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2016.10.11 07:54

<파라다이스의 본래 이름 파사르가데 Pasargadae의 정원>

 

페르시아의 본영이라고 하는 이란의 파사르가에 가면 2,500년 동안 서있는 작은 피라미드가 있다.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제국(BC550~BC330)을 창설한 왕중의 왕 키루스 2세 (Cyrus II) 대왕의 영묘이다.

이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많은 기록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있다.

 

키루스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레스 대왕으로 바빌로니아를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정복한 후

유대인들을 풀어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내용에 대해서 구야성경 에스라서에 나온다.

자신의 고향의 돌아가서 이스라엘을 재건할 수 있게 재정을 지원해줬다. 이 때문에 키루스 대왕을 칭송하는 많은 구절이 나온다.

그는 국가경영의 기본은 정복한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서 그들의 스타일대로 살게 했다는 점이다.

정복지에서 군인들의 약탈 금지, 점령지를 개발하는 공공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상 키루스 대왕만큼 칭송을 받는 왕이 드물다.

유대인은 물론이고 적국이었던 그리스도 위대한 군주로 칭송했다.

그리스 역사학자 그세노폰은 "비길자가 없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정복자"라고 기록하면서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라고 하고 있다.

 

전세계 다양한 거대 왕조들이 왜 페르시아 제국의 경영기법을 벤치마킹 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대제국들이 이루었던 포용(관용)정책이다.

각 민족의 종교를 인정하고 그 문화는 누리게 하는 정책을 펴온 나라들은 오랫동안 거대 제국을 유지해왔다.

지금은 미국이 그런 역학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키루스 대왕의 업적이 나타나 있는 원통형 기록이 브리티시 뮤지엄에 보관되어 있다.

점토로 되어 있는 이 기록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최초의 인권선언에 대한 내용부터 다양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파사르가데는 시라즈에서 140킬로미터 떨어진 해발 1,900미터의 평원에 자리하고 있다.

평원은 위가 넓고, 밑이 좁은 사다리꼴 비슷하게 생겼는데 길이가 25킬로미터 북쪽폭은 10-10킬로미터 남쪽은 폭이 1킬로미터 정도이다. 평원 주변은 가파른 산들이 감싸고 있다.

키루스 2세가 만든 페르시아의 첫 수도였던 파사르가데 가면 키루스 대왕의 묘지를 제외하곤 황량하기 그지 없다.

기원전 6세기 키루스 대왕이 만들었던 정원은 사라지고 궁전은 기둥과 터만 남았다.

2,500년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란이 더울 것 같지만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어서 추울 때는 우리의 겨울보다 더 춥다.

쌀쌀한 날씨에 코가 얼 정도였다.

 

돌들은 접착물질을 쓰지 않고 돌과 돌을 연결하는 쇠로 이었다.

무덤이 왜 6층(7개 기단) 위에 만들었는지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이 없다.

이란 전체에 걸쳐서 이와 비숫한 형식은 두 개 밖에 없다.

하나는 키루스 대왕의 선조들이 세운 엘람 왕조 시대 만든 무덤양식이다.

마치 고구려 고분양식 비슷하다. 혹시 먼 이국 땅 고구려와 통교를 하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로아스터교는 공기와 물과 흙, 불을 더럽히면 안되기 때문에 위에 묻었다고도 한다.

 

파사르가드는 페르세폴리스 북쪽에 자리한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제국을 침공했을 때 다른 것은 다 약탈하고 불 태웠지만 자신이 존경하고 그리스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왕 키루스 대왕의 무덤 외관은 남겨 놓았다.

그러나 무덤을 도굴 했다.

그리스 역사학자의 기록에 따르면 금잔, 키루스 대왕이 잠든 금으로 된 관, 마차, 칼, 금 장식 귀고리 그리고 대왕의 입었던 예복, 바빌로니안 카펫이 있었다고 한다.

훗날 사산조 페르시아가 망하고 압바스 왕조가 왔을 때 이슬람인들은 파괴를 일삼았다. 이 때 키루스 대왕의 무덤도 파괴하려하자 지키던 사람들이 "이 무덤은 솔로몬의 어머니 무덤이다."라고 해서 무사히 넘겼다.

그 후 무덤은 솔로몬 어머니 모스크로 변모했었다. 아래 그림에서 기둥은 모스크를 만들었을 때 무덤 주변에 회랑을 만들 때 사용했던 기둥들이다. 지금은 기둥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학자들은 알렉산더가 훔친 물건 중에는 아래 그림과 같은 형태의 각배가 있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다양한 페르시아의 보물들 중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이다.

 

동쪽으로 파사르가데에 들어오는 입구 집에 새워진 키루스 대왕의 부조이다.

2미터가 넘는 실물보다 큰 조각이다.

풍화에 많이 사라지고 있어서 보호 장치를 했는데 아직 허술하다.

 

 

날개를 달고 3개의 물병 또는 도자기를 이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런 머리장식 이집트에서 먼저 나왔다.

의미는 해뜨는 아침에 태양의 아들로 권위를 상징한다.

이 같은 모양은 이집트 18왕조 시절 사용했던 왕관으로 키루스 대왕은 이집트에 가보지 않았지만 문화를 받아 들였다. 스스로 태양의 아들, 하늘의 아들임을 나타한다. 그러니까 천자(天子)임을 나타내는 증표이다.

이집트 18왕조는 이집트를 정복한 힉소스인들이 세운 왕조인데 그들의 조상은 아시아 기마민족인 킴메르인들일 것으로 여기고 있다. 위대한 키루스가 힉소스인들의 문화를 받았다면 기마민족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무덤 양식도 비슷하고 말이다.

 

 

아래는 이집트 18와조 시절 파라오 들의 왕관들이다.

 

이집트 벽화에 나타나는 이집트 왕관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왕조를 창설한 키루스 대왕은 제국의 국장을 조로아스터교에 입각해서 만들었다.

 

페르시아 제국 왕들이 차지했던 지역들에 대한 지도이다.

초록색 지역은 키루스

파란색 이집트를 합병시킨 왕은 키루스 왕의 아들 캄비세스 2세이고

붉은까지 확장한 왕은 다리우스 1세이다.

 

페르시아인들이 말하길

다리우스는 상인이고 (늘 이익을 중시)

캄비세스는 장인이며 (거칠고 가혹 했고)

키루스는 아버지라고 이야기 한다. (아버지 처럼 자상하게 배려했다.)

 

 

세워진 구조물이 몇 안되는 곳이라 다니다 보면 기둥들을 다 보게 된다.

 

키루스 대왕의 개인 궁전 근처에 있는 기둥에 쇄기 문자가 새겨 있다. 

위에 두줄은 "나, 키루스 대왕 아케미니드"라고 쓰여 있다.

세번째 네번째도 같은 의미이지만 페르시아 이전의 왕국이었던 엘렘어와 바빌로니아어로 새겼다.

이 글씨들은 위대한 왕 다리우스 1세가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도 아케메니드 왕조의 일원임을 보이기 위해서 였다.

 

파사르가데에 대한 간략한 지도.

 

접견 궁전터에는 13미터 기둥만 덩그러니 서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사정전 처럼 신하나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기둥의 크기로 그 규모를 짐작할뿐 사실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된다.

 

그래서 책자를 구입해서 보았더니 대충 알 것 같다.

크기는 54미터 X 35미터나 된다.

 

접견실 내부의 상상도이다.

더 화려했었 겠지만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접견 궁전 한쪽에 있는 물고기 비늘의상을 한 남자의 다리가 조각되어 있다.

앗시리아 문처럼 조각되어 있는 이 인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동물을 가지고 와서 주는 모습으로 여긴다.

 

파사르가데는 산에서 물을 끌어다가 정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수로는 다리우스 1세가 변형했거나 첨가한 것이다.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용어는 아케메니드 왕조의 건축에서 나온 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페르시아 스타일의 정원은 누각이 있고 물이 흐르고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름에 쉴 수 있는 빌딩을 만들어서 담을 쌓고 지냈던 곳이다.

 

가장 오래된 페르시아 정원은 키루스 대왕이 파사르가데에서 만들었다.

아래는 그 정원 지도를 대략적으로 만든 것이다.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누각들이 있다.

그리고 정원안에는 키루스 왕의 개인궁전과 접견궁전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

4개의 구역으로 나눈 부분이 핵심이다.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가든의 기본 형태가 이때 나왔다.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용어는 페르시아 언어로 "담으로 감싸여 있는"이란 의미이다.

파르스 지방의 파사르가데에서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 졌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서

에덴 정원, 신이 기거하는 정원이며 사람이 죽은후 고결한 사람들만 산다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완벽한 장소에 대한 고대인들이 꿈은 길가메시시 서사시에 영원한 신의 정원을 이야기 한다.

신의 정원에서 물은 생명을 의미하고

식물과 나무는 신을 이야기하고

4개로 구획된 정원은 4개의 삶을 의미한다.

 

 

파사르가데에서 가장 큰 건물은 키루스 대왕의 개인 궁전이다.

위 정원 그림에서 위쪽 건물에 해당한다.

남아 있는것은 터와 짤막한 기둥들뿐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가장 높은 구조물은 솔로몬(술레이만)의 감옥이다.

솔로몬의 이름을 빌린 감옥으로 솔로몬과는 관련이 없다.

용도가 여러가지라는 설은 많지만 정확하게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야말로 황성옛터이지만 의미있고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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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

    대단합니다... 우물안 개구리가 따로 없네요. 우리 역사공부는 세계사를 제대로 아는 것과 함께 되어야 바르게 볼 수 있겠네요~ 귀한 이야기, 고맙습니다^^

    2016.10.11 08: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란2016.08.31 02:49

<페르시아 시장>

 

이란에 가던지 터키에 가던지 시장을 빼면 기본이 빠진 것이 된다.

페르시아의 시장들은 터키에 있는 어떤 시장보다 능가한다.

이스탄불이 자랑하는 그랜드 바자르도 소규모 시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곳이다.

규모는 물론이고 장식과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곳

그리고 환상적인 지붕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건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고대 실크로드의 길목을 장악하고 있던 곳이라 시장의 풍족함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야 말로 없는 것이 없다. 

 

 

카샨에 있는 시장을 다니다 차를 마시려고 휴식을 취하는 곳.

세상 가장 멋진 찻집이 아닐까 싶다.

 

시장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지역의 시장을 갔었는데 아래는 테헤란에서 들렸던 시장이다.

 

http://band.us/@awesome

(오감만족 세계여행 밴드에 초대합니다.)

 

색이 바랬지만 그 위용은 그대로이다.

 

잘 정돈된 곳도 있었고

 

사람 구경하고 사람을 만나기엔 그만이다.

 

 

정교해도 너무나 정교한 공예품들

코팅 처리가 뛰어나서 긁어도 긁히지 않는다.

 

청동 표면에 무늬는 그려 넣는 장식품들 

 

깨지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구경으로 족하다.

 

페르시아 시장에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염색한 실을 파는 곳도 만나고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견과류와 쌀, 콩, 소금 기타..

 

정교한 그림까지

이슬람 문화권에선 회화가 발달하지 않았지만 이란에선 그림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기독교 문화권은 성당 내부에 성경속 내용을 그려넣어왔기 때문에

오랫동안 회화가 발전해 온 반면 이슬람은 모스크 내부에 그림을 그려

넣지 않았기 때문에  회화가 발전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라가 모든 것을 창조 했기 때문에 생명이 있는 사람과 동물은 그려 넣지 않는 습관 때문이다.

따라서 나무와 식물, 기하학적인 무늬 그리고 신들의 이름을 써 넣었다.

소위 아라베스크 문양이 발달했다.

 

 

위 그림을 보고 있으면 <페르시아 시장>이라는 음악이 생각이 난다.

경쾌하고 웅장하고 역동적인 면을 느끼게 하는 그 음악.

영국인 작곡가 알버트 커텔비가 1920년도에 만든 가벼운 클래식 곡으로 내용은 실제 페르시아 시장이라기 보다

유럽인들이 상상하고 생각하는 동양의 시장 분위기를 음악으로 만든 것이다.

아래 영상은 앙드레 류가 지휘했다.

한 번 듣고 갑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빠질수 없는 달달한 것들

 

사람들이 설렁설렁 장사를 한다.

 

원단을 파는 아저씨는 고민이 있는 듯하다.

 

신발가게 아저씨는 전화기를 보고 계시고

 

표정들이 삼삼하다.

 

엄마와 같이 온 아이는 뭔가 요구 사항이 있는 듯하다.

 

아래 사진은 이란을 가장 많이 찾는 독일 관광객들(전체 관광객의 80%)이 원하는 물건을 찾고 있다.
아주머니 원하시는 것이 뭐예요?

 

향신료 가게주인은 장사가 좀 된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귀하디 귀한 몸이셨던 향신료님들...

아래 왼쪽 붉은 색이 향신료 중 최고이신 샤프란님.

 

듣도 보도 못한 향신료들이 쌓여있다.

 

바자르를 나니다 보면 밤이 된 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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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2016.08.26 01:36

<다이어트 여행을 하려면 이란으로 가라! >

 

이란에서 뭘 먹을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맛있는 이란 음식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절대 살이 찌지 않는 방법이 있다.

이란인들이 만들어서 파는 요구르트는 다음날 아침 뱃속의 모든 것을 싹 비워준다.

실제로 여행중에 무자게 먹었음에도 몸무게는 계속 줄어 들었다.

세상 다 다니면서 요구르트란 요구르트는 다 먹어 봤지만 일행들 전체가 몸무게 줄어든 경우는 이란뿐이었다.

 

(사진: 테레란 시장에 있는 간의 식당에서 먹는 장면이라 좀 어지럽다.ㅋㅋ

흰 통에 담겨져 있는 것이 페르시안 전통 요구르트 두구 Doogh)

 

(아래 사진:  걸죽한 우유같은 요구르트 두구.

두구Doogh는 페르시아 어로 "젖을 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에서 유명한 요구르트로 향신료가 들어가 있어서 맛을 그닥 좋지 않지만 효과 만큼은 대박이다.)

 

이란(페르시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난(Nan)이다.

중동지역과 인도 등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빵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이 빵은 단순하게 밀가루로만 만든 것으로 고소하고 매우 맛이있다.

아무래도 재료의 신선함이 빵 맛을 결정한다.

우리처럼 수입해서 만들지 않고 밀을 직접생산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란은 27개의 지방에 밀을 생산하는데 345개의 재분소를 가지고 있는 밀 수출 대국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란의 면적은 우리나라(남한) 면적의 16배나 된다.

가게 앞에 빵을 걸어서 지금 빵을 판다고 알리는 신호이다.

 

이란 사람 대부분은 집에 화덕이 없으며 밖에서 사서 먹는다.

지역마다 화덕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빵굽는 방법도 여러가지이다.

아래는 밀가루를 이스트에 발효시켜서 만드는 집이다.

 

밀가루를 펴서 중간에 구멍을 내서 빵이 익는 속도를 높인다.

 

저녁에 왔더니 넌난 다 팔리고 없다.

 

시라즈에 있는 빵가게 앞에서 남자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이란에서 빵을 사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이다.

어느 곳에선 여자가 빵을 사러 갔더니 팔지 않았다.

 

구입은 불과 몇개의 빵을 사기도 하지만

 

보통 50개의 빵을 사가기도 한다.

 

오른쪽 아저씨가 빵의 갯수가 채워지기 까지 기다리면서 빵을 쌓아 두었다.

잘생긴 친구도 줄을 서서 뜨거운 빵을 모은다.

이 빵의 이름은 상각(Sangak)이라 한다.

넓적하고 얇게 펴져 있는 빵인데 상각은 페르시아어로 조약돌이다.

오븐 위에 조약돌을 올리고 그 위에 밀가루 반죽을 올려는 굽는 방식이다.

얇고 매우 빨리 만들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 많이 굽는다.

빵 표면이 조약돌에 익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빵은 11세기에 군인들이 빵을 만들어 먹던 방식이다.

군인들은 조약돌 몇개씩 들고 다녔는데 캠프에서 조약돌을 다 모아서

전체 군인이 먹을 빵을 구웠다고 한다.

 

빵을 요구한 숫자만큼 금방금방 나와서 열기를 식히고 따뜻할 때 빵을 집으로 가져간다.

이 빵으로 케밥을 싸서 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 친구는 빵을 배달하는 중이다.

테헤란에서 잠시 포즈를 취했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빵만드는 화덕이다.

 

이 사람흔 호텔에서 일하는 중인데 쉽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서 밀가루 반죽을 기계에 넣어서 빼고 있다.

 

그리고 화덕 벽에 붙여서 만드는 방식이다.

손으로 만들지 않아서 였는지 빵이 맛이 없었다.

 

야즈드 시장에서 만난 전통 빵을 만드는 장인이다.

손으로 일일이 반죽을 펴고 화덕에 넣어서 굽는데

먹어본 빵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좀 두껍게 만든 빵도 만났다.

이란을 가면 어느 곳이든지 빵을 만드는 곳이 있는데 우리네 짜장면집 또는 김밥집 처럼 흔하다.

 

오늘의 식량을 사들고 가는 할아버지의 흐믓한 표정을 담았다.

이란 사람들은 사진 찍는 요청에 흔쾌히 웃으면서 답해준다.

이란 사람들이 매우 친절하고 좋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오래 동안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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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2016.03.19 17:44

, 와인, , 나이팅게일 새의 도시 시라즈(Shiraz)

 

 

시라즈는 이란의 남쪽 파르스 지방의 수도이다. 파르스 주는 이란의 28개의 주 중에서 페르시아 제국이 탄생한 곳이어서 파르스 주라고 불리고 있다.

시라즈는 약 4,000년 전에 만든 엘렘왕국의 흙판에 티라지시(Tiraziš)라는 도시라 했다고 쓰여 있었다. 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도시를 만들기 시작한 시라즈는 11세기에 압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와 버금가는 도시였다.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쉬라즈를 페르시아의 얼굴이라고 했다.

 

 (위 : 시라즈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페르세 폴리스 전경)

 

(위: 거대한 궁전들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페르세폴리스의 기둥들)

 

페르세폴리스를 둘러보고 시라즈로 돌아와서 시라즈 전경을 감상하러 코란의 문 옆에 있는 북쪽 산으로 갔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어서 산책로도 있었고 벤치를 만들어서 도시를 감상할 수 있게 해놓았다.

젊은 남자들끼리 오기도 했고 모녀가 와서 도시의 전경을 즐기기도 했다.

 

(아래: 북쪽 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

 

(아래: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시라즈 시내의 파노라마 전경이 들어온다.)

 

 

 

(아래: 강수량이 적은 돌산에 핀 이름 모를 꽃. 봄이 되기 시작하는 길목에 피어서 반가웠다.)

 

 

(아래 두 장 : 모녀가 산책을 나왔는데 기꺼이 사진 모델로 응해 줬다.)

 

 

시라즈는 한 때 와인이 유명 해 곳이어서 시라즈에 가면 시라즈 품종으로 빚은 와인을 마실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와인은 고사하고 술이라고는 꼴도 보지 못했다.

이슬람 국가는 술이 금지이며 특히나 이란이 엄격한 시아파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술에 대해서 절대 관대하지 않다.

그러나 시라즈는 지금도 와인의 도시로 불릴 뿐만 아니라 시의 도시, 꽃의 도시, 다양한 소리를 내는 나이팅게일 새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시라즈가 와인으로 유명했다는 것은 현재 세계적으로 알려진 포도 품종 시라즈가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란의 시라즈에서 시라즈 포도 품종이 전 세계로 퍼진 것은 아니다.  호주가 개량한 포도 품종을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와인 생산지였던 시라즈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

이란 여행 때 술이 생각나더라도 쿡 참고 있어야 된다. 여행 중에 식당에서 구경할 수 있는 술은 알콜제로맥주 뿐이었다. 세상에 술 없는 곳은 없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여행객의 편법이 통하지는 않는 곳이라 한국에서 가져온 팩소주 몇 개로 호텔방에서 달래야 된다. (사실 반입도 금지이다.)

 

시라즈의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신 인물을 꼽자는 시성 하페즈라 하겠다.

괴테가 시에 대해선 대적할 자가 없다.’고 했을 만큼 괴테도 하페즈를 통해서 시를 배웠다.

그에 대한 다양한 찬사 중 신비의 혀’, ‘언어에 관한 최고의 음악가라는 표현은 이란을 대표하는 인물임을 나타낸다. 그러니 하페즈를 모르면 이란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란 가정집에 다른 책은 없어도 반드시 있는 책이 코란과 영웅의 이야기 샤나메 그리고 하피스의 시집이다.

일상의 대화도 하페즈의 시를 인용하며, 정치적 설득에도 이용할 정도라 한다.

 

(아래: 오렌지 나무가 운치를 더해주는 하페즈 영묘)

 

 

 (하페즈 묘에 손을 대고 코란을 암송하거나 하페즈의 시를 암송해서 하페즈와의 만남을 가진다.)

 

(아래: 이란인 이라면 누구라도 오고 싶어하는 곳. 하페즈의 영묘)

 

 

하페즈의 묘지는 저녁에 가야 더욱 운치 있다. 시라즈의 북쪽 하페즈 거리의 인근에 자라한 한적한 공원에 조성 되어있다. 저녁이라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많은 이들이 찾아 가는 곳이어서 다소 놀랐다.

우리나라와 같은 밤문화, 술문화가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란인들이 사랑하는 역사적인 영웅과 동일시하는 하페즈를 찾아서 친구들 끼리 연인들끼리 또는 식구들이 찾아와서 하페즈를 경배하고 담소를 나누고 즐기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하페즈의 묘가 있는 공원에서 만난 현지인에게 하페즈에 대해서 물었을 때 신년 또는 특별한 날 아침에 일어나서 하페즈의 시집인 디반(Divan)을 임으로 펼쳤을 때 나오는 시가 신년 운세 또는 그날의 운세로 알고 사람들이 행동합니다.”라는 대목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실제로 이란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지인도 매년 신년이 시작하는 노르즈 명절(321일 춘분) 때 가족들이 모여서 하페즈이 시집을 펼쳐서 읽거나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하는 날 아침에도 무작위로 펼쳐서 읽는데 이것은 하페즈에게 운세를 청하는 것이라 이야기 했다. 우리가 토정 이지함 선생이 남긴 토정비결로 신년 운세를 보는 것과 비슷한 풍습이라 하겠다. 가장 큰 차이라면 우리는 생년월일에 따라서 보지만 이란은 무작위로 펼쳐서 본다는 점이 다르다.

하페즈라는 이름은 아호이며 코란을 암송한 자라는 고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의 시가 동서양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리고 그 유명인의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하지 않다. 단지 학자들이 1325년에 태어나서 1389년에 사망한 것으로 합의를 봤을 뿐이다. 생몰연대가 부정확한 만큼 그의 행적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기도 하다. 그는 시라즈를 거의 떠나지 않았던 인물이다. 하페즈보다 앞서서 몽골강점기에 활동했던 유명한 시인 사디(Sadi)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30년간 유람했지만 하페즈는 시라즈를 거의 떠나지 않았다. 그의 기본 사상을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에 있다. 신비한 체험으로 나를 소멸해서 신과 합일에 도달 할 수 있는 사상이다. 수피즘에선 술을 마셔도 되는데 술을 자기소멸과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하페즈는 신은 세상을 만든 이래 술이외의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내 존재의 토대는 취하면서 쌍아 갔으며 슬픔의 약은 술이다. 전설속의 잠시드 왕처럼 술잔을 통해서 세상의 일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신의 이슬, 어둠을 밝히는 빛, 불타는 루미, 이성의 집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런 생각이 반영이 되어서 하페즈는 신비주의 입각해서 술과 사랑에 관한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그의 시의 예를 들자면

나의 종단(수피즘)에는 술이 허용(하랄)되거는, 장미 같은 몸매인 당신 얼굴 없이 술 마시는 것은 금기(할랄)이라네.”

장미는 내 가슴속에, 술은 내 손에, 연인도 내 곁에 있으니 그런 날엔 세상의 군주도 나에겐 한낱 노예일 뿐.”

하페즈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갑자기 와인을 마시고 싶어진다. 와인이 없었다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하페즈는 종교를 서정적인 시로 승화시킨 대단한 천재이거나 반도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현재 하페즈 묘지는 오렌지 나무가 많이 심어진 무살라 정원에 조성되어 있다. 묘지는 시대를 지나면서 지속적으로 조금씩 고쳤다. 현재 모습은 1935년도에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했다. 묘지공원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공원 입구에서 막 들어간 부분은 현세를 의미하고 조금 걸으면 계단 위에 동서로 56미터 길이의 긴 누각이 나타난다. 그곳을 넘어 가면 내세를 의미한다.

 

(아래: 긴 회랑을 넘어서면 하페즈의 묘가 나온다.) 

 

10미터 높이의 기둥 8개가 받치고 있는 모자모양의 지붕이 있으며 지붕 안쪽의 문양이 이란의 전통놀이 백개먼(Backgammon) 보드 판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놀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 중에 하나로 대략 5,000년 전부터 전해져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 하페즈 묘의 지붕. 백가먼 보드게임 모자이크를 담고 있다.)

 

(아래: 시라즈 시장에서 쉽게 만나게 되는 백개먼 보드게임)

 

 

백개먼 게임은 사람의 일생과  의미하기도 한다. 보드판은 봄,여름,가을,겨울을 상징하는 부분과 12달을 의미하는 12개의 삼각형 형태의 무니가 있다. 주사위를 던져서 알을 상대편 쪽으로 다 옮기는 이기는 게임으로 사람의 사는 세상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미래를 말해주는 게임이다. 중동지역뿐 아니라 중세 유럽에서도 사용했던 놀이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백개먼 게임보드판 무늬를 하페즈의 묘지에 장식한 것은 사람들의 미래를 알려주는 하페즈의 시와 상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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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란의 다음 이야기 기대 됩니당~

    2016.03.19 19: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와인과 꽃과 시의 도시라.. ㅎㅎ 참 신비롭고 흔하지 않은 것 같아서 더욱 매력적인것 같습니다.

    2016.03.20 19: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이란2015.09.20 23:21

낙쉐로스탐(Naqsh-e Rostam) : 페르시아 제국 왕들의 독특한 영묘



(위)낙쉐로스탐은 페르시아 제국의 전설적인 들의 무덤으로 글자의 뜻은 로스탐의 그림이라 의미이다. 

처음 이곳 명칭은 '묻는 장소' 쯤으로 불렸는데 이는 

그리스 명칭으로 네크로폴리스(죽은 자들의 도시)라고 했기 때문이다.

페르시 제국이 망하고 파르티아 제국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했다. 그래서 페르시아 왕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페르시아 황제들의 무덤 아래쪽 벽면에 사산조 왕들은 자신들의 공을 새겼다. 

이후 로스탐의 그림이라고 개명했다. 

돌산을 뚫은 거대한 무덤 4기가 있다.

처음 보면 용도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무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의 무덤이다. 






(위)돌산을 파서 관을 안치 했는데 조로아스터 교를 신봉했던 이들은 기본 교리에 입각해서

깨끗한 공기, 깨끗한 물, 깨끗한 흙을 위해서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땅에 매장하지 않았다. 

조로아스터교는 전통적으로 시신을 조장해왔다. 

지금은 조장 풍습이 사라졌다.


입구에 가면 페르시아어로 나퀴쉬루스탐(낙쉐로스탐) 팻말이 있다.


(위)페르시아 십자 모양의 무덤은 높이가 약 22미터 폭은 약 18미터 가량된다.  

아래 쪽엔 사산조 페르시아 시절 왕들의 승리한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무덤 부분에 돌조각에 대해선 아래 그림이 설명해준다.


(위)신전 또는 궁전 모습으로 장식한 무덤은 외관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선 아래쪽 기둥은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궁전의 모습과 동일한 형태로 조각했다. 

문처럼 보이는 곳이 페르시아 왕이 영면한 장소로 들어간다.

왕좌 위에 서있는 인물이 무덤의 주인이다. 

로아스터교의 신 아후라 마즈다를 상징하는 신성한 인물이 공중에 떠있다. 왕의 앞쪽에는 

광명(光明)을 상징하는 조로아스터교의 불이 놓여있다. 

하늘에도 광명을 상징하는 태양이 떠있다.


(위)각각의 무덤 아래쪽에 새겨진 사신조 페르시아의 그림들을 몇가지 살펴본다면


(위)사산조 페르시아를 세운 아르다쉬르 바바칸(Ardashir Babakan)가 조로아스터의 신 아후라마즈다로부터 왕권의 상징인 둥근 고리을 받고 있다. 

여기 새겨진 글자에 이란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이란인들의 왕중의 왕 아르다쉬르(ardašīr šāhān šāh ērān /aryān )라고 새겨져 있다.

현재 이란이라는 용어의 시작이다.


(위)왕의 복식의 특징으로 머리에 올려진 둥그런 태양같은 모양이다. 

조로아스터교의 광명의 상징인 태양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의 부조에는 상투를 튼 모습으로 등장한다. 

발아래 있는 사람은 사산조 페르시아를 세운 아르다쉬르가 굴복시킨 파르티아의 마지막 왕 아르타비누스 5세이고 

아후라 마즈다 아래 있는 인물은 파르티아 제국시절 가장 큰 종교였던 무적의 태양신 미트라일 것으로 여겨진다.


(위: 타케 보스탄Taqu-e Bostan: 정원의 아치를 의미하는 곳으로 사산조 황제들의 거대한 조각들이 많은 곳이다. 이란의 서쪽 케르만샤 인근. 사산조의 왕 아르다쉬르 2세가 왕권의 상징인 고리를 받는 모습. 상투를 튼 모습으로 나온다.)


(위)사산조페르시아의 왕 샤프르(Shapur) 1세가 로마의 황제 발레리안(Valerian)을 포로로 붙잡 장명을 새겼다.   

아케메니드의 1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을 시작으로 2파르티아 제국과 로마 전쟁, 3. 사산조 페르시아와 로마 전쟁 때까지 지속적인 전쟁을 했다. 

위 장면 중에서 말 앞쪽에 두 명의 로마 황제가 있다. 무릎을 꿇은 황제는 발레리안이고 서있는 사람은 시리아 출신의 로마 황제 필립이다.  필립 이전의 로마 황제 고르디안 3세는 샤푸르 1세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 후 황제가 된 필립은 사산조와 평화 협정을 맺었는데 이 때 전쟁 보상금으로 황금 50만 동전(아래 그림에서 돈을 주는 필립)을 주었다고 샤푸르 1세의 비문에 새겨있다.


(위)서기 240년 아데사(Edessa) 전투에서 패배한 로마 황제 발레리안은 로마 원전 전쟁 역사상 최초로 포로가 된 황제이다.

기록에 의하면 29개 유럽 부족으로 구성된 로마 군대와의 전투에서 샤푸르 1세는 대승을 거두었다.

무릎을 끓은 발레리안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중의 왕이라고 칭하던 사프르1세에게 목숨을 구걸 했다.

샤푸르는 발레리안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로마의 건축가 예술가들을 보내 올 것을 요구했다.

이 후 사산조 페르시아에 로마풍의 다양한 문화가 들어왔다. 

발레리안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비샤푸르 지역에서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위)낙쉐로스탐의 가장 왼쪽 벽면에 새겨진 장면으로 나르쉐(Narseh) 왕이 왕권의 상진인 둥근고리를 여성인물로부터 받고 있다.


(위)그림의 오른쪽에서 링을 주고 있는 인물은 이란의 벽 부조에서 종종 등장하는 여신으로 여져지기도 한다. 그러나 왕이 행동은 여신을 경배하는 모습이 아니다. 이로 인해서 여신이 아니고 친척이거나 여왕 샤푸르드오흐타크(Shapurdokhtak)라고 여겨진다.


 

(위)무덤이 있는 돌산 앞쪽엔 조로아스터의 카바 신전이라고 알려진 구조물이 있다.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구조물로 페르시아 시절에 만든 몇 안되는 구조물에 해당한다. 이 구조물은 파사르가다(페르시아의 본영)에 있는 구조물을 복재한 구조물로 다리우스 1세가 만든 것이다. 다리우스가 페르세폴리스로 옮겼을 때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옮겨온 것이다.  조로아스터의 카바라는 용어는 14세기에 나왔다. 카바는 메카에 있는 신성한 돌 카바와 같은 말이며 왕의 책이라는 "샤나메"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조로아스터 교도들이 순례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며 조로아스터의 신전도 아니다. 

그리고 이 구조물의 한쪽 벽면엔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 샤푸르 1세와 로마 황제 발레리안의 전쟁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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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2015.08.19 08:00

<페르시아의 영광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이란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페르시아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신들의 나라를 페르시아라고 불러 주기를 원한다. 

사용하는 언어도 페르시아어이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우리의 왜곡되고 잊혀진 역사를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이란인들은 좀 다르다.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인들의 도시를 뜻한다.

그러나 페르시아어로 타크테 잠쉬드이다. 전설속에 '잠쉬드 왕의 옥좌'를 의미한다. 

평지가 아닌 산등성이 옆, 경사진 땅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높이 쌓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아주 거대한 의자 처럼 보인다.



(위: 페르세폴리스로 향하는 도로. )


(위: 페르세폴리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입구.)


페르세 폴리스 들어가는 입구에 서면  기단이 거대해서 성벽을 마주하는 듯하다.

천천히 여유있게 접근하라는 의미에서 높이가 낮은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평지로 만든 거대 궁전의 흔적을 만난다.  

해발 1770미터. 넓이 125,000평방미터 (39,000평).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85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가까운 쉬라즈에서 5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아케메니드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다리우스 대제)가 만들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넓혔다. 

제국의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거나 신하들을 알현하던 곳이기도 하며

페르시아 제국 최대 축제였던 봄축제 (노우르즈: New Year)에 제국에 속한 나라에서 엄청난 물건을 가지고 찾아 왔던 곳이다. 

페르시아 제국은 마라톤 전투를 비롯해서 그리스와 오래동안 전쟁을 했다. 

헤로도토스의 페르시아 전쟁사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당시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불태우는 사건이 있었다. 그 것을 보복하기 위해서는 아니었겠지만 알렉산더가 찾아 왔다.

알콜 중독자나 다름 없었던 알렉산더 3세(알렉산더 대왕)는 아케메니드의 다리우스 3세와 전쟁에서 이기고 페르시아를 약탈했다.

페르시아 제국시절 매년 각국에서 들어오는 귀한 보물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리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풀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나귀 2만 마리, 낙타 5천마리 동원해서 실어 날랐다.

승리에 도취한 알렉산더는 술파티 하면서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워 버렸다. (기원전 330-331년)

알렉산더는 33살 나이에 세상을 떳는데 그를 죽인 원인은 알콜 중독이었다.


이를 두고 후대 역사가들은 알렉산더의 최대 실수? 또는 욕먹어도 싼 행위라 한다.

이란 사람들은 이후로 알렉산더를 도둑에 불과할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알렉산더는 그리스 입장에서 역사서를 쓰게했다. 당연히 왜곡되게 기록 하였다.

마치 한나라의 무제가 사마천에게 사기를 쓰게 한 것과 유사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이란의 역사를 지워 버렸다.

정복자들이 피정복 국가에 가하는 가장 악랄한 행위는 역사를 없애는 것이다.

이란은 아랍이 침공해 왔을 때도 역사가 사라지는 치욕이 있었다.


1930년대에 미국 시카고 대학교 동방 연구소( Oriental Institute of the University of Chicago)에서 발굴하기 전까지 페르세 폴리스는 잊혀진 곳이었다.

흙으로 덮여있던 황성옛터가 발굴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고대 페르시아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돌에 새겨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위-페르시아 제국의 왕 다리우스 1세 때 만든 페르세 폴리스 전경-스마트 폰 파노라마 사진)


다리우스 대제가 기원전 6세기에 계획에 따라 만들기 시작하고 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Xerxes) 대왕 때에 완성했다.  

대리우스 대제는 극히 일부분만 봤고 대부분의 건물은 아들 크세르크세스때 만들어 졌다.

그리고 아케메니드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건물을 지었다.


(위:  크세르크세스의 문-일명 만국의 문)

그 옛날 대계단을 따라 오르면 첫번째 마주치는 문이었다. 지금은 누가 설명 안해주면 여기 저기 놓여 있는 부서진 유적처럼 보인다.

만국의 문은 페스시아 제국에 속했던 국가로부터 파견 온 사람들이  봄 축제(노우르즈) 또는 특별히 방문했을 때  처음 들어가는 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 계단은 111개나 만들었는데 말 타고 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높이 10cm로 낮은 높이이다.


(위: 만국의 문을 버티는 4개의 동물 중에 소)

 

(위 : 페르세 폴리스 지도)

가장 큰 건물이 아파다나 궁전으로 가장 정교하고도 대단한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 다리우스의 궁전이 있다.

아파다나 궁전 오른쪽이 100개 기둥의 홀이다. 대단히 화려했던 건물은 뼈대도 남지 않았다.

오른쪽 밑으로 보물실이 있다.


(위: 거대한 건물들은 온데 간데 없고 애처롭게 서있는 아파다나 궁전의 기둥들. 멀리 다리우스 대제의 비밀스런 궁전이 보인다.) 



(위: 그리핀 형태의 기둥머리)

기둥머리는 지붕을 받이는 보를 올려놓는 부분이다. 우리의 봉황의 변형으로 알려진 그리핀은 독수리 머리와 날개에 사자의 몸통과 꼬리를 가지고 있다. 하늘의 제왕과 땅의 제왕을 결합했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를 상징한다.

유럽의 각국에서 그리핀을 왕의 상징으로 했던 곳이 많다. 


(위: 목마 모양의 기둥머리)

실제 말이 아닌 목마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런 것들을 사용했던 원형을 볼 수는 없지만 아래 사진에서 복원했다.


(위: 복원한 100개의 기둥의 홀-기둥머리들의 역할을 잘 볼 수 있다.)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부터 인도까지 제국의 속한 각국의 사신들을 접견하는 곳이기 도 했고 연회를 배풀던 곳이다. 나중에 보물을 넣는 보관실이 모자라자 이곳에 보관 했다고 한다.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Xerxes) 때 만들기 시작해서 크세르세스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 때 완성했다.


(위: 폐허로 변한 100개 기둥의 홀) 

남쪽과 북쪽 방향으로 놓인 80개의 문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문들의 일부들만이 당시 규모를 이야기 하고 있다.

배경의 산은 자애로운 산이라 부른다. 산에서 도시를 건설에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 중턱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의 무덤이 있다.



(위: 보물을 저장하던 보물창고의 흔적)

알렉산더가 정복하고 나서 낙타 5천마리와 당나귀 2만 마리를 동원해서 남김 없이 가져갔다. 기둥이 있었던 자리만로 미루어 당시를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위: 100개의 기둥이 있는 홀과 인접한 경비를 서는 군사들의 머물던 건물)


(위: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절대신 아후라 마즈다를 나타낸 모양. 곳곳에 이 문양이 남아 있다.)

페르시아는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였기 때문에 페르세폴리스를 만들 때도 조로아스터 교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의 최대 명절로 신년축제 또는 봄축제인 노루우즈(Nowruz) 때 23개 국가 대표사절단들이 와서 축제를 했다. 그 노르우즈를 상징하는 동물과 노르우즈 때 각국에서 귀중품을 가져오는 행렬도가 장식되어 있다.



(위: 노우르즈Nowruz의 상징 동물이다. 황소는 달을 나타내고 사자는 태양을 상징한다. )

따뜻한 봄을 상징하는 사자(태양)이 추운 겨울을 상징하는 황소(달) 몰아낸다는 의미로 봄의 시작(신년의 시작)을 뜻한다. 우리의 24절기 중 춘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노우르즈는 지금도 이란 사람들의 최대 명절도 봄의 첫날에 긴 휴가를 보낸다.


(위: 노우르즈 신년 명절 때 가족들이 시간을 보내는 전통적인 모습)


(위: 16세기 노우르즈 축제. 이스파한을 중심으로 세운 사파비 왕조의 왕 타마스프(Tahmasp) 1세와 인도의 무굴 제국의 황제 후마윤Humayun이 만나서 축제를 즐기는 장면)


(위: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다리우스 궁전)

여러개의 문과 문 사이가 좁고, 문의 방향이 다양해서 비밀스럽게 생활 했다고 여겨진다. 내부의 문설주에는 평상복을 한 다리우스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위: 다리우스 궁전 계단에 새겨진 부조. 신하들이 음식을 가지고 올라가고 있다.)


(위: 다리우스 궁전과 좀 떨어진 한 쪽 벽면에 새겨진 다리우스 또는 크세르세스라고 여겨지는 부조의 일부)


(위: 다리우스 또는 그의 아들 크레르세스가 신하를 알현하는 장면에 대한 부조를 그림으로 표현 . 신하가 입을 가린 것에 대해서 입냄새가 나지 않기 위해서 라고도 하고 침이 튀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위: 아파다나Apadana 궁전 벽면 그림-신년 축제 때 23개 국가의 대표들이 특산품을 들고 오는 모습 중)

페르세 폴리스에서 가장 볼만한 장면이 그려진 곳이 아파다나 궁전 계단 조각들이다. 가장큰 건물이기도 했다.

세밀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진 그림들을 통해서 페르시아 제국의 영역의 크기와 당시 영광을 회상해 볼 수 있다.

각국의 선물은 금, 은, 바다를 누비는 배, 무기, 직물, 보석류, 가축, 올리브, 향신료 등 매우 다양했다.

아파다나 궁전은 다리우스 때 만들기 시작해서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때 완공 했다. 

72개의 기둥 중에 13개가 남아있다.


(위-아케메니드의 페르시아 제국 영역. 서쪽의 그리스, 이집트에서부터 동쪽의 인도까지 23개국)


(위: 아파나다 궁전 계단에 새겨진 각국의 조공 행렬도-매년 춘분, 노우르즈 축제 때 대행렬이 방문했다.)


(위: 아파다나 궁전의 복원도)


(위:아파다나 궁전의 복원 세밀도)

로마가 있기도 전에 만들어진 대단한 건물들이다. 


(위: 아파나다 궁전 벽면에 새겨진 군사들의 행진하는 모습)


(위 : 아파나다 궁전 벽면에 새겨진 군사들의 모습)


(위: 가장 재미있는 그림. 남자들 끼리 손을 잡고 걷는 모습에서 이란인 가이드에게 동성연애자들을 표현했나고 농담을 건넌 적이 있다. 이는 페르시아가 엘렘 왕국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였기 때문에 두 나라의 군사들의 친밀감을 표현한 것이다.)


(위: 중앙에 있다고 해서 중앙 궁전 벽면에 새겨진 병사들의 모습)

얼굴의 반쪽만 새겼지만 사진을 찍으면 웃는 모습처럼 나타나서 페르시아 병사들은 행복했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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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2015.01.11 23:34

<이제는 이란이다!>

(세상의 절반이라 하는 에스파한의 이맘광장)


(에스파한에 있는 쉐이크 롯폴라 모스크)

(그림-에스파한에 있는 쉐이크 롯폴라 모스크 내부 돔 문양. 빅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복잡하고 정교하다.  롯폴라는 여성과 왕만을 위한 모스크였다.)


이란(Iran)에 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안전한가요?"라고.

하기야 발칸을 간다고 해도

"안전한가요?"를 묻는데 이란이야 오죽하랴.

그럴 때면 항상

"한국보다, 서울보다 안전합니다."라고 답한다.



이란과 아라크를 혼돈하는 사람들도 많고 싸잡하서 위험지역으로 생각하거나

중동하면 항상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한국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많다.

물론

시리아 내전,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격, IS, 파키스탄...

걱정이 좀 되긴 된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말이다.


우선 이란은 페르시아 문화이고 언어도 페르시아어이다.

아랍이라고 하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란은 남한(대한민국)면적의 16배에 달하며 한반도 면적의 7배가 넘는다.

이는 <스페인+영국+프랑스+독일=이란>에 해당한다.

이란은 고원에 자리한 곳이다.

사막이지만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졌다.

서양인들이 이란을 여행하는 이유 1위는 사람들이 좋아서 

사람 만나러 다닌다고 이야기한다.

(지도-이란 고원을 표시한 지도-붉은 색 부분은 1500미터에서 2500미터 고원이다.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자그로스 산맥은 3,000미터에서 4,000미터급 봉우리들이 많다.)


이라크와 이란 사이엔 알프보다 높고 긴 자그로스 산맥이 자리히고 있다.

이란 북쪽도 산맥이지만 동쪽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사이에도 산맥이 있고

넓은 사막이 자리하고 있다.

가장 높은 산은 수도 테헤란 인근에 있는 데머벤드(Damavand) 산으로 5,671 m 이다. 

(이란에서 가장 높은 데머벤드 산 : 5,671 m)


이라크에서 전쟁이 있는데 테헤란 무섭다는 것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테러가 일어났는데 부산이 겁나서 못 가는 거랑 다를바 없다.

외교부 사이트에 들어가면 위험한 국가의 정도를 분류해 놨다. 

이란은 아주 안전하다.

바그다드에서 무슨 일이 있다면 이란의 테헤란보다, 

카타르 도하, 두바이 또는 이스탄불을 걱정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거리도 멀지 않고 같은 이슬람권이고 중동권이기 때문이다. 


(지도-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동선이며, 필자도 이 동선이 주 이동 루트이다. 서쪽 끝에는 사피비왕조의 처음 수도였던 타브리즈가 있다.)


현재 이란으로 들어가는 여행객 중 독일이 가장 많다. 

자신들의 조상인 아리안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인들도 엄청나게 들어가서 사업 준비를 하고 있다.

2013년 이후부터 미국의 규제가 곧 풀린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엔 가끔씩 가는 한국인들이 자야할 방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란으로 가기전 닥치고 책을 읽고 있는데 별스러운 책이 없다.

재미 있게 쓰여진 책이 전무하다. 여행기조차 없고.

그래서 이란 정부와 이야기 해서 책을 하나 쓰기로 했다.

이미 이란 부 대사를 작년에 만났다. 지원을 받아서 이란 취재및 답사를 

가기로 했는데 미루다 2월에 간다.




(현재 한국에 이란에 대해서 나와 있는 책은 이정도이다. 이 외에도 파르티아의 역사 책, 기마 민족에 관한 역사책, 수메르에 관한 역사책, 중동 신화, 이슬람에 관한 역사 책 등이 있다.)



이란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곳은 아무래도 기후 조건이 좋은 곳이다.

역사적으로도 당연히 기후가 좋은 지역에 중요한 도시들이 생겼다.

이스파한, 시라즈, 타브리즈, 테헤란, 마샤드 

(그림-기후 조건을 나타내는 지도. 이란은 연평균 강수량이 250밀리미터 정도이다. 그러나 옅은 하늘색이 지중해성 기후에다 강수량이 년간 500mm정도 내린다. 카스피해 서쪽은 1,000mm가 넘는다. 스파한과 테헤란이 있는 노란색에 해당하는 곳은 서늘하며 반-사막지역에 해당한다.항토색은 뜨거운 반-사막기후 이고 핑크색은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지역이다.)


아래 그림들은 이란의 다양한 자연환경을 보여준다.

(카샨Kashan 인근  사막-여름엔 뜨겁고 거존하고, 겨울엔 춥고 건조하고)


(이란 동쪽에 자리한 루트Lut 사막-섭씨 70도까지 올라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에스파한에 흐르는 자연데Zayandeh 강과 유명한 카주Khajoo 다리)


(이란 북쪽 카스피해 인접 지역인 고산지역 나마레스타Namarestagh 자연환경)


(이란 북쪽 카스피해 인접지역 자연지역. 바다베수르트 Badab-e Surt )


(카스피해 서쪽에 자리한 라톤 Laton 정글. 폭포가 흐르는 깊은 숲을 이루고 있다.)


(이란에 서식하는 표범)


(이란 북쪽 카스피해 인접지역인 아몰지역 하라즈 강)


(이란 북쪽 카스피해의 도시 반다레 안잘리 Bandar-e Anzali)


(이란 서쪽 자그로스 산맥에 자리한 산속의 도시 세피다시트Sepiddasht)


특이한 점으로 이란은 피스타치오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이다.

이란 남쪽과 동쪽에 엄청난 피스타치오 숲이 있다. 

(이란은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약 1/4 가량에 해당하는 지역이 피스타치오 숲이다. )


아래 그림에서 숲은 짙은 초록색 부분으로 비가 비교적 많이 오는 북쪽 카스피해 연안이다. 이는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1/5에 해당한다.

나무로는 참나무, 느릅나무, 양 물푸레나무, 사이프러스 나무 들이다.


위의 그림에서  옅은 초록색 지역은 숲과 스텁지역으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며 지중해성 기후와 비가 촉촉히 내리는 곳이다. 

산악지역 경사면과 마을에 과수원이 많다. 

평지에 있는 나무들로는 플라터너스, 버드나무, 뽕나무, 호두나무, 너도밤나무 들이 심어져 있다.


좋은 환경이다보니 그만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도시들이 생겼던 곳이다. 

중앙엔 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는 이란의 진주 에스파한(Esfahan)이 있다. 

그 남쪽 시라즈는 와인 품종 시라즈가 나온 곳이고 바로 인근엔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니드 왕조의 다리우스가 만들기 시작한 유명한 페르세폴리스(페르시아인들의 도시)가 있다.


(그림-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니드의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시절 판도. 엘렘의 수사에서에서부터 시작된 왕의 길은 지금의 터키 해사르디스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초록색은 아케메니드 왕조의 주요 도시였던 페르세폴리스, 파사르가드, 수사, 바빌로니아 )



페르세폴리스 -그리이스인들이 부르는 이름이지만 페르시아어로 타크트 잠쉬드: 잠쉬드의 왕좌라는 의미이다.)

(페르세폴리스 전경-페르시아 제국 이전, 메디아 왕국의 건축 기술을 이용했다.)


(페르세폴리스  전경)

(백개의 기둥이 있는 곳. 그 뒤로 아타크세르세스 3세-Artaxerxes III- 의 무덤 )


(겨우 남아 있는 기둥)


(다리우스 대왕의 궁전과 벽면에 새겨진 부조. 이 궁전은 다리우스 1세를 지나 그의 아들 크세르세르까지 지어졌다.)


(좌: 메디안 병사. 우: 페르시안 병사-메디안 왕조의 마지막 왕의 외손자였던 위대한 왕중 왕 키루스 2세가  메디아 왕조의 장군들과 함께 페르시아 왕조를 만들었다. 그는 포용정책을 통해서 다민족 문화를 수용했다. 이런 부조가 나오는 것은 페르시아 통치의 한 면을 보여준다.)



(그림-역사적인 유적이 남아 있는 수많은 장소들)


저 곳을 다 볼 필요도, 다 볼 수도 없겠지만 땅이 넓고 역사가 화려한 만큼 많기도 하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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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두루가이드 (오동석) 두루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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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르시아 제국의 숨결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거대한 문명과의 만남이 될것 같습니다~ 정말 기대됩니다~ ^ ^ㅎㅎㅎ

    2015.01.12 16: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5.01.14 11:2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