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2016.06.03 12:46

EBS테마기행 <지중해의 푸른전설 몰타> 재방송
일요일(6월5일) 오후 5시35분부터 4부연속 방영 합니다.

 

<몰타의 베벌리힐스 임디나Mdina>

몰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가 있는 곳.

약 4,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곳 임디나로 향하는 길에 수로교를 만난다.

임디나에서부터 발레타까지 이어진 수로교는 오래전 물을 공급하던 시스템이다.

비록 16세기에 만들었지만 마치 2,000년이 넘는 로마의 유적처럼 보인다.

 

 

먼 발치에서 보이는 임디나.

몰타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만들어진 성채도시.

로마 이전 페니키아 인들이 살기 시작한 곳으로 로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약 4,000년의 역사를 가진 장소에 만들어진 견고한 성채도시 임디나(Mdina)

 

아랍이 몰타를 차지한 시절 로마시대 도시를 둘로 나눠서 도시를 뜻하는 임디나(Mdina)와 주변을 뜻하는 라바트(Rabat)로 만들었다.

그리고 성요한 기사단들이 16세기에 들어온 후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을 막기 위해서 성벽을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도시 입구에서 만나는 지도.

빨리 걸으면 10분이면 다 둘러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내부엔 발걸음을 잡는 것들이 많다.

아직도 몰타의 최고 부자들, 성요한 기사단들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몰타의 버벌리힐스라 부른다.

 

전망이 좋은  cafe에서 맛있는 딸기케이크를 먹을 수도 있다.

커피는 대체적으로 맛있다.

이 cafe는 이 곳 시장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도시 인구가 몇 백명 안되는 곳이라 시장이라고 하긴 좀 그렇긴 하지만...

 

그 cafe에서 보는 전망도 좋다. 몰타의 3/4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들어선다.

 

다들 놓치는 성문 안쪽 부조.

가운데는 성 바울이고 좌측은 바울이 있을 때 로마 총독, 그리고 우측은 가슴이 잘려 나가는 고통을 받은 성녀 아가타(Agatha).

서기 60년 성 바울이 도착했을 때 독사에게 물렸는데 그 독사를 잡아서 불속에 던져서 죽였다고 한다. 성 바울은 독사에게 물렸지만 이상이 없었는데 그 장면을 묘사한 부조이다. 우측은 시칠리아 태생으로 자신이 잘린 가슴을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성녀 아가타. 시칠리아 출신으로 추방당하고 몰타의 라바타에 짧게 사는 동안 아이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쳤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칠리아 돌아 갔다가 붙잡혀서 가슴이 잘리는 고문 당하고 죽었다. 

 

건물들이 마치 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지만 귀족의 주택이다.

 

골목 담벼락 곳곳에 걸려있는 작은 표지판.

거주자들을 위해서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그러나 1년 중 딱 이틀간, 임디나는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으로 변한다.

골목 곳곳에서 벌어지는 중세 결투, 여러 기사단들의 행렬, 중세 음악, 대장간 망치소리, 사람들이 다니면서 내는 소리,

기타 엄청나게 몰려드는 관광객들...

좁은 도시가 비좁아 터질 것처럼 사람들이 꽉들어찬다.

 

가장 큰 광장이 대성당 광장이 그 중심이다. 

규모가 큰 건물에 사람들이 몇 명 살지 않기 때문에 약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축제를 만든다.

 

 

도시의 한쪽에선 아이들이 중세 복장으로 축제를 즐긴다.

 

중세 스타일로 레이스틑 짜는 연인

 

중세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감옥과 고문실 박물관 앞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당시의 기분을 느껴보게 한다.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

길을 잃을 염려 없이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면 중세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로 만난다.

아프리카, 중국, 유럽 악기로 구성된 3인조 밴드가 구수한 음악을 들려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비밀댓글입니다

    2016.06.05 20:24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정현

    동생이랑 몰타편 보고 내년에 꼭 둘이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
    난생처음 둘이 가보는 여행이라 준비하기도 전에 설레네요! 임디나 축제 기간은 언제쯤인가요? 4월 18, 19일로 듣긴했는데 맞는지요?

    2016.06.13 16: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몰타2016.06.02 08:11

 

EBS세계테마기행 <지중해의 푸른 전설 몰타> :

 

예고 : https://youtu.be/-mrJ-3ElRIo

 

딱 10분만 보여 주는구만요 ^^;;

일요일 오후 5시35분부터 4부 연속 재방송 한답니다.

 

 1부.  중세 성채 도시를 거닐다,발레타

 http://www.ebs.co.kr/tv/show?courseId=BP0PAPD0000000013&stepId=01BP0PAPD0000000013&lectId=10518388

 

2부. 지중해를 온 몸으로 느끼다, 고조

 http://www.ebs.co.kr/tv/show?courseId=BP0PAPD0000000013&stepId=01BP0PAPD0000000013&lectId=10518664

 

3부.   이토록 눈부신 파랑, 코미노

http://www.ebs.co.kr/tv/show?courseId=BP0PAPD0000000013&stepId=01BP0PAPD0000000013&lectId=10518932

 

4부 : 중세로의 시간여행

http://www.ebs.co.kr/tv/show?prodId=391&lectId=10518932

 

 

 

몰타의 대표적인 곳 아주르 윈도우(Azur Window)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TAG 몰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몰타2016.06.01 07:30

<몰타에선 해산물 파스타>

 

몰타에서 뭐를 먹을까?

전통적인 토끼 요리도 있지만 (최근에 몰타에선 토끼요리 잘 안먹는다.)

몰타에 있는 동안 난 하루 한끼는 반드시 파스타를 먹었다.

특히 우리보다 훨씬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진 해물파스타.

밀가루가 달랐고, 해산물이 달랐다고, 치즈와 올리브 오일이 달랐다.

소화는 너무 잘 되어서 살이 빠지는 듯 했다.

무엇보다 싸고 맛있고 양이 많았다.

총 16일 있는 동안 총 9곳의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었는데

딱 한 곳(서비스 불량)을 제외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해산물(Frutti Di Mare) 파스타를 시키면 잘 나왔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몰타에서 생산하는 신선한 치즈가 있어서 식욕을 돋았다.

 

몰타 파스타의 특징은 문어와 신선한 왕새우를 하나 이상 줬다.

 

 

봉골레 스파케티를 시키면 바지락 칼국수 먹는 수준으로 조개가 많았다.

 

재료도 다양한 해물 파스타

 

종목을 바꿔서 해물 핏자를 시켜도 재료는 비슷비슷하면서 양이 많았다.

 

간혹 주방장 매뉴인 리조또를 시켜도 맛있었다.

쌀이 잘 익혔고 해물이 풍족하게 들어갔고 어떻게 요리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맛있었다.

 

몰타는 어떤 해물 요리를 시켜도 좋다.

문어와 관련된 요리를 시켜도 좋고 생선에 관련된 요리를 시켜도 좋다.

아랍의 영향으로 양고기도 예술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몰타2016.05.29 03:09

제가 출연한

EBS세계테마기행 몰타 총 예고편

본방은 5월30일(월)~6월2일(목)

저녁 8시50분에 합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몰타2016.05.28 09:00

<작지만 위대한 발레타Valletta>

 

몰타의 수도 발레타

발레타의 인구는 7,000명

16세기 오스만 터키의 공격을 막아냈던 자부심이 넘친 사람들이 만들었다.

당대 최대 강국이었던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을 막아낸 것은 큰 사건이었다.

사실 오스만 군대가 쳐들어 온 이유는 프랑스 출신 기사단들이 튀니지의 한 마을을 약탈하고 몰살 시켰기 때문이다.

오스만 군대는 복수를 하려고 시칠리아와 몰타를 애워쌌다.

숫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고대도시 임디나의 성채에서 힘겹고 지겹게 싸워서 이겨냈다.

 

(발레타의 전경.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작은 요새와 병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16세기 터키와의 전쟁이후 4년 만에 완공시켰고 지속적으로 건물을 지었다.)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 프랑스 출신 기사단장 잔 드 발레테 Jean De Vallstte 는  몰타를 좀더 잘 방어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동상은 도시 설계도를 주는 모습니다. 얼굴이 매우 피곤하게 찌든 모습이다. 전쟁에 지쳐버린 상태에서 도시가 완공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

 

(발레타를 만든 기사단장 발레테의 이름이 최근에 바뀌었다. 정확하게 고증이 된 이름은  쟌 드 발레테-Jean De Vallette 이다.)

 

(발레타에 먼저 도착하면 자유의 광장 또는 카스티아 광장에 이른다. 그림에서 카스티야 광장은  스페인의 카스티아와 레온 그리고  포르투갈 언어권에서 온  기사단들이 사용했던 오베르쥬 Auberge -일종의 궁전 같은 숙소-가 있다. 지금의 모습은 바로크 시대에 만든 건물로  몰타에 있는 건물중 가장 섬세한 바로크 양식이라고 이야기 한다. 현재는 수상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을 만든 사람의 모습이 입구 위에 놓여있다. 18세기 포루투갈 출신 그랜드 마스터 <핀토 마누엘 핀토 다 폰세카> 이다.)

 

(나폴레옹이 침공한 이후 그 성 요한 기사단의 본부를 해체 시켰다. 기사단들은 종교적인 목적이외는 활동할 수 없었다. 현데 몰타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의 본부는 로마에 있다. 사진은 몰타 기사단 연락 사무소이다. ) 

 

(발레타의 중앙로에 해당하는 공화국 거리는 매일 사람들로 넘쳐난다. 다양한 물건을 파는 곳들이 즐비하면 식당과 cafe 박물관이 있으며 대성당,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는 그랜드 마스터 궁전이 있고, 법원 청사, 문서 보관소등이 이 거리에 있다.)

 

(몰타를 특징 짖는 발코니. 아랍의 지배를 받았었고 아랍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 흔적이 언어와 문화에 많이 남아 있다. 발코니는 여자들이 밖으로 잘 안나가는 아랍 문화의 상징이다. 사진에서 좌측은 고고학 박물관이다. 그외 아랍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것은 언어이다. 단어와 문법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Fun Train :  오스트리아 수입한 차로 시내를 한 바뀌 돈다. 개인적으로 온 사람들이라면  Fun Train 이용 할 것을 권한다.)

 

(몰타의 센프란시스코)

 

(성 요한 기사단들의 공동 대성당. 임디나에 대성당이 있지만 이 곳도 대성당으로 승격을 시켰줬기 때문에 공동 대성당(Co-Cathedral)이 되었다. 내부가 요란하게 번쩍 거린다. 8개의 언어권에서 온 기사단들이 자금을 내서 만든 성당이며 그 들을 위한 채플(부속예배실)이 각각 8개가 있다. 성당 바닥엔 약 400명의 기사단들이 묻혀있다.)

 

(그림에 그림자를 두어서 마치 창빡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서 그림자가 생긴 것 같은 입체적인 효과를 내었다. 이것이 바로크의 특징이다.)

 

(성당의 각 부분은 기사단들의 지출한 돈으로 만들었는데 매표소가 있는 입구 쪽은 스페인 출신 그랜드 마스터에 의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그 마스터의 이름인 '니콜라 코토네'의 인이셜인 NC를 벽면 가득 새겨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에서도 보이는 코토네(코튼: cotten)상징인 목화 나무 장식도 보인다.)

 

(몰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몰타 십자가이다. 성 요한 기사단들의 십자가이기도 한데 이 8개의 가지가 벌어진 형태는 의미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성요한 기사단 구성원들이 유럽의 8개의 언어권에서 왔기 때문에 각각 8개의 언어권 기사단을 상징한다. 그것들은 각각

1. 프로방스, 2, 오베르뉴, 3. 프랑스, 4이태리, 5. 아라곤(나바레) , 6.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 , 7.  독일 , 8. 카스티야+포르투갈+레온 이다.

몰타 십자가에 담긴 또 한 가지의 상징은 성경 마테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산상수훈에서 8개의 복(福)을 설파한 것을 의미한다.

 

(이 성당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면 이탈리아가 낳은 바로크 시대의 천재 화가 카라바죠의 그림을 보기 위함일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처형 The Beheading of Saint John the Baptist>이라는 그림을 직접 와서 그렸는데 그가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큰 그림(520cm x 361 cm)이자 유일하게 서명이 들어간 그림이다 그가 몰타까지 와서 그림을 그린 데에는 그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천상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지만 싸움을 좋아하고 폭력을 쉽게 저질렀다. 그림보다 밖에서 보내는 일이 많았던 그는 어느날  사이가 껄끄러웠던 친구와 운동을 하다 다툼이 생겨서 살인을 하게 된다. 성화를 너무나 잘 그렸던 그에겐 교황청을 비롯한 종교계에 힘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너무 큰 죄를 저질러서 몸을 피해서 나폴리에 갔는데 유명 인사가 왔다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나폴리에서 편하게 지낼 수 도 있었지만 몰타로 향했다. 몰타에서 그림을 그려주면 기사 작위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였다. 기사 작위를 받으면 사면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몰타에서 성 요한 기사단들을 위해서 <세례자 요한의 처형>이라는 그림을 그려 줬을 때 당시 그랜드 마스터는 그에게 기사 작위를 내려 줬다. 그러나 그 넘의 성질 머리 때문에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기사에게 폭력을 가했고 결국 빅토리오사 끝에 있는 성 천사의 성에 감금되었다. 감금이 된지 얼마 후 가까스로 시칠리아로 탈출했다. 그리고 다음날 기사단에서 카라바죠기사 작위를 거두어 갔다. 카라바죠가 시칠리아의 지인 집에 있을 때 괴한 서너명에게 얼굴이 떡이 되도록 맞아 반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그 괴한들이 몰타 기사단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중세 때 종교화를 그리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했어야지만 되었는데 그는 세레자 요한이 흘리는 피로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결국 교황청에 가서 사죄를 받으려서 자신의 모습이 담긴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시칠리아에서 그렸다. 머리가 잘린 골리앗은 자신의 얼굴이다. 이는 자신의 죄에 대한 참회를 뜻한다. 그리고 배를 타고 나폴리로 갔을 때 체포되고 말았다. 그림은 배에 실려 있었고 체포된 카라바죠는 나폴리에 남게 되었다. <골리앗을 머리를 든 다윗>을 받아든 교황은 카라바죠를 사면해 줬지만 병을 얻고 있었던 카라바죠는 이미 죽고 없었다. 결국 마지막 그림은 그의 죽음에 대한 예언이 되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처럼 말이다. )

 

****카라바죠의 본명은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미켈란젤로 메르시 다 카라바죠"이다. 그의 이름은 카라바죠라는 마을 출신 미켈란젤로 메르시라는 의미이다. 당시 태어난 동네 이름으로 부르던 시기여서 카라바죠라고 불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15-16세기)도 당대엔 부오나로티라고 불렀다. 그러나 카라바죠와 구별하게 위해서 후대에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다. 카라바죠는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가 죽은 뒤 몇 년후에 태어 났는데 마치 미켈란젤로가 환생 한듯 이전 천제들의 그림을 능가했다. 게다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인 빛을 그렸다. 연극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듯한 효과로 사물을 강조했다. 훗날 루벤스, 베르메르, 렘블란트, 벨라스케즈와 같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공화국 거리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문서보관소 앞이다. 비토리아 여왕의 동산이 있어서 빅토리아 광장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광장 맞은 편에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cafe 코르디나가 있다. 몰타기사단들의 보물창고 였지만 나폴레옹 이후 몰타 기사단의 쫒겨난 후 cafe로 변한 곳이다. 광장에 있는 자리도 전부 cafe 코르디나에서 운영하고 있다.) 

 

(내부가 근사하기 그지 없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인다.) 

 

 

(때 아닌 바람이 불어서 따뜻한 카푸치노를 시켰다. 맛이 기막히다.)

 

(그리고 달콤한 케익. 먹어보지 않고 말~을 하지 마세요.) 

 

(cafe를 나설 때 다시 한 번 감상을 한다.) 

 

(발레타를 나오기 전에 다시 찾아간 어퍼 바라크 가든을 찾았다. 이탈리아 기사단들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던 곳으로 몰타 최고의 전망을 가졌다.)

 

( 먼 바다 쪽과 발레타를 바라 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

 

(살루떼 대포  맞은 편으로 바다로 뚝 튀어나온 두 도시 빅토리오사와 생글레아가 있다.  좌측 빅토리오사에 있는 천사의 성이 바로 카라바죠가 감금 되었던 곳이다. 대포는 하루 두 번 발사 한다. 12:00와 16:00. 12시는 정오를 알리는 대포이고 오후 4시는 이 곳을 오가는 크루즈 선들을 위한 대포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여지 없이 맛있는 해물 파스타를 먹으며 야경을 감상 한다. 몰타는 해물 파스타가 가장 맛있는 나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6.06.09 12: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몰타2016.05.24 00:29

<황조롱이 한 마리와 바꾼 몰타>

몰타는 성 요한 기사단으로 유명하다.

가는 곳마다 성요한 기사단들 이야기로 들석이고 기사단 이야기를 빼면 할 이야기가 없는 곳 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만큼 성요한 기사단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탈리아 아말피에서 시작된 기사단들은 십자군들을 구호해주는 역할로 예루살렘까지 갔던 사람들이다.  그 곳에서 명칭은 예루살렘 병원기사단이었다.  예루살렘이 이슬람세력에 함락되자 로도스 섬으로 쫒겨나서 로도스 기사단이 되었다가 다시 이슬람세력에 쫒겨서 어부 생활을 했다. 16세기 오스만과 전쟁을 많이 치룬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싸움깨나 한다는 병원기사단 출신들에게 지중해의 한 점 같은 몰타 섬을 줄테니 거기 살면서 오스만을 경계하게 했다. 섬을 주는 조건은 매년 황조롱리-팔콘(Falcon) 한 마리를 스페인 왕실에 상납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물 한잔. 유럽 왕실에 매사냥이 시작된 것은 유럽의 오랜 전통이 아니고 기마 유목민족이 들어오고 나서부터이다.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서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매사냥을 즐겼다.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지만 독수리로 사냥을 한다. 전통은 매이다. 유럽에 진출한 훈족이후부터, 불가족, 유연한국 아바르족, 헝가리 마자르족, 돌궐족, 몽골의 왕들을 전부 매사냥을 즐겼다. 유럽 왕실에 매사냥의 전통을 이런 기마민족들에게 전수 받은 것이다.

이 후 유럽 왕실은 앞다투어 매사냥을 즐겼다. 합스브르크 가문의 카를 5세 역시 매사냥을 즐겼던 사람이다. 그 중에서 하늘에 떠서 같은 자리에 꼼짝 않고 있을 수 있는 황조롱이(Falcon)는 아주 특별한 새였다.

 

(황조롱이-몰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임디나Mdina 에서 만난 팔콘-황조롱이)

 

(몰타에서 나오는 와인 중에서 황조롱이 표도 있다.  황조롱이가 하늘에 떠서 꼼짝 않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팔콘과는 다른 매-호크. 오래전 몰타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매를 기사단들에게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임디나Mdina 중세 축제 때 다양한 모습 장면 중에 매를 가지고 나와서 방문객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한국과 일본은 매사냥이 인기였다고 하는데 스페인에서도 매사냥이 유행해서 심지어 섬하나를 줄 정도였으니...그 시대의 최고의 오락거리는 매사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흥미로운 글 잘 봤습니다.

    2016.05.24 01: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직접적으로는 말타고 사냥하는 것이었는데 사냥하면서 매를 항상 동반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매사냥에 열중했던 시대죠. 유럽의 각국 박물관에 가면 특히 좀 규모가 있는 국가의 무기 박물관 같은 곳에 가면 박재된 황조롱이를 아주 많이 볼 수 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 빈 무기박물관이죠.

      2016.05.24 15:09 신고 [ ADDR : EDIT/ DEL ]
  2. 비밀댓글입니다

    2016.05.24 12:24 [ ADDR : EDIT/ DEL : REPLY ]

몰타2016.05.20 17:30

<거대한 회랑, 대 병실>

몰타에 갔을 때 멋진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자주 출입하는 장면을 본 곳이 있었다.

궁굼해서 들어가 봤더니 규모에 놀래자빠진적이있다.

몰타의 자랑 중에 하나인 신성한 병원-사크라 인페메리아 (Sacra Infermeria 또는 Holly Infirmary).

지금은 지중해 컨퍼런스 센터(Mediterranean Conference Centre)로 활용하고 있다.

16세기 성요한 기사단이 병원으로 만든 것으로 155미터 길이의 홀(예전에 대병실-Great Ward)을 가지고 있다.

병원은 18세기까지 유럽에서 앞선 곳이었고 1920년도까지 사용했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홀에 속했고 유럽에서 가장 멋진 실내 중에 한 곳이다.

사진은 대 병실의 모습으로 주로 연회장소로 주로 쓰인다.

내부엔 동시에 여러개의 연회를 할 수 있는 홀들이 있고, 전시회 공간, 국제회의, 극장식 쇼를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중심 대강연장엔 1,500석 좌석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 각종 행사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155미터 길이의 대병실-Great Ward)

 

(각종 연회와 행사가 열리는 곳)

 

(1906년 대병실-Great Ward) 

 

(위는 지금의 대 병실 모습으로 천장의 나무는 같은 형태임을 알게 한다.)

 

(보수를 말끔히 해서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현대식 오디토리움-대강연장은 1,500석 규모이다. 음악회와 같은 행사도 열린다.) Mediterranean Conference Centre

(발레타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세인트 엘모 요새 입구쪽이자 대항구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 Mediterranean Conference Centre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몰타2016.05.20 07:30

<세계에서 가장 큰 카푸치노 잔을 만든 거인들의 신전>

몰타에서 가장 흥미있고 언제라도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거석신전들이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고 오직 몰타에만 이런 형태의 유적이  있다.

5,600년전부터 시대를 달리하면 존재해온 이런 신전들이 몰타에만  17곳이나 된다.

이집트 대피라미드보다 오래되었고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오래되었다.

금속이 없었던 이 곳에서 돌을 다듬으려면 이 지역에 나는 돌보다 더 단단한 돌을 수입해서 사용해야만 했다.

그 중에 옥돌 처럼 보이는 돌이 있었고, 흑요석을 수입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비록 제주도 크기의 1/6정도 밖에 안되지만 거석 신전들 때문에 거인들의 섬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가장 잘 보존이 되어 있다는 하자르 임-Hagar Qim은 <기도하는 자들의 돌>이라는 의미이다.  약 5,600년에서 5,200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몰타의 거석신전 중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사암으로 만들어진 신전이어서 풍화에 쉽게 마모가 되지만 약 5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풍화에 견디어 냈다. 더 이상의 마모를 막기위해 몰타섬에 있는 모든 유적은 천막을 씌웠다. 고조섬 유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유적으로 입구가 직선으로 반대편까지 뚫려 있는데 춘분과 추분 때 해가 일직선으로 관통한다. 몰타에서 발견되는 거의 모든 신전의 입구는 해가 춘분과 추분 때 정확하게 관통하도록 설계를 했다. 태양의 에너지가 들어오고 안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춘분 때 씨를 뿌려서 곡식이 잘 자라길 기원하는 의식을 했을 것이며, 수확을 한 후 추분 때 감사의 의식을 했을 것으로 ㅏㅇ상할 수 있다. )

 

(하자르 임을 밖에서 보면 거대한 돌을 잘라내서 만들었다. 넓적한 돌은 가로X세로 = 6.4mX3.0m이며 무게가 20톤이나 나가는 것으로 몰타에 있는 신전을 만든 돌 중에 가장 무겁다.)

 

(하자르 임 외벽을 돌다보면 담벼락이 아닌 서 있는 돌들을 만나게 되는 의미에 대한 해석만 있고 정확한 것은 추정할 뿐이다. 재단석과 같은 모습인데 가운데 작은 돌은 여자을 상징하고 큰 것은 남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동양인의 눈에 보기엔 삼신처럼 보이긴 하지만. . .)

 

(하자르 임에 서 있는 돌 중 가장 키가 크다. 높이가 5.2m에 달하는데 남근석이라는 설도 있다. 그래서 남근 숭배 사상이 있었다고도 이야기 한다.)

 

(이 외에도 4미터가 넘는 돌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런 돌 내부에 여신상들이 놓여 있었다.)

 

(하자르 임 직선 통로의 모습. 서있는 거대한 돌들 사이로 들어가면 방들이 있다.)

 

 

(거의 모든 유적에는 반원형 방들이다. 크로바  모양으로 방들이 만들어졌는데 각각의 방은 용도가 다르다.)

 

(이곳이 사제가 있어던 가장 중요한 방으로 여긴다. 지붕이 있었던 곳이다. 벽면에 보이는 구멍이 뚫린 돌을 통해서 하지(夏至) 때 해가 뜨면 빛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몰타 거석에 산재해 있는 신전들이 단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몰타의 수도 발래타에 중심에 고고학 박물관에 가면 작은 몰타섬에 남겨진 놀라운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타르시엔Tarxien 신전의 모형으로 <큰 돌판들>이라는 뜻으로 5,600년에서 4,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4개의 신전이 있는 구조인데  만드는데 가장 시간이 오래걸린 신전이다.)

 

(몰타뿐 아니라 세계적인 미스터유적인  할 사프리에니 헤포게움 Hal Saflieni Hypogeum. 헤포게움은 그리스어로 <땅 속>이라는 의미이다. 전세계 유일한 지하 신전으로 바위를 파고 들어가서 지하 3층까지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상에서 지하 3층까지는 10미터에 달하며 총 33개의 방이 존재한다. 용도는 신전과 재단이다. 통로와 방에 조각과 채색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야기 소리가 모든 방에 전달이 되도록 설계를 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약 4,500전부터 이곳의 용도가 변경되어서 무덤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발굴 할 때 7,000구의 유골이 나왔다. 최근에 붕괴될 위험 때문에 일반인 출입은 전면 통제 하고 있다.)

 

(Hal Saflieni Hypogeum 모형도. 거미굴 처럼 복잡하게 암반을 뚫어 만든 땅속 신전의 모습. 붕괴 위험 때문에 당분간 들어갈 수 없다. 몰타에서 만난 방송인겸 가이드가 자기 할머니 집 지하에 있던 것이라고 했다.)

 

(고고학 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문양들이다. 나선형 동심원이 쌍으로 그려져 있는데 우주의 음양을 상징한다고 본다. 모든 돌에는 생명의 연속성을 상징해서 선이 끊어지지 않게 그려 넣었다.) 

 

(수천년 전에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문양이 새겨져 있다. 당대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이지만 현대에 와서 장인이 손으로 만들기 어려울 정도로 잘 만들었다. 생명의 연속성과 음양의 교합 그리고 점으로 보이는 부분은 씨앗을 상징해서 풍요로움을 의미한다.) 

 

(하자르 임에서 발굴된 풍요의 여신상들이다. 목이 있어야 할 부분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머리를 바꿀 수 있게 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자르 임 신전에서 발굴한 타의 비너스 상이다. 수천년 전 여인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다.)

 

(위의 몰타의 비너스의 뒷태인데 곡선이나 근육 뼈를 표현하는 것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하 신전에서 발굴한 또 다른 작품인 잠자는 여인.  여인의 잠자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은 조각으로 반나체의 여인이다. 잠자는 여신이라 하기도 하고, 영원히 잠든 여신으로 보기도 한다.)

 

(식물의 씨앗과 식물이 자는 것을 표현한 이 돌기둥은 하자르 임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돌의 용도는 동물을 희생할 때  

썼던 용도로 추정하고 있다.)

 

(돌물의 그려진 석판들이 발견이 되었다. 수천년전 사람들이 신전 재단에 재물로 올렸던 동물들 또는 동물들을 많이 사냥하게 해 달라고 신에게 빌었던 흔적으로 보인다.)

 

(하자르 임에서 발굴한 것으로 지금까지 본 세계에서 가장 큰 카푸치노 잔이다. ^^;; )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서 잠시 후대폰 사진으로 담았다. 몸뚱아리가 들어가서 목욕을 해도 될 만큼 크다.)

 

(몰타에 있는 고대 거석 신전들은 대부분 비옥한 땅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지만 바다에서 접근이 매우 용이한 지역에 만들었다.)

 

 

(하자르 임보다 조금 낮은 지역에 자리한 임나드라Mnajdra 신전은 <보다>라는 의미이다. 멀리서 보이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잘 놓여진 길로 바다를 감상하면서 조금 걸으면 된다.)

 

(천막 가까이 가면 절벽 바로 위쪽에 자리한 신전을 마주한다.)

 

 

 

(굴골진 지형을 평편하게 만들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그땅의 모습대로 만들었다. 춘추분 때 해가 들어오는 입구가 있는 외쪽은 땅과 같은 높이에 만들었고 지형이 상대적으로 높은 오른쪽은 마치 돌을 쌓아서 높이를 균일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방이 여러곳이 있는 신전으로 바라가 직접 보이는 장소에 만들었으며 달력과 같은 흔적도 남겼다.)

 

 

(내부에서 밖으로 보면 바다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몰타 신전들을 특징 짖는 작은 홈을 판 돌들. 문양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씨앗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말끔하게 정돈한 반원형 방. 돌들을 균일하게 깎아서 틈을 두지 않고 세웠다. 즉 마주하는 면이 굴곡이 있으면 서로 아구가 맞도록 깍았는데 마치 우리의 그랭이 공법처럼 돌을 자유 자제로 다룬 흔적이 보인다.)

 

(아무렇게 만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크기와 형태에 맞추서 꽉 맞물리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전에 지붕을 씌웠음을 나타내는 조각이다.)

 

(고조섬에 있는 쥐간티야 Ggantija 신전으로 <거인 여자>를 뜻한다. 몰타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돌로 만든 신전이다. 전설에 거인여자가 살았는데 콩과 꿀만 먹고 살았으며 평범한 남자의 아이를 낳아서 길렀다. 아이를 한 손에 안은 거인 여인이 다른 한 손으로 돌을 머리에 이고 와서 신전을 만들고 풍요롭게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었다고 한다. 이 곳이 자리한 곳은 넒은 농경지가 있는 곳이며 바다에서 계곡을 따라 접근하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고조섬에 있는 신전은 아직까지 덮개를 만들지 않았다. 거대한 돌들로 벽을 쌓아서 신전을 만들었다. 무너짐 방지를 위해서 나무로 돌을 고정한 부분. 오랜 세월동안 견뎌온 서있는 돌들을 보니 당시 사람들이 굉장히 위대해 보인다.)

 

(거대한 벽면 안쪽에 크로바 잎 모양의 두 개의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재단이 인상적이면서 단순하다.  오래전엔 지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조각상이 나왔고 돌을 굴릴 때 사용했을 것 같은 둥근 돌들이 신전 주변에 많이 보인다.) 

 

****몰타의 신전들을 둘러보며 생기는 미스터리는 너무 많다. 그 중에 이 작은 섬에 왜 이리 많은 신전들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오래전 지중해가 바다가 아니고 내륙이었을 때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서 신전을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중해라는 곳은 지브롤터 해협을 막고 있는 부분이 무너지면서 대서양이 지금이 지중해로 밀려 들어와서 생긴 바다이기 때문이다. 지중해 바다 속엔 많은 도시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집트 북쪽 알렉산드리아, 터키, 그리이스에서 바다속 도시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실과 상상력이 동원되야 어렴풋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 몰타의 모습들이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조롱이 한 마리와 바꾼 몰타  (3) 2016.05.24
길고, 우아한 몰타의 자랑  (0) 2016.05.20
거인들의 신전, 미스터리 몰타  (0) 2016.05.20
몰타에서 가장 흔한 식물 케이퍼  (2) 2016.05.18
돌의 섬 몰타.  (4) 2016.05.10
푸른 몰다 (Azur Malta)  (0) 2016.05.09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몰타2016.05.18 11:30

쌉쌉한 케이퍼caper 가 흔한 몰타

몰타에서 가장 많이 본 식물을 케이퍼라는 식용 식물이다.

이 식물이 뭔지 몰랐는데 몰타에서 같이 일을 한 일본인 가이드 미야코 씨가 알려 줬다.

향신료의 일종으로 지중해 권에서 야생으로 많이 자라지만

동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태평양 권에서도 자라는 식물이다.

 

몰타의 바닷가, 마을 입구, 들판 심지어 담벼락에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작은 열매가 달리는데 열매를 케이퍼 베리(caper berry)라고 한다.

식초도 넣고 소금으로 숙성시켜서 먹는 데 좋아 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럽인들은 익숙해서 그랬는지 지장 없이 잘 먹었다.

소금에 저린 것은 짜지만 쌉쌉한 맛이 나서 먹기에 부담이 없다.

 

바닷가에 풀처럼 자라고 있는 케이퍼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열매는 강낭콩만 것이 있고 큰피클로 먹는 큰 것이 있다.

 

 

일본인들이 케이퍼를 좋아하지만 수입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서 사먹기 부담스럽다는 식물이다.

주로 생선 비린내 없애는 드레싱으로 먹기도 하고, 셀러드로 먹기도 하고, 피클로 먹기도 한다.

 

열매를 주로 식용으로 사용하지만 열매를 포함해서 나머지 부분을 약용으로 사용 하기도 한다.

뿌리껍질과 잎,열매는 풍을 제거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류마티즘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호텔 식당 아침 식사 시간에 나온 케이퍼를 한 수저 담아서 연어에 올려서 먹거나 염분 섭취용으로 먹었다.

짜지만 않는다면 먹을만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고, 우아한 몰타의 자랑  (0) 2016.05.20
거인들의 신전, 미스터리 몰타  (0) 2016.05.20
몰타에서 가장 흔한 식물 케이퍼  (2) 2016.05.18
돌의 섬 몰타.  (4) 2016.05.10
푸른 몰다 (Azur Malta)  (0) 2016.05.09
몰타의 수도 발레타(Velletta)  (0) 2013.08.12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비밀댓글입니다

    2016.05.18 13:03 [ ADDR : EDIT/ DEL : REPLY ]

몰타2016.05.10 08:00

몰타는 돌이다.

돌 많고, 바람 많고, 절벽이 많다.

석회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몰타는 가는 곳마다 돌이다.

밭을 일구기 위해서 걷어낸 돌을 쌓아서 땅의 경계선을 만들었다.

제주도와 다른 점이라면 사암이 많아서 대부분의 돌들이 노란색이다.

그리고 여러겹으로 쌓아서 돌담 폭이 넓다.

채석장에 가면 두부처럼 잘라서 쌓은 돌들을 쉽게 본다. 그리고

거의 모든 건물들은 사암으로 만들었기 대문에 선사시대 유적도, 오래된 도시도, 새로만든 곳도 다 노랗다.

 

 

 

 (5,000년 전에 만든 거석 유적. 몰타 공화국엔 5,500년 된 거석 유적에서부터 15개의 유적이 있다. 이런 형태로는 몰타에만 있다. 노란 사암으로 만들어졌는데 풍화가 심하게 이루어져서 비를 막기위해 천막을 씌웠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도 전부 노란색 사암이다.) 

 

(도시가 전부 노란 돌로 만들어져서 '노란나라'라고도 한다.)

 

(몰타의 수도 발라타의 워터프론트의 건물들도 노란 사암으로 만들어졌기는 마찬가지이다.) 

 

(몰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임디나Mdina 에서 본 주변 전경. 농경지가 생각보다 넓다.)

 

(지나는 길에 만나는 밭은 다 돌담이 쌓여져 있다.) 

 

(몰타는 그야말로 돌이 많은 돌의 섬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색다른 나라네요.잘 보고갑니다

    2016.05.10 12: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채석장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2016.05.13 14: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