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의 영광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이란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페르시아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신들의 나라를 페르시아라고 불러 주기를 원한다.
사용하는 언어도 페르시아어이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우리의 왜곡되고 잊혀진 역사를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이란인들은 좀 다르다.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인들의 도시를 뜻한다.
그러나 페르시아어로 타크테 잠쉬드이다. 전설속에 '잠쉬드 왕의 옥좌'를 의미한다.
평지가 아닌 산등성이 옆, 경사진 땅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높이 쌓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아주 거대한 의자 처럼 보인다.
(위: 페르세폴리스로 향하는 도로. )
(위: 페르세폴리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입구.)
페르세 폴리스 들어가는 입구에 서면 기단이 거대해서 성벽을 마주하는 듯하다.
천천히 여유있게 접근하라는 의미에서 높이가 낮은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평지로 만든 거대 궁전의 흔적을 만난다.
해발 1770미터. 넓이 125,000평방미터 (39,000평).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85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가까운 쉬라즈에서 5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아케메니드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다리우스 대제)가 만들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넓혔다.
제국의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거나 신하들을 알현하던 곳이기도 하며
페르시아 제국 최대 축제였던 봄축제 (노우르즈: New Year)에 제국에 속한 나라에서 엄청난 물건을 가지고 찾아 왔던 곳이다.
페르시아 제국은 마라톤 전투를 비롯해서 그리스와 오래동안 전쟁을 했다.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당시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불태우는 사건이 있었다. 그 것을 보복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겠지만 알렉산더가 찾아 왔다.
알콜 중독자나 다름 없었던 알렉산더 3세(알렉산더 대왕)는 아케메니드의 다리우스 3세와 전쟁에서 이기고 페르시아를 약탈했다.
페르시아 제국시절 매년 각국에서 들어오는 귀한 보물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리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풀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당나귀 2만 마리, 낙타 5천마리 동원해서 실어 날랐다.
승리에 도취한 알렉산더는 술파티 하면서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워 버렸다. (기원전 330-331년)
알렉산더는 33살 나이에 세상을 떳는데 그를 죽인 원인은 알콜 중독이었다.
이를 두고 후대 역사가들은 알렉산더의 최대 실수? 또는 욕먹어도 싼 행위라 한다.
이란 사람들은 이후로 알렉산더를 도둑에 불과할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알렉산더는 그리스 입장에서 역사서를 쓰게했다. 당연히 왜곡되게 기록 하였다.
마치 한나라의 무제가 사마천에게 사기를 쓰게 한 것과 유사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이란의 역사를 지워 버렸다.
정복자들이 피정복 국가에 가하는 가장 악랄한 행위는 역사를 없애는 것이다.
이란은 아랍이 침공해 왔을 때도 역사가 사라지는 치욕이 있었다.
1930년대에 미국 시카고 대학교 동방 연구소( Oriental Institute of the University of Chicago)에서 발굴하기 전까지 페르세 폴리스는 잊혀진 곳이었다.
흙으로 덮여있던 황성옛터가 발굴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고대 페르시아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돌에 새겨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위-페르시아 제국의 왕 다리우스 1세 때 만든 페르세 폴리스 전경-스마트 폰 파노라마 사진)
다리우스 대제가 기원전 6세기에 계획에 따라 만들기 시작하고 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Xerxes) 대왕 때에 완성했다.
대리우스 대제는 극히 일부분만 봤고 대부분의 건물은 아들 크세르크세스때 만들어 졌다.
그리고 아케메니드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건물을 지었다.
(위: 크세르크세스의 문-일명 만국의 문)
그 옛날 대계단을 따라 오르면 첫번째 마주치는 문이었다. 지금은 누가 설명 안해주면 여기 저기 놓여 있는 부서진 유적처럼 보인다.
만국의 문은 페스시아 제국에 속했던 국가로부터 파견 온 사람들이 봄 축제(노우르즈) 또는 특별히 방문했을 때 처음 들어가는 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 계단은 111개나 만들었는데 말 타고 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높이 10cm로 낮은 높이이다.
(위: 만국의 문을 버티는 4개의 동물 중에 소)
(위 : 페르세 폴리스 지도)
가장 큰 건물이 아파다나 궁전으로 가장 정교하고도 대단한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 다리우스의 궁전이 있다.
아파다나 궁전 오른쪽이 100개 기둥의 홀이다. 대단히 화려했던 건물은 뼈대도 남지 않았다.
오른쪽 밑으로 보물실이 있다.
(위: 거대한 건물들은 온데 간데 없고 애처롭게 서있는 아파다나 궁전의 기둥들. 멀리 다리우스 대제의 비밀스런 궁전이 보인다.)
(위: 그리핀 형태의 기둥머리)
기둥머리는 지붕을 받이는 보를 올려놓는 부분이다. 우리의 봉황의 변형으로 알려진 그리핀은 독수리 머리와 날개에 사자의 몸통과 꼬리를 가지고 있다. 하늘의 제왕과 땅의 제왕을 결합했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를 상징한다.
유럽의 각국에서 그리핀을 왕의 상징으로 했던 곳이 많다.
(위: 목마 모양의 기둥머리)
실제 말이 아닌 목마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런 것들을 사용했던 원형을 볼 수는 없지만 아래 사진에서 복원했다.
(위: 복원한 100개의 기둥의 홀-기둥머리들의 역할을 잘 볼 수 있다.)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부터 인도까지 제국의 속한 각국의 사신들을 접견하는 곳이기 도 했고 연회를 배풀던 곳이다. 나중에 보물을 넣는 보관실이 모자라자 이곳에 보관 했다고 한다.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Xerxes) 때 만들기 시작해서 크세르세스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 때 완성했다.
(위: 폐허로 변한 100개 기둥의 홀)
남쪽과 북쪽 방향으로 놓인 80개의 문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문들의 일부들만이 당시 규모를 이야기 하고 있다.
배경의 산은 자애로운 산이라 부른다. 산에서 도시를 건설에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중턱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무덤이 있다.
(위: 보물을 저장하던 보물창고의 흔적)
알렉산더가 정복하고 나서 낙타 5천마리와 당나귀 2만 마리를 동원해서 남김 없이 가져갔다. 기둥이 있었던 자리만로 미루어 당시를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위: 100개의 기둥이 있는 홀과 인접한 경비를 서는 군사들의 머물던 건물)
(위: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절대신 아후라 마즈다를 나타낸 모양. 곳곳에 이 문양이 남아 있다.)
페르시아는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기 때문에 페르세폴리스를 만들 때도 조로아스터 교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의 최대 명절로 신년축제 또는 봄축제인 노루우즈(Nowruz) 때 23개 국가 대표사절단들이 와서 축제를 했다. 그 노르우즈를 상징하는 동물과 노르우즈 때 각국에서 귀중품을 가져오는 행렬도가 장식되어 있다.
(위: 노우르즈Nowruz의 상징 동물이다. 황소는 달을 나타내고 사자는 태양을 상징한다. )
따뜻한 봄을 상징하는 사자(태양)이 추운 겨울을 상징하는 황소(달) 몰아낸다는 의미로 봄의 시작(신년의 시작)을 뜻한다. 우리의 24절기 중 춘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노우르즈는 지금도 이란 사람들의 최대 명절도 봄의 첫날에 긴 휴가를 보낸다.
(위: 노우르즈 신년 명절 때 가족들이 시간을 보내는 전통적인 모습)
(위: 16세기 노우르즈 축제. 이스파한을 중심으로 세운 사파비 왕조의 왕 타마스프(Tahmasp) 1세와 인도의 무굴 제국의 황제 후마윤Humayun이 만나서 축제를 즐기는 장면)
(위: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다리우스 궁전)
여러개의 문과 문 사이가 좁고, 문의 방향이 다양해서 비밀스럽게 생활 했다고 여겨진다. 내부의 문설주에는 평상복을 한 다리우스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위: 다리우스 궁전 계단에 새겨진 부조. 신하들이 음식을 가지고 올라가고 있다.)
(위: 다리우스 궁전과 좀 떨어진 한 쪽 벽면에 새겨진 다리우스 또는 크세르세스라고 여겨지는 부조의 일부)
(위: 다리우스 또는 그의 아들 크레르세스가 신하를 알현하는 장면에 대한 부조를 그림으로 표현 . 신하가 입을 가린 것에 대해서 입냄새가 나지 않기 위해서 라고도 하고 침이 튀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위: 아파다나Apadana 궁전 벽면 그림-신년 축제 때 23개 국가의 대표들이 특산품을 들고 오는 모습 중)
페르세 폴리스에서 가장 볼만한 장면이 그려진 곳이 아파다나 궁전 계단 조각들이다. 가장큰 건물이기도 했다.
세밀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진 그림들을 통해서 페르시아 제국의 영역의 크기와 당시 영광을 회상해 볼 수 있다.
각국의 선물은 금, 은, 바다를 누비는 배, 무기, 직물, 보석류, 가축, 올리브, 향신료 등 매우 다양했다.
아파다나 궁전은 다리우스 때 만들기 시작해서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때 완공 했다.
72개의 기둥 중에 13개가 남아있다.
(위-아케메니드의 페르시아 제국 영역. 서쪽의 그리스, 이집트에서부터 동쪽의 인도까지 23개국)
(위: 아파나다 궁전 계단에 새겨진 각국의 조공 행렬도-매년 춘분, 노우르즈 축제 때 대행렬이 방문했다.)
(위: 아파다나 궁전의 복원도)
(위:아파다나 궁전의 복원 세밀도)
로마가 있기도 전에 만들어진 대단한 건물들이다.
(위: 아파나다 궁전 벽면에 새겨진 군사들의 행진하는 모습)
(위 : 아파나다 궁전 벽면에 새겨진 군사들의 모습)
(위: 가장 재미있는 그림. 남자들 끼리 손을 잡고 걷는 모습에서 이란인 가이드에게 동성연애자들을 표현했나고 농담을 건넌 적이 있다. 이는 페르시아가 엘렘 왕국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였기 때문에 두 나라의 군사들의 친밀감을 표현한 것이다.)
(위: 중앙에 있다고 해서 중앙 궁전 벽면에 새겨진 병사들의 모습)
얼굴의 반쪽만 새겼지만 사진을 찍으면 웃는 모습처럼 나타나서 페르시아 병사들은 행복했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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