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2017.01.11 03:32

<카라바지오의 걸작 이후 로마 야경>

 

개인적인 일로 찾은 로마를 마치 무교동과 명동을 다니듯이 어슬렁 거리면서 카푸치노가 맛있는 카페도 들리고 이름 모를 골목들을 다녀 봤다. 관광이 생명인 로마가 오래된 관습을 버리고 진화하는 모습에 로마가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만 다니는 길을 더 많이 만들어서 쾌적해 졌고, 친절해진 사람들과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식당, cafe, 호텔, 관광지 그리고 . . . 

이탈리아 경제가 어려워 지니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어서 사람들이 스스로 변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사실 정치로 따지만 우리나라보다 더 황당한 곳이 이탈리아 아니던가.

국회의원만(상원+하원) 945명이지만 한 번 되면 특혜는 무지막지하다. 월급이 1600만원, 야근수당 월 600만원, 대중교통 공짜, 수영장 축구경기 공짜, 명품 다이어리 지급받고, 이발이 공짜 등등 말도 못한다.

부패지수가 세계 75위. 의회는 비효율, 낭비는 최첨단. 남쪽과 북쪽은 매일 싸우고....국회의원과 지방의원들이 쓰는 비용이 1년에 90억유로(대략 11조2,500억)나 되니 국민들이 허무한 나라이다. ㅠㅠ. 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지 이상할 뿐이다. 그러니

애당초 경제가 잘 굴러갈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와 경제는 뗄 수 없는 역학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에 말이다.

가끔씩 이탈리아 길거리에서 멋진 제복을 입고 폼잡고 으시대면서 걸어다니는 고위급 경관을 보면 부패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탈리아가 도둑 천국이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음음 초장부터 너무 갓길로 샜다.

 

저녁이 되길 기다려서 콜로세움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좀 찍어봤다.

이 곳을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저녁에 나를 찍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시간을 거슬러서 방금 해가 떨어진 장면을 담은 베네치아 광장쪽으로 가보자.

무솔리니가 고대 로마의 유적지 위로 만든 길(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까지)을 따라 내려오면   

 

최고의 지배자라는 칭호를 받았던 트리아누스 황제의 마켓이 나온다.

로마시대 주상 복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건물이 최근에 많이 복원이 되었다.

낮에 보는 것보다 밤에 보니 한 결 빛난다.

 

그리고 로마 스럽지 않게 흰색으로 만들어서 한 때 눈총을 받았지만 지금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중에 한 곳이 되어 버린  빅토리오 엠마누엘 2세의 독립(통일) 기념관이다.

 

사람의 크기와 말탄 동상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하게 된다.

완성 되었을 때 인부들이 말 속에서 테이블을 올려놓고 기념 파티를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시간의 더 뒤로가서 기둥 광장 앞 알베르토 소르디 겔러리에 잠시 둘러보면 신구 조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사실 로마는 고대 로마의 모습은 많지 않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모습이 훨씬 많은 곳이 로마이다.

고대 로마의 유적은 대부분 황성옛터처럼 남아 있어서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시간을 더 거슬러서...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서 성 천사의 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잠시 신발 끈을 죄여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특별히 축사를 해서 베드로 광장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성천사의 성 쪽으로 가는 중이다.

도로에서 차량이 사라지니 이렇게 다니기 편하다.

 

성 천사의 성 근처에서 베드로 성당쪽으로 보니 길 양옆에 새워진 조명들이 사열이 멋지게 보인다.

무솔리니와 바티칸이 란테라 협정에 의해서 화합(콘칠리아치오네)의 길이라 이름지어서 만든 도로이다.

이렇게 만들면서 로마는 파시스트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

길을 만들기 이전에 이야기를 한다면, 19세기에 독립한 이탈리아 신흥왕국이 교황령을 강제 합병시켰다. 

비록 이탈리아에 합병되었지만 교황청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로마문제>가 약 59년간 지속되었다.

합병될 당시 교황 비오 9세는 스스로 "나는 바티칸의 포로"라고 선언했다. 

이후 59년가 교황들은 바티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무솔리니 때 국왕 빅토리오 엠마누엘 3세의 왕국과 교황청이 란테라 궁전에서 협정이 이루어 지면서 바티칸은 독립국가가 되었다. 교황청의 소유가 인정되었고 국제법상 치외 법권이 인정되었으며 이탈리아 국교는 로마 카톨릭이 되었다. 

이 란테라 협정을 기념해서 뭇솔리가 길을 만들었다.

이로서 18세기에 만들어 졌어야 할 길(교황청과 로마 중심부 연결)이 뭇솔리니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 지면서 뭇솔리니의 주가가 올라갔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바티칸 베드로 성당을 보면 돔이 중앙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 성당의 중심은 식스투스 5세가 가져다 놓은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해서 설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벨리스크가 고대 세계 때 부턴 신성한 기둥 또는 우리의 솟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둥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서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이자 농업의 신인 오시리스의 남근을 표현한 것으로 다른 표현으로 오벨리스크는 신의 '자지'이다.

 

아래-란테라 협정 때와 영역이 다르지 않는 지금의 바티칸 시국의 모습

 

 

그리고 테베레 강 옆에 세워진 성 천사의 성.

로마 중심쪽과 연결되는 다리 위 천사들은 베르니니가 조각했다.

이 다리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 프라하 다리 교각위에 세워진 조각상들이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도 등장했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각광받고 있어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원래 로마를 가장 넓게 확장시킨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원통형의 무덤이었다.
서기 138년의 일이다.

나중엔 교황의 궁전, 피난처, 감옥으로까지 사용했었다.

페스트가 유럽을 강타 했을 때 기도를 하자 미칼엘 대천사가 페스트가 사라짐을 암시하는 "칼집에 칼을 집어 넣는 환상"을 봤다는 데서 이름이 성 천사의 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 로마 동북쪽 아페닌 산맥에서 내려와 지중해로 흐른다. 406 km

천사의 다리를 건너면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을 따라 걷게 된다.

핏자 가게들과 cafe와 기념품 가게들이 있는 좁은 골목들이다.

분수로 유명한 유명한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을 지나게 되는데 그 두 장소 중간에

 

이름 모를 한 성당을 만나게 된다.

7차 십자군을 나갔던 프랑스 왕 루이 9세에게 봉헌한 성당이다.

그리하여 이름도 '프랑스의 성 루이' 성당이다.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카라바지오에 대해선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고향을 부르던 습관대로 카라바지오라고 불렀다.

그림으로 친다면 미켈란젤로에 뒤지지 않는 화가였던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을 구사했다.

바로 자연주의 그림이다. 연극에서 조명이 비추는 효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 뛰안 화가이다.

이 성당엔 복음 저자중에 마테오를 주제로한 연작 3편을 그렸다.

아래는 <마테오를 부르심>

 

<영감을 받는 마테오>

 

<마테오의 순교>

 

성당을 나와서 몇 걸을 더 가면 판테온을 만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극찬했던 이 곳 만신전.

로마시대에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운 이 건물을 처음 봤을 때 한 참 동안 나오지 못한 기억이 있지만 지금도 가면 한 참 있다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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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2017.01.05 15:56

<무한의 정원 빌리 침브로네>

 

라벨로는 아말피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다.

라벨로(Ravello)의 중심에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빌라 침브로네로 간다.

길이 나뉘는 곳이면 어김없이 표지판이 자리한다.

구굴 지도를 따라 갈 수도 있지만 타일로 만든 아날로그 표지판이 더 정겹다.

 

 

라벨로는 골목길  담벼락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투박하게 쌓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골목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더 담 너머 사는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골목이 있는 곳이 산이기 때문에 집을 벗어나면 바로 경사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간판이나 그림을 보고 들어간다.

 

골목을 아름담게 하는 담쟁이 넝쿨도 분위기에 더한다.

 

말끔하게 다듬거나 현대적으로 보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복잡한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이 찾으면 마음에 평온이 오는 곳이다.

 

어느 곳을 지나가는데 등나무 하나가 주차장 지붕을 다 덮는다.

영화에 나올법한 거대한 등나무 줄기들이다. 

 

목적지에 가까워 오자 좀더 목가적인 모습도 보이고

 

그리고 빌라 침브로네 입구 도자기와 넝쿨들이 오래된 곳임을 말한다.

 

파란 잎새가 담벼락을 덮을 때도 멋있겠다.

 

빌라 입구에 들어서니 더 오래된 모습니다.

 

11세기부터 만들어진 곳이지만

처음 만들어질 당시 건물을 조금 남아 있으며 많은 부분은 이탈리아 여기저기서 가져온 건축물들의 일부를 가져다 세웠다.

입구에 들어서자마나 좌측으로 아치로 입구를 만든 저택부터 만난다. 이곳에 호텔 빌라 침브로네

 

건물 옆 정원에 있는 정자.

어딘지 모르게 이슬람 풍의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고딕 아치로 만든 테라스가 멋을스러움을 더한다.

 

 

라벨로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가 속해 있던 영국 블룸스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작가, 지식인, 철학가, 예술가 모임)  작가들이 많이 찾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D.H. 로렌스, 헨리 무어, T.S.엘리어트, 윈스턴 처칠 등 익히 들어왔던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왔었다.

 

호텔로 사용되는 빌라 침브로네는 5star이고 객실 수는 19개.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조기 예약 되는 곳이고 2017년 주말은 이미 다 차 있다고 보면 된다. 한가지 불편한 점은 호텔까지 가려면 짐은 오토바이에게 맞기고 걸어서 가야된다. 아니면 짐을 끌고 걸어서 가는 방법이다. 도심에서 도보로 10분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은 룸도 있고 큰 룸도 있지만 이런 주니어 스위트 프레스코 방은 박물관 같아서 잠이 올려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무척이나 조용하겠다는 점이다. 위치 때문에 결혼식, 연회 등 각종 행사가 많다. 그러래 이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장기간 있을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머무는 것이 좋겠다.

 

빌라 침브로네를 찾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Garden of Infinity 무한의 정원> 때문이다.

 

절벽 바로 위에 굴뚝과 같은 암반위에 형성된 지형이어서 붙여진 이름 침브로네 답게 내려다 보면 아찔하다.

 

이 곳을 장식하는 단순한 흉상들이 인상적이다.

 

서 있기도 아슬아슬 하지만 사진 찍어 봤다.

 

 

침브로네를 나와서 걸어 내려오면 다시 만나는 빌라 루폴로. 이곳도 봄이 되면 호텔로 이용된다.

 

식당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인데....

 

아말피로 내려와서 골목을 어슬렁 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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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2017.01.01 14:05

<라벨로를 위한 아말피Amalfi 해안>

아말피 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라벨로로 가는 기분좋은 시간.

소렌토에서 라벨로 가려면 버스를 이용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하면 좋다.

버스는 전철역 앞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렌터카를 권한다.

렌터카는 가는 중간중간 나타나는 기막힌 경관들을 보기 위해서 섰다 가다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탈리아 답게 버스 시간이 절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렌터카가 제격이다.

소렌토에서 경사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면서 주변이 다 들어온다.

 

 

그리고 언덕길 꼭대기에서 다시 내려가면 아말피 해안이다.

절벽위를 달리는 길은 좁고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작은 차량 한 두 대가 중간에 설 수 있는 곳들이 있다.

그 곳엔 반드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포지타노를 지나 계속 이동하면 서로마가 망한 다음에 등장하는 아말피에 당도한다.

이 동네는 6세기 즈음에 인근 살레르노 소금, 내륙의 노예, 목재들을 이집트와 시리아에 팔아서 당시 지중해에 통용되던 화폐인 황금디나르 얻었다. 이유는 비잔틴 비단을 사기 위해서 였다.

유럽지역에 비단을 파는 것 만큼 수지 맞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말피는 체레토 산 (1,315미터)아래쪽 깊은 계곡 끝에 자리하고 있다.

내륙과 연결도 잘 안되는 이곳에 그렇게 오래전부터 살았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우선 산이 제공하는 물이 풍부한 곳이다. 그리고 배를 이용한 연안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대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군을 중동으로 실어 날라준 베니스가 해상무역 독점하기 전까지 아말피는 제노아와 피사와 경쟁관계에 놓였던 수준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아말피 공화국으로 한 때 "짠~!"하고 잘 나갔었다.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다. 강한 국가들 틈 속에서 여기 휩쓸리고 저기 휩쓸리고 하다가 1343년 쓰나미가 덥쳐서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버린 곳이 되었다.

 

지금은 관광객들 천국이다.

오래전에 만들었던 수도원 두 개가 호텔로 개조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리쳐드 바그너와 헨릭 입센이 와서 작품을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제 아말피에서 산으로 가야 된다.

바다 쪽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산길을 가는 동안 차량 한 대만 지나가야 되는 좁을 길을 만나기도 한다.

 

 

라벨로를 올라가는 길에 음악의 도시라고 쓰여진 표시가 이색적이다.

 

중간 중간에 만나는 표지판.

아말피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라타리 산맥(Monti Lattari)에 대한 안내문이다.

이탈리아 등줄기인 아페니노 산맥의 일부이다.

트레킹으로 유명한 곳으로 해안선 바로 위로 솟은 산을 걷게 되어 있어서 기막힌 경관을 선사한다.

여름에 오르면 선선해서 좋다. 민박집에서 잠을 자면 추워서 두꺼운 이불이 필요할 정도이다.

 

아말피 트레킹은 이탈리아 5대 트레킹 코스이며 카프리 섬이 보이는 소렌토 반도 끝까지 가기도 한다.

 

유럽이라면 어디를 가든지 볼 수 있는 친절한 아날로그 표지판

 

산쪽으로 올라 갈 수록 드라마틱한 풍경들이 기다린다.

왼쪽 언덕에 우산 소나무가 있는 곳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다. 

 

라벨로 중심은 오래된 중세 성처럼 보인다.

5세기 피난처로 만들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9세기에 아말피 해양공화국과 함께 안전한 장소로 변했던 곳인데

산에 양을 키우면서 양털을 생산하고 염색한 양털을 수출하는 곳이다. (839-1200)

 

광장 바로 옆에 있는 빌라 루팔로로 들어간다.

 

부자였던 루팔로 집안이 소유했던 곳인데

보카치오가 이곳에 왔다가 기막힌 경관을 남기기 위해서 데카메론에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가극의 왕 리쳐드 바그너가 이곳에 왔다가 그의 가극 파르지팔의 배경 무대를 이 곳처럼 만들었다. 

 

곳곳이 넝쿨들로 얼기 설기 담당을 장식하고 있다.

 

정원으로 나가니 기막히다.

아말피 해안의 모습과 멀리 살레르노 해변쪽까지 보인다.

경사면을 따라 포도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꽉차있다.

 

경사가 급한 산을 따라 집들이 놀랍기만하다.

 

잘 만들어진 정원.

이 곳에서 보면 라벨로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된다.

보카치오, 바그너,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 에셔. 버지니아 울프, 후안 미로, 테네시 윌리엄, 네오나르드 번스타인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찾았다.

리쳐드 바그너의 영향으로 1953년부터 라벨로 페스티벌이 열린다.

 

밑에서 본 정원

 

담벼락이 멋있다.

 

오래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잘 유지하는 모습이 더 좋다.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은 나무인간이 디자인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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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2016.12.27 14:54

<소렌토의 숙소와 먹방>

소렌토에 가면 어디서 자고 먹을까?

소렌토는 잠자리가 편할까?

이탈리아를 경험해본 사람들이 소렌토를 간다면 이탈리아 같지 않은 숙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아침을 배부르게 주는 곳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게 뭐 어떠냐고?

사실 이탈리아는 식당문화는 손님보다 식당 주인들이 잘먹는 문화이다.

우리는 반대이고 일본은 손님과 주인이 같은 음식을 먹는다.

인터넷으로 예약문화가 바뀌고 피드백이 엄청나게 올라오면서 문화가 약간 바뀌었지만 아직도 별거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숙소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싼 것이 비지떡이다.'

싼 곳은 싼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가면 스파게티를 먹으라고 말하고 싶다. 이탈리아의 음식 경쟁력은 스파게티가 아닐까 한다.

나머지 음식은 솔직히 다른 나라에 거의 다 뒤진다.

 

아래 사진은 소렌토의 큰 항구(마리나 그란데) 위에서 본 전경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 거라면 숙소를 잠시 옮겨서 지내는 것도 좋다.

소렌토는 귤나무와 레몬 나무가 아주 많다. 가로수도 귤나무이고 과수원도 흔하다.

소렌토에서 바다가 보이는 곳과 아주 가까운 귤 과수원 가운데 자리한 숙소를 찾았다.

 

방의 상태는 특급 호텔 만큼 한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공기도 좋지만

아침 식사가 환상이다.

달라는 대로 다주는 이런 곳은 첨이기 때문이다.

 

전날 아침 주문서에 표기를 하라고 해서 대충 했는데 진짜 다 나온 것이다.

다 표시 했다면 이 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

아침에 다 먹지도 못하는데 어찌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 .

소렌토 첫번째 숙소는 이렇게 즐거웠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 마리나 그란데로 향했다.

가는 중간에 절벽 위에 자리한 궁전같은 호텔과 집들을 보면서...

 

마리나 그란데로 가는 길목은 좁고 여러가지 풍경을 보여준다.

 

마리나 그란데는 한 마디로 어촌이다.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고 낚시로 고기 잡는 곳이다.

그런데 멀리 있는 풍경은 그러지 않은 모습으로 보인다.

위쪽에 있는 건물들은 숙박시설들이기 때문이다.

 

오후 늦은 시간 동네 사람들이 낚시대를 던져본다.

베수비오 화산을 보면서 말이다.

 

소렌토 바다에서 항상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

좌측 멀리가 나폴리 산 우측이 폼페이이다.

 

그리고 산으로 이어지는 소렌토 반도

 

맑은 물에 고기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더러운 물엔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고기들이 살고 맑은 물엔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식용으로 적합한 고기들이 산다.

물이 맑으니 특히  문어가 잘 잡힐 듯 싶었다.

 

항구 한쪽에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이 몇 곳 안되지만 문을 연 곳은 딱 이곳 뿐.

 

오늘의 요리가 뭐냐고 했더니 문어와 돔 종류가 스페셜이라고 했다.

나는 옆 테이블 현지인들이 튀김을 시키는 것을 보고 튀김 달라고 했고

문어 요리의 솜씨를 알아보려 했다.

 

역시 유럽인들의 문어 요리는 부드럽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면 질기지 않게 문어를 잘 요리한다.

 

싱싱한 새우와 오징어 그리고 엔초비 보다 좀 커보이는 튀김

 

한참 후에 고양이 손님들이 찾아와서 음식 나눠 달라고 야옹 거린다.

고양이들은 식당에 거리낌 없이 어슬렁 어슬렁 잘 다닌다.

식당 주인들도 고양이를 잘 아는 듯 쳐다 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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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

    선배님 잘 지내시죠?

    2017.01.02 17: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탈리아2016.12.26 23:39

카프리를 알기 위한 사진들

 

카프리에 수십번을 가봤지만 아직도 카프리를 잘 모른다.

카프리 섬보다 로마 시내를 더 많이 안다고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 섬이라는 특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지만 울퉁불퉁 절벽으로 이루어져서 길 만들기가 어려워 교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걷거나 배를 이용해야 되기 때문에 짧게 머무는 동안 구석구석 다 다니는 것은 어렵다.

나폴리와 폼페이를 가는 사람들이라면 카프리 덤이 아니라 필수이다.

사실 카프리를 가는 도중에 폼페이를 거쳐서 간다고 하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멋진 섬 하면 사람들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에 산토리니 보다 카프리가 더 좋은 이유가 많다.  

카프리는 한마디로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거기에서 문화 유산들이 곳곳에 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가 카프리에 궁전을 만들어서 생활했던 것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수 많은 작가, 시인, 음악가, 영화 속 장소, 유명인사들이 꼭 왔다 가는 곳이 되었다.

카프리 맥주가 생긴 것도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Capri 어원은 여러가지이다.

고대 그리이스 말로 맷돼지.

로마 공화국 말로는 염소.

그리고 논란이 많은 에투루리아 시대에 언어로 절벽이라는 의미가 있다.

로마시대부터 염소섬으로 불리어 왔던 곳이다.

아무래도 절벽이고 풀이 없으니 염소가 살기는 절당한 곳이로 보인다.

지금은 고양이 천지지만...

 

(아래: 마리나 그란데-큰 항구: 여객선들이 드나드는 곳)

 

 

(아래: 마리나 그란데- 큰 항구)

 

편의상 입체적인 지도를 올린다.

오른쪽 마리나 그란데로 배가 왔다 갔다 하고 반대편 작은 항구는 어촌으로 기막힌 식당들이 있다. 배로 가거나 걸어다녀야 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기가막힌 경관을 볼 수 있는 즐거운 기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카프리는 걸어다니도록 만들어진 곳이다. 시간이 없으면 아나카프리에서 카프리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푸른동굴은 작은 배를 이용하서 이동하며 겨울에는 동굴로 배가 다니지 않는다.

겨울철 해의 각도가 동굴을 푸른 색으로 만들지도 않지만 파도가 높아서 배가 다닐 수 없다.

 

 

아래 지도가 4방위를 정확하게 그린 지도이다.

면적이 넓은 안나카프리보다 카프리 쪽이 볼거리가 더 많다.

 

카프리 섬에 왔으니 꼭 가봐야 되는 곳이 몬테 솔라노(태양의 산)이다.

해발 589미터로 가보면 경관이 압권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동산이 내려다 보고 있는 그는 카프리 섬에 최초로 내린 황제이다.

걸어서 오를 수도 있지만 안나카프리로 가서 1인용 곤돌라로 올라가면 된다.

 

손에 잡힐 듯 카프리가 보이고 그 앞쪽 기막힌 돌 섬들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누구든지 여기선 기념촬영을 하게 된다.

 

섬 멀리 소렌토 반도가 보인다.

반도의 오른편이 아말피 해안이다.

 

곤돌라로 아나카프리에 내려와서 오래전에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카프리까지 걸어가보는 것도 좋다.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하지만 그리 멀지 않다.

 

내려오는 동안 항구의 모습과 카프리의 전경을 감상 할 수 있다.

 

중간에 걸어서 카프리 중심에 갈 수 있지만 후니쿨라를 타는 재미를 놓칠 수 없다.

 

아래 이정표를 살펴보는데 스시집도 있다. 가장 오른쪽 아래 스시집 표기.
스시집 이름이 거창하다. 쿠카이=空海이다.
지중해에 있어서 붙인 이름이지만 사실 쿠카이는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통한 고승이다.

스시집을 만든 일본인이 아마 그 내용을 알고 만들었으리나...

 

 

그리고 카프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이 아우구스트 정원이다.

정원에 가면 몬테 솔라로에서 봤던 섬들이 바로 눈 앞에 있다.

 

좀더 자연 친화적인 유럽인들이어서 갈매기까지 애완용처럼 느껴진다.

유럽에서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갈매기들이 사람들이 주는 뭔가를 기다린다.

빵부스러기를 들고 있으면 바로 온다.

 

 

아우구스트 정원에서 작은 항구(마리나 피콜로)로 가는 기막힌 길.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니랄까봐.

산위로 길을 내서 다니는 도사들이라 산 아내로 내려가는 것 쯤은 뭐....

 

해가 바다로 지기 전에 햇살이 좋다.

아우구스트 정원은 사실 독일 사람이 만들었다.

20세기 초에 독일인 기업인 크루프(Krupp)가 이곳에 집을 지어서 1918년 까지 크루프 가든이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트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한가지 더, 이곳에  블라디미르 레닌의 글자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러시아의 작가 막심고리키가 레닌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원이라는 이름 답게 다양한 나무들이 있다.

 

석양이 절정에 이를 때까지 여유있게 앉아 있다.

 

아우구스트 정원에서 나와서 걸어가는 동안 어느 집 담장 사이로 보이는 돌섬.

 

그리고 풀 밭

 

풀들이 넘실대면서 춤을 추는 듯하다.

 

카프리 시내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남다르다.

지형이 울퉁불퉁 하기 때문에 경사진 곳에 집을 지어서 담벼락과 문이 독특하다.

항아리를 벽에 부착시켜서 뭔가를 키우는 모습도...

 

많은 집들 대문 위는 솔방울 모양의 장식들이 있다.

솔방울에 대한 비밀. 사람의 뇌의 중앙에 솔방울 샘이 있는데 그 샘에 인간의 비밀이 있다고도 한다.

바티칸 박물관 솔방울 정원의 청동 솔방울도 같은 의미이다.

솔방울 샘이 소위 도통하는 비밀이 있다고 하는데....^^

그리고 좁은 골목이 가파른 계단이 줄줄이 서 있다.

 

두리번 거리면서 길을 따라 멋진 경관을 감상하면서 가면 티베리우스가 만든 그 유명한 빌라 조비스(Villa Jovis)가 나온다.

티베리우스는 로마 제국 제 2대 황제이다.

그는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로마황제로서 12년간 지냈다.

(아래 폐허가 된 빌라 조비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후계자로 지목한 티베리우스는 섬을 유독 좋아했다.

풍파 속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기를 거친 그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태내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결 국면에서 티베리우스의 아버지는 안토니우스 편을 들었는데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를 이기자 젖먹이 티베리우스는 졸지에 부모와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티베리우스 3살 때 사면령이 내려져서 로마로 돌아갔다.
그런데 옥타비아누스는 티베리우스의 어머니(리비아)의 미모에 반하여 부모가 이혼을 강요 당하게 되고
옥타비아누스와 티베리우스의 어머니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래-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

아버지가 죽과 나서 티베리우스는 어머니 리디아와 살게 되었다.
이 때부터 옥타비아누스 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2살 때부터 정무나 군무업에 종사했고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클레오파트라+안토니우스 : 옥타비아누스+아그리파)에서 승리를 거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군으로 각지에 파견 나갔다.

복잡한 후계구도 속에 아그리파가 죽자 옥타비아누스는 말년에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삼았고, 옥타비나우스와 공동황제가 되었다.
옥타비아누스가 죽자 유언장에따라 유산의 상속자가 되었다.

즉, 단독 황제가 되었다.

 

티베리우스는 훌륭한 정치인이자 행정가 였지만 인기는 없었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차경기와 검투사 경기를 중지시켜 재정낭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황제들이 인기를 위해서 만든 것들이 검투사 경기, 전차 경기였기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 곳 카프리 섬에 은거 하면서 근위대장을 통해서 로마를 통치해서 더욱 인기가 떨어졌다.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인기는 추락했지만 로마를 효율적으로 운영했다.
서기 31년에 권력욕을 드러내던 근위대장을 처형하기도 했다.

티베리우스 재위시절 유대 속주에 있었던 예수가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다.

그는 서기 37년, 79살에 병에 걸려서 생을 마감했다.

 

(아래 티베리우스의 빌라 조비스의 복원도)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이 곳에서 좀 남쪽으로 이동하면 자연경관이 뛰어난 자연아치를 만난다.

폭 12미터, 높이 18미터

 

자연 아치에서 더 남쪽엔 더 기이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독특한 스타일의 건물 빌라 말라파르테(Malaparte)가 나온다.

32미터 절벽위에 새워진 아슬아슬한 집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모던하면서도 컨템퍼러리한 건물이다.

카프리 중심광장 피아제테에서 걸어서 1시간 30분 걸리는 거리있다. 파도가 잔잔한 날 배로 접근하면 훤씬 수월하다.

그러면 99계단을 오르면 되지만 사실상 짐까지 접근은 어렵다.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접근은 매우 제한적이다.

기이한 형태의 집은 사정이 있다. 

원래 집주인은 언론인이자 극작가, 단편소설가, 소설가이자 행정가였던 크루지와 말라파르테이다.

1940년대 유명한 이탈리아 건축가에게 설계를 맞겼지만 마음에 들지 않자 카프리 석공과 함께 스스로 집을 만들었다.

말라파르테가 죽고나서 버려지다 시피 했지만 결국 한 재단에서 기증 되어서 관리하고 있다.

 

 

개인적인 파티를 한다면 모를까 아니면 문화 행사를 위할 때 접근이 가능하다.

 

카프리 중심광장 피아제테 바로 옆 후니쿨라 정거장 쪽으로 가면 유료 화장실이 있는데 카프리의 푸른 색을 즐길 수 있다.

 

 

 

서서히 어둠이 깔릴 때 즈음 카프리의 전경이 이렇다.

 

카프리 중심부에 가까운 산인 산 미카엘레. 262미터의 돌산이지만 집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제 배를 타고 소렌토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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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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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프리를 가보기는 했는데, 들어가서 나올때까지 해변에만 있다 와서 이렇게 아름 다운 모습을 보지 못한것이 안타깝습니다.^^;

    2016.12.28 21: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탈리아2016.11.19 18:33

<이탈리아가 세상에 준 최고의 선물>

 

 

소렌토, 카프리섬, 아말피 해안(포지타노, 라벨로), 폼페이, 카세르타.

들어본 이름도 있고 처음 듣는 이름도 있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소렌토는 많이 들어 봤어도 소렌토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산 차 소렌토와 이탈리아 소렌토의 차이는 알(R)이 하나 더 있고 없고이다.

Sorento. Sorrento.

카루소와 루치아노 파발로티가 그렇게 좋아 했던 곳이다.

실제로 가보면 누구나 안 좋아 할 구석이 없다.

 

아말피의 관문이라 하는 소렌토(Sorrento)가 좋은 것은

1. 깨끗하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자연경관.

2. 아말피 해안을 쉽게 갈 수 있다. (포지타노, 아팔피, 라벨로로 가는 관광버스가 다닌다.)

3. 이탈리아 환상의 섬 카프리에 쉽게 갈 수 있다. (소렌토-카프리 페리)

4. 교통이 편리하다. (폼페이, 나폴리까지 기차로 빨리 움직일 수 있다.)

5. 사람들이 더 서호하는 아말피 해안쪽 보다 저렴하다.

6.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나폴리까지 기차로 1시간 50분 가량이면 도착한다. (공항-로마 테르미니 역-나폴리)

7. 좀더 둘러 보겠다면 프랑스 브르봉 왕가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왕궁 카세르타 물의 궁전이다.

 

 

 

소렌토 가는 방법은 로마 공항에서 기타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하면 기차를 타고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한다.

5분후 출발하는 연결편 고속열차(이탈리아 EuroStar)를 타고 나폴리까지 순식간에 달린다.

총 소요 되는 시간은 1시간 50분 정도이다.

나폴리 중앙역에서 사철이라고 부르는 전철을 타면 폼페이를 거쳐 종착역인 소렌토까지 간다.  

소렌토에서 자리를 잡고 주변 여기저기를 다니는 여행을 하면 가장 좋다.  (아래지도)

sor

<소렌토>

이탈리아에서 풍경화를 주로 그렸던 독일 브란덴브르크 출신 화가 야콥 필립 헤케르트는 18세기에 소렌토의 풍경을 잘 그렸다.

 

 

소렌토의 중심은 타소(Tasso) 광장이다. 

르네상스 시인 토르콰토 타소의 이름을 붙였다. 유럽 최고의 권력자 교황으로터 시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고 왕관을 수여식을 하려 했지만 행사 몇일 전에 죽어버렸다.

주변엔 cafe들이 있고 궁전도 있으며 쇼핑거리인 산 케사레오(Via San Cesareo)로 연결된다. 

 

 

타소 광장에서 내려다 보면 바다로 향하는 기막힌 길이 보인다.

 

절벽 아래도 집들이 많으며 수영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아래는 마리나 그란데 (큰 해변)

 

 

요트 클럽이 있는 곳으로 눈에 보는 건물들의 대부분은 호텔들이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소렌토 절벽이 잘 보인다.

 

 

알마피 해안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꼽힌다.

그리고 곳곳에 마을이 있는데 그 중에 최고는...

 

 

 

그 중에 최고는 아슬아슬한 포지타노(Positano)이다.

이탈리아 최고 부자들 중에 별장을 가지고 있다는 곳이지만

누구나 쉽게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골목과 해변이 기막힌 곳이고

호텔의 경관이 좋은 곳이 많아서 잠시 그 곳 cafe나 식당을 찾을 수도 있다.

아래 사진처럼 식당에서 사진을 담을 수도 있고...

 

 

 

오래전 배를 빌려서 바다로 나가 다이빙을 했던 기억은 너무 생생하다.

뒤로 보이는 산은 1,300미터가 넘는다.

 

 

소렌토 반도는 내륙에서 40킬로미터 가량 바다로 나와있지만 1,300미터가 넘는 산들이 있는 험준한 산악지역이라 이동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자연은 사람에게 느리게 이동하라고 요구한다.

여행의 본질이기 때문에 도시 위주인 패키지 여행으로 오기는 그래서 어렵다.

유명한 아말피(Amalfi)는 오래전 지중해 무역을 하면서 커진 곳으로 유명한 고딕 아치를 중동지방에서 가져온 곳이기도 하고 몰타 기사단이 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말피에서 버스를 타고 지그재그로 아슬아슬하게 오르면 라벨로(Ravello)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해발 360미터 높이에 자리한 마을에 뭐 있겠어 하고 가지만 올라 갔을 때 깜짝 놀란 경관을 보여준다.

누구나 방문하는 곳은 13세기 빌라 루폴로(Villa Rufolo)와 11세기 빌라 침브로네(Villa Cimbrone).

아래는 빌라 루폴로!

 

 

빌라 루폴로

 

 

빌라 루폴로에서 매년 7월에서 10월까지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을 한다.

 

 

아래는 정원이 아름다운 빌리 침브로네.

 

 

(빌라 침브로네)

 

단체 여행을 하더라도 나폴리 폼페이에 간다면 옵션을 하더라도 꼭 가봐야 되는 곳이 카프리 섬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이드를 할 때 내 기억에 카프리 옵션을 팔지 못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

소렌토에서 배를 타고(아래 그림에 있는 배는 아니다. 페리이기 때문에 훨씬 크다.)

 

 

신나게 바다로 달리면 멀리 소렌토의 생김새를 확인 할 수 있다.

 

 

카프리에 도착하면 차를 빌려서 안나카프리로 이동한다. 바다위 솟은 절벽 길을 따라 이동하면 1인용 곤돌라를 타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서 몬테 솔라로(Monte Solaro 태양의 산)로 올라간다.

날씨가 좋을 때 보이는 관경은 진짜 숨이 막힌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소렌토 반도가 들어온다.

 

 

그리고 예전에 갔었더라도 안가면 섭섭한 폼페이

얼마전 영화로도 나왔던 폼페이는 처음에 항구도시였다.

지중해 무역을 하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았던 마을이다.

쇼핑거리, 사창가, 목욕탕, 식당, 빵파는 가게, 극장, 원형경기장 등 뭐든 풍족했던 곳이다.

아래 그림이 폼페이의 원래 모습에 가깝게 그렸다.

지금은 화산재가 두텁게 쌓여서 바다가 멀리 후퇴되어 육지에 있었던 도시처럼 보인다.

 

 

 

아래는 폼페이 중앙 광장쯤 되는 곳이다.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고 포럼이 있었고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가장 많이 찍히는 장소

 

로마시대 쇼핑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큰 돌로 만든 길이었지만 마차가 지나던 흔적이 역력하다.

 

 

화산이 너무 순식간에 터졌다.

피할 사이도 없이 화산이 만든 고온 개스와 안개와 같은 흙이 도시를 덮쳐서 순간 살과 뼈가 사라져버렸다.

발굴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구멍(빈 공간)들이 계 속 나오자 석고를 부었더니 사람들 모습이 나왔다.

 

 

 

시간이 좀더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또 하나의 장소는 카세르타이다.

인근에 로마 경기장이 있기도 하다.

나폴리 중앙역에서 기차로 약 40분 걸리는 거리이다.

 

프랑스의 브르봉 가문이 영원히 자신들의 소유로 남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만들었다.

1752년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 비견할 만한 궁전을 만들기 위해서 22년이라는 시간과 수천명의 인부 그리고 천문학적이 돈을 쏟아 부었다.

 

 

수로 분수와 조각, 영국식 정원 등을 만들기 위해서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토목가들이 동원 되었다.

 

건물은 바로크와 신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된 독특한 건물로 탄생 되었다.

이탈리아 독립전쟁서 승리한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은 바로크 양식의 책상에 앉아 사보이의 '빅토리오 엠마누엘 2세'에게 자신의 모든 권한과 이탈리아 브르봉 왕가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 눈분신 궁전을 이양한다고 서명했다.

 

 

 

이정도면 이탈리아레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잘 다녔다고 하겠다.

나폴리는?

나폴리는 쓰레기 장이 된 지 오래되었다.

과거에 힘든 항해를 하고 풍족한 도시 나풀리로 들어 올 때 선원들은 양쪽으로 섬들과 내륙이 감싸는 듯한 지형이 마치 어머니 품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전엔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알려 져었다. 나폴리가 갈만한 곳이 없지는 않지만 기차역을 오가는 동안 잠시 보는 정도이다.

피자가 가장 먼저 유행한 곳이 나폴리이기 때문에 스페인 마르가리타 여왕을 위해서 만들어준 마르가리타 피자를 시켜 먹는 것도 좋겠다. 그것도 장작불과 화산재를 이용해서 빵을 굽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피자면 더욱 좋겠다. 

마르가리타 피자는 가장 간단한 면이 있는데 이탈리아 국기를 닮은 색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붉은 토마토와 프른 파슬리 그리고 흰색의 모짜렐라 치즈를 이용하는 것이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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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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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계획 중인데 참고가 많이 되었네요 ^^

    2016.11.20 21: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탈리아2016.10.17 07:30

                                          <이탈리아 여행 재구성>

이탈리아 하면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폼페이, 소렌토, 밀라노 등을 많이 떠올립니다.

그러나 토스카나 지방을 모르고선 이탈리아도 로마제국도 약간만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가 있기 이전에 로마를 만든 에투루리아(에투루스칸 Etruscan) 문명이 있었습니다.

토스카나라는 지명도 에투루스칸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에투루스칸언어의 92%가 해석이 되지 있지 않습니다.

국 에투루스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로마를 만들어준 문명인데도 말입니다.

에투루스칸이 있던 곳의 대부분은 토스카나 구릉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아래 동선을 따라가면 작고 아름다운 도시이면서 문화가 깊은 곳을 지나게 됩니다.

 

토스카나 여행은 1석 3~4조라고 해도 될 만큼 좋습니다.


1. 에투루리아(에투루스칸)를 만난다.

2.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들을 만난다.
3. 영화속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을 선 구릉지를 만난다.
4. 맛있는 키안티 와인을 싸게 마신다.

다음 이탈리아 여행은 아래 동선을 따라서 이동할 예정입니다.

 

 

구릉이 펼쳐진 토스카나 전원 풍경이죠.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엔 포도가 익어가는 곳으로 조용히 지내기에 그만입니다.

 

그런 대표적인 지역 중 키우시(Chiusi)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아펜니노 산맥이 멀리 지나갑니다.
12개의 도시가 연합한 에투루리아 문명국의 지배자를 '키우'라고 불렀습니다.  발음에 따라선 치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치우라고 하면 유럽에서 최고의 신을 부를 때 쓰는 단어와 유사합니다. 북유럽 최고의 신은 티우(Tiw), 찌우(Ziu)라고 하고 독일과 노르딕 신하에서도 티르, 티우, 찌우라고 해서 전쟁의 신이며 불의 신'이라고 설명합니다. 음 뭔가 에투루리아의 왕과 치우와 뭔가 연관성이 있을 듯합니다. 아무튼 키우시는 중요한 곳에 속합니다.

 

페루자(Perugia)라는 도시 인근엔 성벽으로 둘러 쌓인 코르토나(Cortona)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에투루리아 5개의 박물관 중에서 가장 잘 되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아래 : 코르토나)

 

토스카나 깊숙한 곳에 자리한 볼테라(Volterra)라는 곳은 나중에 로마가 거대 극장을 만들어 놓은 곳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요즘 많이들 찾아가는 오르비에또(Orvieto) 입니다. 에투루리아의 중심 도시중 하나이고 키우시와 코르토나와 가깝습니다. 교황이 피신 갔었던 장소에서 대성당과 우물이 유명하죠.

 

오르비에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시비타 디 바뇨레죠(Civita di Bagnoregio). 그림같은 장소죠. 당연히 에투루리아 시절에 만든 요새 도시 입니다.

용암이 쌓인 퇴적층위에 새워진 2500년 된 되시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위태로운 곳입니다. 풍화로 인해서 곧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매우 작은 마을이라 둘러 보는데 20분이 채 안 걸릴 정도입니다.

 

피렌체와 더불어서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 시에나(Siena) 입니다. 꼭 가봐야 될 곳이죠. 수토스카나의 구릉 위로 만들어진 멋진 도시로 많은 영화속에서 등장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로마 인근 체르베테리(Cerveteri)에 가면 경주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곳이 있습니다. 에투루리아(에투루스칸) 문명의 무덤들이 거대한 봉분 형태와 돌곽형태로 밀집되어 있는데 약 천개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에투루리아(에투루스칸) 시절인 768 BC–264 BC년에 만든 무덤들로 부장품들을 통해서 당시를 추정하고 있습니다. 초기엔 봉분이 있었고 나 중엔 돌곽으로 만들어서 로마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돌을 파고 들어간 것도 있고 돌을 쌓아서 만든 것도 있지만 대부분 계단을 타고 내려갑니다.

 

사람과 비교해보면 크기가 나오죠?

 

무덤 주변에 이런 돌들이 있는데

오른쪽 남근석 처럼 보이는 이 돌이 새워져 있으면 무덤 주인이 남자이고

왼쪽처럼 속이 비어있는 돌이 새워져 있으며 여자 무덤임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레이져로 스캔애서 만든 그림입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간 방의 구조가 잘 보입니다.

 

큰 자연석을 파고 들어가서 방을 만들었기 때문에 큰 봉분엔 무덤이 방이 여러개 있습니다. 복도를 길게 만들고 방을 만드는 구조 입니다. 거의 모든 방의 기본 형태는 3 방향에 하나씩 있는 구조 이죠입니다.

그럼 에투루리아가 어느 지역이었는지 지도를 보겠습니다. 에투루리아 문명은 로마가 속해있는 라치오 주의 북부와 페루자가 속해있는 움부리아 서쪽 그리고 토스카나입니다.
아래 지도에서 에투루리아 초기 문명 12개의 도시가 보입니다. 그런 다음 이탈리아 반도 위와 아래로 넓혔습니다.
지금의 로마까지도 에투루리아(에투루스칸) 문명이었어요.

 

아래 방이 가장 유명한 조각 방입니다.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을 부조로 만들었습니다. 무기부터 일상용품까지. 그리고 벽화도 대단합니다.

 

채색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구려 무덤보다 보존상태가 좋다는 점이 부럽습니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남여가 춤을 추는 장면도 있고 악사의 연주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출토되는 금속에는 거의 대부분 만(卍)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아래는 금 세공품으로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원이 있고 그 사이에 만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리들이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는 듯한 그림이죠.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습니다.)

 

말을 타고 다녔던 사람들로 출토된 말에도 만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 십자가 있고요.

 

만자는 불교와 연관이 있지만 불교가 있기도 훨씬 오래전인 10,000년전에 이 도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만자는 7천년 전에 나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보이는 만만자를 보고 불교문화와 연관시키면 안됩니다. 그리이스 도자가는 만자로 도배되어 있는 것들이 많고 동전 역시 만자가 가득합니다.
초기 기독교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만(卍)자 니까요.

 

기마민족처럼 등자(발걸이)가 없이 원시적으로 말을 타고 다녔던 것처럼보입니다.

 

그리고 에투루리아 바로 직전 사람들이 철기를 가지고 와서 토스카나 지역에 살았는데 역시 만자가 보입니다. 아래는 인형처럼 재현한 장면의 일부입니다.

 

전사의 방패에 원형 문양이 독특합니다. 별자리를 이야기 하는 듯 하기도 하고 당시 사상을 이야기 하는 듯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두사신같은 모습도 출토 되었습니다.
마치 8괘를 동이족의 조상인 태호복히씨 같죠?

금세공품이 정교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신라에서 볼 수 있을 듯한 정교함이 그 이전에 있었다니 놀랍죠?

 

맹수로 장식한 악세서리 브로치 입니다.

문자가 새겨진 반지

 

그림을 새긴 반지는 마치 도장처럼 보입니다.

다양한 악세서리

 

문자가 새겨진 새

 

이래가 문자의 일부인데 해석이 전혀 안된다고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저 문자와 9세기 헝가리에 들어가서 헝가리를 세운 고대 마자르 문자와 유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부 쓰임새와 글자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도자기도 엄청나게 발굴이 되었습니다.  만자가 있고 나무를 두고 두 동물이 서 있는 표현이 익숙합니다.

 

전설 속의 인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사람들은 본 것을 그렸을 테니 아마도 인어가 있었겠죠?

 

그리고 청동마차 입니다.

 

죽은이를 경배하는 듯한 철모가 있고, 도께비 문양같은 것도 보입니다

 

옆에는 천마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천마는 기마민족 왕들이 죽으면 같이 묻는 다는 것으로 스키타이왕들 무덤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마차를 끌던 말이 천마였고 죽은 후에도 천마를 끌고 하늘을 날아 다닐 것을 염원한 듯합니다

 

관 위에 있는 인물들 표정이 정교합니다. 부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에투루리아 시대는 행복한 생활을 했을까요? (루부르 박물관 소장)

 

아래 관은 여인이 잠들어 있는 듯합니다.

 

 

아래는 후기 에투루리아 시대 관들인데 길따라 길게 새워져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로마시대까지 이어집니다.

 

로마에만 가는 사람이라면 국립에투루리아 박물관에 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여행가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먹고, 사진 찍는데 바빠서 이런데 둘러본다는 생각을 전혀 안하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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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광장은 오래전엔 바다였다. 항구의 일부였는데 매립해서 공원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거대한 무화과 나무가 공원을 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무화과 나무)

 

이 쌍둥이 건물 사이는 팔레르모로 들어오는 문이 있었다.

건물은 세관이었다.

 

중요한 박물관이 문을 당아서 잠시 골목을 다녀 본다.

 

그리고 문을 연 성당내부로 들어갔다.

부끄러운 분수옆에 있던 산타 카타리나 성당이다.

 

 

내부의 화려함이란!

건물이 14세기 만들어 졌지만 내부는 18세기 바로크로 장식했다.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화려한 바로크 장식의 건물이다.

천정화며 벽이며 간에 아주 섬세한 장식을 했다.

 

 

자세히 보면 색이 다른 돌 하나하나를 박았다.

전체 화려함은 몰레알레 성당에 뒤지지 않았다.

 

성당에 개가 불을 들고 있는 문양도 처음본다.

 

 

묘하다.

해와 달이 있고 좌측과 우측이 각각 다른 배경을 하고 있다.

서양에서 종교적으로 좌측과 우측은 항상 다른 모습이지만  동양은 음양을 상징하는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수를 상징하는 분수가 나오고 있어서 신비주의 적인 색채가 짙다.

마치 연금술 처럼.

 

해양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라 배의 조각이 매우 독특하다.

다른 곳엔 찾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두 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를 보러 갈 시간이다.

바로 팔레르모의 대성당이다. 성모승천 성당이다.

역시 복합 양식을 가지고 있다.

 

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건물위에 12세기 아랍스타일로 만들었다.

그러나 건물을 자주 새롭게 만들어서 원래 모습은 조금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이런 고딕 정문을 가장 볼만한 것이로 지정한다.

만들려고 애쓴 흔적은 봐줄 만하다.

15세기 만든 것으로 성경속의 내용과 시의 문장이 새겨 있다.

작은 둥근 지붕은 오리지날 설계에서  급격하게 건물을 변화시킨 흔적이다.

 

작은 얼굴이지만 표정이 각기 다른 얼굴이 유럽의 특징을 말해준다.

같은 것을 절대 안 만들려는 그런...

 

고딕스타일 아치 문 아쪽에 15세기 나무 문짝이 버티고 있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유럽 여행은 성당에서 시작해서 궁전을 거쳐서 성당에서 끝난다.

유럽의 역사는 "킹덤 오브 더 가톨릭"이기 때문에

모든 경제와 문화를 성당에 집중했던 곳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중심도 기독교 중심이다.

오죽하면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유럽의 역사는 원재료부터 변질되었다.

역사를 쓴 사람들은 운둔자였던 수도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현장에 있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쓰겠냐라는 것이다.

좌우간 16세기까지 기독교 중심역사였고 서열도

신>교황>추기경>대주교>수도원장>사제>황제>왕...........이런 순서였다.

 

 

내부에 보석관에 들어가면 스페인 아라곤 출신인  콘스탄스의 왕관이 전시 되어 있다.

그녀는 헝가리 왕비 였다가 왕이 죽은 후 독일 호헨슈타우펜 왕가로 시집을 가서 왕비가 되었다. 

남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을 때 황제비가 되었다.

그의 아들은 막강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레데릭 2세이다.

 

음침한 지하엔 석관들이 전시 되어 있다.

 

아라베스크한 문양이 어딜가나 눈에 뜨인다.

아랍풍 십자가라 독특하다.

 

사진으로 보니 잘 정돈되어 보인다.

 

시칠리아 사람들이 공예수준을 보여주는 도포.

로저2세 때 만든 화려한 도포는 빈 왕실로 가져가서 보물 창고에 전시중인 것도 있다.

 

실크와 은으로 만든 작품이 많은 것은 이 사람들의 습관이었나?

 

금은 보화로 장식된 성채는 어딜가나 화려하다.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된 장식품들도 정교하긴 마찬가지다.

 

성당에 들어서서 좌측엔 유명인사들 관이 전시되어 있다.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프레드릭 2세

(아주 강력했던 황제. 왕관의 주인인 콘스탄스 왕비의 아들)의 관이 있는가 하면 그림처럼

시칠리아 최초의 왕인 로저2세 (11세기-12세기)의 관이 바로 옆에 있다.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그리고 튀니지를 정복한 인물이다.

기둥과 지붕이 화려한 모자이크로 덮여 있다.

 

성당을 들어오기전 입구 왼쪽 기둥에

아주 작아서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이것은

이슬람 모스크였던 흔적을 말해준다.

쿠란의 구절이 적혀있다.

 

멀리서 전체 모습을 다시 한번 감상한다.

참 다양한 모습이 올라갔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른쪽 바로크 스타일의 둥근 지붕은 18세기에 만들었는데 자랑을 많이 하는 돔이다.

 

성당을 나와 배고품을 해결하려고 식당으로 가는 중에

노르만 왕실 앞에 있는 규모가 큰 빅토리아 광장을 통과했다.

 

 

광장 한쪽엔 팔레르모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 서있다.

팔레르모에 왔다면 반드시 이곳 내부는 봐야 한다.

로마의 요새위에 11세기 아랍인들이 궁전을 세웠다.

그리고 시칠리아 최초의 왕 로저2세가 확장해서 더 화려하게 만들었다.
(그 화려함을 시칠리아 다음 편에 보여주겠사와요)

 

왕실로 가는 동안 호객행위를 하는 식당이 있었서 지하로 내려갔다.

처음엔 이쁜 여자애가 호객하더니 돌아 왔을 땐 순박한 청년이 있다.

가격을 따져보니 옵마나(옵마니 반메훔이 나온다) 싸다. 

분위기도 그럴싸하고

 

물도 주고 나오는 음식도 꽤 좋았다.

물, 셀러드, 빵, 오징어 튀김 등이다.

나는 뭔가 모자란다 싶어서 핏자를 시킨 기억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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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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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은 내가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예요,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에요.

    2013.04.03 21: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눈을 감아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2013.07.12 07: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팔레르모.

그리 크지않은 도심에 자리한 호텔에서 밖을 내다본다.

잠시후면 많은 이들이 시끄럽게 다니겠지만 아침은 비교적 조용~

 

저가 호텔이라 아침 식사라는 것은 호텔에서 지급한 쿠폰을 들고 근처 cafe에서

빵 한개와 커피로 교환해서 먹는 식이다.

에스프레소와 크로와상으로 했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깃발이 걸려진 호텔 건물은 그럴싸 해보인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4층으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그야말로 무자게 걸어서 계단을 올랐다. 서양의 오래된 건물은 층간 높이가 작난 아니다.

 

걸어서 20분 거래내에 중요한 장소가 다 있다.

팔레르모는 마뀌에다(Maqueda) 거리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

바뀌에다 거리와 남북을 나누는 빅토리아 엠마누을 거리가 교차하는 부분에 좀 중요한 건물들이 있다.

오른쪽은 아랍+노르만 스타일 건물로 지금은 기사단 소유.

 

 

시칠리아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복합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뾰족아치 창문은 아랍식 격자처럼 보이지만 쿠란에 내용이 담겨 있다.

 

내부는 장식이 전혀 없다.

외부에서 보는 붉은 색 돔이 내부에선 이렇게 보인다. 

 

돔 사방엔 아랍약식이 잘 나타나 있다. 

 

 

바닥에 아랍식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아주 작고 아담하다. 

팔레르모의 거의 중심쯤에 해당하는 곳에 '폰타나 프레토리아'가 있다.

옆에는 시청도 있고  거대하고 화려한 바로크 성당도 있고.

 

16세기에 토스카나의 조각가가 만들었다.

신화적인 인물들로 되어 있다. 

 

전부 벗고 있어서 이 분수를 "부끄러운 분수"라 부르기도 한다.

 

빅토리오 엠마누엘 거리와 마뀌에다 거리가 교차하는 곳에.

모퉁이가 같은 건물이며 부수가 각각 있고 조각이 서있다.

팔레르모에서 제일 복잡한 곳이다.

 

 

마뀌에다 거리를 10분만 걸으면 시원스럽게 서있는 가로수들이 있고

깔끔한 바닥과 깨끗한 가판대가 서 있는 베르디 광장이다.

 

거기에 띠아트로 마시모 극장이 있다.

팔레르모 재건의 상징이다.

 

19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이 건물을 짖기위해

성벽과 성당등 여러채의 건축물을 허물었다.

유럽에서 가장큰 오페라 하우스 중에 하나다.

 

오페라 하우스 압쪽으로 가지런히 정돈된 골목이 시선을 당겼다.

이곳으로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일단 다보기로 했다.

 

마침 고고학 박물관을 만났다.

그러나 방문했을 당시 내부는 개방되지 않았다.

11월이라 문을 닫는다고 했다.

 

로마거리 한쪽 산 도미니크 광장에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팔레르모에서도 유명한 시장이다.

 

좀더 가면 빈민촌이 나타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이지만 어두운 구석이 남아 있다.

너무 처참한 모습이라 마치 공습을 받았거나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처럼 보인다.

가장 못사는 시칠리아가 이정도면 진짜 못사는 사람들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금새 바닷가 근처 공원이 나온다.

마리나 광장이다. 근처엔 요트가 줄지어서 정백되어 있다.

예전에 무역으로 돈번 부자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세월의 오래 되었음을 보여주는 보리수나무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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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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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들은 죽을걸 알면서도 살잖아 .사랑은 원래 유치한거에요

    2013.07.14 01: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탈리아2012.08.24 11:30

종교를 떠나 장식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은 유럽에 산재해 있는 성당들이다.

신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은 내부 장식을 극한으로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일자 무식한 사람들이 많았을 당시 성경을 가르치는 방법은 그림 조각등을 성당에 장식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몬레알레를 상징하는 황금모자이크는 그 면적만 해도 2천평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아랍의 장인들이 이슬람 장식을 아주 많이 남겼다.

 

이슬람 적인 요소도 많고 구약에 대한 그림도 매우 많다.

 

천장을 떠 받치는 구석구석까지 손이 안 간 곳이 없다.

 

 

벽면에도 빈 공간으로 남겨 놓은 곳도 없으며

 

천장과 벽면 모두 그림처럼 보이지만 모두 모자이크 그림이다.

 

 

 

구약과 신약의 내용들로 도배되어 있고 중간에 이슬라적인 그림과 장식을 발견하게 된다.

 

입장료를 내가 들어가야 되는 부분엔 바닥부터 엄청나다.

같은 문양을 찾기가 어렵고

 

불교의 만자를 연상하는 도안들도 동물 형상에서부터 다양한 문양을 한다.

 

 

보물이 보관되어 있는 전시실엔 극도로 섬세하고 화려한 대리석 장식들이 기다린다.

 

그러면서 모자이크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생명의 나무인 포도 나무를 장식했다.

 

가까이 들여다 보면 기본이 이정도이다.

 

색이 다른 돌들을 각기 집어 넣은 엄청난 수고를 했다.

 

이런 모습들로 사방이 꽉차있다.

 

천이 약간 주름이 간 것 같은 모자이크 장식도 이채롭다.

 

바다를 통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바다와 관련된 부분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바닥엔 거센 풍랑을 지나는 배를 모자이크로 실감있게 장식했다.

설명 안해줘도 배에 오른 사람들 모습에서 이슬람인 임을 알게한다.

 

대주교가 의시게 사용했던 의복과 지팡이.

 

금과 은으로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다.

 

 

 

지팡이 끝에 달린 장식이 극도로 섬세하다. 놀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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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22 09: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당신은 내가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예요,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예요.

    2013.04.24 20: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귀를 기울여봐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널 사랑하고 있는거야.

    2013.04.28 03: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나는 너를 생각한다.

    2013.07.14 19: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