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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이탈리아

카프리(Capri), 개념이 다른 섬

by 두루가이드 2016. 12. 26.

카프리를 알기 위한 사진들

 

카프리에 수십번을 가봤지만 아직도 카프리를 잘 모른다.

카프리 섬보다 로마 시내를 더 많이 안다고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 섬이라는 특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지만 울퉁불퉁 절벽으로 이루어져서 길 만들기가 어려워 교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걷거나 배를 이용해야 되기 때문에 짧게 머무는 동안 구석구석 다 다니는 것은 어렵다.

나폴리와 폼페이를 가는 사람들이라면 카프리 덤이 아니라 필수이다.

사실 카프리를 가는 도중에 폼페이를 거쳐서 간다고 하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멋진 섬 하면 사람들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에 산토리니 보다 카프리가 더 좋은 이유가 많다.  

카프리는 한마디로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거기에서 문화 유산들이 곳곳에 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가 카프리에 궁전을 만들어서 생활했던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수 많은 작가, 시인, 음악가, 영화 속 장소, 유명인사들이 꼭 왔다 가는 곳이 되었다.

카프리 맥주가 생긴 것도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Capri 어원은 여러가지이다.

고대 그리이스 말로 맷돼지.

로마 공화국 말로는 염소.

그리고 논란이 많은 에투루리아 시대에 언어로 절벽이라는 의미가 있다.

로마시대부터 염소섬으로 불리어 왔던 곳이다.

아무래도 절벽이고 풀이 없으니 염소가 살기는 절당한 곳이로 보인다.

지금은 고양이 천지지만...

 

(아래: 마리나 그란데-큰 항구: 여객선들이 드나드는 곳)

 

 

(아래: 마리나 그란데- 큰 항구)

 

편의상 입체적인 지도를 올린다.

오른쪽 마리나 그란데로 배가 왔다 갔다 하고 반대편 작은 항구는 어촌으로 기막힌 식당들이 있다. 배로 가거나 걸어다녀야 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기가막힌 경관을 볼 수 있는 즐거운 기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카프리는 걸어다니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시간이 없으면 아나카프리에서 카프리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푸른동굴은 작은 배를 이용하서 이동하며 겨울에는 동굴로 배가 다니지 않는다.

겨울철 해의 각도가 동굴을 푸른 색으로 만들지도 않지만 파도가 높아서 배가 다닐 수 없다.

 

 

아래 지도가 4방위를 정확하게 그린 지도이다.

면적이 넓은 안나카프리보다 카프리 쪽이 볼거리가 더 많다.

 

카프리 섬에 왔으니 꼭 가봐야 되는 곳이 몬테 솔라노(태양의 산)이다.

해발 589미터로 가보면 경관이 압권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동산이 내려다 보고 있는 그는 카프리 섬에 최초로 내린 황제이다.

걸어서 오를 수도 있지만 안나카프리로 가서 1인용 곤돌라로 올라가면 된다.

 

손에 잡힐 듯 카프리가 보이고 그 앞쪽 기막힌 돌 섬들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누구든지 여기선 기념촬영을 하게 된다.

 

섬 멀리 소렌토 반도가 보인다.

반도의 오른편이 아말피 해안이다.

 

곤돌라로 아나카프리에 내려와서 오래전에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카프리까지 걸어가보는 것도 좋다.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하지만 그리 멀지 않다.

 

내려오는 동안 항구의 모습과 카프리의 전경을 감상 할 수 있다.

 

중간에 걸어서 카프리 중심에 갈 수 있지만 후니쿨라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 없다.

 

아래 이정표를 살펴보는데 스시집도 있다. 가장 오른쪽 아래 스시집 표기.
스시집 이름이 거창하다. 쿠카이=空海이다.
지중해에 있어서 붙인 이름이지만 사실 쿠카이는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통한 고승이다.

스시집을 만든 일본인이 아마 그 내용을 알고 만들었으리나...

 

 

그리고 카프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이 아우구스트 정원이다.

정원에 가면 몬테 솔라로에서 봤던 섬들이 바로 눈 앞에 있다.

 

좀더 자연 친화적인 유럽인들이어서 갈매기까지 애완용처럼 느껴진다.

유럽에서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갈매기들이 사람들이 주는 뭔가를 기다린다.

빵부스러기를 들고 있으면 바로 온다.

 

 

아우구스트 정원에서 작은 항구(마리나 피콜로)로 가는 기막힌 길.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니랄까봐.

산위로 길을 내서 다니는 도사들이라 산 아내로 내려가는 것 쯤은 뭐....

 

해가 바다로 지기 전에 햇살이 좋다.

아우구스트 정원은 사실 독일 사람이 만들었다.

20세기 초에 독일인 기업인 크루프(Krupp)가 이곳에 집을 지어서 1918년 까지 크루프 가든이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트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한가지 더, 이곳에  블라디미르 레닌의 글자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러시아의 작가 막심고리키가 레닌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원이라는 이름 답게 다양한 나무들이 있다.

 

석양이 절정에 이를 때까지 여유있게 앉아 있다.

 

아우구스트 정원에서 나와서 걸어가는 동안 어느 집 담장 사이로 보이는 돌섬.

 

그리고 풀 밭

 

풀들이 넘실대면서 춤을 추는 듯하다.

 

카프리 시내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남다르다.

지형이 울퉁불퉁 하기 때문에 경사진 곳에 집을 지어서 담벼락과 문이 독특하다.

항아리를 벽에 부착시켜서 뭔가를 키우는 모습도...

 

많은 집들 대문 위는 솔방울 모양의 장식들이 있다.

솔방울에 대한 비밀. 사람의 뇌의 중앙에 솔방울 샘이 있는데 그 샘에 인간의 비밀이 있다고도 한다.

바티칸 박물관 솔방울 정원의 청동 솔방울도 같은 의미이다.

솔방울 샘이 소위 도통하는 비밀이 있다고 하는데....^^

그리고 좁은 골목이 가파른 계단이 줄줄이 서 있다.

 

두리번 거리면서 길을 따라 멋진 경관을 감상하면서 가면 티베리우스가 만든 그 유명한 빌라 조비스(Villa Jovis)가 나온다.

티베리우스는 로마 제국 제 2대 황제이다.

그는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로마황제로서 12년간 지냈다.

(아래 폐허가 된 빌라 조비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후계자로 지목한 티베리우스는 섬을 유독 좋아했다.

풍파 속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기를 거친 그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태내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결 국면에서 티베리우스의 아버지는 안토니우스 편을 들었는데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를 이기자 젖먹이 티베리우스는 졸지에 부모와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티베리우스 3살 때 사면령이 내려져서 로마로 돌아갔다.
그런데 옥타비아누스는 티베리우스의 어머니(리비아)의 미모에 반하여 부모가 이혼을 강요 당하게 되고
옥타비아누스와 티베리우스의 어머니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래-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

아버지가 죽과 나서 티베리우스는 어머니 리디아와 살게 되었다.
이 때부터 옥타비아누스 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2살 때부터 정무나 군무업에 종사했고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클레오파트라+안토니우스 : 옥타비아누스+아그리파)에서 승리를 거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군으로 각지에 파견 나갔다.

복잡한 후계구도 속에 아그리파가 죽자 옥타비아누스는 말년에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삼았고, 옥타비나우스와 공동황제가 되었다.
옥타비아누스가 죽자 유언장에따라 유산의 상속자가 되었다.

즉, 단독 황제가 되었다.

 

티베리우스는 훌륭한 정치인이자 행정가 였지만 인기는 없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차경기와 검투사 경기를 중지시켜 재정낭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황제들이 인기를 위해서 만든 것들이 검투사 경기, 전차 경기였기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 곳 카프리 섬에 은거 하면서 근위대장을 통해서 로마를 통치해서 더욱 인기가 떨어졌다.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인기는 추락했지만 로마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서기 31년에 권력욕을 드러내던 근위대장을 처형하기도 했다.

티베리우스 재위시절 유대 속주에 있었던 예수가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다.

그는 서기 37년, 79살에 병에 걸려서 생을 마감했다.

 

(아래 티베리우스의 빌라 조비스의 복원도)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이 곳에서 좀 남쪽으로 이동하면 자연경관이 뛰어난 자연아치를 만난다.

폭 12미터, 높이 18미터

 

자연 아치에서 더 남쪽엔 더 기이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독특한 스타일의 건물 빌라 말라파르테(Malaparte)가 나온다.

32미터 절벽위에 새워진 아슬아슬한 집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모던하면서도 컨템퍼러리한 건물이다.

카프리 중심광장 피아제테에서 걸어서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있다. 파도가 잔잔한 날 배로 접근하면 훤씬 수월하다.

그러면 99계단을 오르면 되지만 사실상 짐까지 접근은 어렵다.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접근은 매우 제한적이다.

기이한 형태의 집은 사정이 있다. 

원래 집주인은 언론인이자 극작가, 단편소설가, 소설가이자 행정가였던 크루지와 말라파르테이다.

1940년대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에게 설계를 맞겼지만 마음에 들지 않자 카프리 석공과 함께 스스로 집을 만들었다.

말라파르테가 죽고나서 버려지다 시피 했지만 결국 한 재단에서 기증 되어서 관리하고 있다.

 

 

개인적인 파티를 한다면 모를까 아니면 문화 행사를 위할 때 접근이 가능하다.

 

카프리 중심광장 피아제테 바로 옆 후니쿨라 정거장 쪽으로 가면 유료 화장실이 있는데 카프리의 푸른 색을 즐길 수 있다.

 

 

 

서서히 어둠이 깔릴 때 즈음 카프리의 전경이 이렇다.

 

카프리 중심부에 가까운 산인 산 미카엘레. 262미터의 돌산이지만 집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제 배를 타고 소렌토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