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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

아름다운 다리와 평화의 도시 모스타르

by 두루가이드 2012. 1. 12.

사라예보에서 모스타르(Mostar) 가는 길은 디나릭 알프스를 넘게 된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또는 슬로베니아에서 보는 경관과 크게다르지 않다.



암반으로 둘러싸인 계곡을 지나게 되면 색다른 디나릭 알프스의 모습에 살짝 감탄.



중국의 지방 산악 지역에 와 있는것 같기도 하고
스위스의 알프스 지역을 지나는 것 같기도 하다.



물과 산의 경계선에서 도로는 달려야 되는데 바위가 가로 막은 곳은 여지 없이 뚫리고



그런 인공과 자연의 조화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모스타르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만나는 장면은 보스니아 내전의 상처이다.




전쟁이 끝난지 17년이 지났지만 그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슬람 지역과 가톨릭 지역이 나뉘어 진 이곳은
서로의 욕심 때문에 전쟁이 났다. 가톨릭측에서 먼저 공격을 해서
수백년간 평화과 공존의 상징인  다리까지 대포로 파괴시켰다.



오스만 터키에 의해서 만들어진 지역으로 가기 전에
기독교와 이슬람의 경계선이 없는 곳을 지나게 된다.
이슬람식 중세 거리이다.



멋진 다리를 만들기 전에 마치 연습 삼아 만들었다는 다리.
3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도시 답게 여기저지 물이 많이 흐른다.



유명한 모스타르 다리에서 25유로를 줬더니 정신 없는 녀석이 뛰어 내린다.
돈을 받았을 때는 세 놈이 세 군데서 뛰어 내린다더니 돈을 받고는
한 놈만 뛰어 내렸다. 사기꾼이 따로 없다. 미친넘들이라고 해야 될지.



2005년 EU연합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전쟁의 피해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이 다라를 다서 건설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다리에서 물에 뛰어드는 축제를 했다.


당대에 아치 하나로 넓은 곳을 연결한  저렇게 큰 다리는 없었다.
오스만 터키의 자랑이자 이슬람 건축 세계의 자랑이었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다리를 지키기 위해서 이스람 인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다리보다 사람이 더 유명했었는지
도시 이름이 '다리의 파수꾼'(모스타르)이다.


다리 경관을 보기 위해서 네레트바 강을 만져 볼 수 있는 곳까지 내려온다.
디나릭 알프스가 품어낸 맑은 물은 이 곳이 과거 중요한 도시가 되게 했던 이유중에 하나이다.


다리위에서 내려다 보면 다양한 모스크와 주변이 멋드러 지게 다가온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파 놓은 동굴엔 cafe가 들어서 있다.
도심에 자리하고 있지만  지나치기 십상이다.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에는 그만인 곳이다.
그래서  시켜서 마시는 것은 커피.



이슬람인들이 주로 살았던 지역으로 왔다.
지붕에 올려진 돌 기와가 이채롭다.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중심에선 다리가 보인다.


지금은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cafe그리고 식당이 주로 자리하고 있다.


다리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탑이 있다.
모두 다리를 지키는 곳이었다.


모스크 미나레트(첨탑)에서 내려다본 모습.
 네레트바 강은 흘러 흘러 크로아티아 국경 너머 아드리아 해로 나간다.


강건너 가톨릭쪽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중심에 자리한 식당이다.
유로파라는 식당은 필자가 가장 많이 다녔던 곳이다.
몇 번인지 기억도 없다. 수십번?



가는 곳마다 꼭 고양이들이 설치고 다닌다.
가페트의 느낌이 좋아서 좌우로 몸을 굴리면서 몸을 비비는 녀석.


다리가 보이는 골목엔 터키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가득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다리가 보인다.
다리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다리아래 흐르는 맑은 물과 과거의 추억이다.



악세거리가 더이상 신기한 것이 아니지만



그래서 정겹게 눈이 간다.
머풀러가 멋있고 싸서 5유로주고 샀던 것이 유일한 쇼핑이다.
서울에서 하고 다녔더니 모두가 탐냈는데 서울서는 보기 힘든 명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