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Arle)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아를.
300여점을 그렸지만 한점도 없는 아를.
그러나 그림의 모델이 남아 있는 아를이다.
다리, 정신병원, 별밤cafe테라스, 론강
랑그루아(Pont de Langlois) 다리는 과거엔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딱 두 개 남았다.
론강이 흐르는 곳에 운하를 만들었기 때문에 다리가 많았다.
아를은 론강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A: 마르세이유 - B:엑상 프로방스 - C: 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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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도시로서 로마의 흔적이 아주 많다.
극장은 엄청나게 웅장했었고 기둥이 수 십개 였지만
기둥 두 개만 남았다.
그래서 두 과부라고 부른다.
바로 옆엔 원형 경기장이 기다린다.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사용했었다.
타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건물은 많은 복원을 거쳐서
그나마 지금까지 왔다.
안으로 들어가면
작지 않은 곳이 었음을 알 수 있다.
3층으로 되어 있어서 출입구가 다양하다.
길게 타원으로 이루어진 퉁로와 아치로 이어진 출입구.
현재 투우장으로사용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스페인 처럼 잔인하게
소를 죽이지 않고 소 머리에 달린 꽃을
투우사가 집으면 이기는 경기를 한다.
(스페인 경기장의 투우는 명백히 殺牛다)
그리 크지 않았던 도시여서 로마의 원형경기장, 극장, 포럼, 목욕장들이 가까이 모여 있었다.
포럼이 있던 자리는 빈센트 반고흐의 별밤cafe 테라스가 있다.
지금은 cafe van gogh라고 부른다
하필 빈센트는 이 cafe를 그려서 장사 잘되게 만들었나 싶지만
많은 이들은 별밤cafe 테라스가 보이는 주변에 더 많이 찾는다.
그래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빈센트는 색을 과도하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의 얼굴 색도 너무 많은 색을 사용했고
그 이유중에 하나는
이 싸구려술 압생트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압생트는 과거에 밀주 였다.
예전엔 잘못 만든 술로 눈이 멀게하고 귀를 어둡게 했다.
지금은 합법적으로 생산하는 독주이다.
술 먹고 거리에 앉아서 바닥을 노랗게 그려서
당시 별밤 cafe 그릴 때 술이 취햇을 거라 말한다.
바로 앞이 포럼의 흔적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고흐 다음으로 유명한 미스트랄이라는 분이다.
프로방스의 전통을 살린 분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예전에 프랑스 사람의 80%는 프로방스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프로방스 사람들 일부만 사용한다.
미스트랄은 프로방스의 의복과 언어를 살려냈고
프로방스 어로 글을 써서 노벨상을 받았다.
프로방스엔 1년에 300일 가량 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 이름이 바로 이 작가의 이름 미스트랄이다.
시청사 근처에 고흐가 머물렀던 요양원이 있다.
14개월 아를에 있으면서 요양원 신세도 좀 졌다.
스스로 요양을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시 아를 요양원에선 두 점의 그림을 그렸다.
나머지는 생레미 드 프로방스 요양원에서 그렸는데
붗꽃, 해바라기, 자화상등이 있다.
고흐 당시 배경의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시키고 있다.
한쪽에선 고흐의 그림 엽서와 복사본들을 판해 한다.
세상에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 중 두 점이 아래 엽서로 팔고 있다.
중심 광장이다.
시청(Hotel de Ville)이 뒷면에 있고 오벨리스크가 있다.
오벨리스크 밑에선 물이 흘러 나왔었다.
수로교를 이용하지 않아서 지금은 물이 없다.
시청 내부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천장을 만난다.
중심에 기중 하나 없이 기하학적으로 만든 볼트가
매우 놀랍다. 키 역할을 하는 'T'형 돌이 가운데 있는데
사실 아슬아슬해보인다.
비슷한 모습은 많이 봐 왔지만 아직도 무너지지 않으니 말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로 가는 순례로 상에 위치한 곳이어서
시청광장 한쪽에 서있는 이 성당은 매우 각별하다.
순례객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기도 해서 숙소를 구할 수도 있는 곳이다.
이 것은 맞은 편에 있는 건물인데 과거 성당이었다.
현재는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를 뿐 아니라 유럽엔 이런 용도의 건물들이 다소 있다.
혹 사진을 좋아 한다면,
아를엔 사진 그랑제꼴(과기대 같은)이 있는 지역이어서 사진 전시가 자주 이루어 진다.
인물 사진들이 주를 이루는데 확실히 작품성이 있다.
프랑스에 두 개의 사진 전문 그랑제꼴이 있다.
그리고 행운의 상징 매미.
다음편-빈센트 반 고흐는 왜 아를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