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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이집트

<이집트는 '람세스 2세'다>

by 두루가이드 2019. 9. 3.

(카이로 남쪽 멤피스 박물관에 있는 거대한 람세스 2세의 미완성 동상. 사암으로 만들었고 길이는 10미터. )

람세스 대제 (Ramesses the Great)라는 칭호는 그리스 인들이 붙여주었다. 
고대 이집트어 Rameses(또는 Ramses)는 "태양신 라(Ra)가 그를 낳아주었다."는 의미다.

그의 후손들과 후대 이집트 사람들은 위대한 조상(Great Ancestor)이라고 부른다. 
람세스 2세는 스스로 전쟁영웅, 정복자, 평화 수호자, 신과 이집트인의 중개자라고 했다.
그만큼 이집트에서 가장 많이 듣고, 많이 보는 역사적인 인물은 단연 람세스 2세(Ramesses II)이다.

그는 왜 그리 유명할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오래 살고 흔적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위대한 개발자(건설자) 또는 전쟁영웅이라는 점에서 '람세스 2세'는 원조 위대한 인물에 가깝다.

1. 람세스 2세는 나일강 삼각주에서부터 누비안(아스완 남쪽 지역)의 모든 도시에 신전, 궁전, 조각을 만들었다. 이미 완성이 되어 있거나 미완성인 신전에 자신의 조각상을 세웠고 자신을 치적을 이야기하는 기록을 남겼다. 

(람세스가 이집트 전역에 만든 궁전, 신전, 조각상, 무덤)


나일강 삼각주에 피-람세스(PI-Ramsses)라는 새로운 수도를 만들었다.  테베(룩소)만큼 무척 거대하고 화려했다. 이집트의 관문에 위치해 있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서라도 장난 아니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간신히 흔적만 남아 있다.


(잊혀진 도시 Pi-Ramsses를 복원한 그림-여러 섬위에 만들었다.)

 (성서의 엑소더스 이야기에  Pi-Ramsses가 등장한다. 히브리 노예들이 저장용 도시 두 곳을 만들었다고 나온다. 그중 한 곳이 이곳 피람세스이다. 그 사건이 람세스 2세 때 일이었다고 하지만 최근에 거의 모든 학자들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히브리 노예가 만들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고 도시는 이집트 전문 기술자들이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피람세스는 잉여물을 저장하는 도시라는 근거 또한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거론한 방대하면서 꼼꼼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집트 어떤 시대를 둘러보아도 대규모 히브리인들 공동체가 있다는 증거가 없고, 히브리 노예가 있다거나 히브리인 엑소더스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엑소더스는 이집트 역사와는 무관한 신화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한다. 엑소더스를 쓴 히브리어 서기관이 성서에서 피람세스를 선정한 것은 당시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서의 엑소더스의 기록은 피람세스를 만든 이집트 시민들과 역사적으로 위대한 왕의 업적을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불행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일강 삼각주에 있었던 새로운 수도 피람세스 Pi-Ramses. 아버지 세티1세의 사냥터였다. ) 


아부심벨 신전, 아비도스 신전, 룩소르 신전, 람세스 신전(Ramesseum)을 완성했고 카르낙 신전을 계속해서 지었다. 이런 점에서 이전의 왕들과 크게 비교가 된다. (카르낙 신전은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신전으로 이집트 12 왕조 때 시작해서 고대 이집트 하이라이트 시기였던 이집트 신왕조 시대 때 가장 크게 확장했으며 그리스가 이집트를 지배하던 프톨레미 왕조 시절에도 공사는 계속되었다.)

룩소에 있는 람세스신전(람세움 Ramesseum)
(기둥이 남아있는 람세움의 모습)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에 있는 람세스의 흉상은 람세스신전에 세워졌었던 잘려진 동상의 일부분이다.)
(람세움과 나일강)
(고대 이집트 테베(룩소) 세워진 신전들-아래쪽 좌측은 룩소 신전이며 우측은 카르낙 신전이다. 강 건너편 중간은 람세스 신전인 람세움이며, 오른편 산 밑에 하쳅수트 장제전 등이 있다.)


2. 전쟁을 좋아했던 왕으로 많은 전쟁을 했으며, 히타이트와의 카데쉬 전쟁에서 역사상 최초의 평화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 대해서 모든 건축물에 기록을 남기게 했다. 평화를 위해서 히타이트 왕의 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기록도 자세하게 남겼다.

(카데쉬 전투-아부심벨 신전 내부 벽면에 새긴  카데쉬에서 히트이트와 전투 장면도)


3. 67년간 통치를 했고 90살 때까지 살았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오랜 통치기간에 속한다. 이 때문에 왕이 된 지 30년이 되었을 때 이집트 전통에 따라 30주년(Jubilee) 축제를 했다. 이 축제 이름을 Sed festival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통치를 한 왕이 극히 드문 이집트에서 축제의 의미는 왕의 힘에 대한 존경과 그 힘을 새롭게 회복하고자 함이었다.  이후 람세스는 3년마다 Sed festival을 했다. 

4. 100명의 자녀를 두었다. 

5. 람세스 2세 이후 람세스라는 이름을 쓴 파라오가 9명이나 나왔다.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 하이라이트 시기인 신왕국(New Kingdom) 19왕조 때 인물이다. 10,000여 개의 파피루스 기록과 신전 벽에 새겨진 그의 기록들은 과장된 면이 많다. 신처럼 되고자 했기 때문에 신과 같은 행동을 하고자 호화롭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가 남긴 것들은 지금 보아도 눈이 휘둥그래 진다. 

그가 만든 가장 놀라운 작품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살아있을 때 만든 아부심벨 신전이다. 이집트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마음먹고 가야 만날 수 있다. 이집트 다섯 번째 방문은 마님과 함께 개인적으로 갔었다. 2017년 12월이었다. 꼭 하고 싶었던 것은 아부심벨에서 1박 2일 머무는 것이었다. 그때 신전을 3차례나 갔다.
그러니까 도착하자마자 낮에 한 번, 저녁에 '빛과 소리의 쇼'로 두 번, 다음날 아침 일출 때 세 번이다. 물론 들어갈 때마다 입장료를 내야 된다. 

(이집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아부심벨 신전-돌을 깎고 돌을 파고 들어가서 만든 신전)

아스완에서 240km(도로로 이동했을 때 300km) 떨어진 아부심벨은 인구 2,600명가량이 사는 작은 도시이다. 주로 농업과 관광업으로 먹고 산다. 수단 국경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배에 화물차를 싣고 호수를 건넌 후 다시 육로로 수단으로 가기도 한다. 
아부심벨까지는 아스완에서 차량으로 사막을 달려서 무료하게 갈 수도 있지만 이번은 항공기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이집트 항공은 시간 안 지키기로 유명하다.
한두 시간 딜레이는 기본이고 갑자기 항공이 사라지기도 한다.  매우 비정상적인 항공이기 때문에 곤란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부심벨로 가기 위해서 항공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항공사 직원들이 할일이 별로 없는 아스완 공항에서 체크인 하기전)

항공사 직원들이 할 일 없는 곳이 아스완 공항이다. 띄엄띄엄 오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김포-제주 구간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관광지라면 아스완-아부심벨은 세계에서 가장 적은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곳에 속한다. 하루 두 번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항공기를 기다리고 뜨고 내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육로로 이동하는 시간이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차량으로 아부심벨까지 가는 피곤함이 싫어서  항공기를 기다렸다. 이 날도 정상적으로 항공기가 뜨지 않았다. 한 시간 기다렸다. 

(산이 없는 곳에 만든 공항이라 주변은 사막만 보인다)
(항공기 속에서 흐린 창밖으로 멋진 경관이 펼쳐졌다. 창문 좀 닦지~)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은 사막 이외에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나 항공기로 이동하는 40분 동안은 기막힌 경관을 보게 된다. 사막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아마 인상파 화가들이 사막을 봤다면 그 매력이 빠져서 아침-낮-저녁-밤의 풍경을 많이 그렸을 듯하다. 시시각각 태양이 사막을 다양한 색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아스완 댐을 만들고 나서 나일강이 나세르Nasser 호수가 되어 버렸지만 경관은 멋지다.)
(내리면서 보는 경관은 호수에 빠진 사막이다.)

공항은 말도 안 되게 작다. 승용차 흥정은 흥미가 없어서 버스를 이용해서 숙소까지 이동했다. 걸어서 다니려고 아부심벨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잡았다. 

(숙소에서 본 풍경)
(동네도 조용하고 숙소 자체가 아담한 곳이라 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하룻밤 눈 붙이는 정도이지만 정감이 가는 곳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다시 호수 쪽으로 7-8분 정도 이동하면 가면 인공산을 조성하고 수몰지역에서 건져 올린 두 개의 바위 신전을 만난다. 
큰 신전은 람세스 2세 자신을 위한 것이고 100미터 떨어진 곳에 조성된 작은 신전은 람세스의 많은 부인 중 가장 사랑했던 네페르타리(Nefertari)를 위해 만들었다.

신전은 기원전 1264년에 만들기 시작해서 20년이 지난 BCE 1244년에 완성했다. 만들 당시 신전 이름은 '아몬(Amun) 신이 사랑한 람세스 신전'이었다. 그러니까 람세스 2세 자신의 권력과 위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만들었다.

 

(신전입구를 장식한 4개의 동상은 전부 람세스 2세이다. 바위를 깎아서 만든 동산의 높이는 20미터나 된다. )

표면상 신전은  테베(룩소)의 주신 아몬 Amun, 태양신 라 Ra, 하이집트의 수도 멤피스의 주신이자 창조신 프타 Ptah, 에게 봉헌한 신전이다.
1964년 위 신전을 올릴 때 유네스코 아래서 다국적 전문가들이 모였다. 고고학자, 기술자, 숙련된 중장비 사업자 등이었다. 당시에 약 4천만 달러가 들었는데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3억 달러(3천6백억 원)가 넘는다.

(올리기 전 모래에 파묻힌 아부심벨 신전)
(조각 조각 잘려진 상태에서 끌어올려 조립하는 모습)


신전은 조각조각 잘려서 끌어올렸는데 최대 30톤 평균 20톤으로 잘라서 옮겼다.
그렇게 잘린 신전은 65미터 위로 올려졌고 강에서부터 200미터 떨어진 자리에 돔 모양의 인공산을 만들어서 재결합했다. 신전 정면은 높이가 33미터이고 폭은 38미터이다. 람세스 동상 중 훼손된 두 번째 것은 수몰지역에 있을 때부터 지진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다리 사이에 있는 조각들은 부인 두 명, 어머니, 처음에 낳은 아들 두 명, 처음에 낳은 딸 6명들이다.
최상부에는 개코원숭이 22마리를 조각했다. 팔을 벌리고 태양을 숭배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집트와 히타이트와의 평화조약을 뜻하는 람세스와 하투실리 3세의 딸과의 결혼을 기록한 비석이 있다.

(아부심벨 신전 입구 벽면을 배경으로)

내부는 사진 촬영이 절대 금지다. 귀가 밝은 관리인들이 사진 찍는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지우라고 한다. 동굴처럼 암반을 파서 만들어진 신전이기 때문에 익숙한 사람은 사진 찍는 소리를 금방 알아차린다. 그리고 관리인이 돌아다녀서 사진 찍기란 어렵다. 흥정을 좋아하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안 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사진 찍는데 얼마?'냐고 물었다. 그리고 다른 관광객의 눈치를 못 체게 내부를 찍었다.

(오시리스 조각상들이 기둥과 함께 서있는 성소 앞 홀)

신전의 내부 공간은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성소로 갈수록 공간이 줄어든다. 이는 대부분의 고대 이집트 신전 구조를 따르고 있다. 

(오시리스가 조각된 8개의 기둥이 있는 성소 앞 방. 깊이가 18미터, 폭이 16.7 미터이다.)

좌측 오시리스 상은 상부 왕관을 상징하는 흰 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상이집트와 하 이집트가  합쳐진 이중관을 쓰고 있다. 이집트 파라오는 살아서 호루스가 되고 죽어서는 죽은 이들이 가는 명계를 관장하는 오시리스가 된다. 람세스는 자신이 결국 오시리스와 깊은 연관이 있는 파라오임을 강조하고 있다.

(시리아의 오론테스 강이 흐르는 카데쉬 전투 장면으로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기둥의 홀 벽면에는 전쟁하는 장면이 많은데 카데쉬 전투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가장 위엄 있게 새겼다. 

(카데쉬 전투장면)

 

반대편 벽면엔 이집트인들이 리비아와 누비아에서의 승리하는 장면을 그렸다.

(시리아의 카데쉬에서 히타이트와의 전투 장면)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했던 투트모세 3세와 아버지 세티 1세와 같이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왕이 되고자 했다. 투트모세 3세가 이룩했던 영토를 차지해서 이집트 전성기를 재현하고자 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직접 군대를 끌고 시리아를 정복하고 히타이트와 전쟁을 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4개의 기둥이 있는 방)

8개의 기둥이 있는 방을 지나면 신들을 아름답게 묘사한 기둥 4개가 있는 방이 나온다.  

(아몬신과 라-호라키티 신의 신성한 배와 함께 람세스와 네페르타리가 그려진 장면)

벽면의 그림들은 상징이 가득하다. 

아몬신의 남근 묘사가 도드라져있다. 이집트 신전을 다니다 보면 이런 그림을 종종 본다. 그 앞에 재물이라고 여겨지는 물건들이 쌓여 있다. 그리고 이 방에선 가로로 연결된 방으로 통하게 된다. 

좁은 방 역시 삼각형 구조로 되어 있어서 내부로 갈수록 좁아진다. 비교적 천장이 낮다. 벽화는 신들에게 봉헌하는 장면들이다. 

아부심벨 신전 입구에서부터 직선으로 뻗은 마지막 공간이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신들을 모신 가장 중요한 성소다. 

(좌측부터 멤피스의 주신이자 창조신 프타,  테베의 주신 아몬-라, 신격화된 람세스 2세,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호라키티가 앉아 있다.)

신전의 깊이는 60미터이며 신전 중앙 안쪽 성소에는 좌측부터 멤피스의 주신이자 창조신 프타, 상이집트의 수도 테베(룩소)의 주신 아몬-라, 신격화된 람세스 2세, 헬리오 폴리스의 태양신 라-호라키티가 앉아 있다. 매년 2월 22일(또는 21일)과 10월 22일(또는 21일) 태양이 뜨면서 프타를 제외한 아몬신과 람세스 그리고 라-호라키의 얼굴을 비춘다. 창조신 프타는 지하세계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해가 비추지 않는 상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2월 22일과 10월 22일에 해가 신들을 비추는 이유가 뭘까?
그 날짜는 아마도 람세스의 태어난 날과 람세스가 왕위에 오른 날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파라오들의 통치 30년을 기념하는 주빌리 축제와 같은 위대한 사건과 더 연관이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태양처럼 떠오르는 항성 시리우스(천랑성)의 주기와 고고학자들의 발견한 비문을 근거로 계산한 결과 10월 22일이 주빌리 축제 날이었다는 것이다. 파라오는 시리우스의 에너지에 의해 다시 강력해지고 람세스 대제는 아몬-라와 라-호라키티 다음으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난 3천 년 동안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으로 인해서 북회귀선의 조금씩 변화가 생겼고 신전을 재배치해서 생기는 오차까지 감안했을 때 현재 태양이 정열이 신전을 만들 당시의 설정과 다를 수 있다.  

(작은 신전. 사랑의 여신 하토르와 람세스의 정실부인 네페르타리를 위해 만들었다.)

람세스 2세가 가장 사랑했던 부인 네페르타리(Nefertari)에게 봉헌한 작은 신전은 큰 신전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다. 고대 이집트 역사상 여왕에게 봉헌한 두 번째 신전이다. 첫 번째는 유일신으로 태양신 아톤을 숭배했던 아크나톤의 부인 네페르티티(Nefertiti)를 위한 신전이 있었다. 
정면은 입구를 가운데 두고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서 있는 조각상들은 대략 10미터 정도이다. 전부 왼발이 앞으로 나와 있는 형태로 이는 파라오와 왕비를 의미한다. 입구 바로 좌측은 상 이집트 왕관을 쓰고 있고 바로 우측은 상하 이집트 이중관을 쓰고 있으며 각각 여왕이 옆에 자리하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람세스 2세의 동상과 그의 부인 동상의 크기이다. 이집트 역사상 왕의 동상이 그의 부인의 동상과 같은 크기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통은 왕이 앉아 있고 부인은 왕의 무릎보다 작은 크기로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신전에선 왕보다 왕비가 더 큰 키로 만들어졌다. 
람세스는 집권 24년째 되는 해에 네페르타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래서 부인이 크게 만들어 달라고 했을 법하다. 작은 크기의 동상들은 자녀들이다. 
내부의 기둥 방엔 6개의 기둥이 지지하고 있다. 

(작은 아부심벨 신전 내부-6개이 기둥은 하토르 여신 얼굴들이 조각되어있다.)

벽화는 네페르타리가 하토르 여신에게 바쳐진 악기 시스트 룸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호루스, 크눔(Khnum), 콘수(Khonsu), 토트, 하토르 여신 , 이시스 여신, 마트(Maat) 여신, 무트(Mut) 여신이 등장한다.

(아부심벨의 빛과 소리의 쇼)

밤이 되어서 빛과 소리의 쇼를 보러 갔다. 두 차례에 걸쳐서 하는데 놀랍게도 일본어를 먼저 하고 나중에 영어로 진행을 했다. 밤이 되어서 알게 되었지만 일본인들이 이 곳을 마치 자기들 소유인 것처럼 아부심벨을 점령하고 있었다. 같은 항공기 내에서 일본인들이 좀 보이더니 그게 여기에 오려고 했던 거였다.

벽면을 스크린 삼아서 영상이 돌아간다. 주로 이집트 역사와 람세스 2세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참 효과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왜 경복궁이 되었던지 어디가 되었던지 벽면을 이용해서 빛과 소리의 쇼를 하지 못할까 싶었다. 

빛과 소리의 쇼가 끝나니 조명이 환해졌다. 다들 기념사진 찍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다시 왔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해보다 조명이 더 멋있다. 

종요한 아침을 기대했다가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놀랬다. 매년 2월 22일 또는 10월 22일에 찾아오면 해가 성소에 정면으로 들어가서 람세스 2세와 아몬-라의 얼굴을 비추기 때문에 다들 그거 보려고 몰려온다. 

해가 뜬다. 날씨가 맑은데도 해가 흐리게 보여서 사진 찍기는 좋았다. 

(아부심벨 일출을 감상하는 사람들-파노라마 사진이라 우측사람들이 해를 등진 것 처럼 보인다.)

나세르 호수 크루즈가 슬그머니 나타나서 아부심벨 신전을 감상하며 지나간다. 아부심벨에선 저 배를 타서 자고 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