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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은 상징을 찾아가는 인문학이다
여성신문 연재

요정들이 사는 곳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 여성신문#3

by 두루가이드 2012. 10. 19.
요정들이 사는 곳 플리트비체

▲ 카르스트지형의 석회동굴과 계단식 폭포가 신비로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훼손되지 않은 원형의 자연이기 때문일까? 마법의 세계이기 때문일까?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Plitvice)는 갈 때마다 설레는 도시다. 두 번째 왔다는 사람들도 “지난번 왔었기 때문에 안 봐도 되나 싶었는데 다시 걸으니 정말 좋네요!”라고 한다.

여름이면 수천 마리의 반짝이는 요정들이 적막한 숲속의 밤을 판타지 세계로 만든다. 잊었던 추억을 깨워주는 반딧불이들은 플리트비체가 완벽한 자연이라 말한다. 조용한 숲길에 서 있는 거대한 나무들은 몇 그루만으로도 하늘을 가린다. 진짜 요정이 푸드득 하고 나무 뒤로 숨을 것 같다.

사람을 가까이하는 친근한 송어 떼가 발걸음을 가끔 멈추게 한다. 빠져들 것만 같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코발트 블루색의 투명한 호수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면서 주인이자 마술사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에 의해서 플리트비체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가 되었다.

햇살이 따가운 여름에도 거의 그늘로만 걷기 때문에 햇살을 피하는 우리로선 더욱 반갑다. 가을이 되면 잔잔한 수면 위로 물안개가 춤을 추고 원색으로 갈아입은 나뭇잎과 옥빛 물의 조합은 빈센트 반 고흐도 흉내 내지 못할 색의 천국이 된다. 높은 호수에서 낮은 호수로 떨어지는 수백 개의 폭포수는 역동적인 자연의 생명력이다. 그러니 3시간을 쉼 없이 걸어도 지루하거나 피곤할 수 없는 곳이다.

카르스트지형이 만든 신비로움

▲ 호수 주변의 소나무가 호수로 쓰러진 모습.
플리트비체 예제로(Plitvice Jezero·호수) 국립공원은 카르스트지형이 만들어낸 특이한 자연을 가졌다. 카르스트지형에는 석회암이 녹아 들어 생긴 종유굴이 많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비에 녹아 땅속으로 들어가면 석회 성분을 녹여서 구멍을 만든다. 아주 오랜 시간 물이 흐르며 지하엔 아름다운 종유석이 발달한 여러 갈래의 석회동굴(종유굴)이 생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인근엔 폭탄이 떨어진 자리처럼 땅이 움푹움푹 파인 곳이 많다. 이는 동굴 천장이 함몰되어 생긴 현상이다. 이런 땅덩어리 위에 생긴 계단식 호수와 폭포는 물속에 녹아 있는 석회와 이끼가 마술을 부린 작품이다. 무대는 카르스트 지형이고 마술사는 물이며 재료는 물속에 녹아 있는 석회와 물에서 자라는 이끼다.

호수 옆에 자라는 소나무는 물 때문에 뿌리가 썩어 호수로 쓰러지고, 수량이 많을 때는 물에 휩쓸리다 일정한 지역에 모인다. 나무에 붙어 자라는 물이끼에는 석회 성분이 잘 엉겨 붙는데, 아주 오랜 기간이 지나면 쌓이고 쌓여 단단한 이끼 화석이 된다. 이것이 수면 위로 쌓이면 댐 역할을 하고 강물을 가두게 돼 호수를 만든다. 이런 현상이 강물 전체에 발생한 플리트비체 호수에는 많은 댐이 생겨났고 계단처럼 16개의 층을 이루게 됐다. 댐은 잘 부서지기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면 댐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이번 방문에서 지난해에 멀쩡했던 부분이 무너진 곳을 볼 수 있었고, 지난 여름 서 있던 나무가 쓰러져서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가 잠기면 석회 성분이 모이기 때문에 표면에서 보는 물색은 파란색을 띤다. 이렇게 이곳에서는 매년 매달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열여섯 개의 호수는 상부와 하부로 나뉜다. 상부 호수와 하부 호수로 나뉘는데 그 생김새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상부는 매우 아기자기하고 복잡한 반면 하부는 오래전 동굴이었던 부분이 함몰돼서 생긴 지역이라 깊은 골짜기에 호수가 형성됐다. 각각의 댐 위로 흐르는 물이 폭포수를 이루는데, 흔한 폭포수처럼 물이 하나의 줄기를 이루어 떨어지지 않고 이끼와 석회가 만든 파이프를 통해 수십 갈래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방향과 각도가 제각각이어서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같이 느껴진다. 낙차가 아주 작은 물줄기도 듣기 좋은 자연의 소리를 만든다. 산책로 한 곳엔 호수 위 벤치를 두어서 시청각으로 감상하게 했다. 잠시 앉아 있노라면 경쾌한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된다.

동물들의 천국, 반딧불이도

▲ 아름다운 폭포 주변을 산책하고 있는 관광객들.
“이 지역엔 곰이 출몰하고 사슴이 다닌다”고 설명하면 “위험한 동물이 있는데 어떻게 다녀요?”라고 순진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립공원 연구소에 따르면 곰들은 새끼를 기르기 위해 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이 지역을 지난다고 한다. 크로아티아는 유럽에서 곰이 서식하는 가장 서쪽 지역이며 총 500에서 900마리가 서식한다고 한다. 더 서쪽 유럽엔 불과 한두 마리가 발견될 뿐인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크로아티아 화폐 5쿠나(Kuna·화폐단위) 동전에 곰이 새겨져 있는 것은 크로아티아가 곰 서식지라는 자부심의 표출이다. 국립공원 인근 호텔 대부분도 곰을 박제해 호텔 프런트에 전시하고 있다.

가장 흔해 보이는 것은 송어다. 송어 떼도 역시 크로아티아 동전에 등장한다. 길들여진 동물처럼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길 옆에 송어가 바싹 붙어서 뭔가를 던져주길 기다린다. 오후가 되면 물뱀이 풀 위로 올라와 햇볕에 몸을 덥힌다. 그 외에도 140여 종류의 새가 살고 있고 40여 종류의 포유류가 산다. 필자가 매년 여름 어김없이 찾아가는 플리트비체의 밤은 항상 기대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선 농약 때문에 오래전에 사라진 추억 속 반딧불이가 플리트비체에선 요정이 되어 날고 있기 때문이다.

1208호 [세계] (2012-10-19)