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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주말에 박물관에서 논다

박물관이 블링블링 번쩍번쩍

by 두루가이드 2016. 6. 6.

<블링블링 금관의 나라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 갈 때 자가용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이 지하철과 연결되는 긴 통로이다.

천정 조명을 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모양들이다. 8괘중에서 태극기에 사용하는 건곤감리 모양이다.

저 통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천지일월(하늘 땅 해 달)을 상징하는 건곤감리가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나친다.

그리고 바닥은 땅을 상징하는 곤괘만을 사용해서 장식 했다.

 

(위: 건곤감리 모양의 전등)

 

(위: 박물관으로 오가는 동안 벽면은 더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조명이 반짝 거리면서 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는 대표적인 물건들을 보여준다. )

 

국립중앙박물관엔 봐야 할 것들이 아주 많지만 번쩍 거리는거 몇 개만 보자.

신라 관으로 가면 황남대총에서 나온 번쩐번쩍한 금관과 화려한 허리띠를 만난다.

그런데

전세계에 금관이 몇 개나 있을까?

그 중에서 한국은 몇 개를 가지고 있을까?

현재까지 완전한 금관은 전세계에 13개가 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 9가 있다.

 

신라에서 6개 가야에서 3개가 나왔다.

-신라 :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교동

-가야 : 삼성리움 박물관 리움금관, 전(傳)고령 금관, 호림박물관의 호림금관

숫자만 봐도 그야말로 황금의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위: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위: 사슴뿔과 나무가지 모양에 수 많은 곡옥들이 달려있다. 경옥으로 만들어진 비취들이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해져 오는 많은 유물 중에서 곡옥에 대한 해석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정확하게 뭐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게 없기 때문이다.

태극에서 음양의 모양을 상징한다고도 하고, 태아의 모양을 상징한다고도 하고,  용의 모양이라고도 한다.)

 

곡옥(굽은 옥)에 대한 역사는 아주 오래 되었다.

옥에 대한 가장 재미있는 그림은 알타이 산맥 파지리크에서 출토된

흉노의 대왕의 무덤에서 나온 거대한 그림이다. 양모를 누빈 것 같은 천에 그려져 있다.

(러시아 뻬체르부르크 에르미타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파지리크 전시실에 있다. )

 

(말을 탄 왕과 샤먼 여자가 만나는 장면이다. 콧수염을 보고 서양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저런 수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말의 가슴과 콧등 위에 곡옥이 달려 있다.)

 

(신라의 귀고리를 보면 정말 정교하기 이를데 없다. )

 

(무늬는 크게 육각형과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0.3mm 크기의 알갱이를 붙인 점 같은 동그라미들이 귀고리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충남 공주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관의 장식품. 백제 때 왕관은 금으로 만들었고 나솔 이상은 은으로 관을 만들었다고 고 한다.)

 

(무령왕릉 왕비의 귀걸이)

 

(위: 백제 시대 왕이 고위관료에게 하사 했던 금동관모-복원된 모조품. 백제 전역에서 발굴이 되고 있는 금동관모.

관이 측면은 육각형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육각형 안에 봉황무늬와 용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오랜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용봉이 아닌 것이 없다. 모든 중요한 물품은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용봉문양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천자의 상징, 왕의 상징인 용봉이 있다. 물과 불의 상징이기도 한 용봉은 도자기 유물, 금속유물, 종교유물, 의복, 생활용품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박물관을 용봉(龍鳳)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평양시 진피리에 발굴된 고구려 시대 금동장식 제품. 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원 안에 다리가 세개인 태양새 삼족오(三足烏)가 있고 바로 위로 봉황이 삼족오 아래쪽으로 좌우에 용이 장식되어 있다.)

박물관 고구려 전시관이 너무 초라하다. 뭔가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위: 고구려 개마무사들이 착용했던 못신. 말을 탄 상태에서 또는 근접해서 싸울 때 적군을 발로 차던 용도이다. )

 

 

(고구려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

 

(뒤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는데 해석이 고려를 고구려로 했다.

 

延嘉七年歲在己未 高麗國樂良
東寺 主敬弟子僧演師徒卌人共
造賢劫千佛流布 第廿十九因現義
佛 比丘法穎所供養


연가 7년 기미년(539) 고려국(고구려) 낙양(樂良: 평양)의 동사(東寺) 주지스님 경(敬)과 그 제자 승려 연(演)을 비롯한 사도 40인이 함께 현겁천불(賢劫千佛)을 조성하여 유포하기로 하였는데, 제29불 인현의불(因現義佛)은 비구 법영(法穎)이 공양하는 바이다.)

 

고려국인데 고구려로 해석을 해야 되는 이유는 광개토대왕이 죽고나서 장수왕은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후 고려로 불리었다. 문제는 연가라는 연호를 사용한 왕은 봉상왕 때인데 장수왕보다 한참 먼저 일이니 모순이 된다.

음음 정확하거 어디 없을까?

아니면 고구려라는 이름은 없었고 고려만 있었는데 고려 때 와서 구별하기 위해서 고구려로 썼을까?

고조선과 조선의 관계처럼 ㅋㅋ

 

 

(평양 인근에서 발굴이 된 한나라의 한사군 중 낙랑의 우두머리가 소유하고 있었던 한나라의 바클이라고 우기는 대단한 작물이다.  큰 용 한마리와 새끼용 6마리로 장식되어 있다. 식민 사학자들은 이 것을 두고 한사군 중 평양 인근 낙랑에서 출퇴된 한나라 시대 유물이다고 우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저와 같은 물건은 한나라 시대는 물론이고 중국 어떤 시대에도 저렇게 정교한 작품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매우 정교한 용이 7마리라면 적어도 황제가 사용해야 되는 것인데 일개 지방 도시자급도 안되는 사람에게 줬다는 것이 있을 수 가  있나? 저렇게 좋은 것은 자기가 가져야지 어찌 지방에 있는 사람에게 주남? 복식을 모르는 인간들이 멋대로 해석을 했는데, 복식은 위와 아래가 매우 엄격하게 차등을 두었는데 말이다. 황제에게 상납을 했으면 몰라도... 하여간 딱 걸렸지. 한사군이 가짜라는 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