을 가진 외부의 세력인 히타이트 인들이 침입하기 전까지 말이다.

고왕조와 중왕조에 거대 사업은 주로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중왕조 후기에 아시아 기마민족인 힉소스가 침공을 해서 하이집트를 지배하자 피라미드 공사가 중단 되었다. 힉소스는 말이 이끄는 전차와 조립식 활, 강한 화살, 전투용 검, 갑옷, 금속 투구 등 이집트인들이 보지 못했던 무기를 가지고 들어왔다. 힉소스는 하이집트 지배 했고, 이집트인들은 상이집트를 지배했는데 그 기간이 약 100년가 지속되었다. 힉소스의 기술을 받은 이집트 인들은 결국 힉소스를 몰아냈다.

이 후 신왕조가 시작되면서 힉소스에게 받은 무기를 가지고 정복사업에 뛰어 들었다. 고대 이집트 역사의 하이라이트인 신왕조 시대는 가장 넓은 영토를 만들었다. 북쪽으로 지금의 터키 국경인 시리아까지, 남쪽으로 나일강 상류인 제4폭포까지 정복 했다. 거대 신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신왕조 시대부터이다. 파라오가 되려면 신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복하면서 획득한 전리품과 부동산을 신전에 바쳤다.

(아래:  직접 그려 본 18왕조 때 정복왕 투트모스 3세가 차지한 이집트 최대 영토 - 분홍색 부분: BCE 1,500

 

(아래 그림 5개: 룩소에 있는 룩소 신전. 신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일강 바로옆에 만들었다.)

이집트엔 피라미드도 많고, 무덤도 많고, 신전도 많지만 그 어떤 것도다 많은 것은  이집트의들이다.
이집트에는 신의 수가 무한대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대략 2,000이 넘는 신이 있다고 한다.

그 만큼 신전도 많고, 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서 이집트 인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신을 위해서 살았던 것처럼 보인다.
이집트 신들은 그리스로 넘어가서 이름이 바뀌었고 또 로마의 신들이 되었으며 기독교에 영향을 미쳐서 성경 속에도 흔적이 깊이 남아 있다.
이집트 신이 형성된 시기는 이집트 5왕조 때부터이다. 카이로 인근 헬리오폴리스가 신들이 탄생한 곳으로 여기며 그 곳에서 나온 아홉 주신(主神)이 이집트 신화의 시작이다. 
여기서 신들이 태어난 곳은 카이로 동북쪽 20km 떨어진 헬리오폴리스이지만, 카이로 남쪽 22km떨어진 초기 수도 멤피스도 초기 왕권 신앙의 최고 중심지 였다.

(아래-이집트 창조신화에서 신들의 계보. 아홉주신과 호루스, 아누비스)

위의 9주신과 아누비스 호루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피라미드 내부 벽면에 새겨진 피라미드 텍스트와 파피루스를 통해서 밝혀진 내용 들이다.
이 9주신 이회에 지방에 각각 3명의 주요 신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지방신이 태양신으로 변모되면서 신의 계보가 복잡해 지기도 했다.
우리의 기록 중에도 이집트 신들이 탄생되는 부분과 내용이 같은 것이 있다.
바로 태백일사(太白逸史)의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서 나온다.
"-태초에 기(氣)가 있기전에 처음으로 수기(水氣)를 생(生)하여 이 태수(太水)로하여금 북방에 자리잡고 천명을 받아 흑(黑)색을 주관하게 하셨다.
-생명의 기틀이 있기 전에 처음으로 화기(火氣)를 생하여 이 태화(泰火)로 하여금 남방에 자리잡고 천명을 맡아 적색을 주관하게 하셨다.
-목기를 만들고 금기를 만들었다. 위 수화목금의 기운을 조화시킬 주체가 있기 전체 처음으로 토(土)를 생하여 이 태토(太土)로 하여금 중앙의 방위에 자리잡고 천명을 맡아 황색을 주관하게 하셨다.
-이 때 천하에 두루 계시며 다섯 임금(五帝)이 맡은 사명을 주괸하는 분은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시며,
지하에 두루 계시며 다섯 성령(五靈
)이 이루는 공덕을 주관하는 분은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시다..."

 

이집트의 대규모 신전들은 18왕조가 시작되는 신왕조시대에 활발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신전으로 축구장 30개 넓이에 해당하는 카르낙 신전이 있다. 테베(룩소)의 지방신인 아몬신을 위한 신전이다. 나중에 태양신의 지위를 붙여서 "아몬-라"라고 불렀다. 

(아래: 카르낙 신전 중에서 가장 중앙에 해당하는 아몬신전의 대 기둥 홀)  


나일강변을 여행하다 보면 많은 신전을 만나게 된다..
신왕조의 수도였던 테베(지금의 룩소르)와 그 일대에 대규모 신전들이 만들어졌다. 대부분 신전들은 아툼(라), 오시리스, 호루스, 아문신을 모셨다.
신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카르낙신전, 룩로르신전, 아비도스, 하쳅수트, 아부심벨 신전 등이 있다.
신왕조 이후  그리스 지배가 시작된 프톨레미 왕조 시절, 광범위 하면서 대대적인 신전을 만들기 시작해서 로마와 비잔틴시대까지 이어졌다.
프톨레미왕조 때 이집트의 거의 모든 도시에 신전이 있었다.
프톨레미 왕조 시절에 만들기 시작한 시전들은 덴데라(하토르신전), 에드푸(호루스신전), 에스나, 콤옴보 신전 등이 있으며 신왕조 시대에 만든 카르낙 신전을 넓혔다.

 

(아래: 에드푸에 있는 호루스 신전의 첫번째 문. 전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신전이다.)

상식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원형이 변형되고 외곡이 되겠지만 이집트는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대적인 종교문서 복원 작업을 하면서 기록을 새롭게 했는데 신전 벽면에 새겼다.
대표적으로 여신을 숭배한 아스완의 필레신전(이시스 여신의 신전)과 룩소르 인근에 있는 덴데라 신전(하토르 여신의 신전)이다.
이 두 신전은 그리스인 지배시기인 프톨레미 왕조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로마지배시기에 완성되었다. 특히나 필레신전(이시스 신전)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나서 만들기 시작해서 프톨레미 왕조를 거쳐-로마-비잔틴 시대까지 약 900년간 이어졌다. 그래서 하토르 신전에 비해서 필레신전은 상태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다.

(아래 3개의 사진-아스완 인근 필레신전은 이시스 여신의 신전으로 아스완 댐 공사로 수몰될 처지에 있던 신전을 섬위로 올렸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 인문학 여행작가 오동석 -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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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2018.01.15 03:36

이집트 사람들이 사는 법?

튀니지 청년이 분신한 후 부패한 정권을 향해 일어난 자스민 혁명의 여파로 2011년 이집트에서도 혁명이 있었다. 
2017년 말에 다시찾은 이집트는 변한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한국에서 만든 지하철 전동차가 카이로에서 인기있다는 이야기는 들렸지만 경제와 삶의 질은 오히려 퇴보해 있었다. 경제가 무너져서 회복할 기미가 안보였다.
삶에 쪼들린 사람들이 뭐라도 해서 먹고 살려고 바둥바둥 거리는 모습들이었다.
가난 할수록 이방인을 도와 주려는 정직한 사람들이 많지만 약삭빠른 인간들은 관광객에서 어떡하든지 돈을 뜯어 내려고 다양한 방법을 쓴다.
버스나 지하철은 1.5이집트파운드(한화로 약 90원정도)이며
택시도 저렴하다. 택시와 흥정을 잘 하면 약 2만원으로 카이로 시내를 돌 수 있다.
지방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물건에 가격표가 있는 큰 슈퍼가 아니라면 작은 곳에서 물 한 통을 사더라도 4배-10배를 부른다.
무엇을 하려고 원래 흥정한 가격이 있는데도 중간에 말이 바뀌고, 가격이 자꾸 바뀐다.
내가 돈을 지불 해야 되는 것을 했을 때 누구든지 항상 물어보는 이야기는 "Are You Happy?"이다.
인사 치례로 해피하다고 하면 돈을 왕창 높여 부른다. 내가 해피 했으니 그만큼 돈을 많이 내라고 한다.
가당치도 않은 일을 자주 만난다.
항공기 지연이 자주 있고, 기차가 제 시간에 출발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런 것은 어딜 가던지 똑 같기 때문에
몇 번 사람을 접해보면 수법을 알게 되고 이집트는 절대 믿을 곳이 못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부정적인 시각이 커지게 된다.

그래도 사람사는 곳이기 때문에 순박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만난 가장 정직하고 인간미가 철철 넘지는 사람은 카이로 공항에서 버스를 친절하게 가르쳐준 너무 허름한 행색의 청년과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유람하는 돛단배 팰루카 사공과 아부심벨에서 만난 호텔 주인이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특히 사람들이 쉬었다 갈만한 곳에는 물통이 있어서
누구든지 목을 축일 수 있게 항아리에 물을 항상 담아 두었다.

이집트에서 가장 흔한 것을 찾는 다면 휘발유와 대추야자이다.
1리터에 250원 정도하는 휘발유는 한국으로 몇 드럼을 가져가서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추야자나무는 약간이 물이 있는 곳이면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 그래서 카이로에선 녹화 사업에 이 나무를 사용해서 일부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심었다. 7년이 지나면 나무에 주렁주렁 달리는 대추야자 열매는 이집트뿐 아니라 아랍에서 가장 흔한 과일이다.

이 과일은 고대 때부터 건포도, 무화과와 함께 신에게 올렸던 성스러운 음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흔한 대추야자 열매만 먹고 살수도 없다. 이집트는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이다. 가격이 치솟은 밀 때문에 엎친데 덮쳐서 물가가 상승했다. 그렇다고 석유가 부강하게 해 주지는 않는다. 아랍권의 모든 산유국이 그렇듯이 석유 때문에 국민들이 잘사는 중동 국가는 하나도 없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전유물이기 때문에 부가 분배되지 않는다.

이집트가 세계적인 현상을 역행하는 것은 이집트 남자들의 여성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집트에선 통통한 여자기 인기 좋다. 일을 잘 알 수 있거나 자녀를 잘 생산할 수 있는 체형의 여자라야만 지참금을 많이 주고 데리고 오는 아프리카 대륙의 오랜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남부아프리카의 경우는 여자에 따라 지참금으로 소를 몇 마리 줄 것인가를 결정하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낙타의 숫자로 여자를 평가한다. 오늘날에는 낙타 값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하지만 여자에 따라서 20마리 값을 주고 데리고 오기도 한다. 즉 남자들이 선택하는 여자가 좋으면 1천 만 원 정도의 지참금을 지불한다.

첫 번째 부인이 들어오면 둘 째 부인을 들려오기 위해 지참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첫째 부인에겐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필자가 만나본 이집트 남자들 중 대도시 카이로에 사는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은 4명의 부인을 두고 남자 아이들과 사는 것을 꿈으로 여기고 있었다. 여자를 낳으면 지참금을 많이 받기 때문에 좋아 할 것 같지만 남아 선호가 심한 곳이어서 남자를 더욱 좋아 하는 곳이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그런 현상이 심하다.
그리고 이집트 신화에서 나오는 오누이가 결혼하는 현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척끼리 결혼하는 풍습이 남아 있는 고리타분한 곳이다. 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일수록 근친결혼이 비일비재하지만 인척끼리 지참금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인 일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카이로와 같은 대도시에선 여자가 이혼은 요구하는 경우는 흔한일이 되었다.
둘 째 부인을 데려오지 못하게 하려고 부부가 싸우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결국 이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이슬람에서 여자가 이혼을 요구하는 것은 금기하는 사항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여자와 같이 사는 것도 힘든데 처를 많이 두려하기 때문에 여권이 무시되는 것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여자는 20살에 주로 시집을 가고 남자는 지참금을 모아야 해서 30살이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랑신부의 나이 차가 15살 정도는 흔한 일이다.

결혼을 하면 세계적인 휴양지인 이집트 동쪽 홍해로 가야 정상이겠지만 가난한 이집트 사람들은 주로 집에서 신혼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들은 신혼부부를 위해서 비둘기고기를 계속해서 넣어주는 풍습이 있다. 이집트에센 비둘기 요리가 중국에서처럼 강장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도 비둘기 요리는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비둘기 고기는 비둘기 잡는 집을 만들어서 자체 공급한다. 벌집처럼 생긴 집속에 암비둘기를 집어넣으면 수컷들이 날아 들어온다. 들어갈 때는 쉽지만 나갈 수가 없게 만든 입구 때문에 비둘기 지옥이 된 곳에 손을 집어넣고 비둘기를 꺼내서 요리를 한다. 그런데 비둘기 고기의 효과가 없는지 몰라도 최근 이집트의 이혼율은 갈 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집트는 다양한 음식이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인도와 아프리카 중계무역을 하던 사람들이라 다양한 향신료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식은 이집트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레 빵이라고 하는 아이쉬(Aish)이다. 집에서 만들지 않고 주로 밖에서 구입해서 먹는 이 빵은 여러 곡물로 만들지만 주로 밀을 이용해서 만든다. 아이쉬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공갈빵처럼 속이 부풀어 올라와 있다. 식으면 걸레처럼 흐물흐물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여기에 여러 가지 소스나 양념된 애채를 넣어서 싸먹으면 맛이 그럴싸하다. 마치 우리의 밥처럼 여러 가지 음식과 곁들여 먹는 것이지만 프랑스의 바케트와 터키의 캐밥과 유사한 음식으로 볼 수 있다. 시장이나 골목의 작은 가게 또는 빵 만드는 집에서 쉽게 찾을 수있다.

이슬람권 국가의 길거리에서 가장 이색적인 모습은 여성들의 의상이 아닐까 한다.
이슬람 여성의 베일을 이해하는 것이 이슬람을 이해하는 기본이기도 하다. 이슬람 여성들의 의복을 유럽에선 베일(veil)이라고 한다. 국가와 종교적 성향, 집안 전통, 계층,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용하는 베일이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부르카, 니캅, 차도르,  알 아미르, 히잡 등 4가지로 나뉜다.  

-부르카(Burqa): 전신을 가리는 대표적인 이슬람식 베일이다. 주로 푸른색을 많이 사용하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것으로 눈을 포함해 신체의 모든 부분을 가린다. 눈에는 보통 망사를 사용한다. 손에는 장갑을 끼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많으며 (전체 여성의 11%), 나머지 지역은 매우 소수가 사용하는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집트 사막에서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여성들이 착용한다.

 -니캅(Niqab) : 눈을 제외하고 전신을 가리는 옷이다. 즉, 부르카에서 눈을 가리는 망사 부분이 없다고 보면 되는 복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며(63%), 파키스탄(32%)과 예멘 등지에서 많이 사용한다.

-차도르(Chador) : 부르카에서 얼굴을 뺀 나머지 몸통을 가리는 옷으로 보면 되지만 속에는 양장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이란에서 많이 착용한다. 이란, 이라크와, 파키스탄에서 많이 착용한다.

-알 아미라(Al-Amira) : 이슬람 여성들이 가장 많이 착용하는 복장이다. 히잡이 하나의 천으로 되어 있다면 알 마이라는 머리를 가리는 부분과 목을 완전히 가리는 두 개의 천으로 되어 있다. 튀니지, 이집트, 터키, 이라크에서 많이 착용한다.

-히잡(Hijab) : 이슬람어의 ‘가리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코란에도 언급이 되어 있다. 가장 보편 적이고 색상이 다양하다. 두건 모양으로 머리와 목 부분을 가리는 의상이기 때문에 얼굴을 제외한 상체만 가리는 것이 특징이며 머플러 같은 스타일이다. 입고 벗기가 쉽고 시리아 등 아랍권 여성들이 사용한다.

-None: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은 레바논, 터키, 모로코, 튀니지이다.

그런데 부르카나 차도르를 착용한다고 해서 ‘속옷은 그저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가려도 여자인지라 속옷은 무척 야한 옷을 착용한다고 한다고 한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여자 속옷들을 본다면 그 말을 실감하게 된다.서양인들은 이슬람식 베일 착용 금지 이유를 표면적으론 무슬림 여성의 인권신장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베일은 억압과 극단적 근본주의의 상징이라고 보고 있지만 실지로는 반 이슬람 정서와 테레 위협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모든 여성은 베일을 착용해야만 한다. 이란 여성은 초경이 시작되는 13세가 넘으면 집 밖에서 반드시 베일을 착용해야 한다.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은 식당 출입이 금지된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그 여성은 물론 식당 주인도 영업정지 등 문책을 받는다.

 한편 베일 착용이 강제적이지 않은 아프리카 이슬람권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베일의 섬유와 디자인이 크게 다르다. 매체를 통해서 보면 베일의 색깔이 주로 검정색만 나오기 때문에 베일은 검정색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모로코와 튀니지의 베일 색깔은 화려하다. 특히 베이지 색상을 선호한다.

 그런데 무슬림 여성들이 베일을 착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일은 무슬림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나타내며 성적 유혹을 피하고 순결하게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반외세에 대한 저항과 여성운동을 의미한다. 특히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보호하려는 전통적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이다. 베일은 얼굴을 드러낸 천한 계층의 여성에 비해 자신들의 신분과 권위가 높음을 뜻한다. 명예를 중시하는 이슬람 문화에서 베일은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방어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을 모르는 서구 기독교인들은 무조건적으로 격리와 억압의 상징으로만 보기 때문에 나쁘다고만 생각해 왔다.

눈만 내놓거나 얼굴만 내놓고 다니는 여성들의 의상은 형태에 따라 부르카, 차도르, 히잡 등 다양하다. 길거리에서 부르카나 히잡을 하고 다니는 여성들의 몸이 비대하다고 해서 처음부터 몸집이 큰 것은 아니다. 젊은 여성들은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생활한다. 비대해진 것은 그들의 생활 습관 때문이다. 우선 머리에서부터 온몸을 감싸고 부르카나 눈만 가리지 않은 니캅과 같은 의상은 치장하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니 시장을 보러 가는 경우조차 거의 없고 주로 일상을 집에서 보낸다.

예를 들어서 4층에 사는 사람이 물품명을 적을 쪽지와 돈을 넣어서 바구니를 내리면 1층 사람이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쁜 식습관도 문제다. 빈곤층이 많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먹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인생의 즐거움은 먹는데서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식사를 보통 두 차례나 한다. 저녁 7시와 잠자기 전 10시 식사를 한다. 이런 식습관은 이슬람력으로 9월인 라마단기간 음식을 금하는 풍습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라마단 기간은 매년 다르며 해가 바뀔 수록 기간이  앞으로 당겨진다.

라마단 기간 한 달 동안은 해가 뜰 때부터 어두워질 때까지는 먹고 마시는 것을 금하게 되며 독실한 이슬람인은 심지어 침도 삼키지 않는다. 그러나 해가져서 ‘허락의 밤’(라일라 알바르)이 되면 ‘아프타르’라고 하는 특별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즉 날이 밝기 전까지 낮에 먹지 못했던 음식을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저녁에 두 끼의 식사를 한다.

이 라마단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피난 계획을 세우는 동안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서 24시간 먹지 않은 데서 유래한다. 그래서 라마단(이슬람 음력 9월) 때 해가 떠있는 동안은 흡연과 성생활도 금지되어 있다. 처음 이슬람 라마단은 유대인들의 금식일인 1월8일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하메드가 메디나에서 메카의 군대와 싸워서 첫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9월로 옮겨진 것이다. 어째든 이 저녁 식사를 두 번하는 습관에다 초콜릿같이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몸이 퍼져서 건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평균수명도 60살 정도이다.

위와 같이 살게 된 원인을 중동의 고질 적인 문제인 문맹률과 연결시키기기도 한다. 이집트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신분상승에 제약이 있다. 그래서 가난한 계급은 직업을 대물림 하는 문맹으로 살아간다. 즉, 아버지가 농부이면 자식도 농부가 되고 아버지가 어부면 자식도 어부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집트 노무자들은 하루 종일 막노동을 해도 우리나라 4천원에 해당하는 돈 밖에 벌지 못한다. 현재 이집트의 문맹률은 46%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지방으로 갈수록 문맹률은 더욱 높은 수치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모습에서도 이상한 것을 찾을 수 있다. 여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책가방은 엄마가 들고 다닐만한 여성용 핸드백이다. 그 속에 책을 넣고 한권의 공책에 모든 과목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알 고 있던 나는 호텔에서 잔뜩 모아온 볼펜을 베두인족들이 사는 사막 시골 아이들에게 나누어 줬는데 무척 좋아한 적이 있다. 심지어 시골에 사는 나이 많은 사람들도 볼펜엔 관심이 많다.
그러나 20년 전에 비해서 문맹률은 매우 낮아진 수치이다. 오늘과 같이 중동지방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높아진 교육열과 무관하지 않으며 IT기반의 현대사회가 만들고 있는 소셜네크워크의 바람이다.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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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2017.08.30 07:30

<화산과 온천 그리고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


우리나라 남한보다 약간 큰 면적을 가진 아이슬란드는 글자 그대로 얼음이 땅이라는 의미이다.

오래전 바이킹이 왔을 때 거대한 빙하가 가득한 모습을 보고 불렀다는 이름이다.

아마도 오래전 바이킹이 도착했을 때 모습은 아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 2006년 1월29일 모든 곳이 눈에 덮힌 아이슬란드-위성사진)


그러나 사실 아이슬란드는 얼음과 의 땅이다.
유럽 대륙과 북아메리카 대륙이 갈리지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에 비해서 태어난 지 오래지 않은 젊은 땅이다. 젋다 보니 활발해서 힘이 넘친다. 그래서 매년 2cm씩 땅이 갈라지고 있는데 다른 말로 가만 앉아 있어도 부동산이 매년 수천평씩 생기고 있는 나라이다. (좋지~)

젊은 만큼 땅이 갈라지려면 화산활동이 매우 활발하다는 이야기인데 안그래도 약 10개의 활화산이 활동하고 있다. 

 

(아래 지도는: 화산이 활발한 땅임을 보여준다. 수도인 레이캬비크 인근도 화산 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착하러 왔을 때 연기 가득한 만 또는 항구라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것이 레이캬비크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film) >에서 화산이 터지는 장면이 나온다. 
화산의 이름은 영화속 주인공이 발음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말하기 어렵다는 에이야피야틀라요쿨(Eyjafjallajökull) 화산이다. 영화속에서 멋진 모습이었지만 2010년 에이야피야틀라요쿨 화산 폭발로 인해서 유럽 항공기가 꼼짝 못하게 했다. 막강한 아이슬란드 자연이 아닐 수 없다. 

단어 뒤에 요쿨은 빙하 또는 얼음 모자(Ice Cap)를 의미한다. 산위에 빙하가 깔려 있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에이야피야틀라요쿨의 의미는 '섬에 있는 산 빙하'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그 의미를 알게 한다. 북쪽에서 남으로 바라다본 사진으로 오른쪽이 에이야피야틀요쿨, 왼쪽은 미르달스요쿨이다. )

 

 

(아래 사진: 2010년 4월18일 에이야피야틀라요쿨 화산분화.)



(유럽 위성이 구성한 화산재가 퍼진 지역. 2010년 4월14일 - 25일)

 

(아래: 도로 위를 이동하면서 찍은 에이야피야틀라요쿨)

 

그러나 2010년 화산폭발이 애들 작난수준으로 보이게 하는 폭발이 18세기에 있었다.


1783년 6월8일에서부터 1784년 2월까지 무려 8개월간 터진 라키(LAKI) 화산은 유럽은 물론 북미대륙을 강타해서 잠시 소빙하기를 만들었다.

수많은 기록이 사람들을 추위와 굼주림에 떨게 했던 대재앙이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다에 연기와 안개가 자욱해서 배들은 항구를 벗어날 수 없었고, 해와 달이 너무 흐릿했고 때로는 해가 핏빛으로 뜨고 졌으며,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곡식들이 자라지 못했고 봄 홍수가 잦았다. 이집트도 추위에 떨고 기근에 시달렸다.
그리고 아시아 몬순기후현상이 사라져 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벤자민 프렝클린은 유럽전역과 북미의 많은 부분이 연기와 안개로 가득했다고 기록했다.

 

환경 역사학자들은 라키 화산으로 인해서 북유럽 경제의 파탄과 유럽 식량부족을 가져 왔고 결국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유명한 베르사이유 궁전 앞에서 농민들이 "우리는 빵으로만 살 수 없다."를 외쳤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당시 농민들의 외침에 마리 앙투와네트가 "그럼 고기를 먹어라."라고 했다는 말은 거짓이다. 

교양있는 유럽 최고의 가문 합스브르크 집안에서 태어나서 철저한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그 이야기는 뒤에 지어낸 것이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죄명은 반역이다.
시민들이 들고 일어서자 마리 앙트와네트는 자신의 애인인 덴마크 왕자에게 몰래 편지를 써서 '군대를 끌고 와서 지금 사태를 끝내 달라'고 한 것이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도망가다 프랑스 국경인근에서 잡혀서 단두대에 목이 잘리고 말았다.


자연이 사람의 역사를 바꿨던 적은 한 두번이 아닌데 이번에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목기마민족이 자연재해(쪼드와 깡) 때문에 가을이면 약탈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중국 내부에선 유목기마민족들을 막기 위해서 긴-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한나라와 싸우다 견디다 못한 기마민족들은 서쪽으로 이사를 가거나 따뜻한 사막으로 이주해서 실크로드상의 사막 문화를 만들었다.
서쪽으로 이주한 민족들 중에서 훈족은 서로마를 멸망시키켜서 유럽 고대를 마감했고

돌권이 이주해간 튀르크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풀을 함락시켜서 중세를 마감 시켰다.   
사람은 절대 자연을 이길 수 없기에 자연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다.

다음에 일어날 큰 변화도 자연이 만든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다.

화산, 지진도 있을 수 있지만 전쟁이나면 꼭 따라다니는 전염병이 그 원이 되지 않을까.

 

아이슬란드 화산이 활발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자연환경이 많기도 하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인근은 온천이 많이 솟아 나와서 유명한 온천장 블루라군이 만들었다.
독특한 미네랄로 인해서 미용효과가 만점인 곳으로 누구든지 꼭 체험해 봐야 하는 장소이다.

 

바다도 아닌 곳인데 바다처럼 물이 짜고 바닥에 미네랄 가득한 흰흙이 깔려 있어서 푸른 색을 띄고 있어 마치 바다의 해수욕장에 온 듯해서 블루라군이라고 부른다.  

 

아래 사진에서 세계최초의 지열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레이캬비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야래는 블루라군 온천장으로 가면서 잠시 감상하는 곳이다.

 

바닥이 푸른 색이 매우 이색적이다.

흰색은 얼굴에 바르는 머드팩으로 미용을 위해서 온천장에서 바르기도 한다.

공짜로 주길래 나도 해봤다.

 

온천장으로 향하는 산책로

 

온천장은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곳인데 탈의실은 남녀 구분되어 있다.

여자는 아래층, 남자는 윗층.

 

아이슬란드도 이미 중국인들이 많이 와 있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이 많이 와서 온천을 누구보다 오래동안 즐기는 모습이었다.
음료도 마시고, 마사지도 하고, 머드팩도 하고, 스팀 사우나, 건식 사우나, 온천수 폭포 등.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 최고의 시설은 아마도 식당이 아니었을까 한다.

정말 맛있게 음식을 하는 곳이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많이 잡힌다는 대구요리가 짱이었다.

 

그리고 화산지대이기 때문에 간헐천이 발달해서 간간히 온천수가 하늘로 폭발하 듯이 솟아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간헐천이라는 영어식 표현 가이저(Geyser)는 이 곳 게이시르(geysir)에서 나왔다.
물을 100도에서 끓지만 마그마의 열을 받은 물은 지하에서 높은 압력을 받기 때문에 수 백도에 끓는다. 
높은 압력에 끓는 물이 대략 7분마다 폭발해서 밖으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약 3초가량 진행되는 온천 분수쇼를 보기위해 사람들이 주변에 계속해서 지켜서 있는다.
나도 30분 이상 지켜 봤다.
아래 사진은 물이 솟구치는 모습을 연속해서 담아봤다.

 

 

 

 


자연이 너무 좋은 아이스란드는 10일 정도 있을 만하다.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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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2017.08.28 18:05

<올리브가 만든 원형경기장의 도시 엘젬 EL DJEM>


호주 출신 러쎌크로우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영화 글라디에이터를 보면서 가슴이 짠했던 기억은 참 오래갔다.

러쎌 크로우가 호주 여성들의 마음을 다 빼앗은 연기를 해서 러쎌크로우의 집 앞에 미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었다.

"나랑 결혼해 줘요~!!"
삽입곡 "Now We Are Free"는 배경에 한층 어울렸던 음악이라 지금도 가끔씩 듣는다.

https://youtu.be/NBE-uBgtINg

 

글라디에이터 영화속 원형경기장을 촬영했던 곳은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남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다.  

차량으로 3시간 가량 걸리는 곳으로 로마시대에 부자로 만들어 주었던 최고의 올리브 오일을 생산해서 수출하던 곳이다.
 

 

 

인구가 약 21,600명 가량 사는 엘젬은 사방이 평지로 이루어진 곳이어서 멀리서부터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원형경기장을 볼 수 있다.

 

드디어 눈 앞에 나타난 경기장.
이 경기장은 현재 로마시대 남겨진 것으로는 두번째로 크다.
35,000명 가량 수용이 가능했던 곳으로 미완성 상태 였는데 시간이 지나서 지금과 같이 부서진 상태가 되었다.

(로마제국 시대에 가장큰 경기장은 5만명을 수용했던 로마의 콜로세움이다.)

 

이 경기장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은 당대 북아프리카 최고 부자이면서 북아프리카 총독이었던 고르딘Gordin이었다.
그는 로마 역사상 공동황제(6명의 황제)가 가장 많았던 시기(238년)에 아들과 함께 황제를 했었다.

로마제국에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사람이 죽고 나서 원로원은 나이가 이미 79살이나 된 총독 고르딘을 로마황제 고르딘 1세로 추대했다. 나이 때문에 황제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고르딘 1세는 그의 아들을 고르딘 2세 공동황제로 추대 했다. 그러나 20일 후 전투에서 사망하면서 고르딘 1세도 허무하게 자살을 하고 말았다. 
로마 황제를 1달도 못해보고(20일간) 생을 마감해서 인생무상을 가장 심하게 느꼈을 황제父子였다.
그런데 황제 안하고 편하게 살다 가도 되는데 황제가 된 이유가 있었다.

당시 황제 막시미누스 티락스 (Maximinus Thrax)는 폭군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선대 황제를 살해하고 황제가 되고나서 부당하게 세금을 올렸다. 이에 북아프리카가 반란을 일으켰고 세금 징수원을 살해했다. 고르딘이 카르타고에 들어 갔을 때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 폭군 막시미아누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로마의 원로원은 그 대안으로 인간성 좋은 고르딘을 로마황제 고르딘1세로 추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시미아누스에게 충성하던 인근 베르베르인들의 만든 누미디아 지방에서 베테랑 군인들이 와서 카르타고의 반란을 제압시켰다. 이 때 고르딘 1세의 아들 고르딘 2세가 전투에서 죽고 말았다. 고르딘이 이끄는 군대들은 전쟁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에 패배는 불 보듯이 뻔했다. 이 후 막시미아누스는 지금의 엘젬을 파괴했고 경기장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입구쪽 외관은 좋아 보인다. 내부와 반대편은 많이 훼손 되었다.

 

계속 이야기 하지만 로마시대 건축물들은 후대에 좋은 건축재료로 사용 되어서 로마시대 유적을 가장 많이 빨리 파괴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로마유적이 황성옛터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높은 곳에 오르면 마을 전경과 함께 경기장이 잘 들어온다.

 

아레나(운동장)가 잘 복원되어 있다. 그 아래는 동물과 검투사들이 함께 있었던 곳이다.
복도를 따라 걸어보면 내부의 구조를 잘 알 수 있다.



영화 글라디에이터(검투사)에서 지하에서 호랑이가 올라오는 장면도 이곳이다.

 

승리에 환호하는 장면도...

 

로마시대의 모자이크(로마시대는 바닥에만 모자이크를 깔았다.) 를 보면 검투사들이 싸움을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에서처럼 동물과 싸우는 장면도 있고....

 

검투사들끼리 치열한 싸움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
초반에 검투사 경기는 노예들을 데려다 싸움을 했지만 인기가 있게되자 직업 싸움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의 권투선수나 이종격투기 선수들처럼 후원하는 사람(회사) 밑에서 집단으로 연습을 했다.

그들은 근육 위로 두꺼운 지방질을 만들기 위해서 보리와 콩을 섞어서 먹었다고 한다.

칼이나 무기로 근육까지 깊은 상처가 나지 않게 하려고 두터운 지방질로 막았다고 한다.

검투사 중에선 지금은 운동선수처럼 부자들도 있었고 유명한 스타도 나왔었다.

 

경기장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

 

 

아래 부분이 가장 많이 보존이 되어 있는 곳이다.

 

내부 복도를 걸으면 당시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튀니지에서 엘젬은 빼 놓을 수 없다.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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