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플라톤주의는 일종의 서양 신선도통문화라 할 수 있다.
주술 수행을 통해서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신과 하나(脫我的 神人合一)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신비주의 사상이다.
기독교는 물론 서양의 철학사를 통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이며,
르네상스는 신플라톤주의의 부활이며, 최소한 헤겔까지 신플라톤주의자였다.
**이 자료는 <신플라톤주의의 역사> -전광식 지음, 서광사 2002년-, <헤겔과 변증법> -백승훈 지음, 서광사 2022년- 등 두 권을 중심으로 기타 자료를 참조해서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핵심을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이다.**
역사에서 종교와 철학을 빼면 바퀴 없는 자전거이다.
자전거란 형태가 존재하지 못한다. 즉, 역사로서 성립이 되지 않는다.
종교와 철학은 인간 정신사이다.
인간 정신활동이 없는 문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적 작업을 통해서 학문과 예술이 만들어지고 일과 삶을 이루고, 사회와 문화를 형성시킨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철학과 종교가 나온 후에 미술도 등장했다.
서양 정신사의 큰 줄기를 기독교를 제외한 철학으로 한정시킬 때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신플라톤주의를 들 수 있다. 그런데 학자들이 생각해 왔던 것과는 달리 신플라톤주의가 가장 우세했던 사상이었을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들이 신플라톤주의자들이었고 기독교를 비롯한 천문학, 르네상스 사상,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르네상스는 기독교 이전인 신플라톤주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천문학자 케플러의 우주관에도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찾을 수 있다.
신플라톤주의는 세상의 문제도 다루지만 초월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다.
신플라톤주의는 철학이면서 종교였기 때문에 철학과 종교 간에 아무런 경계가 없다. 신플라톤주의를 半종교라고도 한다.
신플라톤주의의 중심사상은 인간 영혼의 행복 내지 구원에 있다. 영혼의 행복은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지성적이고 영적인 성격을 띤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현세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주의에서 시작을 했고 신플라톤주의자들이 모토는 한결같이 Back to Platon(플라톤에게로의 회귀)였지만 사실상 둘은 차이가 있다. 어쩌면 크다고 하겠다.
플라톤주의는 2 원론이다.
절대자와 인간 사이에는 간극이 있어서 불연속적이기 때문에 하나로 합쳐질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는 범신론적 1 원론이다.
초월적 신(一者)에게서 출발하여 잠시 땅의 세계로 내려왔다가 다시금 하늘의 세계(一者)로 되돌아가는 구도이다.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목표는 주술 수행을 통한 신과의 신비적 합일(나를 잃어버린 또는 나를 망각하는 탈아적 합일)이다.
위 그림은 신플라톤주의를 완성한 프로클로스의 삼항성(三項 Trias)으로
일자 안에 머묾(정지) - 일자 밖으로 나옴(벗어남) -일자에 게로 돌아감(돌아옴)이라는 변증법적 논리 전개와 더불어 주술의 이론과 실천과 같은 각종 종교적 신념들이 포함된다.
일자에게 되 돌아가는 구조로 인해서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인간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다.
프로클로스의 삼항론은 마치 천부경(天符經)의 내용을 차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의 역사를 읽다보면 천부경을 해석해온 역사를 읽는 듯한 인상도 든다. 일자에게서 유출이 되어서(一始無始一), 만물에 깃든 범(내재)신론(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그리고 일자에게 되돌아가는(一終無終一)의 구도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리스 시대부터 신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사용해 왔을까?
사실 신(God)이라는 용어 자체가 나온 지는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철학자들은 신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플라톤 :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 : 부동의 원동자
•프로클로스 : 一者(존재하는 만물의 제1원인, 원인 없는 원인 : 無始)
•위-디오니시오스 : 일자 자체, 세 가지 초월적 실체
•보에티우스 : 최고의 선, 절대적 완전자
•에크하르트 : 신은 일자다. 존재자, 참된 것, 선
•니콜라스 쿠자누스 : 다른 것이 아닌 것, X=~(~X)
•피치노 : 존재자체, 절대적 존재, 제일 본질, 일자, 선
•스피노자: 실체, 낳은 자연
•헤겔: 절대정신, 절대이성, 절대이념, 절대자, 무한자, 신(der Gott)
문제는 신에 대한 존재의 인식 방법이다.
신을 인격적으로 인식할 것인가 아니면 비인격적이며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존재인 것인가이다.
초기 신플라톤주의자들은 그 신을 비인격신으로 이야기했다. 신을 능동주의적 인격신 개념을 철저히 부정했고 범신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신플라톤주의자들은 그 어떠한 이성적 설명으로 제공될 수 있는 체험을 중시하는 쪽으로 나아갔고
후기 신플라톤주의 이후부터는 신에 대한 능동주의 해석이 증가하면서 그리스 신화의 인격신을 수호하는 신비주의 철학으로 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는 바티칸 시스틴 대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에서 인격신을 한 흰옷을 입은 백발의 신을 그렸다.
아래 그림이 천지창조 그림의 가장 중심에 있는 장면이다. 교황을 선출하는 바티칸 시스틴 소성당 천장화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인격신이 아담을 탄생 시키는 장면이다. 그리고 왼손에는 앞으로 태어날 이브를 팔로 감고 있으며 미래에 있을 어린 예수의 어께를 손으로 짚고 있다. 신을 중심으로 오른쪽 부분을 감싸는 붉은색 천은 인체의 뇌를 연상하게 하는데 여기서 신은 송과체를 중심으로 깨어난 원신이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신플라톤주의는 철학사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역사적으로 헤겔의 변증법 사상까지 영향을 미쳤다.
헤겔은 '철학의 유일한 대상은 신이다.'라고 했다.
헤겔은 "철학사는 철학의 대상인 절대자(신)에 대한 사상의 발견의 역사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헤겔에게 있어서 철학은 신을 다루고, 신 안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고, 신에게로 모든 것을 소급시키며, 또한 신으로부터 모든 특수자를 도출하는 것이 철학의 유일한 대상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신으로부터 나오고, 신과 연관되어 자신을 유지하고, 신으로부터 오는 광체에 의해 살고, 신의 영혼을 갖게 되는 한에서만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철학의 유일한 대상이다.
이러한 헤겔의 변증법적 사상은 신플라톤주의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프로클로스의 영향이 가장 컸다.
포이에르바흐는 "헤겔은 독일의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기독교적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독일의 프로클로스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변증법이란 무엇일까?
철학의 방법은 다양하다. 연역적 방법, 귀납적 방법, 실험적 방법(칸트), (언어) 분석적 방법, 형상학적 방법, 그리고 변증적 방법 등이 있다.
변증적 방법이라는 용어는 플라톤이 사용한 용어이다.
변증적(dialectic)이라는 말은 '대화하다'를 뜻하는 동사에서 나왔다. 즉, 대화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대답 속에서 다시 문제를 발견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다시 대답하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서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는 변증가(변증론자)는 좋은 것(선)과 나쁜 것(악)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며 변증법(dialectic)이란 서로 조언함으로써 사물들을 종류별로 구별하는 실천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변증가를 "물음에 묻고 대답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으며 "변증법은 우리를 확실성에 이르게 하여 가설의 필요를 극복할 수 있게 한다."라고 했다.
근대에 와서 헤겔에 의해 변증법이 강조되었다.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서 진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삼단계 도식을 제시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신플라톤주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상이다. 사실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를 구별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지 않았다. 17세기 라이프니츠까지는 구별을 하지 않았다.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us)라는 용어는 1786년 크리스티안 마이네르(Christian Meiner)가 처음 사용했고 전해진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주의는 물론 종종 대립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어떤 요소들도 어느 정도 수렴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의 사상과 스토아 사상도 선별적으로 도입하였다. 또한 철학의 경계를 벗어나 헬라종교와 동방종교를 적극 수용했다. 프로클로스의 경우 헬라적 신학인 오르픽 종교와 야만적 신학인 갈대아 신탁을 통합하려 했다.
그리하는 신플라톤주의는 다음의 단계를 거쳐서 열매를 맺었다.
신플라톤주의는 다음의 단계를 거쳐서 열매를 맺었다.
1. 로마학파인 플로티노스(Plotinos 205-270 AD)의 사변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 경향
2. 시리아학파와 베르가모학파인 이암블리코스(Iamblicos 245-325 AD)의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경향
3. 아테네학파와 알렉산드리아학파인 프로클로스(Proklos 412-485 AD)에 의해서 완성이 되었다. 종교+철학+사변+주술을 결합해서 완성했다.
프로클로스의 목표는 주술 수행을 통해서 신(일자)과 탈아적 합일하는 것이다. 즉, 영혼의 상승과 나를 망각한 해탈이다.
신플라톤주의를 창시한 이는 플로티노스 이지만 그는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해서 반쪽 플라톤이라고 한다.
반면 신플라톤주의를 완성한 프로클로스를 제2의 플라톤이라고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테네 학당> 중심부 확대.아래 그림에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완쪽)과 만물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
아래 그림을 보면 플라톤은 하늘을 가리키고 그의 제자 아리스테텔레스는 손바닥을 펴서 자기 앞에 있는 세상을 가리키고 있다. 두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은 사물의 본질(본체)이 존재하는 장소이다.
소크라테스, 그의 제자 플라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지만 3인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플라톤은 안락의자에서 철학적 사색을 하는데 만족했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경험하는 실체를 탐구하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마디로 만물박사였다. 그는 철학뿐 아니라 물리학, 동물학, 해부학, 논리학, 수사학, 천문학, 역사학, 정치학, 예술학, 희곡에도 심취했다. 그리스 철학의 집대성자라고도 불린다.
*플라톤은 사물의 본질이 현실이 아닌 이데아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른 말로 만물의 완벽한 오리지널 원본(본체)은 이데아 세계에 있고 현실에 존재하는 만물들은 이데아 세계에 있는 원본의 복사본이다. 더 쉽게 나는 하늘에 있는 본체의 복사본이다. 이 이데아는 현실보다 상위 차원에 있다. 이데아의 존재하는 사물의 본체(그것 그 자체)를 에이도스라 한다. 예를 다양한 고양이들이 있다. 검은 고양이, 얼룩 고양이, 흰색 고양이가 있지만 플라톤은 고양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고양이 본체는 이데아 세계에 있는 원본 고양이이고 현실에 있는 고양이는 불완전한 복사물이다.
복사본 이야기는 관념에도 적용이 된다. 사람들이 느끼는 아름다움, 추함, 행복 등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 일시적이고 어설픈 것은 어떤 관념의 이데아가 아니라 그 복사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데아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이데아의 현존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인간 영혼이 육체에 들어오기 전에 이데아의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인간 영혼은 '오리지널 본체'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육체에 갇힌 영혼은 점차 본체(에이도스)를 망각하게 된다. 이 본체를 상기시켜 주는 사물들을 통해서 다시 본체를 인식할 수 있다. 이때 본체를 깨닫게 해주는 사물은 예술과 이성이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서 이데아의 세계에 다시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간극이 있음을 보는 이분법적 관점을 이원론이라 한다.
이런 논리로 인간을 포함한 자연은 이데아의 복사본이고 그 복사본을 복사하는 예술가는 이데아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예술가들을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본질(본체)은 사물을 초월해서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 내제하고 있다고 했다. 즉, 고양이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고양이의 이데아에 관해 추상적으로 사고할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고양이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쉬운 말로 나의 본체는 내 육체 안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제1실체와 제2실체로 나눈다. 제1실체가 구체적인 개별적 사물들을 가리키고, 제2실체는 개별적 사물들이 속하는 종이니 종류를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체는 제1실체, 아리스토텔레스가 속한 사람으로 지칭되는 종은 제2실체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 실체가 현실에 없다면, 제2 실체도 존재할 수 없다고 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2 실체인 본체가 현실에 존재한다고 봤다. 즉, 육체 안에 본체가 존재한다고 봤다. 본체가 육체안에 태초부터 존재하기 때문에, 육체가 죽으면 본질도 사라진다.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죽는다고 봤다. 추상적 관념과 사물의 속성조차 현실에 존재한다고 보는 이런 관점을 일원론적 세계관이라 한다.
이런 이유로 자연이 불완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술(미술)을 통해서 본질(본체)을 재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연을 복사하는 미술을 권장했다.
정치적 관점의 차이
플라톤은 국가의 가장 꼭대기에 이성과 지혜를 가진 철학자가, 가운데 계급에는 국가를 보호하는 군인, 가장 밑에는 상인이 있어야 되는 구조를 이야기한다. 국가를 인간의 몸에 비유해서 머리는 이성이라는 영혼이, 가슴은 용기라는 영혼이, 배에는 욕구라는 영혼이 사회를 구성해야 된다고 봤다.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귀족 정치를 옹호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의 자유, 선택, 이성을 옹호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개인의 선택에 대한 자유를 옹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이성과 진보를 믿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어울리는 철학자이다.
프로클로스 (Proclus 412- 485 AD)
고대 후기에 헬라사상 또는 세속사상사에서 프로클로스의 위상은 기독교사상에서 아우구스티누스(Ausgustinus 354~430)와 비슷하다. 물론 두 사람의 활동은 반세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교류나 대립은 없었다.
교부신학은 Justin에게 나와서 발전하다가 거대한 사상의 저수지인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 종합과 결산은 이루다 흘러갔다. 마찬가지로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에게서부터 시작하여 플로티노스를 거쳐 내려온 헬라사상은 프로클로스에게서 거의 끝나 간다.
둘은 사상의 대가가 없었던 시기에 엄청난 영향력은 발휘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를 지나 종교개혁 때까지 기독교 신학의 권위이자 '그 신학자'였다.
프로클로스는 서방에서는 감춰진 배경으로, 동방에서는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근세의 헤겔 등에게 삼항성(Triad)체계와 변증법을 통해서 그 영향력이 면면히 내려왔다. 특히 프로클로스의 사후 전개된 후기 고대의 나머지 역사에서 이교적 철학자들이나 기독교인들 모두가 그를 "그 위대한 프로클로스(ho megas Proklos)"라고 불렀다.
콘스탄티노플의 부유한 가정집에서 태어나 공부를 위해 알렉산드리아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배웠고 아테네로 옮겨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플루타르쿠스와 시리아노스에게 수학했다. 아테네 플라톤 아카데미 수장이었던 시리아노스가 죽고 나서 아카데미 수장이 되었다. 서기 485년 사망할 때까지 50년 동안 이 직위를 유지했다. 채식주의자였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다.
최소 50여 편의 저작을 남겼다.
신플라톤주의적인 존재론의 기본적인 문제는 이 최고 실체인 一者가 초월성을 유지하면서도 그것과 낮은 실체들(多者) 간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플라톤의 이원론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절대자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신보다 더 초월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데 있었다.
프로클로스에게 갈데아 신탁(야만적 신학)은 최고의 진리와 지혜로 인정되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신들로부터 인간들에게로 직접적으로 내려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클로스의 중심 사상은 무엇인가?
프로클로스 사상의 기본적인 관심은 일자 (一者)와 다자(多者)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모든 존재와 원천은 절대적인 일자이다.
다자는 이 일자에게서 나오고 또 궁극적인 일자에게로 향한다.
자기 안에 머묾 - 자기 밖으로 나감 - 자기에게로 돌아감인 삼항성(Trias)의 원리는 실제계 전체에 적용된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우주는 신인데 자연을 포함한 인간은 신에서 파생된 존재이고 다시 신과 합쳐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프로클로스의 형의상학은 삼단계론(삼항론 三項論 Triadologie)이다.
존재론적 삼항성에는 일자-정신-혼의 세 가지 실체를 위시하여
야만적 신학인 갈대아 신탁(Oracula chaldaica)의 전형으로 존재(자) - 생명 - 이성,
그리고
실체 - 타자성 - 자기 정체성,
비분리적인 것 - 분리적인 것 - 참여자
실체 - 잠재성 - 실제성
유한 - 무한 - 혼합
실체 - 잠재성 - 활동성 등이 있다.
즉, 존재적 삼항성은 대부분의 경우 변증적 삼항성에 상응한다.
변증적 삼항성은 하나의 환원형태를 보여준다.
그 마지막 계기는 그것이 나온 첫째 계기로 회귀한다.
그것이 과정은 일자에게서 나와서 일자에게도 돌아가는 과정이다.
낮은 실체는 높은 실체에서 나오고(유출) 또 그것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프로클로스에 의하면 실체의 모든 움직임은 변증법적 삼항성(Trias)으로 설명된다.
1. 원인에게서 파생된 것은 그 원인과 유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파생된 것은 원인에 머문다.
2. 그러나 그 파생된 것은 원인과는 구분된다. 그런 의미에서 파생된 것은 원인으로부터 진행된 것이다.
3. 원인이 파생된 것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그것은 그 안에 있다. 따라서 파생된 것은 원인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프로클로스는 다른 신플라톤주의자들과 함께 이 모든 발전과정의 원초적 원리요 궁극적 실체를 일자(一者)로 본다.
일자는 모든 것을 초월한다. 존재론적 초월성, 정신적 초월성, 속성적 초월성이다.
그러면서 일자는 언표불가능하고 절대적으로 인식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철학적 신학의 존립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절대자에 대한 이성적 사유와 언표불가능에 대한 논리는 신플라톤주의에 있어서 부정신학(theologia negative)이 발전되도록 했다. 이 부정신학은 중세 천주교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부정신학은 한마디로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신은 어떠한 것이 아니다”라는 극히 제한적인 서술로 신을 파악하려는 것이 부정신학이다.
말하자면 다자(多者)인 낮은 실체에 대한 부정적 방식으로 일자의 존재와 속성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든지 또는 무념과 무언의 침묵 속에서 신을 명상하며 그를 느끼고 만나며 나아가 그와의 신비적 합일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프로클로스는 일자에 대해서 '언표불가능'을 주장하면서도 일자의 존재를 '존재하는 만유의 시작과 제일원인', '원인 없는 원인(無始)' 등으로 이야기한다.
일자로부터 이성의 영역이 나오는데 이성은 예지계, 예지계 및 지성계, 지성계로 삼분된다.
이 세영역은 각기 존재, 생명, 이성에 해당된다.
존재는 일자 다음에 오는 가장 보편적인 원인자로 만물의 존재원리이다. 이것에 참여함을 통해서만 비로소 만유는 있게 된다.
존재가 '있음의 원리'라면 생명은 '삶의 원리'이다.
생명은 운동의 원천이므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이 근원적인 생명 때문에 자기 운동을 지닌다.
이성은 '앎의 원리'이다.
이성에 참여하게 되면 지식의 능력을 지니는데 오성적(사물의 개념을 사유하거나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판정하는 것) 지식이다.
이러한 존재 - 생명 - 이성의 삼중운동(Trias)은 과정적이고 변증법적인 정지-벗어남- 돌아옴에 해당된다.
즉, 존재는 자기 안에 머묾(정지), 생명은 근원으로부터 진행(벗어남), 이성은 근원으로의 돌아감(돌아옴)이다.
이성의 일반적 영역 아래에는 영혼의 영역이 나온다.
프로클로스는 신전 영혼의 영역, 귀신적 영혼의 영역, 인간 영혼의 영역으로 나눈다.
영혼의 하강은 진행 그리고 상승은 회귀에 해당된다.
프로클로스에 의하면 영혼의 감각적 육체로 들어오는 것은 신의 섭리력과 섭리적 활동을 모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신의 섭리를 모방하려는 영혼의 의지가 하강의 모티브이다.
이 하강에서 영혼은 신들이 세계를 떠나고 또 신들과의 교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이성에서 무지의 상태로 갔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대부분의 신플라톤주의 자들과 함께 프로클로스도 영혼이 윤회의 굴레에 놓여 있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영혼의 운동은 환원(원환) 운동이다.
영혼의 운동에서 상승의 계기 없이 하강의 계기를 생각할 수 없고 회귀의 예약 없이 진행의 과정을 상정할 수 없다.
회귀는 자기 정체성에로의 귀환이다.
진행은 자기에게서 타자에게로 향하는 것이므로 외향이다.
회귀는 타자에게서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내향이다.
이런 환원(원환) 운동에서 특히 회귀과정에서 영혼은 온전한 지식을 갖게 된다.
상승과 회귀의 과정은 여러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로
다음은 이성의 세계로
최종적으로 일자의 세계로 나가는 것이다.
프로클로스의 최종목표는 다른 신플라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일자와의 탈아적(脫我的)인 합일이다.
나를 잃어버리는, 나를 망각하는 단계에서 신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치 동양의 신선도통문화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일자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일원인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기도이다.'
아무튼 이 신비적 합일에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되지 않고 신들에게 속한 것이 된다.
우리는 신적인 광명光明 가운데 머물게 되고, 우리의 영혼은 방랑과 순례의 닻을 내리고 평화로운 고요 속에 거한다.
헤겔은 이 부분을 "절대정신이 모든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서 자기에게로 환원하게 될 때 고요 가운데 머문다."라고 했다.
프로클로스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 중 하나로 주술이 있다. 그는 주술을 사상 위에 두었다. 이 주술은 일종의 사제적 기술로서 주술가인 사제는 신들로부터 어떤 창조적인 능력을 받아서 그것을 동료 인간들에게로 중개해 주어 그들이 자기의 영혼을 상승시켜 일자와 합일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서 주술시행을 위한 신성한 비법을 교육받는다. 주요 교본으로 오르필 송가들, 피타고라스의 황금시(黃金詩), 갈대아 신탁집 등이다.
훈련받은 이들은 주술을 실행하게 되는데, 그 주요한 결과는 점, 예언, 그리고 영들과 신들, 그리고 사자들의 혼을 불러오는 초혼(招魂) 등이 있지만 프로클로스의 주요 목적은 영혼의 상승과 해탈에 있었다.
서양에서 신과 하나가 되려는 몸부림이 많았다.
엘리우시스 밀교, 디오니소스 축제 등을 통해서 키케온(환각물질이 들어간 술)을 마셔서 환각상태로 들어가 나를 잃어버리고(나를 망각해서) 신과의 신비적 합일을 해왔다.
(사람은 제대로 된 방식으로 수행을 할 때 비몽사몽간에 체험을 많이 한다.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에 신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초기 기독교도 약 300년 같은 디오니소스 축제 때 마셨던 것처럼 포도주에 환각물질이 들어간 키케온을 마셔서 신을 만나는 거룩한 친교를 행해왔다.
서기 392년 그리스도교 신자인 로마의 제2대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엘레우시스 신비의식을 비롯 성만찬 때 키케온 사용을 불법화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로마 가톨릭은 키케온 같은 환각음료를 만드는 여자들을 마녀로 규정해서 불태워 죽였다.
프로클로스를 전후하여 아테네에서는 이교적인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사이에는 극심하게 서로 미워하고 서로 심하게 싸웠다. 특히 프로클로스는 기독교의 창조신앙이 우주가 시작을 가지고 것을 가지고 열 여덟 가지의 명제를 가지고 공격하였다. 이러한 반 기독교적인 정서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기독교와 신플라톤주의는 대조적이고 대립적이다.
다 같이 신의 초월성을 이야기 하지만 기독교는 특별 계시인 성경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주장한다.
구원론에 있어서도 신앙, 사랑, 소망 등 비슷한 덕목을 제시하는 것 같아도 그 출발의 단서가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영혼이 있는데 비해 기독교에는 신의 은총과 예정이 있다.
우주론에서도 무시(無始)의 신플라톤주의와 무(無)로부터의 창조적 기원을 말하는 기독교는 다르다.
인간론에서도 기독교의 원리와 타락사상은 신플라톤주의의 인간관과 다르다.
무엇보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은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상호간에 존재론적 격리가 존재하는데 비해 신플라톤주의는 신적 초월성을 유별나게 부각시킴에도 유출설 등을 통하여 그런 존재론적 간격이 없이 하나의 존재적 위계질서 가운데에 있다.
**신플라톤주의 자들이 추방당한다.**
•529년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칙령에 따라 로마 영토 내에 모든 철학학교가 문을 닫고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아테네와 로마를 떠나게 되었다. 제국 내 모든 비기독교 철학과 이교들을 추방하였다. 이들은 로마와 아테네에서 당시 로마와 적대 관계에 있던 페르시아로 이동했다
•이후 대략 12세기 초 스콜라 철학이 나타날 때까지 동방 또는 페르시아에 머물렀다.
•이런 기간 동안 망명해 있던 철학자들로부터 희랍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아랍철학이 생겨났다. 이때 희랍철학은 신플라톤주의화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다. 이렇게 아랍철학이 신플라톤주의 색채를 가진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된 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철학적 전통에 따른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프로클로스의 저작 < 원인들에 관한 책 Liber de causis >은 아랍어, 라틴어, 아르메니아 번역본이 있다. 이 책은 15세기까지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주석이 달린 저술에 속했다. 스콜라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주석을 달았다.
프로클로스에게서 빛의 문제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요소의 문제에도 중요하다.
프로클로스는 빛과 다른 요소들의 구분은 부동(不動)의 것과 동적(動的)인 것들 간의 구분이라고 보았다.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빛은 한편에서 볼 때는 빛의 한 종류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볼 때는 요소들 가운데 가장 비물직적이고 가장 비형제적인 것으로 그것은 우주적인 질서의 최상층부에 있다.
프로클로스가 갈대아 신탁에서 이끌어 낸 우주적 질서는 빛을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질서이다.
온 우주는 이 빛에서 나오는 불, 공기, 물, 흙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갈대아 신탁의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엠페도클레스(Empedokles)가 제시한 고대 희랍철학의 대표적인 기본 4대원소 이기도 하다.
프로클로스는 이 4개의 요소는 천체계뿐 아니라 지상계의 요소도 되고, 그것들은 에네르기적 상태로 존재한다는 이론의 수립이었다.
**중세 서방학계에서 프로클로스의 저서들의 유입과 번역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첫째,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저서들보다 프로클로스의 저서들이 먼저 번역되고 연구된 것은 중세 서양사상에 대한 그의 사상의 영향력이 지대했음을 암시한다.
둘째, 플로클로스의 저서에는 중요한 철학적 신학적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중세 신학 수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플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의는 철학사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고 특히 그의 저작들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 신비의 사상가 위-디오니시오스 아레오파기테스 ( Pseudo-Dionysios Areopagita 5세기말-6세기 초)의 책들은 철학과 신학, 동서방의 교회와 사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특히 스콜라철학의 신비주의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는데 토마스 아퀴나스와 로저 베이컨 같은 이들도 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다.
위디오니시오스가 '실존 인물이다 아니다'를 놓고 논의가 있지만 그의 저작에 대한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하다. 책을 쓸 때 필명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셰익피어의 모든 작품이 다 셰익스피어가 썼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위디오니시오스의 책에 담고 있는 개념과 내용, 그리고 과거 서구사상에 끼친 영향에 더 주목을 해야 된다. 이름에 대한 논란 때문에 디오니시오스 앞에 가짜를 의미하는 '위(Pseudo)'를 붙이고 있다.
여기서 프로클로스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못지 않게 중세에 진정한 스승이 된 것은 위디오니시오스의 글을 통해서였다는 것을 주목해야 된다.
위디오니시오스는 프로클로스와 기독교를 연결시켜 주었다.
부정신학, 신플라톤주의, 존재의 질서를 기독교에 넘겨주었다. 서방에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다음 가는 권위로 인정받았으며 동방에서는 주요한 신학사상 대부분이 그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위디오니시오스의 신비주의 사상은 프로클로스가 그토록 부각시킨 신의 초월성에서 출발한다. 그는 프로클로스와 함께 하나님은 존재의 피안에 있고,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나님은 초광적 어둠에 거하는데, 이런 신비적 흑암(빛이 없는 암흑)은 하나님의 본질적 불가해성(헤아릴 수 없음)과 인간적 무지를 의미한다.
그러면 신의 초월성은 그렇다 치고 위디오니시오스는 신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문제를 다룬다.
그는 긍정의 방식과 부정의 방식 그리고 상징적 신학 등 신을 인식하는 세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첫째: 긍정적이면서 계시중심의 하향적 신학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며 그에 의해서 신적 속성이 긍정되는 것이다. 초월적 어둠에서부터 나와서 지상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 가까이 오면 올수록 더욱더 분명한 언어들로 표현될 수 있다.
둘째: 부정의 방식으로 상향신학이며 부정신학인 신비적 신학이다. 프로클로스를 비롯한 신플라톤주의자들이 내세운 전형적인 신학의 길이다.
가장 낮은 피조물, 즉 자연적 대상들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지닌 모든 유한적 속성이 규정하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 하나님은 그의 초월 가운데서 모든 피조물을 능가하여 깊은 어둠 속에 감춰져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방식에 의하면 신은 본질도 생명도 아니며, 또한 이성도 아니다. 빛도 생명도 아니며 허위나 진리도 아니다. 나아가 그는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다. 신에 관한 모든 일반적 규정들을 부인하는 것이다.
신에 관한 언표를 무언(無言)으로 이끄는 것으로 감각과 사유로 접근하기 어려운 자기 안에 머묾으로써 신에 관한 학문이다. 아래에서부터 하나님에게로 올라갈 때 그때 언어는 항상 약하고 언표는 적어지게 된다. 결국 신에게 이르고 어두움이 우리를 에워싸면 우리는 완전히 침묵에 빠지게 된다고 보았다.
셋째: 부정신학과 긍정신학 사이에 있는 상징적 신학이다.
회귀의 사실로부터 신을 인식하는 길이다. 신으로 회귀가 시공적으로 감각 가능한 상징들과 초경험적이고 정신적인 상징들을 통하여 중개되는 것이다.
침묵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신적초월성에 대해서 위디오니시오스는 프로클로스와 같이 그래도 신의 이름을 끄집어내어 보려고 했다.
위디오니시오스에 의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두 가지 큰 그룹으로 나눠지는데
첫째는, 신적 단일성이고
두 번째는, 신적 구별성이다.
이 두 가지 이름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잘 적용되는데 단일성은 일체를 구별성은 삼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위디오니시오스가 하나님을 '일자 자체'와 '세 가지 초월적 실체'로 규정한 것은 프로클로스가 일자를 신 자체 또는 일자 차제라고 한 것에서 차용한 것이다.
최고의 실체인 신을 정점으로 존재의 위계질서가 형성되는 개념은 위디오니시오스의 체계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통에 있어서도 하나의 중요한 개념으로 위디오니시오스가 만들어낸 것이다.
위 디오니시오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위계질서는 하나의 거룩한 질서요, 또 가능한 한 신적인 것에 동화되어 가며 신에 의해 주입된 조명(빛)들에 의해 신과의 유사성에로 상승해 가는 거룩한 인식과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이러한 존재의 질서에는 하나님을 정점으로 천사, 이성적 정신들, 유기체들, 그리고 무생물들이 순서대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위계질서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위디오니시오스가
신적인 것 - 천상적인 것 - 교회적인 것 또는 삼위일체 - 천사 - 인간으로의 존재질서를 말한 것은
프로클로스의 일자 - 정신 - 영혼의 트리아드(Triad)에서 차용한 것이다.
위계질서는 두 가지의 운동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위에서 내려오는 운동으로 낮은 단계의 것들에 빛을 비추고 그것들에게 힘을 주는 운동이다.
다른 하나는 낮은 단계에 있는 것들이 창조의 목적에 따라 신을 닮아 가며 결국에는 그와 합일하려는 운동이다.
위 도표는 프로클로스의 진행과 하향의 유출, 회귀와 상향의 구원과 일치한다.
위디오니시오스는 회귀의 시작을 자기 인식에 있다고 한다.
아래 도표에 신과 합일이 되는 과정을 표기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신으로부터 조명(빛)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이 신과 합일 하는 좀더 세부적으로 신의 에네지와 합일하는 단계로 접어 든다.
위 도표에 나온 용어들은 프로클로스가 사용했던 고대 종교적 사상에서 나온 개념들이다. 영혼의 운동을 원형적, 직선적, 나선적 형태로 본 것도 프로클로스적인 것이다.
프로클로스에 비해 위디오니시오스 사상의 의도는 신학적이고 교회적이다. 그러니까 프로클로스의 철학적 개념을 기독교 신학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
위디오니시오스의 프로클로스 의존도가 놀랍도록 높다. 따라서 위디오니시오스는 '기독교의 옷을 입은 신플라톤주의자'라고 하겠다.
2. 보에티우스 ( Boethius 470-525)
(아니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세베리누스 보이티우스 Anicius Manlius Torquatus Sererinus Boethius)
서방기독교와 중세철학에 있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다음으로 위디오니시오스(Ps.-Dionysios Areopagita)와 함께 권위를 행사한 이는 보에티우스(Boethius)라 할 수 있다.
서구정신사에서의 보에티우스가 이런 위치에 있게 된 것은 그의 사상의 창조성과 독특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디오니시오스와 같이 헬라철학과 기독교 스콜라주의를 연결시킨 중개자로서의 역할에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연결된 헬라철학은 프로클로스(Proklos)의 사상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포르피리오스(Porphyrios)와 프로클로스(Proklos) 등 그 범위가 훨씬 넓고 포괄적이다. 하지만 그의 주요 저서인 <철학의 위안 : De consolatione philosophiae > 은 무엇보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그 가운데서도 특히 프로클로스 철학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철학의 위안> 또는 간단히 <위안>으로 제목이 붙여진 이 책은 서구정신사 전체에서 가장 대표적인 위안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보에티우스가 동고트 왕국 테오도리쿠스 대왕(Theodoric the Grea )밑에서 고위관리로 있던 가운데 부당하게 고소를 당하여 처형을 앞두고 있을 때 감옥에서 쓴 그의 마지막 저서이다. 종종 고전 시대의 마지막 서양 대작으로 묘사된다.
모두 다섯권으로 되어 있다. 중심주제는 운명에의 종속과 인간의 자유이다.
저자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그를 찾아온 철학을 의인화 한 '철학의 여신'과 나누는 대화로 쓰여졌다.
제1권: 보에티우스는 여성으로 의인화된 철학의 여신을 만나기 전에 자신의 투옥 생활을 한탄한다.
제2권: 철학의 여신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논함으로써 운명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설명하고, 그녀는 더 나아가 진정한 행복은 지혜의 추구에 있다고 주장한다.
제3권: 이전 책에서 제시한 사상을 바탕으로, 철학은 지혜가 어떻게 신성한 근원에서 나오는지 설명한다. 또한 많은 세상의 재화(예: 부, 아름다움)가 얼마나 덧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제4권: 철학의 여신과 보에티우스는 선과 악의 본질에 대해 논하고, 철학은 악행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설명을 제시하며, 왜 악인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제5권: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신에게 우연이 모든 것의 질서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 묻는다 . 철학의 여신은 우연은 신적섭리에 의해 인도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여신에게 전지전능한 신과 자유의지의 양립성에 대해 묻는다.
<철학의 위안>에는 많은 철학적 문제들이 나오지만 무엇보다 먼저 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찾을수 있다. 보에티우스에 의하면 철학이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지혜는 실천적인 수련이나 기술에 대한 터득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유라고 한다. 따라서 철학이란 그러한 순수한 지혜를 통한 이성적 정신의 조명이라고 한다. 보에티우스는 이런 철학을 사변적-이론적인 것과 실천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사변철학은 세가지 대상인 예지계(Intellectibilia), 지성계(Intelli- gibilia), 자연계(Naturalia)에 따라 삼분된다. Boethius가 말한 존재의 삼항성(Triad)은 프로클로스의 일자-이성-영혼의 세 실체와 예지계(νοητοι) - 예지 및 지성계( νοητοι και νοερο) - 지성계νοεροι라는 이성계의 삼항성(Triad)이 종합변형되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예지계 (Intellectibilia)는 질료가 전혀 없이 순수 정신적인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은 질료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서 어떠한 변화에도 종속되지 않고 자기동질성으로 존재한다. 신과 영혼들이 여기에 속하고, 그것들은 영원히 그 상태로 있다. 이는 프로클로스가 말한 전적 동시성(totum simul)으로서의 영원의 이념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와 보에티우스(Boethius)에게 나타나고 있다. 이 것은 Proklos의 주요 저서인 <신학의 요소 Elements of Theology>에서 ‘영원한 모든 것은 동시에 전체적’이라고 했는데, 보에티우스의 <위안>에도 도입되었다.
지성계(Intelligibilia)는 질료인 육체와 결합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인간영혼들을 지칭한다. 이것은 사유와 통찰을 통하여 Intelligibilia를 포착하기 위해 그것에게로 향한다. 실제로 인간영혼은 순수한 정신의 영혼에서 떨어져 나와 육체가운데 빠진 지성계(Intellectibilia)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주장과 함께 보에티우스는 기독교 신학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플라톤적인, 그리고 Proklos적인 영혼관을 충실히 표방하고 있다.
자연계(Naturalia)는 육체세계의 총체개념이다. 사변철학의 이 영역은 자연과 함께 포착되므로 그것을 생물리학(Physiologie)이라 할 수 있다. 보에티우스에 의하면 Quadrivium(천문학, 산술, 기하학, 음악)이 포함되고, 누구든지 그것들을 정복하지 못하면 참된 철학에 이를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보에티우스는 존재론을 구성할 때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성경적인 존재론의 기본구도에서 접근하지 않고 신플라톤주의의 전형적인 구도인 삼분적인 위계질서를 도입하고 있다. 존재의 이러한 위계질서에서 신은 무엇보다 최고의 선이며 또 절대적 완전자이다. 이 부분은 프로클로스의 <신학의 요소>에서 일자를 선이라고 규정한 부분은 차용했다.
이렇게 신의 본질을 규명함에 있어서 ‘선의 이데아’를 연상케 할 정도로 플라톤적으로 설명한 Boethius는 그 하나님은 역시 모든 존재의 원천이며 지복(至福)으로서 다른 모든 존재들은 그에게 참여함으로써 행복에 이르게 되고 이런 참여를 통하여 그것들은 어떤 의미에서 신들이 되어진다고 하였다. 이 역시 프로클로스의 '일자 되어짐' 사상을 도입했다.
<위안>에서 보에티우스는 운명의 반대편에 신의 섭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나님은 완전하고 실재하는 신으로서 섭리를 행하신다고 본다. 신은 자기 안에 최고의 이데아들을 갖고 계시며 그것에 따라 물질세계에 생명을 주시고 법칙들을 각인하신다. 즉 하나님은 자기 이데아의 모본을 따라 만유를 질서 지우신다. 우리가 만유의 질서를 볼 때 그것을 하나님의 질서의 정신 자체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우리는 그것을 신의 섭리(攝理)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질서를 사물내에 실재하는 것으로 보면 그것은 이 두 가지의 차이는 분명하다.
섭리는 신에게 있고, 완전불변 하면서 영원히 존재하는데 비해,
운명은 사물에게 사전에 질서지움(프로그램화)으로 그것과 함께 시간내에서 움직일뿐이라는 것이다.
프로클로스Proklos도 <신학의 요소>에서 섭리(προνοια)는 근원적으로 신들에게 있고, 신들은 모든 사물들을 향하여 섭리를 실행한다고 하였다. 그런 섭리실행은 그 존재의 탁월함에 의해 행해진다고 하였다.
보에티우스가 <위안> 4권에서 설명하는 섭리는 운명과의 대립, 시간 내에서만 아니라 영원의 세계에로까지의 영향력과 불변적 효력성, 신적 축복으로서의 성격 등인데 그런 사상이 Proklos에게서 그대로 보여진다. 이 둘 다는 신적 섭리의 낙관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그것이 곧 수감되어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Boethius에게는 철학이 주는 진정한 위로였다.
철학의 여신이 보에티우스에게 준 또 하나의 위로의 논거는 인간영혼의 회귀운동이다. 그는 <위안> 3권에서 영혼은 그 근원인 신에게서 나와서 다시 신에게로 돌아가는 주기(원환운동-키키오스 κυκλος)의 법칙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법칙에 따라 그것으로부터 나와서 그것에로 회귀하는 것은 신적 섭리가운데 일어난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한다. 이것은 프로클로스의 저작에도 언급한 내용으로 진행되어 나온(προελθουσα) 영혼이 그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고(επιστρεφει), 이런 운동은 결국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이는 윤회를 이야기 하는 듯하다. 사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윤회론자들이며 인간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Proklos가 Oracula Chaldaica에서 빌린 Eros의 개념은 Boethius도 amor로 사용하는데, 역시 영혼의 회귀와 관련하여 쓰고 있다. 프로클로스는 우주적인 amor를, 그리고 인간적인 amor를 언급한다.
결국 보에티우스 <위안>은 '비기독교적'이며 프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에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중에도 기독교적인 요소가 눈에 띄는데 그것은 신에 대한 이해이다.
존재 자체(Ipsum esse)에 관한 신플라톤주의적 사변에도 불구하고 보에티우스는 신을 인격적인 존재로, 그리고 삼위일체적으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위안>에는 보에티우스가 기독교인임에도 기독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단 한번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았고, 단지 철학을 인격화한 철학의 여신이 나타나서 처형을 앞둔 그를 위로하고 있다. 그에게서 그리스도는 신에게로 가는 길이 아니었고, 오로지 철학을 통해 중개되는 인식만이 신에게로 가는 길이다.
3. 모에베르케의 번역을 통해서 디트리히 본 프라이베르크, 독일 라인(Rein) 지역 신비주의 창시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Eckhart), 그의 제자인 요하네스 타울러(Tauler) 등이 있다.
4. 스코틀랜드인 존(John) 또는 아일랜드 태생의 존(John)으로 알려진 중세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하는 존 스코투스에리우게나( John Scotus Eriugena)는 위디오니시오스의 글을 라틴어로 번역해서 프로클로스 사상의 흐름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이러한 번역은 신플라톤주의의 재발견이 되었고, 프로클로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흔드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에리우게나는 프로클로스에게서 나오고 위디오니시오스가 정립한 신학의 세 가지 방법론을 도입했다.
부정신학, 긍정신학 그리고 최상신학이.
최상신학은 신의 속성을 직접적으로 알 수 없으므로 피조물의 속성을 최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속성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최고의 능력을 지닌, 최고의 생명력을 지닌, 최고로 지성적인... 등으로 표현해서 신의 속성을 나타내려는 방식)
무엇보다 그의 세계관도 프로클로스처럼 신에게서 나와서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에리우게나의 범신론은 위디오니소스가 차용한 프로클로스의 사상인 '만유는 신으로 가득 차 있다.'에서 온 것이다.
에리우게나는 그의 저서 <자연구분론>에서 신이란 '만유가 그것으로부터 나온 원인이며, 만유가 그 안에 머물고 또 그것을 통하여 움직이는 중개자이고, 그리고 만유가 그것에로 향해가는 최종 목표'라 했다. 이것은 성경적 신관인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과는 전혀 다른 신플라톤주의적 사상이다.
또한 세 단계로 전개되는 구원관도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프로클로스에 가깝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우선 질료적인 것에서부터 해방 - 무시간적이고 영원불변한 이성의 세계로 귀환 - 신과 하나 되는 신비의 결합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길이다.
스콜라 철학의 방법론이 권위, 사유, 명상이라고 볼 때
권위는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과 성경 및 교권이 배경이고
사유 또는 변증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배경이며
명상은 신플라톤주의가 배경이다. 그것도 프로클로스와 위디오니시오스를 배경으로 한다.
5. 옥스퍼드 학파의 로베르트 그로셰테스테(Robert Grosseteste 1175-1253)는 위디오니시오스의 저서들에 대해 주해를 남겼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번역을 하기도 했다. 다양한 학문적 작업을 통해서 프로클로스 같은 신플라톤주의자들에게 보이는 '빛의 상징학 내지 형이상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빛에 관하여 De Luce>에서 빛을 아주 정미한 형체적 실체로 보았다. 그로셰테스테는 사물의 공동적인 정체성을 자기 분산적 빛과 동일시했다. 그는 결국 빛으로부터 모든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함으로써 플로티노스나 프로클로스의 유출설 위에 서 있고 중세 빛의 형이상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6.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 시절 위디오니시오스의 글에 대한 주해서를 간행하였다. 위디오니시오스에 대한 깊은 연구는 <신학대전>의 가장 중요한 준비작업이었다. 프로클로스 성향이 가장 큰 <하나님의 이름>을 주해했다. 그리고 <신학대전> 속에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위디오니시오스를 더 자주 인용했다. 그리고 프로클로스의 사상을 직접 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용할 것은 수용했지만 수용할 수 없는 것은 배격하거나 재해석했다.
토마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을 창조로 해석하기 위해 프로클로스를 일신론자로 바꿔 보려고 했다.
토마스에게 가장 우선적인 신의 이름은 존재(ens)이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공유적 본질이 아니라 그것의 실체에 따른 존재 자체라 말한다. 토마스는 프로클로스와 자신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부각하고자 한다.
프로클로스는 신적인 모든 것은 그 자체에서 불가언적(不可言的)이며 불가지적(不可知的)이라고 했다.
여기서 토마스는 프로클로스와 마찬가지로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프로클로스가 제일원인의 초월을 이해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참으로 제일원인은 그것이 무한한 존재(esse)인 한, 존재를 초월한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에 유한한 방식으로 참여하므로 존재(ens)라 불릴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은 존재 자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성을 넘어서 있다." 토마스에 의하면 결국 하나님만이 본질에 따른 존재이다. 그 밖에 모든 것들은 참여를 통한 존재일 뿐이다.
이원론을 고수하는 토마스의 발상이다.
즉, 신은 위대한 창조자이며, 피조물인 인간은 신의 창조성을 드러내는 단순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조각이나 회화, 빼어난 공예품도 마찬가지다. 과거 그리스인처럼 중세의 창작자는 미술도 다른 여러 기술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토마스는 플라톤처럼 그는 인간의 창조물보다는 신의 창조물에서 보다 쉽게 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술가나 장인은 단지 도달 불가능한 완벽함을 얻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는 것이다.
7. 독일 도미닉 수도승들
13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프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있을 때 독일에서 열광하기 시작했다.
프로클로스가 프랑스에서 독일로 넘어가면서 독일철학(philosophi teutonici)이 시작하게 되었다. 독일인에 의한 독일에서의 철학은 13세기 중엽 프로클로스에 대한 관심과 연구로 시작되었다.
디트리히 폰 프라이베르크(Dietrich von Freiberg 1250-1310)는 독일 도미닉 학파의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같은 수도회에 속해 있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독일수도회관구장이자 파리 대학 신학학부 교수라는 직은 번갈아 했다. 위디오니시오스의 추종자이면서 프로클로스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는 이성의 성격을 고정적이지 않고 역동적으로 다루고 있다. 디트리히의 논문 <이성과 지성>에 따르면 신적 원리에서든지, 우주적 예지계에서든지, 천체의 영혼에게서든지, 인간에게서든지, 그 어떤 것에서든지 그 각각의 이성은 그 지성적 수행으로 인해 그 자신의 본질을 그것들에게 중개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능동적 이성을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성이란 어떤 우주적 기관이 아니라 인간 영혼 안에 내재하는 원리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영혼의 본질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능동적 이성이 인식하는 대상은 그것의 원리인 신, 그 자신의 고유본질, 그리고 존자자의 전체이다. 능동적 이성은 이런 대상들을 자기의 독특한 직관적 행위로 인식하는 것이다.
프로클로스는 이성들을 신적실체계의 제2위에 두면서 그것을 '신들'이라고 했다. 디트리히는 이성은 나온 곳과 회귀할 곳이 있다. 그는 프로클로스의 삼항성(Trias) 원리인 자기 안에 머묾-자기 밖으로 나감- 자기 안으로 들어감의 원리가 이 이성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이 것은 프로클로스가 이성에 부여한 특성들에게 동의하면서 유일한 신의 상위성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는 독일 쾰른의 도미닉 수도회의를 이끌면서 소위 라인(Rhein) 지역의 신비주의학파를 창시했다.
에크하르트의 저서는 크게 둘로 나누게 되는데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연구들과 영성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연구들이다.
특히 영성론적으로 신비주의적인 연구가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플로티노스나 위디오니시오스처럼 신비적 황홀경을 체험했지만 신비론에 대한 체계적인 작품을 쓰지 않았다. 실천적인 신비주의자나 신비주의 운동가라기보다 '신비주의 신학자' 또는 '사변적 신비주의자'라고 한다. 사변적 신비주의 창시자이다. 그는 신플라톤주의 사상의 흐름을 수용했는데 그중에서도 프로클로스의 영향이 가장 컸다.
-에크하르트가 프로클로스의 '원인들에 관한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구절은 "제일자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부유하다." 이다.
-선(善)과 동일시되는 일자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와 작용을 위해 아무런 타자(他者)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의 자족(自足)과 불결핍성을 말하고 있다.
-피조 된 것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존재이고, 그 이전에는 다른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았다. 에크하르트에게 존재는 창조적 근거이다.
-에크하르트가 프로클로스에게 빌린 중요한 사상은 '부정의 부정' 사상이다.
신플라톤주의 제일실체에게 붙는 '하나'라는 개념은 신적실체의 부정개념인 '많음'의 부정이므로 이중적 부정을 포함하고 있다. 알 수 없고 명명할 수 없는 제일실체에 대한 '일자'라는 신플라톤주의적 개념은 에크하르트에게서 자신의 신(deus)과 동일하다.
-에크하르트 신비주의 사상의 핵심인 영혼의 구원적 해탈은 프로클로스가 도입하고 위디오니시오스가 기독교적인 색채를 입힌 것이다. 구원의 길은 정화, 조명, 신과의 합일이라는 신비적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것은 초보자의 단계-진보자의 단계-완성자의 단계가 된다.
-이렇게 모든 존재는 신으로부터 나와서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신플라톤주의의 기본이념이 에크하르트의 사상의 뼈대를 이룬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체계는 종교적 경험, 신비적 신 체험, 환상, 탈아 등이 지배적이다
-자기 내부를 향한 성찰과 영혼 안에 있는 신적 섬광(Scintilla)의 발견을 주장했다.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부르노와 뵈메, 바이겔 등에게 계승되어 프로클로스의 영향사도 지속되었다.
8. 요하네스 타울러(Johannes Tauler 1300-1361)는 도미닉 수도회 소속으로 에크하르트 계열의 신비주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 바젤에 머무는 동안 페스트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데, 위기에 처한 인간을 어떻게 구원시켜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타울러는 외부세계의 공포를 경험한 인간들에게 내면의 세계로 몰입을 가르쳤다. 프로클로스 사상으로까지 연결되는 신비주의적 과정과 목표를 설정했다.
신비주의적 수행의 전통에 따라서 정화(淨化)의 과정-조명의 단계-신과의 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 이 단계는 각기 육체적, 감각적 영역, 이성적 영역에 해당되는 것으로 마지막 단계로 그는 '영혼의 토양(seelengrund = soul ground)'이라고 한다. 영혼의 토양으로 내성적 자기 몰입을 하는 데서 인간은 신과 합일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타울러 자신은 자신이 신과의 합일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신비주의적 해탈의 세 과정, 그리고 신비적 합일 사상은 프로클로스와 위디오니시오스가 뿌린 신플라톤주의적 종교의 씨앗에서 피어난 중세의 꽃들이며, 타울러는 이 것들을 기독교에 접목시켰다.
9.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
독일 가톨릭 추기경, 철학자, 신학자, 법학자.
신플라톤주의의 프로클로스적 이념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스콜라주의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는 신을 '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정의했다. 이 정의의 형식은 'X= ~(~X)'로 이중부정이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을 말한다. 이렇게 한 것은 신플라톤주의자들과는 다소 상이한 견해이다. 프로클로스와 위디오니시오스의 일자는 초실체적인 일자로서, 또는 일자 이전의 일자로서 규정할 때 모든 대립이 없는 일자이다. 그러나 쿠자누스는 비타자(非他者 non-aliud: 영 non-other 다른 것이 아닌) 개념을 선호하는데 에크하르트의 무차별자(indistinctum : 영 undistinguished 구별되지 않는, 뚜렷한 차이점이 없는) 개념과 결부되어 나온 것으로 본다.
일자에게는 비일자가 대립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일자는 대립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것은 일자는 모든 대립을 초월한다(없음도 초월하고 있음도 초월함)고 본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공개적 비판이며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의 모든 초월론적 사상가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쿠자누스는 일자에게 '존재함', '참됨', '선함'이라는 규정을 붙일 수 있다. 그러나 '존재함'은 '존재하지 않음'에 '참됨'은 '참되지 않음'에 '선함'은 '선하지 않음'에 대립되는 것이기에 일자는 아무런 대립이 없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쿠자누스는 대립이 없는 것은 비타자 즉, '다른 것이 아닌 것' 뿐인데 그것은 정의가 그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제1원리는 어떤 것과도 대립되지 않아야 하는데 자신과 대립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제1원리로써 지격이 없다는 것이 된다. 일자는 하나가 아닌 것과 대립이 된다. 따라서 제1원리는 '일자'가 아니라 '다른 것이 아닌 것'이라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것이 아닌 것 속에는 모든 대립자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쿠자누스에게 창조란, 신 자신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자기의 밖으로 밀어내는 것, 표출하는 것, 혹은 졉혀져 있는 주름을 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의 창조는 무(無)에서부터의 창조가 아닌 신 자신 속에 존재하는 유한자를 자신의 외부로 펼침에 의한 창조라고 한다. 다른 것이 아닌 것 자체로 모든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모든 대립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신은 자신의 단순성 속에서 만물의 총체성을 포함하고 있다. 신은 모든 것을 통일한 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은 존재와 인식의 원리가 된다는 사실을 쿠자누스는 빛을 비유를 들고 있다.
빛이 없으면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색(깔)"이 존재할 수 없다는 한다. 빛이 없으면 감각적인 물질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색(깔)은 존재할 수 없다. 색깔을 빛깔이라고 한다. 빛깔은 빛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태양을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는 것처럼 신도 직접 파악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결과를 통해서 그것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처럼, (태양) 빛 혹은 빛깔(결과)을 통해서 태양(원인)을 추론할 수 있다. 홍옥에서 발하는 빛(자체)은 신이요, 감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 즉, 모양, 크기, 빛깔 등은 '다른 것'으로서의 유한자로 비유된다. 쿠자누스는 신은 유한자를 초월해 있는 한편, 유한자에 내재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실개체와의 관계와 유사하다. 이데아는 현실개체를 초월해 있는 한편, 현실개체에 내제(임재) 하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앎이 그래도 신에 대한인식을 보장하지 않는다. 가시적인 것을 통해 신이 존재한다는 결혼을 이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신이 어떠한 자인지를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 이를 쿠자누스는 '박학한 무지'라 했다. 쿠자누스에게 있어서 인간에 의한 절대자의 인식은 불가능하다. 이유는 신은 담(murus: the wall)으로 둘러싸인 낙원 같은 정원에 거주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담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의 한계라고 한다. 즉, 절대자는 "인식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분이다."
이는 다각형의 각을 아무리 늘린다 해도 원이 될 수 없듯이 유한한 것들을 아무리 부가한다 해도 무한에 이를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즉, 인간의 지성은 진리를 근사치로밖에는 알지 못한다. 신을 인식하는 인간의 모든 능동적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남은 것은 신 편에서의 능동적인 관여다. 신과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 신의 가장 고유한 계시로부터 생겨난다.
쿠자누스는 인간이 진리를 앎에 있어서 정신의 한계를 알고 있는 경우에만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참으로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자라는 신탁을 얻게 된 것도 자신의 무지(無知)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배우면 배울수록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쿠자누스는 신에 대한 지(知)를 요구함으로써 신을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지(知)에 도달함으로써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박학한 무지"에 도달함으로써 신을 향한다.
그러다 쿠자누스는 신과 신을 찾는 자 사이에 가로막는 담을 원리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신 인식에 관한 그의 낙관주의는 인간정신이 신을 닮았다는 확신과 결합되어 있다. 그는 심지어 인간을 창조된 "제2의 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신과 피조물이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것들이 신 속에서 종합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범내재신론이다. 범내재신론은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는데 어떤 물(物)의 본체인 신 안에 있다는 사상이다.
신은 세계를 접어놓은 것이고, 세계는 신을 펼쳐 놓은 것이다.
헤겔은 쿠자누스와는 달리 신은 더 이상 은폐된 자, 비밀이 아니다. 헤겔에 의하면 "인간의 이성은 인간 속에 있는 신적인 것이며, 신은 자기를 인간에게 드러내므로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
10.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에서 프로클로스와 신플라톤주의 영향은 5-6세기 가자(Gaza) 지역 기독교 철학파에서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11세기 프셀로스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플라톤주의 또는 신플라톤주의는 공식적으로 정교에 의해 적대시되어 왔다. 물론 4세기 갑바도기아의 교부들은 이미 플로티노스의 영향에 있었고, 또 수도적 삶과 수도원에서 금욕적 수행을 통해서 신플라톤주의의 요소는 면면히 이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기 6세기초 위 디오니시오스의 글이 나오면서 신플라톤주의와 정교의 신학을 통합하려는 첫 번째 시도가 있었다. 프로클로스의 사상을 기독교 옷으로 걸쳐 놓은 위디오니시오스의 글들은 라틴 서방세계에 영향을 준 것만큼 비잔티 세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비잔틴 제국에서 프로클로스의 영향은 프셀로스(Psellos)에서 부터이다. 그는 제자에게 보낸 글에서 "나는 자네가 헬라의 지혜야말로 신께 영광을 돌리는 것과 신학에 있어서는 실패했지만 자연을 아는 데에서는 마치 그것을 만든 창조주처럼 알고 있음을 깨닫기 바라네." 프셀로스가 말한 헬라의 지혜는 외형상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지만 내면은 프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의이다. 프셀로스에게서 신플라톤주의는 논리학과 자연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고 형이상학에서는 플라톤을 따르는 절충주의적인 것이다. 나아가 제도적 신학과 철학 간의 절충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런 철학과 신학이 절충주의는 이중진리를 말한 아베로에스(Averroes) 같은 회교 철학자들 그리고 라틴세계는 보에티우스 같은 이들이 있다.
프셀로스는 프로클로스 저술 속 내용을 인용함은 물론 프로클로스의 주술관과 귀신론 등을 도입했다. 물론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주술적 의식을 교회에 도입했다고 공격당하기도 했다. 그의 신학이 전통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였던 요하네스 이탈로스(Johannes Italos)는 1082년 이교적 교리를 가르친다는 죄목으로 파문을 당했다. 구체적으로 세계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 플라톤 견해를 고수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서방이든 동방이든 중세 기독교와 모든 중요한 이단들은 이교적 헬라철학의 영향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했다. 일곱 번의 공의회가 이단들에게 죄를 정할 때 철학자들을 죄인으로 정했다. 철학은 사탄이 준 것이고 철학자들은 사탄의 수하들이라고 본 이래로 모든 이단의 책임을 철학에로 돌렸다.
비잔틴 교회 지도자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과 물리학의 스승으로서 "교육을 위해"유용한 주제들을 남긴 철학자로 여겼지만, 플라톤은 기독교와 모순된 형이상학적 입장을 표방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탈로스의 파문은 플라톤적 입장에 대한 정죄였다. 이는 이탈로스가 프셀로스에 이어 도입한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파문이기도 하다. 교회는 포셀로스와 이탈로스가 받아들인 주술론과 귀신론 같은 이교적 프로클로스의 사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탈로스 파문 이후에도 비잔틴 학자들은 헬라 저자들의 글을 읽고 필사해서 계속 연구를 했다. 프로클로스에 대한 연구는 고대 다신론적 요소들과 주술론 등을 제외하고 일반 사상은 1453년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11세기 비잔틴 사상사의 최대 학자로 꼽히는 시메온(Symeon the New Theologian : 시메온 新신학자)은 이 전통에 새로운 활력을 되었다. 그의 기본 사상인 신화(神化)를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로 보았다. 즉, 도통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보았다. 이는 프로클로스의 영혼의 회귀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한 듯한 인상을 준다. 시메온은 최초의 동방정교 신비주의자로 인정받는다.
신화(神化 theosis 테오시스)는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도통해서 신선이 되는 과정이다. 동방정교에서 하느님과 닮거나 연합하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하는 변화적인 과정이다. 변화의 과정으로서 테오시스는 카타르시스(마음과 몸의 정화)와 테오리아(하느님의 직관을 통한 조명)의 결과에 의해 생겨난다. 동방정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테오시스(신화)는 인생의 목적이다.
그가 새로운 신학자라고 불리는 것은 그의 창의적인 접근방식 때문에 "새로운 신학자"라는 조롱에서 얻은 별칭이다.
동방정교에서 3인의 신학자에 포함되는데, 3인의 신학자로는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그리고 시메온이다. 시메온이 전임자들과 다른 것은 내면의 경험을 투명하고 있는 그대로 공유했던 사람이다.
시메온(949~1022) 은 20세 때부터 광명체험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나마 제대로 수행을 했던 사람으로 신의 빛을 체험한 내적, 외적 신비로운 경험으로 반복해서 묘사하고 있다. 그런 경험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서 평생 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글에서 그는 "당신 얼굴의 순수한 빛"과 "당신은 형태 없는 해처럼 당신의 얼굴을 나에게 드러내도록 정하셨습니다"라고 다양하게 경험에 대해 하나님께 직접 말했다. 그는 또한 빛을 신의 은총이라고 묘사했고, 빛의 경험은 완전히 고요하고 그 자체를 초월한 마음과 연관되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때때로 그는 그 빛이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며 그것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것을 묘사했다. 시메온은 빛과 빛의 변화시키는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It shines on us without evening, without change, without alteration, without form. It speaks, works, lives, gives life, and changes into light those whom it illuminates. We bear witness that "God is light, " and those to whom it has been granted to see Him have all beheld Him as light. Those who have seen Him have received Him as light, because the light of His glory goes before Him, and it is impossible for Him to appear without light. Those who have not seen His light have not seen Him, for He is the light, and those who have not received the light have not yet received grace. Those who have received grace have received the light of God and have received God, even as Christ Himself, who is the Light, has said, "I will live in them and move among them."
그것은 저녁도 없이, 변함도 없이, 변경되지 않고, 형태 없이 우리를 비춥니다. 그것은 말하고, 일하고, 살고, 생명을 주고, 비추는 사람들을 빛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빛이다”라고 증언하며, 그분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분을 빛으로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분을 본 자들은 그분을 빛으로 영접하였으니 이는 그분의 영광의 빛이 그분 앞에 가므로 빛 없이는 그분께서 나타나실 수 없음이라. 그분의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분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분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직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빛을 받은 자요, 하나님을 영접한 자니라.
11.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Georgios Gemistos Plethon 1344-1450)
비잔틴 마지막 사상가이면서 르네상스의 첫 철학자 플레톤은 사상적으로 프로클로스와 유사한 위치에 있다. 기독교의 거센 도전 앞에서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고수한 아테네학파 철학자들처럼 플레톤은 오스만 터키의 회교 사상 앞에서 헬라적 사상과 문화를 지켜보고자 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이탈리아로 이주한 플레톤은 피렌체 공의회의 그리스 대표로 참석했다. 이때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과 교류했다. 그의 주요 저서 <플라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차이>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하고 플라톤을 옹호했다. 플레톤의 시각에서 헬라 고유의 사상은 피타고라스에서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창조주 신에 대한 이념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헬라 사상의 전통을 깨뜨린 이단아요, 비정통적인 사상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만유는 창조주인 일자에게서 나온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했다. 플라톤을 옹호하고 플로티노스 그리고 프로클로스 같은 신을 플라톤주의의 입장에서 해석을 하고 있다.
플레톤의 이론은 이데아의 실체성을 주장하고, 영혼의 불멸성을 내세운다. 특히, 프로클로스의 사상인 존재론적 삼단계 도식(Trias)을 도입하여 신-정신계-영혼계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도입했다.
플레톤의 사상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사상가들이 기독교 이전인 헬레니즘에로의 귀환의 목표를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플라톤으로 방향설정을 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피렌체 아카데미(Firenzer Akademie)가 프로클로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신플라톤주의 경향으로 흐르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피렌체에서 플레톤의 강의는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에게 큰 감명을 주어 플라톤 아카데미가 거의 천년이 지난 뒤에 복원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플레톤의 공헌으로 르네상스 주요 사상가들은 신플라톤주의를 연구했다.
12. 르네상스는 무엇을 위한 Rebirth(재생)일까?
페스트가 지난 다음 유럽은 인구 감소와 사회 혼란 등 이전 문화를 잃어버리는 고통 속에 있었다. 새로운 문화가 나와야 되는 시기였다. 바로 르네상스이다. 이때 프로클로스 철학은 르네상스 시대에 피치노(Ficino)와 피렌체 아카네미를 통해 전유럽에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 정신과 학문의 요람은 아카데미이다. 메디치 가문(코시모 데 메디치)이 설립하고 지원을 했다. 고대 희랍 사상들을 도입해서 강의를 한 플레톤이 씨를 부렸고 피치노(Ficino)와 피코(Pico) 같은 학자들이 열매를 맺게 했다. 피렌체 아카데미는 플라톤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내걸었어도 실제로는 플로클로스의 아카데미를 세워서 프로클로스 신학을 논한 것이며 신플라톤주의를 연구했던 곳이다.
르네상스 철학자들은 고대 철학자의 작품들을 번역하고 집필하는 등을 통해서 서방세계에 직접 소개하여 신플라톤주의를 부흥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특히,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자들은 그 이전에 동방과 서방에서의 교권적 간섭이나 교리적 제약 없이 모든 고대 철학과 문헌들을 마음대로 접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플라톤주의는 자유스러운 시대에 어울리는 철학이었다.
인간을 신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는 소우주로 본 신플라톤주의 인간관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높이는 르네상스 시대에 맞았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을 생각의 중심에 두었을 뿐 아니라 우주의 중심에 두었다.
따라서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영향은 신학, 철학은 물론 상징론, 알레고리론 등을 통해서 미술 등 예술과 문화의 전 영역에 미치게 되었다.
13. 신플라톤주의가 르네상스 예술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보다 상징과 알레고리(풍자)를 문학적 표현양식에 도입하게 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영향은 미술에 있어서 원근법의 발견이다. 미켈란젤로 같은 화가들은 삼차원적 공간의 개념에 대한 가시적 작용을 탐구했다. 예술은 "가시적인(Visibilis)것은 비가시적인(Invisibilis) 것을 표현한다."는 뜻으로 원리적이고 교육적인 역할도 수행하려고 하였다.
신플라톤주의의 연구의 중심지인 플라톤 아카데미(1459-1522)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시민들의 자발적 모임이었다.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피렌체 인근 카레기(Careggi)에 있는 메디티 빌라에서 아카데미를 열었다.
알레고리란?
어원은 그리스어 알레고리아(Allegoria : 달리 표현하다)이다. 어떤 사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에 의해서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은유법이다. 풍자를 하기 때문에 풍유법으로도 해석한다. 즉, 본 뜻은 숨기고 비유하는 말만으로 숨겨진 뜻을 암시하는 수사법이다. 따라서
추상적인 생각이나 개념을 이인화 하거나 동물이나 식물 형상으로 바꿔 묘사를 한다. 이솝우화나, 속담, 그리스 신화 등도 알레고리로 표현한다. 알레고리는 보통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이 포함이 된다.
영화로 알려진 <나니아 연대기>는 기독교적 알레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의 창조주인 사자 "아슬란'을 만나고, 하얀 마녀를 물리치는 모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슬란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내용이 나온다. 죄 없이 수난당하고 희생하다 다시 부활하는 이야기는 신약 성격 속 예수의 행적을 가져온 것이다. 이야기 전반을 관통하는 교훈은 "믿음으로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속담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또는 '엎질러진 물이다.'등은 '이미 잘못된 뒤에 손을 쓸 수 없다.'는 의미를 떠올리거나 공감하게 하기 위해서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알레고리는 비유 대상과 실제 대상이 1:1로 매칭되는 상징과는 또 다르다. 알레고리는 좀 더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
북방르네상의 대가 플랑드르의 피터 브뢰겔의 <네덜란드 속담>은 126개의 속담 내용이 그려진 걸작으로 알레고리가 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알레고리 개념을 인식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이는 현대 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 이전에 알레고리 개념은 상징에 비해서 낮은 단계의 수사적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상징은 형식과 내용이 합일되어 틈이 없는 상태인 반면, 알레고리는 형식과 내용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심지어 다양한 의미로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벤야민은 상징이 가진 총체성 때문에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반면, 알레고리는 인위적이고 미화되어 있는 상징의 작용을 걷어내고 보다 비주류적이고 비합리적, 이질적인 요소들을 통해 현상을 바라봄으로써 보다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개념이었다. 이는 질문과 답을 질문과 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상승된 결론을 접근하게 되는 헤겔의 변증법의 방식과도 연결이 된다.
특히 현대 미술에서는 오브제(물체 또는 객체)가 전통적으로 갖는 상징과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신선하고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편견과 관습을 깨는 의외성과 낯섦을 통해서 신선항 충격을 주는 의미지 들이다. 예를 들어서 라우센버그의 '콤바인 페인팅'은 2차원 표현인 회화와 3차원 표현인 조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보다 새로운 차원의 미술 영역을 진일보시켰다.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가 중심인물이었다.
훈련받은 의사이자, 채식주의자이자 가톨릭 신부였으며 점성술사였던 그는 여러 학자들과 접촉하여 신플라톤주의를 부활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플라토닉 사랑'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플라톤의 저작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한 최초의 사람이며 신플라톤주의 책도 라틴어로 번역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에 빠져 있던 당시 대학들의 학문적 경향과 대조를 이루었다.
아카데미 참여자 중에는 코시모 로렌초, G.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있었다. 코시모 테 메디치가 피치노를 평생 후원자로 지원했고 코시모 데 메디치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의 가장 교사가 되었다. 미란돌라는 피치노의 학생이었다.
피치노는 젊었을 때 스콜라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배웠지만 그것이 종교적 신앙이 약해진다고 생각하여 등을 돌렸다. 그리고 플라톤주의, 특히 신 플라톤주의적 플라톤주의를 기독교를 위한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피치노는 그의 주요 책은 <플라톤적 신학>이다. 그는 플로티노스와 프로클로스에게서 받은 일자 중심의 유출적 위계를 존재의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그 단계는 Deus(신)-Mens(천사적 정신)-Anima(합리적 영혼)-Qualitas(품질)-Materia(물질) 등과 같이 설정했다. 그는 영혼을 질서의 중앙에 두고 있다. 피치노는 영혼을 소멸될 것의 생명으로서만 아니라 신적인 것의 영상(映像)으로 보았다. 영혼의 불명성은 항상 신에 대한 그것의 유사성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그 영혼은 신을 직접적으로 직관하고자 하는 순수한 추구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이 것은 필수적으로 성취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영혼의 이러한 신에 대한 명상(묵상)은 땅에서는 불완전하게 머물 수밖에 없으므로 사후에 개인 영혼에 해당되는 성취적 차원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피치노에게 영혼은 자립적이고 자유로우며 비육체적이고 운동의 원리가 되면서, 하나의 단일성으로 즉 기본적으로 신적인 단일성과 유사한 단일성으로 이해한다.
피치노의 프로클로스적 요소를 드러낸 일자에 대한 것으로 일자(또는 선)의 초월성이다. '일자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선은 초월적인 존재이다.'라고 한다. 그리고 프로클로스 적인 해석의 전통에 따라 '일자는 절대적 제일자이며 가장 근원적인 실체로서 분류되지 않는 원리이다. 만유는 이것에 참여하며 그 참여를 통하여 각 존재자는 존재하게 된다.
일자가 제일 존재의 존재성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선이라는 것은 그것의 내용적 충만이나 능력의 측면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일자 자체의 역동적이고, 존재의 기초가 되고, 존재를 유지를 하게 하고 성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자를 다양성 가운데 전개토록 하며 동시에 그 근원과 단일성으로 회귀케 한다. 존재의 보존 또는 유지(conservation)는 통일(unification)과 동일시된다.
피치노는 신에 대한 지칭을 스콜라적인 전통에서 내려온 존재 자체, 절대적 존재, 제일 본질,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의 전통에 따라 일자, 선이고 했다.
피치노는 프로클로스적인 요소인 삼항론을 사용했다.
특히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기본주조로 본질(essentia)-덕성 또는 능력(virtus)-작용 또는 활동(operatio)을 말한다. 이는 프로클로스가 갈데아 신탁에서 빌린 삼항성인 존재-생명-이성에 해당한다. 중간의 virtus는 중개자의 계기로서 그것은 한편으로 참여를 통하여 실체적인 근원에 연결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인화(原因化:근원인 일자가 되려는 것)를 통하여 활동에 결부되어 있다.
피치노는 그의 미론과 사랑론에 프로클로스의 역동적 삼항론(Trias : 머묾-진행-회귀)을 도입했다.
아름다움이란 최고 근원자(일자)의 완전성을 감각적 또는 지성적으로 드러내어 주는 현현이다.
사랑이란 이러한 근원으로부터 발현된 것이 그것 에로 돌아가는 일종의 귀환운동이다.
진행과 회귀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결합 속에 있다. 이런 양자 결합은 신의 절대적인 자기 모상 또는 초상(similitudo)이며 신의 절대적 활동(operatio)의 모습이다.
한편 아모르(Amor)는 모든 세계의 내적 과정을 묶는 결합개념이고 다른 한편으로 신적이고 정신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을 중개하는 중개자에 대한 고유명칭이다. 아모르는 통하여 이루어진 신과 피조물인 간의 결합의 상징은 빛 또는 비추어지는 아름다움이다.
피치노는 그의 주작 <플라톤적 신학>에서 프로클로스의 회귀 논리에 따라 육체 -> 영혼 -> 예지계 -> 신에게로 이루는 상승의 과정을 서술했다. 피치노는 기독교와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통일하려 했다.
피치노에게 신플라톤주의로 해석된 플라톤 철학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os : 헤르메스 세배로 위대한자)로 대표되는 이집트의 사상은 물론, 오르페우스(Orpheus)나 피타고라스(Phythagoras)보다도 더 우위에 있는 최고의 사상이었다.
피치노의 노선은 그의 젊은 동료였던
지오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Gi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1494)에 의해서 더울 발전되었다. 피코는 피치노가 내세운 권위들에다가 유대 신비철학(Cabalism)을 첨가했다. 즉, 기독교 카발라 전통의 창시자이다.
피코는 피치노를 따라 인간이 세계의 중심으로 창조되었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인간만이 유독 자기 존재의 방식을 규정하는 자유를 지녔기에 다른 존재들과 다르고, 또 세계 내에서 자기 위치에 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인간의 존엄성이 정초(定礎 : 사물의 기초를 잡아 정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치노, 프로클로스와 함께 피코는 초월적인 신적 단일성으로 회귀라는 것이 인간 노력의 결정적 목표라고 보았다. 다른 말로 신과의 결합, 즉 도통을 인간 최고의 목표라고 보았다.
단지 피치노와 피코의 다른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 플라톤의 신이 일치하는가에 대해서 피치노는 부정적인 답을 했고 피코는 긍정적인 답을 했다.
또한 피치노는 명상(contemplation)을 인간의 자연적 능력의 완성이라고 보았지만, *피코는 신비적 자기 소멸을 말하면서 더 신비적인 색채를 띠었다.
피코 역시 피치노처럼 존재의 위계질서를 그리면서 신플라톤주의적 기초 위에서 작업을 했는데 그는 인간 최고 목표를 감각적인 동기들로부터의 정화와 철학적 인식을 통하여 신적인 근원에로 다가가는 데 있다고 보았다.
피코가 작업한 고대 사상들의 범위는 피치노의 그것보다 훨씬 넓다. 그는 유대 신비주의의 외에도 구약성경은 물론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자라투스트라 등 매우 광범위한 사상들을 다루면서도 이 모든 철학들의 큰 통일성(pax philosophorum)을 바로 프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의에서 찾고자 했다.
이탈리아 16세기 사상가이지만 르네상스 전통을 이은 프란시스쿠스 파트리치우스(Franciscus Patritius 1529-1597)는 근세 이탈리아 자연철학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반대하는 플라톤주의자였다. 그는 프로티노스와 프로클로스의 유출설을 자신의 세계관의 기초로 삼았다.
우주는 철저히 신적생기(Pneuma)에 의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존재의 최고 원리는 근원적인 빛이라고 보았다. 유체 안에서 빛을 발하는 이 근원적인 빛에 대한 사상은 플라톤적 이원론과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범신론적 일원론의 방향으로 돌려놓게 되었다. 이렇게 16세기는 범신론의 시대가 되어 갔다.
파트리시우스의 우주론과 세계 모델에서 물질 세계는 무한히 확장되고 동질적이며 빈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공간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빈 방은 밝아야 한다. 왜냐하면 빛이 어디에나 있고 그 안에 어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물질 세계를 둘러싼 공간은 물질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으며, 그 물질은 그를 그 안에 두었다. 이 가설로 파트리시우스는 진공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반대했다. 그는 또한 물리적 세계 내의 진공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물질 입자 사이의 작은 빈 공간을 이야기 한다.
14. 16세기 17세기 유럽의 다양한 프로클로스의 영향
16세기는 유럽 사상의 중심사가 다변화되는 시기였다.
기독교는 콘스탄티노플의 정교와 로마의 구교의 두 형태로 오다가 이제 루터 Luther의 종교개혁과 더불어 독일과 스위스를 중심으로 개신교가 나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를 거쳐 중부유럽 지역으로 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가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신플라톤주의는 아리스코텔레스나 플라톤과 관계되기보다 범신론이나 기독교 신비주의와 같은 다른 유의 사상들과 결부되기 시작했다.
발렌틴 바이겔(Valentin Weigel 1533-1588)의 사상은 에크하르트 그리고 쿠자누스에게 보이는 독일 신비주의 사상을 통하여 프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의에 닿아 있다.
루터교 성직자인 바이겔은 "내적인간에서의 구원의 소유"라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내적인간에서의 구원이란 그에 의하면 평점심이며 평정심과 더불어 인간은 세계를 바로 바라보게 되고 또 하나님을 자기 안에 거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정신은 육체에서 내적인간으로, 물질에서 영으로 여행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바이겔의 신비주의적이고 신학적인 사상은 후대에는 베머(Bohme)와 라이프니찌(Leibniz)에게 영향을 주었다.
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1548-1600) 피치노 이후에 신플라톤주의 전통을 계승했다.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는 짧은 생애(1548-1600) 동안 수도사, 철학자, 우주론자, 수학자였다. 그는 마술을 연구했고 놀라운 기억력으로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잠시 명성을 얻었다. 공간과 무한에 관한 이론은 논란이 많았고 이로 인해 로마 종교 재판에서 화형을 당한 르네상스 철학자였다.
그의 형이상학적 책 <원인, 원리, 그리고 일자>에서 중세의 이원론적 세계상에서 엄격히 분리되어 있던 하나님과 우주가 하나의 살아 있는 통일성을 이루고 있음을 제시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자들의 본질이면서 제일원인이다.
모든 대립자들의 통일성이기도 하고 가능성과 실제성의 근원적 연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만유가 그로부터 나왔으므로 가장 큰 자이면서 동시에 만유 안에 내포되어 있으므로 가장 작은 자이기도 하다.
그의 '무한자' 개념은 플로티노스와 프로클로스에게서 후에 기독교에서 세상의 반대편에 있는 초월적 신에 대한 긍정적 술어가 되었다. 신과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의 그의 생각이다.
일자는 세계의 원리로써 그 자체적으로도 무한하기 때문에 그 일자가 내재하는 세계들의 수나 각 세계들은 역시 무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우주의 무한성과 세계 1584>에서 부르노는 우주는 신의 무한한 창조력에 근거하여 필연적으로 무한하다고 했다. 우주는 유기체인데 무한히 많은 전체를 작은 개체 안에서 무한히 연장되는 개체로 이루어져 있다.
신의 섭리는 이러한 유기체들의 생명과 완전성을 보존하고, 이 유기체들 안에 있는 세계 내적인 모든 대립들은 결국 신의 단일성으로 환원되어 그 안에서 그 대립들은 결국 신의 단일성으로 한원 되어 그 안에서 그 대립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일자는 더 이상 세계를 초월한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모든 유한한 것들의 근본을 이루는 하나의 실재적인 존재라고 보았다.
신플라톤주의는 신의 초월성과 다양한 유출을 통한 다자 속에 신의 내재성을 강조했는데 브루노는 내재성을 강조했다. 이로서 범신론으로 가는 길을 열였다.
브루노의 일원론적 범신론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를 거처 19세기 독일 관념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브루노가 잔인하게 화형 당하다.
그의 저서 <우주의 무한성과 세계>에서 닫힌 유한 우주에 대한 르네상스 사회의 지배적인 믿음에 기꺼이 반대했다.
이 여섯 권의 책에서 브루노는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사실, 우주 자체가 무한하다는 사실 등 오늘날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많은 사실을 열렬히 옹호했다. 브루노의 삶의 비극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16세기 우주론은 기독교 가르침과 깊이 얽혀 있어서 기독교 내세운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야 하는데 태양중심 우주론은 곧 기독교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우주가 무한하다는 브루노의 주장은 심각한 신학적 딜레마를 제기했다. 우주가 공간과 시간으로 영원히 확장된다면, 끝없는 행성과 별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역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는 것일까? 신이 신적인 존재로 지구와 별들을 에워싸는 것보다 브루노의 무한한 우주에서 신은 훨씬 덜 눈에 띈다.
브루노가 주장한 것처럼 우주가 무한한 태양계로 가득 차 있다면, 지구가 그토록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요? 결국, 성서에서는 다른 행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실제로 무한한 수의 행성을 창조하셨는가?
그렇다면 왜 이것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우주가 태양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조차도 마찬가지로 무한한 '지구'와 무한한 '태양'이 있다는 이론을 세우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브루노의 이론은 전통적인 유한 우주의 자연적, 계층적 질서를 뒤흔들었다. 결국 로마에서 강제로 종교재판을 받았고 놀랍게도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소가 그의 사형 선고를 낭독한 후, 브루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나에게 판결을 내리는 데 대한 당신의 두려움은 판결을 받는 나보다 더 클 것이다.”
브루노는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Campo de Fiori) 한가운데에서 산채로 화형 당했다. 대부분의 화형 피해자들은 사전에 목이 졸려 죽었지만, 사형집행인들은 브루노에게 이러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지오다노 브루노의 죽음은 사악하고 잔인했다. 캄포 데 피오리에는 저항하는 브루노의 동상이 서있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를 흔히 마지막 신플라톤주의 신봉자라고 칭하고 있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적 플라톤주의에 따라 신 안에 미리 내재해 있던 형상에 따라 모근 개별 사물들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했다.
케플러에게 기하학은 신과 동일하다. 신 자체라고 한다. 이유는 신이 개별 사물을 만든 기준인 원형적 형상에는 먼저 기하학적 모양들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케플러는 인간은 사물을 감각적인 인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인간정신 안에 미리 있던 근원적인 형상들만을 통하여 인식될 뿐이다.
따라서 모든 인식은 정신 깊은 곳에 고요히 놓여 있고, 다만 내적 관찰을 통하여 일깨워지고 얻어질 수 있다. 케플러는 우주의 건축은 창조주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으로 완벽한 조화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케플러에게 프로클로스는 '그 철학자'였다.
신플라톤주의적 범신론자인 야코프 뵈메( (Jakob Bohme 1579-1624)는 후대에 헤겔 같은 그의 추종자들이 "최초의 독일 철학자"라고 불렸다. 뵈메에게서 신은 삶과 힘, 그리고 의지로 표현한다. 특히 의지는 무(無)의 원천 자체로부터 나온 것이라 한다. 신 안에서 영원한 자연이 생겨났고, 신으로부터 정신적인 세계가 나왔으며 그 후에 지상이 세계가 나왔다고 보았다.
그는 만유의 근원을 무근거(Ungrund)라고 칭했다.
영혼과 신은 유비관계(신으로부터 정신세계가 나왔기 때문에)를 이루며 그것으로부터 '자기 영혼을 주시함'을 통하여 신의 본질을 주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것이 그가 말하는 신비론의 방법이다.
칼빈주의 철학자 요하네스 하인리히 알스테드(Johannes H. Alsted 1588-1630)는 反아리스토텔레스적이고 프로클로스적이다.
신의 본질은 만유의 원형이고, 인간 영혼은 신을 모방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성을 통해 여타의 모든 피조물을 능가하고 또 신과 유사하게 된다고 보았다. 나아가 그는 성경을 신플라톤주의적으로 해석했다. 그에게서 하나님과 인간은 대우주-소우주의 유비관계(대우주에서 소우주가 나왔다)에 서있다.
"신의 취한 사람"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스피노자는 근대철학의 주요지점이다. 그래서 스피노자주의냐 아니면 전혀 철학이 아니냐 하는 두 길만이 존재한다."고 했다.
스피노자는 신을 자신의 철학의 중심문제로 다루고 있다. 헤겔 역시 "철학사는 철학의 대상인 절대자에 대한 사상을 발견하는 역사"라고 말한다.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신은 언떤 존재인가?
스피노자는 절대자 또는 神을 실체라고 부르며, 오직 신만을 실체라고 부른다.
데카르트도 실체론을 이야기 했는데 스피노자와는 다르다. 데카르트는 신을 실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물질과 정신도 실체라고 했다. 자신의 실체에 대한 정의를 일관적으로 밀고 나가지 못했다. 물질과 정신을 실체라고 한 이상 두 부분에 대해 독립성을 부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물질과 정신은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상호작용의 메카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영)혼은 온몸과 결합되어 있지만, 몸의 다른 모든 부분들보다 자기의 기능을 특히 더 잘 발휘하는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영)혼이 자기 기능을 직접 발휘하는 몸의 부분은 결코 심장이나 뇌 전체가 아니라 뇌의 모든 부분들의 가장 안쪽에 있는 아주 작은 샘(선腺)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고 생각한다." 여기서 아주 작은 샘은 송과체(pineal gland 골윗샘)을 가리킨다. 데카르는가 이렇게 말 함으로써, 그가 처음에 주장했던 물질과 정신-인간의 경우에는 육체와 정신-의 2원론이 부정된 것이다.
실체(神)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의는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정의에 인식론적(개념적) 정의를 더한 것이다. 스피노자는 실체에 대해서 "실체(神)는 그 자체로(즉자적-독자적)으로 존재하며 자기가 형성되어야만 할 다른 어떤 것의 개념(인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이다."라고 했다. 즉, 신은 스스로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의 원인(실체는 존재론적으로 독립적이다)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동시에 개념적(인식론적)으로도 독립적인 자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적합한 존재자를 "신 또는 자연"이라고 부른다.
이 때 신(실체)과 동일시 되는 자연은 "낳은 자연(natura naturans)"이다.
신(낳은 자연)은 정신과 물질, 곧 삼라만상을 존재하게 하는, 그것들을 산출하게 하는 자연이다.
신(낳은 자연)에서 유래한 자연이 낳아진 자연(natura naturata)-多者이다.
낳아진 자연은 실체(신)가 아니라 실체의 양태(樣態 modi) 혹은 변용(變容 affectio)이다.
실체(신)는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스피노자는 양태를 실체의 변용으로 즉, 다른 것(신) 속에 존재하며 그 다른 무엇을 통해서 이해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즉, 낳아진 자연(多者)은 독립적인 존재, 즉 실체(신)가 아니라, 신에 의존하여, 신을 통하여 존재하게 된, 실체의 양태라는 말이다. 그 것들은 신 속에 존재하고 있어서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파악될 수도 없는 것들로 간주되는 한에서, 신의 속성들의 모든 양태들이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신으로부터 양태한 유한한 정신과 물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의 양태인 세계는 실체인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신은 지성이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계를 창조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 만물의 산출은 신의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인 유출이다.
-신의 능동적 활동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신의 본성으로부터 자연히 흘러나온 것이라고 하는 스피노자의 주장에서 헤겔은 문제점을 발견한다.
-헤겔은 실체로서만(신은 자기동일적인 실체) 존재하는 것은 참된 실체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절대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신이 어떤 의식활동아니 실천적 활동도 하지 안는 존재자는 진정한 의미의 신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는 헤겔은 판단한다.
스피노자의 신이 물질적 존재자인 동시에 정신적 존재자라고 한다면, 반드시 운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의 본질은 바로 운동성에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스피노자의 신을 "실체의 심연(深淵 der Abgrund der Substanz)"이라 부른다. Abgrund라는 용어는 에크하르트에게서 유래된 것이며 뵈메의 '무근건 Ungrund'의 원형이 된다.
헤겔이 생각하는 정신으로서의 절대자는 "결코 쉬지 않는 무한한 운동, 에네지, 활동이며, 최초의 것을 떠나서 타자에게로 계속 이행되는 그러한 자"인 것이다. 절대자는 자기를 부정하여 자기의 타자로 이행하고 다시 그러한 타자로서의 자기를 부정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 복귀하는 변증적 운동을 통해 존재하는 능동적인 존재자다.
스피노자의 신관은 범신론이 아니라 범내재신론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것을 신이라 부르지 않고, 오직 "낳은 자연"만을 신이라고 주장한다. "낳아진 자연"으로서의 정신과 물질은 신이 아니라 신의 양태로서, 신 속에, 즉 신에 이존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그의 신관은 범내재신론이다.
헤겔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유한한 정신과 물질, 즉 유한자는 무한자로부터 벗어난 채로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무한자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진무한자는 자신 속에 유한자를 포섭하고 있고 유한자의 운동과 전개를 통해서 자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무한자가 진무한자아며, 이러한 보편자야말로 구체적인 보편자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스피노자와 헤겔은 모두 범내재신론자인 것이다.
헤겔은 스피노자를 따라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라고 한다. 동일성의 명제 'A=A'은 A=~(~A)인 이중부정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A=A는 옳지만 세계에 관해서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 마나 한(meaningless) 말이다.
A=~(~A)는 일자에 타자가 부정으로 매개된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이성적, 사변적 동일성이다. 이런 명제에서는 의식이 일자로부터 타자에로 나아갔다가 다시 일자에로 복귀하는 운동이 나타난다.
절대자의 구조도 이렇게 동일과 비동일의 동일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절대자를 인식하기 위한 우리의 의식작용도 이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절대자가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는 유한자를 전개하여 우주를 창조했다고 가정.
우주 창조 이전에 신 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한자가 존재한고 있다 하더라도 신 안에 있는 것이므로 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신만 홀로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 만이 존재하고 있어서 신은 하나이면서 전체(모든 것)이다. 그런데 신만 있었기 때문에 신에게 구체적인 규정을 부여할 수 없다. 부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일자이외에 타자가 존재해야 하는데 우주 창조 이전의 신은 자신의 타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신'이라고 하거나, '하나'라는 가장 추상적인 공허한 규정만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헤겔은 그 것을 무(無 Nichts) 혹은 '순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크하르트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헤겔의 말하는 신은 자기동일성의 실체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단한 자기외화와 부정의 운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산출해내는 주체이기도 하다.
18세기 중엽부터 유럽대륙의 철학계, 특히 독일 철학계는 그 이전까지 서구사상의 형성 지대한 영향을 발휘해 온 신 플라톤주의를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비합리적인 공상 내지 신비적 몽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Hegel(1770~1831)은 '정신현상학'과 '철학사 강의'에서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비판을 정당치 않다고 했다. 그는 만일 '정신을 초자연적인 것에로 북돋우어 드높이게 하는 모든 시도'를 몽상이라고 칭한다면 우리는 신플라톤주의뿐만 아니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도 함께 몽상이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신플라톤주의의 기본적 관심이 일자와 다자와의 관계에 있고, 초감각적이고 신적인 일자를 중심으로 그것의 통일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헤겔과 쉘링(Schelling)과 기본적으로 접근법이 같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을 어떤 보편자에로 소급시키는 것, 일자를 절대자로 파악하는 것 등에서는 그 고대 사상과 이 근세철학이 유사하다.
신플라톤주의의 단일성 또는 통일성의 이념은 먼저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와 플라톤에게서 발원해서 플로티노스와 프로클로스에서 확립되었다. 그 후 근세의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와 스피노자(Spinoza)를 거쳐 역시 전 단일성(All-Einhart)을 내세운 쉘링의 철학에까지 내려왔다.
쉘링은 1810-1820년 자신의 '침묵의 시기'에 방대한 철학사를 썼다. 그의 저서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각 시기에 대한 그의 의미 부여는 매우 프로클로스 적이다. 과거는 세계 이전에 자기 자체 내에서의 신이고, 현재는 신의 창조와 자기 계시로서의 이 세계를 뜻하며, 미래는 세계가 신에게로 회귀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미래야말로 그 모든 과정의 최종적인 완성이라고 한다.
헤겔은 플로티노스보다 프로클로스 사상을 더 발전한 것으로 보고 자신의 절대정신철학의 수립에 근본적으로 그 이념을 도입했다.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는 헤겔철학을 이렇게 특징지었다. "헤겔은 독일적 또는 기독교적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다. 그는 독일의 프로클로스이다. 그의 '절대적 철학'은 환생한 알렉산드리아 철학이다."
흔히 독일 관념론자들은 쉘링은 플로티노스에 가깝고 헤겔은 프로클로스에 근접해 있다고 평가를 한다. 프로클로스의 변증법적 삼항론과 헤겔의 변증법이 직접적으로 긴밀한 유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헤겔을 프로클로스에게서 무엇을 발견했으며 자신의 절대관념론적 체계 속으로 그 어떤 사상을 도입했는가?
헤겔에 있어서 프로클로스의 탁월한 점은 '플라톤적 변증법에 대한 심오한 연구'이다. 프로클로스의 변증법에는 부정의 원리가 놓여 있다. 그 자체가 불가언적(不可言的 말로 표현할 수 없고)이고 불가지적(不可知的 헤아릴 수 없는)인 일자라도 자기의 진행과 회귀의 과정에 따라서 포착될 수 있다.
다른 말로, 일자가 자기 본질의 은익성과 불가지성을 지양하고 자기 나누기를 하는 것이 곧 일자의 자기 발현 내지 진행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부정의 원리는 단순성과 대립되는 것이며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일성 내지 통일성은 이러한 진행을 통해서도 감축되거나 감소되지 않는다. 일자는 다양성으로, 다양성은 일자로 제시되고, 다양성 또는 모든 차별은 단순성으로 소급된다.
헤겔에게 프로클로스적인 일자론은(Henologie)은 모든 고대 변증법의 완성이었다.
단지 프로클로스는 일자와 정신을 구분했지만 헤겔은 정신을 최고 또는 가장 보편적인 원리로 삼아 그것을 중심으로 사변적 변증법을 전개해 나간 것이었다.
헤겔이 프로클로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상은 존재론적 삼항성(Trias)과 변증법적인 삼항성인
μονη (모니)-προοδος(프로~도스)-επιστροφη (에피스트로피)이다.
즉, 일자 안에 머묾 - 일자 밖으로 나감 - 일자에게로 돌아감이다.
그는 프로클로스가 정신(νους 누스)은 단일성에서 직접적으로 진행되어 나온 것으로 보지 않고 세 번째 계기, 즉 회기의 계기로 인식했다고 여기고 그것을 중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헤겔이 누스를 3번째로 본 것은 존재ον(온)-생명ζωη(조이)-정신νους(누스)라는 트리아스에 근거한 해석이다.
헤겔은 누스(정신) 역시 세 계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성은 과정적 변증법에서 머무름과 진행함, 그리고 회귀함의 세 계기를 지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유의 세 과정이다. 각 계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전체성이고, 또 이 세 가지는 하나로 환원되어진다. 이러한 과정에 Trias에 상응하는 정신(누스)은 오로지 절대적 일자이고,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절대적이고 구체적인 신을 형성하다고 헤겔을 말한다.
헤겔이 말하는 정신이란 윤리적, 역사적 실재와 학문적 영역을 자기 안에 다 수렵한 실체로서 그것은 역사와 학문 가운데서 자기를 세 단계로 전개시켜 나간다. 정신의 자기 전개의 3단계는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인데 이 세 가지는 프로클로스의 삼항성인 모니(일자 안에 머묾)-프로도스(일자 밖으로 나감)-에피스트로피(일자에게로 돌아옮)에 해당하는 정신이 존재 방식이다.
논리학(Logik)이란 신이 세상과 어떤 유한정신을 창조하기 이전에 자신의 영원한 본질 가운데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른 신에 대한 서술이다.
자연철학(Naturphilosophie)은 이념을 시공간 내에 있어서의 자기 외화(自己外化) 내지 그것의 타자적 존재를 다루는 것이다.
정신철학(Geistphilosophie)은 자기의 타자적 존재로부터 자기에게로 돌아와 자연을 지양하고 실제적이고 자기를 인식하는 사유가 된 이념을 다루는 것이다.
논리학은 정신이 자기 안에 머묾이고, 자연철학은 자기 밖으로의 진행이며, 정신철학은 자기에로의 돌아감이다. 또한 그것은 프로클로스의 존재ον(온)-생명ζωη(조이)-정신νους(누스)의 삼항성에 해당한다.
프로클로스의 모니-프로도스-에피스트로피는 정신의 영역적 분야뿐 아니라 그것들을 형성해 가는 변증법적 운동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즉 헤겔이 말한 正-反-合 또는 즉자卽自-향자向自-즉자향자 卽自向自 는 바로 프로클로스의 과정적 변증법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둘의 다른 점은 일자에게서 유출에 대해 헤겔은 자기 전개이지 프로클로스처럼 자기 발전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 다른 점은 프로클로스는 일자, 이성, 영혼 등 정신적 원리들만 실체로 인정하고 자연과 질료의 세계는 동떨어져 있지만, 헤겔의 체계에서는 정신은 객관적 형태로 자연 속에서 자기를 계속 전개하고 발전시켜 간다고 본다.
그리고 프로클로스의 삼항성에서 가운데 있는 계기는 중계자 역할을 하지만, 헤겔에 있어서는 제2계기는 항상 제1계기와 대립하고 반립 한다는 논리가 있다.
하여간 정신은 자기에게로 회귀한다.
이 회귀는 정신의 자기 발전에 한 단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목적이며 최종 목표이다. 자기에게로 정신의 귀환은 역사의 끝이고 그것은 역사의 피안이다. (신선도통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귀환은 무한자 내에서 유한자를 지양하고 극복하는 것이고, 또 부정의 부정이다. 이 귀환에서 정신은 고요함(Ruhe)에 머문다고 한다. 이 '고요'의 개념은 역시 플라톤 이후 플로티노스와 프로클로스를 거쳐서 내려온 이념이기도 하다. 그러고 '이 신안에서의 고요함(Ruhe in Gott)이 프로클로스에게서 영혼 및 이성의 신관의 하나 됨으로 구원을 의미한다면, 헤겔에게서 그것은 일종의 역사구원이다.
헤겔은 결론적으로 프로클로스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 정상에 서 있다고 하였고, 그 철학함은 전 중세를 통하여 내려왔음은 물론 그 후시대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분명한 점은 플라톤 사상이 헤겔에게 올 때 무엇보다도 프로클로스의 통로를 통해서 왔다는 점이다.
헤겔은 인류 사상사에 세 가지 매듭을 이루고 있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것은 곧 플라톤-프로클로스-헤겔 자신일 거라고 했다.
<신플라톤주의 마무리>
3세기~19세기 동안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가장 큰 발원지는 플라톤 철학이었다. 거기다가 파타고라스의 사상에 담긴 오르픽 신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다신론적인 동방의 갈대안 신탁, 그리고 유대교와 애굽(이집트)의 신화들이 신플라톤주의 사상의 샘을 이루었다. 그 샘물이 서양사상을 풍성하고 깊은 강물을 만들게 되었다.
그 물결이 기독교 부정신학과 명상과 탈아의 신비주의 신학이 형성되었고, 또 회교의 사상도 그 수분으로 발아하고 꽃이 피게 되었다.
그 영향은 東으로는 콘스탄티노플과 바그다드, 西로는 파리와 코르도바, 北으로는 영국, 南으로는 알렉산드리아에 이르기까지 아프로유라시아에 걸친 광대한 신플라톤주의 제국을 형성했다.
서양 사상의 큰 줄기를 기독교를 제외한 철학으로 한정시켜 볼 때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신플라톤주의를 들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어쩌면 그간 학자들의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신플라톤 주의가 가장 우세했던 사상이었을지 모른다.
신플라톤주의 사상의 역사는 프로클로스의 철학을 중심으로 한 영양사로 플라톤주의 와는 다른 독립성을 더욱 유지하여 왔다.
프로클로스는 기독교 세계가 사상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장악하기 이전에 고대 희람의 이교사상을 고수한 마지막 주자였고, 그의 사상은 그 이전의 제반 철학과 종교사상을 망라하여 용해시킨 용광로와 같은 희랍정신의 대표 격이었다.
프로클로스의 사상은 아테네에서 나와 알렉산드리아로 갔고 거기에서 비잔틴 제국과 아랍세계로 건너갔다가 중세에 파리에 체류하고 그 후 중세 후기에 독일로 갔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와 갔다.
중세로 넘어가기 전 프로클로스의 사상은 위디오니시오스와 프로클로스의 <원인들의 책>을 통해서 익명으로 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각기 기독교와 이슬람에 등장하여 교리의 구성과 우주관의 수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였다.
프로클로스의 글들은 여러 학자들이 편집 번역을 했고, 중세 후기와 근세 초기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신비주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하면서 범신론에까지 이르렀고 르네상스의 피렌체를 프로클로스의 도시로 만들었다.
근세 말 헤겔의 철학에 이르러 그 절대정신의 관념론적 체계와 변증법에 골격을 제시함으로써 영향사의 대미를 장식한다.
프로클로스의 신플라톤주의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선 불가언적으로 불가지적인 神적 실체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말함을 부정신학(theologia negativa)의 길을 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영혼은 육체와 물질세계에 대한 그것의 관심에서 떠나 명상(수행)을 거쳐 신적 일자와 합일될 수 있으며 되어야 한다는 신비주의사상을 전개했다.
그것은 일자 안에 머묾 - 일자 밖으로 나옴 - 일자에게로 돌아감이라는 엄밀한 삼항론(Trias)으로 헤겔의 변증법을 구성시켰고, 다른 한 편에서는 신비적이고 이교적인 주술실행을 권장한다.
삼항론에서 일자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신(일자)과 하나가 된다는 내용을 보면 천부경을 생각하게 한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에서 말하듯이 신에게서 인간이 나왔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신성이 들어 있다는 범신론은 천부경의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과 같고 수행의 과정을 통해서 결국 一終無終一 즉, 신에게로 돌아가는 구도인 것을 보면 헬레니즘 시대에 인도의 흰두교 또는 불교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믿음이 생긴다.
또 신플라톤주의는 후기 고대에서의 우주관, 중세에서의 신학적 방법론, 수도원적 삶에서의 명상론, 비잔틴 제국에서 성상파괴와 관련된 물질관, 근세 초기에서의 영혼관, 헤겔에서의 역사관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프로클로스는 서양 사상의 대부분을 자기의 시대로 만든 위인이었다.
마무리 하고 나서도 신플라톤주의에 대해서 큰 궁금함은 남게 된다.
과연 신플라톤주의의 "일원론과 윤회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이는 모든 철학자들이 다 가지고 있는 의문점일 것이다.
나의 결론은 헬레니즘 시대에 인도 또는 동방에서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흰두교가 되었던지 불교가 되었던지 신플라톤주의 형성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한다.
부처님의 할머니가 그리스 사람이었을 정도로 교류가 많았던 시기여서 도통수행문화를 가진 인도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