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이탈리아/시칠리아

팔레르모 보물찾기

by 두루가이드 2012. 9. 8.

 해양광장은 오래전엔 바다였다. 항구의 일부였는데 매립해서 공원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거대한 무화과 나무가 공원을 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무화과 나무)

 

이 쌍둥이 건물 사이는 팔레르모로 들어오는 문이 있었다.

건물은 세관이었다.

 

중요한 박물관이 문을 당아서 잠시 골목을 다녀 본다.

 

그리고 문을 연 성당내부로 들어갔다.

부끄러운 분수옆에 있던 산타 카타리나 성당이다.

 

 

내부의 화려함이란!

건물이 14세기 만들어 졌지만 내부는 18세기 바로크로 장식했다.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화려한 바로크 장식의 건물이다.

천정화며 벽이며 간에 아주 섬세한 장식을 했다.

 

 

자세히 보면 색이 다른 돌 하나하나를 박았다.

전체 화려함은 몰레알레 성당에 뒤지지 않았다.

 

성당에 개가 불을 들고 있는 문양도 처음본다.

 

 

묘하다.

해와 달이 있고 좌측과 우측이 각각 다른 배경을 하고 있다.

서양에서 종교적으로 좌측과 우측은 항상 다른 모습이지만  동양은 음양을 상징하는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수를 상징하는 분수가 나오고 있어서 신비주의 적인 색채가 짙다.

마치 연금술 처럼.

 

해양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라 배의 조각이 매우 독특하다.

다른 곳엔 찾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두 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를 보러 갈 시간이다.

바로 팔레르모의 대성당이다. 성모승천 성당이다.

역시 복합 양식을 가지고 있다.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건물위에 12세기 아랍스타일로 만들었다.

그러나 건물을 자주 새롭게 만들어서 원래 모습은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이런 고딕 정문을 가장 볼만한 것이로 지정한다.

만들려고 애쓴 흔적은 봐줄 만하다.

15세기 만든 것으로 성경속의 내용과 시의 문장이 새겨 있다.

작은 둥근 지붕은 오리지날 설계에서  급격하게 건물을 변화시킨 흔적이다.

 

작은 얼굴이지만 표정이 각기 다른 얼굴이 유럽의 특징을 말해준다.

같은 것을 절대 안 만들려는 그런...

 

고딕스타일 아치 문 아쪽에 15세기 나무 문짝이 버티고 있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유럽 여행은 성당에서 시작해서 궁전을 거쳐서 성당에서 끝난다.

유럽의 역사는 "킹덤 오브 더 가톨릭"이기 때문에

모든 경제와 문화를 성당에 집중했던 곳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중심도 기독교 중심이다.

오죽하면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유럽의 역사는 원재료부터 변질되었다.

역사를 쓴 사람들은 운둔자였던 수도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현장에 있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쓰겠냐라는 것이다.

좌우간 16세기까지 기독교 중심역사였고 서열도

신>교황>추기경>대주교>수도원장>사제>황제>왕...........이런 순서였다.

 

 

내부에 보석관에 들어가면 스페인 아라곤 출신인  콘스탄스의 왕관이 전시 되어 있다.

그녀는 헝가리 왕비 였다가 왕이 죽은 후 독일 호헨슈타우펜 왕가로 시집을 가서 왕비가 되었다. 

남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을 때 황제비가 되었다.

그의 아들은 막강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레데릭 2세이다.

 

음침한 지하엔 석관들이 전시 되어 있다.

 

아라베스크한 문양이 어딜가나 눈에 뜨인다.

아랍풍 십자가라 독특하다.

 

사진으로 보니 잘 정돈되어 보인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공예수준을 보여주는 도포.

로저2세 때 만든 화려한 도포는 빈 왕실로 가져가서 보물 창고에 전시중인 것도 있다.

 

실크와 은으로 만든 작품이 많은 것은 이 사람들의 습관이었나?

 

금은 보화로 장식된 성채는 어딜가나 화려하다.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된 장식품들도 정교하긴 마찬가지다.

 

성당에 들어서서 좌측엔 유명인사들 관이 전시되어 있다.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프레드릭 2세

(아주 강력했던 황제. 왕관의 주인인 콘스탄스 왕비의 아들)의 관이 있는가 하면 그림처럼

시칠리아 최초의 왕인 로저2세 (11세기-12세기)의 관이 바로 옆에 있다.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그리고 튀니지를 정복한 인물이다.

기둥과 지붕이 화려한 모자이크로 덮여 있다.

 

성당을 들어오기전 입구 왼쪽 기둥에

아주 작아서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이것은

이슬람 모스크였던 흔적을 말해준다.

쿠란의 구절이 적혀있다.

 

멀리서 전체 모습을 다시 한번 감상한다.

참 다양한 모습이 올라갔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른쪽 바로크 스타일의 둥근 지붕은 18세기에 만들었는데 자랑을 많이 하는 돔이다.

 

성당을 나와 배고품을 해결하려고 식당으로 가는 중에

노르만 왕실 앞에 있는 규모가 큰 빅토리아 광장을 통과했다.

 

 

광장 한쪽엔 팔레르모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서있다.

팔레르모에 왔다면 반드시 이곳 내부는 봐야 한다.

로마의 요새위에 11세기 아랍인들이 궁전을 세웠다.

그리고 시칠리아 최초의 왕 로저2세가 확장해서 더 화려하게 만들었다.
(그 화려함을 시칠리아 다음 편에 보여주겠사와요)

 

왕실로 가는 동안 호객행위를 하는 식당이 있었서 지하로 내려갔다.

처음엔 이쁜 여자애가 호객하더니 돌아 왔을 땐 순박한 청년이 있다.

가격을 따져보니 옵마나(옵마니 반메훔이 나온다) 싸다. 

분위기도 그럴싸하고

 

물도 주고 나오는 음식도 꽤 좋았다.

물, 셀러드, 빵, 오징어 튀김 등이다.

나는 뭔가 모자란다 싶어서 핏자를 시킨 기억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