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빈센트 반 고흐는 왜 프로방스로 갔을까?

두루가이드 2019. 5. 3. 15:21

 

레보 드 프로방스 빛의 채석장에서 2020년 12월 5일까지 고흐의 작품이 음악 속에서 춤을 춘다. 

 

(위: 레보 드 프로방스 빛의 채석장. 빈센트 반 고흐 그림들이 주제인 '별이 빛나는 밤' 홍보 영상)

(위: 고흐가 주제인 빛의 채석장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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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는 프랑스 사람에게는 물론 유럽인들이 은퇴해서 살기를 원하는 장소이다.
유럽에서 보기드물게 따뜻한 날씨로 유명하며 푸른 지중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이어지고, 조용하고 깨끗하다. 그런 환경 속에 친절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유기농 농업지역 이어서 건강한 삶을 사는 곳이기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또한 프로방스에는 가는 곳마다 로마의 유적이 있고 중세 고색창연한 모습들이 잘 남아 있어 매력적인 곳이다. 해안 가까이와 산속에 자리한 작은 중세풍의 마을의 골목을 걷고 있으면 "참 잘 왔다."라는 말이 나오며 프로방스에 대한 긴 여운이 남는다.

 

(위: 니스에서 모나코 가는 중간에 자리한 돌산 꼭대기 마을 에즈(Eze).)
(위: 화가들의 머물렀던 '생폴 드 방스' 샤갈이 살다가 묻혔다. 골목은 온통 예술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
(위: 프로방스의 상징 중 하나인 발랑솔 고지대의 라벤다. 7월에 보라색 물결을 볼 수 있다. )
(위: 니스에서 모나코 가는 중간에 유럽의 부자들이 산다는 아름다운 해안. )
(위: 바티칸 다음으로 작은 모나코 전경.)

 

암반 같이 거대한 돌 언덕에 만들어진 이색적인 마을 '레보 드 프로방스 '(프로방스에 있으며 보크사이트를 처음 생산한 곳)에는 대리석을 제거한 채석장 벽면을 이용한 영상쇼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빛의 채석장(카리에헤 데 뤼미에헤: Carrières de Lumières) 귀에 익숙한 음악과 함께 고흐 , 모네 , 클림트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 영상쇼를 보면 앞서가는 프랑스 문화에 감탄하게 한다.


니스 인근 '생폴 드 방스 '(방스에 있는 생폴 )는 중세의 성벽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하나밖에 없는 미술작품들을 판매하는 아기자기한 골목을 가진 마을이다 . 바다에서부터 솟아오른 산 위의 작은 마을 에즈는 지중해의 전망대라 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 니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국가 모나코로 가는 도로는 푸른 지중해와 함께 사는 마을을 위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기억이 오래 남는다 . 그레이스 켈리의 흔적으로 채워진 모나코는 지중해의 매력을 가장 잘 풍기는 장소가 되어서 발길이 닫는 곳 마다 멈춰서서 사진을 찍게 한다 .


문화의 도시 니스를 만든 사람들은 영국인들이다 . 따뜻한 기후 때문에 매년 겨울 니스를 찾았던 빅토리아 여왕 덕에 영국인들은 니스의 해변을 따라 대로를 만들었으며 궁전같은 집들을 짖고 살았다 . 빅토리아 여왕을 만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 , 러시아 황제까지 찾다 보니 19 세기에 이미 니스는 제국의 도시가 되었다 . 바둑판 같은 시내 중심부에 있는 멋들어진 건물들과 니스의 시미에 언덕에 있는 넓은 대저택들은 19 세기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


론 강을 따라 생산하는 프랑스 와인중 아비뇽 교황청에서 마셨다는 "샤또뇌프 드 파프 ", "지공다스 "와 같이 매력적인 와인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식사 사간이 즐겁다 . 어디 그뿐인가, 6 월 중순 이후부터 7 월 말까지 남프랑스 고원지대엔 보라색 라벤다의 물결치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 해발 900 미터에 자리하고 있는 발랑솔 지역이 가장 대표적이며 그 인근에 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은 마을 '무스띠에 상트 마히 '도 빼 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프로방스는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화가들의 산실이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을 찾게 하는 1 등 공신이다 .
로마의 도시 아를과 중세의 도시 생레미 드 프로방스에서 300 점 이상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 ,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고 삶을 마감한 근대 화가의 아버지 세잔느 , 지중해와 그리스 신화에 푹 빠져서 창작 활동을 했던 앙티브의 피카소 , 러시아에서 태어나 생폴 드 방스에 살면서 그림을 그렸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한 마크 샤갈 , 붓을 들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병에 걸린 환자였지만 가위로 종이를 오려서 작품을 만든 강렬한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 ,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 마을 카뉴 쉬르 메르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르느와르 등이 대표적이다.프로방스에는 그런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들을 찾아 볼 수 있다 .


니스에 있는 샤갈 미술관에는 성서의 내용을 재미있게 그린 작품들과 샤갈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한 작품들이 걸려 있다 . 니스 시미에 언덕 로마의 유적지에 있는 마티스의 미술관에선 색종이 작품등 많은 작품을 만난다 . 니스 가까이 있는 방스에 가면 마티스가 아픈 몸을 이끌고 만든 로사리오 성당과 그 내부를 장식한 벽화와 스테인드 글라스를 만나게 된다 . 이 작품을 보려 많은 사람들이 방스를 방문한다 .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에선 도자기 , 유화를 비롯한 스케치와 당시 피카소의 일상을 담을 수 많은 사진을 만 날 수 있다 .
니스 인근과 달리 프로방스 서쪽에 자리한 아를에선 고흐의 그림이 한 점도 없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고흐의 흔적을 따라 다니는 세계인들로 넘쳐난다 . 고흐의 작품속 장소들이 생생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별의 빛나는 밤 >을 그렸던 론 강, <밤의 카페 테라스>가 있는 아를 중심 , <랑그루아 다리>, <노란 집>들은 아를에서 만나게 된다 . 무엇보다 귀를 자른 후 스스로 찾아 간 생레미드 프로방스의 생폴 드 무솔 정신병원에 있을 때가 고흐의 하이라이트 작품들을 그렸다.

 

 

(위: 아를 중심 포럼광장에 자리한 '밤의 테라스' 그림)
(생 레미 드 프로방스. 생폴 드 무솔 정신병원. 귀를 자른 고흐에게 아를 사람들이 비난이 많아지자 스스로 찾아간 병원. 정원엔 고흐가 그린 그림 복사본들이 걸려 있고 양귀비와 붓꽃 그리고 라벤다가 피는 곳이다.)

그런데 고흐는 왜 프로방스로 갔을까?


지난 달(20194)에 갔었던 빛의 채석장에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목은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30분간 고흐의 그림들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보여주는 쇼이다. 지금까지 총 일곱 번 방문한 채석장에서 클림트, 샤갈, 미켈란젤로-네오나르도 다빈치, 보쉬-아르침볼도-브뤼겔을 봤지만 이번 고흐전은 감회가 달랐다. 고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에서 고흐의 작품들이기도 했고 인상파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제페니즘(15세기~1900년대 초 일본 문화)를 함께 보여줬기 때문이다.


화가로서 고흐의 인생은 딱 10 년간이었다.
성자 같았던 순수한 인생 고흐의 삶은 색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벨기에 탄광촌에서 생활하면서 힘겨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렸던 고흐의 그림 색은 검정에 가까웠다 .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서 파리에 갔을 때 인상주의를 알게 되었고 그림 색이 밝아 졌다 .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자포니즘으로 알려진 일본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파리에 있는 화가들처럼 일본 판화를 수집했고 소위 우끼요에 (떠도는 세상의 그림 )라고 부르는 일본 풍경화를 보고 똑 같이 그리곤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의 인물화 작품들 속에서 후지산과 기모노 입은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유럽을 강타했던 자포니즘은 일본 예술을 이야기하며 우끼요에는 강렬하고 밝은 색채의 그림으로 유럽의 화가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 르느와르 , 고흐 , 모네는 물론 오스트리아 구스타프 클림트도 우끼요에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렸다 . 파리에 간 고흐는 백작의 아들이었던 로트레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부자였지만 정착 못한 로트레크와 벨기에 화랑에서 쫓겨난 고흐는 동병상련의 느꼈고 고흐가 파리에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 고흐는 "일본 예술이여 영원하라 ."라고 할 만큼 매료 되어 있었다.

 

(위: 고흐는 벨기에 구필화랑에 근무할 때부터 일본의 판화 그림을 수집했다. 파리에 있을 때부터 일본을 동경했고 일본을 천국처럼 여겼다. 탕기 영감의 그림 배경이 일본인 것을 알 수 있다. 후지산, 기모노 입은 여인...)
(위: 수염을 자른 고흐의 자화상. 배경은 일본이다. 아를에서 고갱과 심하게 다툰 다음날 귀가 잘린 상태로 나타났다. 고갱의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서 귀를 스스로 잘랐는지 고갱이 잘랐는지 알 길이 없다. 프랑스 사람들은 고갱이 고흐의 귀를 잘랐을 것이라 이야기 한다. )

로트렉은 태양의 화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고흐에게 일본의 태양을 보려면 프로방스로 가라는 조언을 했다 . 그래서 찾은 곳이 아를이었다 . 그 곳에서 고흐는 자신만의 색을 찾았는데 바로 강렬한 노란색이었다. 고흐가 프로방스에서 고갱과 싸운 후 귀를 자르고 나서 스스로 생폴 드 무솔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마음의 평정을 찾은 고흐는 이 곳에서 불후의 명작 수백점의 그림을 남긴다.
고흐가 아니더라도 프로방스엔 다양한 사람들의 자취가 있다.
자연이 아름답고 사람 사는 모습이 아름다운 남프랑스는 유럽인들이 만든 매력 만점의 여행지이다.

 

(위: 돌산 위에 암반을 깎아서 만든 성채와 마을. 레보드 프로방스. )
(레보드 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 고흐 전. 2019년 3월1일~2020년 12월5일)
(채석장 cafe)
(채석장 야외 모습)
(스크린 역할을 하는 채석장 내부의 모습)
(투박한 채석장 표면에 화가의 그림이 음악과 함께 살아서 움직인다.)

 

(고흐가 가장 많이 그렸던 소재 중 하나인 붓꽃)

 

(밝은 태양 아래 씨뿌리는 농부-고흐는 밀레를 닮으려 했다.)
(아를 노란집 옆으로 흐르는 론강 위의 북두칠성을 그린 그림-별의 빛나는 밤)

 

(Japan wave라는 제목으로 19세기에 유럽에 유행했던 제패니즘 영상. )
(위: 동생 테오의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그려준 아몬드 꽃. 일본의 매화 또는 사꾸라를 닮았다. 프로방스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인 아몬드를 자신이 좋아하는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그려서 생명 탄생의 기쁨을 표현했다. )
(북두칠성을 그린 론강 위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ô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