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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고대 한류 이야기

수메르는 왜 우리문화와 같은 것이 많을까?

by 두루가이드 2019. 4. 3.

<수메르 문명은 왜 우리와 같은 것이 많을까?>


수메르 문명을 알던 모르던 우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인들이라면 한 번쯤 들춰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메소포타미아에 등장한 서양 문명의 시초라 알려진 수메르 문명은 놀라운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1. 수메르인들은 갑자기 나타났다.
2. 수메르인들은 상투를 했다. 
3. 수메르 언어로 머리를 상두라 했다. ( saĝdu=HEAD )
4. 수메르 사람들은 검은 머리를 했으며, 후두부가 평평하다.


5. 씨름을 즐겼. 씨름은 배달국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치우천황)이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최소 4,600년 전에 고안한 놀이문화이다. 그래서 중국에선 치우희라고 한다. 


(위: 약 4,400년 전 유물. 씨름하는 수메르인)


6. 수메르인들은 지게를 사용했다.



(위: 4,600년전 수메르 시대 도시국가 우루에서 발견된 '우르의 스텐다드'. 그림 속에 지게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지게는 우리와 연관된 종족들만 사용해 왔다. 중국에도 산악지역에 살았던 동이족이 사용해 왔다. 남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사용해 왔다. 아즈텍 시대의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7. 수메르인들은 태음력을 사용했다.
8. 60진법을 사용했다. 마치 60갑자를 연상하게 한다.
9. 신부가 될 여자의 집에 함을 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다.
10. 수메르에서 신을 뜻하는 단어 딘기르(Dingir)를 몽골 및 가자흐스탄, 터키등에서 사용하는 탱크리(Tengri)와 같다.
11. 신을 의미하는 글자가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이 만든 갑골문자와 매우 흡사하다.


(위: 신을 의미하는 쐐기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검정색 글씨로 발전했다. 갑골문자에서 하느님을 의미하는 글자(하느님 제)는 쐐기 문자와 유사하다.)

12. 그 무엇보다 수메르의 언어는 우리와 어순이 같은 교착어이다.
주어와 목적어 다음에 조사(토씨)가 오고 동사가 뒤에 오는 구조이다.
(교착어는 수메르어, 몽골, 한국, 일본, 멕시코 아즈텍인들이 사용했던 나와틀어, 남미 페루 볼리비아에 사는 케추아족의 케추아어, 아이마라 족의 아이마라 언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언어 등이 있다. 전부 우리와 연관이 있다.)
언어의 어순은 1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13. 수메르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수메르 언어는 우리말과 거의 같고 발음과 의미가 같은 단어만 해도 100가지나 된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은 수메르 언어를 자신들의 언어와 비교하면서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을 넘어 거의 같은 언어를 가진 우리는 아직까지 연구가 매우 미미한 상황이다. 

수메르인들은 셈족들과 섞여서 살면서 아카드 왕조 시절에 셈족 출신 사르곤이 지배를 하게 되면서 주도권이 셈족으로 넘어갔다. 셈족출신 아브라함도 우루가 고향이었다. 나중에 강을 따라 북쪽 하란까지 갔다가  유프라테스강을 거너서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1943BC) 이 때 강을 건넌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히브리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위: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버려진 셈족 아이 사르곤 왕의 전설은 이집트에 넘어가서 모세의 전설이 되었고, 페르시아의 위대한 키루스 대왕의 어린시절 전설이 되었고, 로마를 새웠다는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의 전설이 되었다.)

서양문명의 시작이 수메르이기 때문에 서양에선 수메르가 처음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알려져 왔다.

수메르에 관한 최고 권위자 영국의 크레이머는 수메르에서 시작된 서양역사상 최초를 39개나 열거했다.
수메르는 너무 갑작스럽게 만들어졌다.
주택도 2층집을 만들어서 살았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신단(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도시가 처음 새워질 때부터 당대 가장 앞선 선진국이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크레이머는 결정적으로 수메르인들은 동방에서 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선진문명이었다는 것은 선진국에서 온 이주민들이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있었다.

영국인들이 호주를 만들 때도 당시 영국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시작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도 유럽인들이 들어와서 만들었다.
포루투갈 왕실이 나폴레옹 때문에 피난가서 만든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도 선진문명이 들어와서 한 번에 만든 것들이다. 그 외에도 영국이 식민지 건설 때 미국으로 건너 갔을 때도 스페인이 멕시코로 갔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위: 지구라트가 만들어진 도시국가 우르의 상상도.)

 

(위: 약 4,600전 수메르 도시국가 우르 시기에 지구라트 )

이런 사실에도 우리나라 문화는 오래전 수메르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한국인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에겐 이미 수메르보다 더 일찍 문명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초가 되는 증거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이루었다는 증거물들이 많이 있다.
제주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약 1만 수백년전)  초기 토기가 나왔다.
강원도 고성 문암리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밭 유적(약 5,000년 전)이 남아 있다.
고성 문암리에서 세계 최초의 장신구인 8,000년전 옥 귀걸이가 나왔다.
고선 문암리에서 세계 최초에 해당하는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가 나왔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남아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충북 청원군 소로리 볍씨의 연도는 최소 15,000년 최대 17,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영국의 BBC는 세계에서 가장오래된 볍씨에 대한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다.(중국보다 최소 4천년 앞서 있다.)

기존에 농경문화는 전파는 약 7,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학회에서 소로리 볍씨가 발표되면서 신석기 시대를 연 농경문화의 발원지는 동아시아라는 것으로 인정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집단 고래사냥 암각회가 남아 있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7,000년 전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림엔 샤먼(왕+제사장)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다수 그려져 있다. 그리고 배를 만들어서 사용했던 흔적들이 나온다. 암각화에서 배가 그려진 것만이 아니라 그 실제 증거물로 경상남도 창령 비봉리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8,000년 전) 배가 발견 되었다.

 


(위: 353점의 그림이 그려진 반구대 암각화. 좌측은 주로 고래와 바다 동물들이 그려져 있고 우측은 주로 육상동물이 그려져 있다.)

전세계 고인돌 6만기 중에 4만기가 우리나라에 있고 고인돌 상판에 그려진 정확한 별자리 그림 중에서 4,900년 전에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별자리 그림이 되었다. 이전엔 3,200년전 메소포타미아에 바빌로니아에서 발견된 토지 경계비 별자리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 졌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인 것은 많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역사책에서 요동(東)요서(西) 요하(遼河)강 일대에서 발굴된 요하문명(발해만 문명)은 수메르 문명보다 훨씬 오래 되었다는 점이다. 수메르를 포함한 세계 4대문명이 가장 오래된 문명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요하문명은 약 9천년 전부터 발생한 문명이다.
8천년 전인 흥륭와 문명 때 이미 세계 최초의 장신구인 옥 귀걸이가 나올만큼 대단한 곳이었다.
옥은 채취도 어렵고 가공은 더 어렵다. 국가와 같은 조직이 없다면 만들고 유통하기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밭 유적이 발견된
고성 문암리에서도 같은 옥 귀걸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흥륭와는 집단 주거지가 발견되어고, 구멍뚫린 치아가 발견되면서 당시 의료 기술이 발달 했음을 알게 한다.


(위: 요하문명 또는 발해만문명이 발굴된 지역은 고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 백제가 있었던 곳으로 역대 우리민족이 터전이었다. 붉은 동그라미 지역이 홍산문화 시기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위: 요하문명의 시대별 구분. 홍산문화에서 확실하게 국가단위가 나왔다고 이야기 한다. 홍산문화에  해당하는 우리역사는 배달국에 해당한다. 하가점하층문화는 고조선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위: 수메르가 서양문명의 시작이라면 수메르보다 오래된 홍산문화는 동양문명의 시발점이다.)

수메르 초기문명(5,500년~)이 나올 시점보다 오래된 홍산문화 시기엔(6,500년~ 5,000년 전) 문명사회가 이루어 졌음을 이야기하는 유물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피라미드, 신전, 제단, 옥기, 무문토기 등이다. 
홍산문화 시기는 우리의 배달국에 해당한다. 독립군가에도 나오는 배달국. 우리를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면서 배달국에 대해선 관심들이 없다.
홍산문화 시기의 무덤 중에선 석기와 금속이 하나도 발견이 되지 않고 옥으로만 유물이 꽉 채원진 무덤도 여럿 발굴이 되었다. 그래서 홍산문화 시기를 동석병용기라고 이야기 한다. 학자들 중에선 석기-옥기-청동기 시대로 구분해야 된다는 의견이 많다.
 홍산문화 시기 옥기 중에선 상투를 틀었을 때 머리를 고정시키는 옥고가 나와서 이미 오래전부터 북두칠성을 경배하는 정신문화가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이런 상투문화는 오래전부터 발생을 했으며 수메르 문명쪽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요하문명에서 나온 것들은 중국으로 이어지지 않고 한반도로만 연결되어 전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실 수메르 문명보다 오랜된 곳은 가까운 이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란의 실크로드가 지나는 도시로 발전한 카샨(Kashan)에는 수메르 선대 문명으로 알려진 시알크(Sialk) 유적지가 있다. 이 지역에 처음 사람들이 들어온 때는 약 8,000~5,500년 전이다. 이 곳은 두개의 언덕이 있는데 북쪽은 약 7,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며 남쪽은 약 4,900년 전에 만들어 졌다. 두 곳이 다 수메르 우루 남무에 있는 지구라트 보다 오래되었다. 시알크 사람들이 수메르 문화를 만들었다면 날씨가 추워진 5,300년 전부터 이라크와 이란 사이에 있는 자그로스 산맥을 넘어 따뜻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이주해서 문명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위: 이란 카샨에 위치한 시알크 유적지.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프랑스 파리 루부르 박물관에 대부분 전시되어 있다.) 

결론은 수메르가 대단했긴 하지만 사실 우리는 더 대단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국수주의 어쩌고 하는 인간들 차~암 많더라. 세계는 자국 중심의 경제이익을 위해서 살고 있다. 사람들 생각과 행동의 작동원리는 집단 이기주의 또는 내집단 도덕률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보라.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보다 더하다. 자국 중심의 역사관으로 모든 것을 자신들 것으로 만드는 중이다. 중국 일본은 우리에 비하면 백배 이상 더 국수주의이고 더 이기주의이다.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 때문에 우리 고대사가 사라질 위기에 있는데  이런 주관적인 역사관을 가지는 것은 국수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팩트를 이야기 하는데 국수주의라니?

내집단 도덕률을 국가단위로 확대하면 상대방 국가를 공격해서 다 죽여도 우리의 이익을 위해선 살인은 잘한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해서 다 죽여도 이스라엘 입장에선 내집단의 이익을 위해선 옳은 행동이 되는 논리이다. 아마 일본도 같은 생각일 것이고 미국도 같은 비슷한 생각이 아닐까?
우리의 현대사회 속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대하는 태도가 집단 이기주의 또는 내집단 도덕률에 한해서 이루어 진다. 내집단이 아닌 외집단인 비정규직을 사람취급 안하듯이 대하는 태도가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내집단들만 생각하는 것은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 떼 같은 짐승들과 똑 같다.
정치하는 인간들이 국민을 위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을 하는 세상이듯이 집단 이기주의(내 집단 도덕률)가 인간 행동의 원리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을 서로 잘살게 하겠다는 홍익인가, 두레, 계, 향약, 사랑방 같은 것이 다 사라져 가는 이 때에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역사부터 찾아야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