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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인 (5천만 명이 걷는 세계 최대 종교행사)

by 두루가이드 2019. 8. 30.

<세계 최대 종교행사 아르바인(ARBAEEN)을 아십니까?>

(시아파 무슬림들의 최대 종교행사인 아르바인 때 이라크 카라발라에 있는 시아파 3대 이맘 후세인 영묘가 있는 모스크(멀리)와 그의 이복동생 아바스의 영묘가 있는 모스크를 찾은 인파)

41일간 5천만 명이 참여하는 행사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매년 이슬람력 1월에 해당하는 무하람 10일째가 되면 이라크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간다. 
그날부터 41일동안 전세계 40개국에서 5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의 행사에 참여한다.
세계 최대 종교행사 아르바인이다.


이런 종교 행사를 하는 이유를 알려면 이슬람 문화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발생한 이유를 알면 이해가 쉽다.
시아파알리를 따르는 자들로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이 지도자가 돼야 하는 분파다.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함마드의 씨앗을 중요시하는 파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수니파무함마드의 행적을 기록한 순나를 따르는 자들을 칭하지만 능력이 있는 옆집 수니도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까 혈통인 씨앗과 옆집 수니와의 대결이 이슬람의 역사이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갈등이다.

그런 수니와 시아의 갈등이 한없이 깊어져서 돌이킬 수 없게 된 사건이 바로 카르발라 전투이다.
카르발라는 현 이라크에 자리하고 있다.

갈등의 시작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로 지목할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사망 후 후계자(칼리프)는 선출로 뽑았는데 무함마드의 친구들이 3대까지 했다.
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 -
2대 칼리프 우마르(암살)-
3대 칼리프 우스만(암살)이 되었고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인 4대 칼리프 알리로 이어진다.
이렇게 4대까지는 정통 칼리프 시대라 한다.
무함마드의 집안의 혈통을 가진 알리는 가장 늦게 칼리프가 되었다.

그런데 우스만의 친척이었던 무아위야 1세는 알리가 자신의 집안 사람인 3대 칼리프 우스만을 암살했다고 여겼고 결국 보복으로 알리를 암살했다.  
무아위야 1세5대 칼리프가 되었고 가문의 이름으로 옴미아드(우마이아) 왕조를 세웠다.
옴미아드 왕조는 수도를 메디나에서 다마스쿠스로 옮기고 제국의 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서쪽으로 대서양까지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영역을 넓혔다.

(무함마드 이후 불과 100년 만에 대서양에서 인도국경까지 영역을 넓혔다.)


문제는 무아위야 1세가 죽으면서 선출로 뽑아야 되는 칼리프를 자신의 아들 야지드 1세 (Yazid I)에게 넘기고(지목하고) 죽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야지드 1세와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실질적으로 칼리프 경쟁을 했었야 했는데 사전에 만들어진 일종의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왕이 된 야지드는 알리의 아들인 후세인(후세인 이븐 알리 : 시아파 3대 이맘 Imam)에게 충성맹세를 요구했다. 후세인은 목숨을 내주더라도 충성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리고 곧바로 후세인은 일행(72명)을 데리고 메디나를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쿠파(kufah)로 현 이라크의 나자프(아래 지도 표기)이다.

(이슬람 중요 도시)

한참을 이동하고 카르발라에 다다랐을 때 야지드의 군대가 길을 가로막았다.
숫적으로 압도적인 야지드의 군대와 1시간의 전투 끝에 후세인의 일행은 몰살당했고 후세인도 목이 잘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후세인은 60곳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이 날은 서기 680년 무하람(이슬람력 1월) 10일째 되는 날이다.

(카르발라 전투 예상도. 불과 72명 밖에 안되는 후세인 일행을 야지드의 수천 군사가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이 사건은 이슬람에게 매우 중대한 일이었고 시아파 무슬림들에겐 가장 애통하고 수니파를 영원한 원수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수니파를 대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이란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이때부터다. 최근에도 미국이 두 나라 중에서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중동의 판세가 바뀌어 왔다. 

(카르발라 전투 이후로 수니파와 시아파는 절대 가까워 질 수 없는 원수가 되었다)
(매년 이슬람력으로 1월인 무하람 10일째 되는 날부터 41일간 긴 행사를 한다.)


그래서 매년 이날이 되면 전 세계 시아파 무슬림들은 무하람 10일째(아슈라) 행사를 한다. 
아슈라 때 이란과 이라크의 시아파 무슬림들은 카르발라 전투에 참여하지 못해서 후세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자해를 해서 피를 흘리며, 후세인의 관을 만들어서 기념 장례식을 치른다. 카르발라에서 기념 관을 만들어서 장례식 행사를 할 때 60군데 상처를 입은 후세인이 었기 때문에 화살 60개가 꽂힌 관을 들고 영묘로 들어간다. 

(이란의 지방도시 야즈드(Yazd)의 아슈라 때 기념 장례 행렬. 후세인의 관을 들고 후세인을 왜치며 자신의 머리를 때리면서 광장을 돈다.)
(무슬림들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후세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노래는 한다.)


그리고 아슈라 다음날부터 40일 동안을 아르바인(Arbaeen: 40이라는 의미)이라 하는데 이때 세계 최대 평화 순례를 한다. 이란 사람들은 휴가를 내서 이라크로 건너가고, 이라크 시아파 무슬림도 다 집에서 나와 이 행사에 참여한다. 
순례객 대부분 나자프(옛 이름 쿠파 kufah)에서 카르발라까지 약 76km를 걷는다.
쿠파(나자프)는 후세인 일행들이 당초 최종 목적지였다. 메디나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서 쿠파에 당도하기 직전 카르발라에서 몰살당했다.
그래서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나자프(쿠파)에서 카르발라까지 걷는다.

더 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이라크 남쪽에 자리한 바스라에서 카르발라까지 약 510km를 걷는다.

(나자프의 옛 이름은 '쿠파'로 후세인 일행이 피난 하려던 도시이다. 나지프에서 카르발라까지 순례를 한다. 먼 거리 순례는 바르라에서 카르발라까지 510km나 걷는다.) 
(수십 킬로미터 길이로 이어진 순례 행렬)
(북을 치고 노래를 하면서 힘하게 걷는 젊은이들.)
(카르발라 전투 상황을 재현하기 위한 가장 행렬.)
(지역을 상징하는 깃발을 따라 함께 이동한다)
(걷기 때문에 다리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종의 응급처방소-의사들이 자발적 봉사참여로 이루어 진다. 이런 장소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매년 아르바인(40일)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2018년엔 무려 5천만(50,000,000) 명 이상이 참여했다.  전 세계 40개국에서 참여하는 순례객들 중에선 시아파, 수니파, 기독교인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순례(하지 Hajj)는 2백만이 조금 넘는 정도이다.)

(순례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음식들)
(순례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음식)
(순례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음식들)


더 놀라운 것은 순례객들을 위한 음식과 물, 피로 푸는 마사지, 구두닦이, 혈액공급, 쉼터, 응급의사 등  모든 것이 자발적인 기부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많이 기부를 해서 수천만 명이 참여해도 음식이 모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이슬람은 공동체 문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2019년 아르바인은 10월 9일부터 41일간 이루어진다. 10월 9일은 국가 공휴일이다.>

(아르바인 때 걸어서 카르발라에 도착해서 모인 순례객들)
(아르바인 행사는 40일간 밤에도 이루어 진다.)
(후세인 영묘가 있는 모스크를 찾은 순례객들-장거리를 추위와 피곤함을 이기면서 왔지만 손흔들고 노래하는 힘들이 남아 있다.)
(후세인 영묘가 있는 모스크)

5천만 명이나 참여하는 아르바인을 보면 대단히 소모적인 행사라고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매우 놀랍다. 공동체 의식이 저 정도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youtube에서 Arbaeen walk로 검색하면 많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집단이기주의가 극도로 팽창되어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선 종교와 정치를 떠나서 저와 비슷한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일본이 선전포고를 해서 경제 전쟁을 하고 있는데도 이모양이니 말이다. 공동체 문화는 거의 사라져 가고 집단이기주의가 사람들의 행동의 지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미사일과 대포를 쏴대는 전쟁과 같은 큰 환란이 일어나도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이미 정치인들의 뇌가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홍익인간, 두례, 계, 향약 같은 공동체 문화가 회복되는 날이 오기나 할까? 일본 같은 나라가 사라져 주고, 지구 상의 인구 대부분이 소멸된 후에나 되지 않을까? 사람이 없으니 돈도 필요 없게 되어서 사는데 급급하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